정신없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그리고 새해가 지나면 첫 주에는 대다수가 일자리로 복귀를 하게 마련이다. 학생들은 학기제나 쿼터제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겨울방학을 맞지만, 직장인들이야 그런 호사를 바랄 수 없으니 보통 1월 2일부터는 속속 밥벌이를 위해 돌아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해의 시작은 마치 시시포스의 과업(?)이 리셋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열심히 일년 동안 언덕으로 바위를 굴리고 연말이면 거의 꼭대기에 올라선다 싶을 때,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매년 같은 일을 반복하다가 물러나는 건 은퇴하게 되는 시점인데 요즘처럼 job security가 없고 늙어 죽을 때까지 벌어야 살 수 있는 것이 대다수의 삶이라서 뭔가 이 나선미궁 같은 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삶, 패러다임을 바꿔버리는 방법이 없나 고민하곤 한다.  책과 영화나 게임 같은 것들, 그리고 꾸준히 하는 운동 등 좋아하는 걸 최대한 자주, 그리고 꾸준히 즐기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부동산을 투자의 대상으로 아예 안 볼 수는 없지만, 투자의 대상보다는 안정적인 거처의 의미로 접근한다면 직장의 위치와는 무관하게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서 현대인의 대다수를 옭아매는 빚의 굴레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어디든 너무 오른 가격이지만, 그래서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는 도시라도 지금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준비가 되어 움직일 시점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미래의 가격상승을 노리고 많은 빚을 지고 허덕이면서 살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훨씬 더 낮은 가격으로 집을 구하고 조금은 어려운 통근을 하면서 빠른 payoff를 통해 시간과 더 나은 미래의 기회를 노릴지.  호불호가 갈리고 사람마다 말이 다르기 때문에 이건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따라 갈릴 수 밖에 없는 길이다.  같은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이 삶이라서 더욱...


오래 전에 맡겨진 재산. 엄청난 액수로 불어난 이 예금의 유일한 상속자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독일, 영국, 미국의 첩보기관과 얽혀드는 보통 사람들. 늘 그렇게 생각하지만 르 카레의 작품의 결말에는 허무와 배신이 가득할 뿐이고 이 작품에서는 그나마 다른 책에서 등장하던 '정의'로운 결말조차 없다. 읽는 내내 긴장보다는 답답함이 가득했는데 결말을 보고 나면 그 답답함이 가시기는 커녕 우울하기 짝이 없는 적나라한 현실을 느낄 뿐이다.  미국과 소련의 양자구도를 바꾼 건 냉전종식과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잠깐 안정된 듯 보였던 세계를 박살낸 9-11 테러였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또한 쌓이고 쌓인 중동문제가 특이점에 도달한 결과였지만 어쨌든 9-11 이후 세계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이 종교와 인종, 국가, 목적, 철학, 이권 등 너무도 다양한 요소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21세기 현재 국제정치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듯, 이 소설에서도 뚜렷한 선악구도가 나오지 못하고 누군가를 위한 행동이 반드시 그런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고, 기실 누가 옳은 건지도 알지 못한채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끝나버린다.  뭔가 불편하고도 불편한 소설.   


장르와 문학성을 떠나 아주 오래 전에 흘러가버린 시절의 소설을 읽으면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그 단순명료함이 종종 이상하거나 유치하기도 하지만, 르 카레를 읽고 나서 마저 읽어낸 모파상의 (어릴 때 순전히 발음때문에 웃기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단편모음집은 르 카레 때문에 생긴 체증을 내려보내주었다. 결말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에피소드성이 짙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회와 특정계층이나 부류에 대한 신랄한 풍자도 볼 수 있고, '산장' 같은 작품에서처럼 홀로 내버려진 사람의 공포를 볼 수도 있다 ('산장'과 함께 몇 개의 이야기는 국민학교나 중학교 때 어디선가 따로 편집된 걸 읽은 기억이 있다. 물론 모파상이 저자인건 이번에 알았지만).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적장자와도 같은 작가이면서도 어떤 양식이나 'ism'에 구속되길 거부했다는 작가, 모파상의 이야기가 문학사에 남은 이유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cyrus님의 표현처럼 '힘이 빠진'듯함으로 볼 수 있는 에코의 마지막 작품. 풍자였나 무엇이었나 한참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결말을 보면 '장미의 이름'처럼 음모론이 섞인 추리극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Shadow writer로 살아가던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창간호를 준비하는 언론매체에 비밀엄수를 조건으로 recruit된다. 매일 미팅을 하고 기획을 하지만 실제로는 출판되지 않을 간행물. 이 와중에 난데없이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듯한 동료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과대망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동료의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었음이 갑자기 확정되고 이와 함께 회사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후 당장 신변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는 것으로 거의 결말이 나오는 이야기.  지금 생각하니 이 가짜작업의 목적은 완벽하게 봉합된 것으로 생각한 초국제적인 음모가 여러 dot을 connect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걸 유도하고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일이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으니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이 EU를 와해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푸틴의 작업이었음이 뮬러특검의 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사의 대부분은 '오컴의 면도날'법칙이 적용될 수 있겠으나 가끔은 배배꼬인 극소수의 덕후들을 통해 외견상 전혀 연결점이 없어보이는 일들이 일목요연하게 추리되어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음이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코니 윌리스의 단편모음집 첫 번째. '둠스데이북'에서 본 몰입도 120%의 작품세계 때문에 마침 '둠스데이북'의 prequel에 가까운 혼란스러운 표제작이 반가웠고 '리알토에서'는 양자역학이 현실에 적용되는 듯 무척 혼란스러웠으며 '나일강의 죽음'은 끝까지 결론을 낼 수 없는 '환상특급'처럼 읽었다.  알라딘에서 배송을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은 '둠스데이북'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읽고 있을텐데.  한 시기에 여러 주문패키지를 넣은 건 맞디만 그래도 이렇게 한꺼번에 3-4박스의 주문이 도착하는 건 질색이다. 기다림의 보람을 느끼는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책이 갑자가 쌓이면 정리도 한꺼번에 해야 하고 무엇보다 한꺼번에 읽을 것들이 쏟아지는 부담도 적지 않다.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하나씩 맛을 봐야지 한번에 스무 가지가 차려지면 되겠는가... 



환상소설과도 같고 구슬픈 전래동화와도 같은 작품들. 시대상도 그려지니 고전에는 소설읽기를 통한 엔터테인먼트의 성격도 있지만 일차사료로써의 성격도 있다. '임멘 호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끝내 맺어지지 못한 사랑의 기억이 노년에서 회상되는 듯한 결말 때문이다. 짧은 작품속에 어쩜 그렇게 함축적이고 정확하게 사랑과 멀어짐, loss와 회상까지 표현이 잘 됐는지...

'민음사'와 '열린책들' 그리고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시리즈를 한국의 3대문학전집에 넣고 여기에 을유를 비롯한 나머지로 떠오르는데 열린책들의 경우 특유의 구성과 선택에 겹침도 들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다양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원래 잠깐 서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다 NFL football의 양대리그 각각의 챔피언결정전을 보려고 했으나 아는 얼굴을 만나서 좀 떠들다 보니 첫 번째 게임의 반이 지나버렸다.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페이퍼를 마무리하고 다시 TV 앞으로 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