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를 쓰다 말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다시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지워버리기를 여러 번. 벌서 여섯 권이 쌓여버렸다.  가끔 오는 한가한 주간을 맞이한 이번 주의 화요일은 재택근무를 하기로 하여 간략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메일과 전화상담만 진행하면서 책을 읽기로 했다.  새벽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관계로 운동을 자꾸 오후나 저녁 이후로 미루는데 그럴수록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요즘이다.  이를 바꿔보려고 오늘은 오전 11시 정도에 gym에 갈 생각이다.  다리와 어깨운동을 하는 날이고 끝내면 treadmill에서 65분/6+ mile을 목표로 뛰고 걸을 계획이다.  수치를 측정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어떤 운동이든 2시간을 하면 대략 1000칼로리 정도를 태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YouTube에서 보고 측정해본 결과인데 예를 들어 strength training을 2시간하는 것과 이를 cardio workout과 적절히 mix하는 것과 비슷한 수치의 칼로가 태워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cardio workout 나름대로의 장점과 after-burn같은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라서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하기 보다는 하기 싫은 운동일수록 더 자주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갈수록 깊어지는 저자의 혜안과 강호기담. 앞서 읽은 '조용헌의 인생독법'과 함께 봐야 더욱 좋은 책인데 한국 곳곳에 위치한 영발이랄까 기도발이랄까 이런 것들이 좋은 곳을 소개하는 책이다.  자리만 잘 잡으면 공부나 기도가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도판의 말이 있다고 하는데 마치 장사를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력이나 자질만큼 중요한 것이 결국 좋은 터를 만나는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이나 다른 곳이나 이런 터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주로 종교시설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유수산사들의 경우 대개 매우 좋은 터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토착신앙의 중심지였던 곳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는 서양에도 꽤 있는데 영국의 유명한 성당자리는 기독교가 영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드루이즘의 중심지였다고 하고, 유럽 곳곳에 이런 자리들이 상당히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런 곳에 가면 기감이 좋은 사람들은 바로 느낌이 온다고 하는데 그쪽으로는 수련을 별로 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당장 요가나 필라테스, 근육운동, 달리기 등 운동을 오래 하다보면 몸상태에 대한 감이 매우 예민해지는 걸 보면 비슷한 원리가 아닌가 싶다.  이곳에는 세도나가 가장 유명한 영지인데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가서 머물러 봤으면 한다. 나 자신은 잘 모르지만 주변에서 간혹 공부 좀 했다는 분들에게 소위 신까머리가 있다는 말을 듣곤 하니 어쩌면 백회혈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좋은 터도 부럽지만 지금은 그저 책을 잘 펼쳐 정리하고 편안히 앉아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아쉽다. 어느새 웅심은 사라져가고 그저 조금 빨리 넉넉하게 은퇴하고 미뤄둔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을 찾길 희망하는 늙은이로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 저자의 '휴휴산방'같은 공간이 부럽다.  방외지사를 자처하고 널리 오가는 편이지만 저자는 역시 성공한 작가라는 생각을 한다.  정규교육을 받은 강단문사가 강호인문학을 통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인생의 역설 같은 걸 느낀다.


지금의 미국, 그러니까 제조업이 쇠퇴하고 소위 말하는 블루컬러가 다수를 이루던 중산층이 몰락한 미국의 모습은 이미 80년대에 예견되었음을 보여준다.  책이 그린 시절과 모습이 지금에서 보면 근 30년, 그러니까 한 세대나 이전의 것이라서 그저 풍요롭게만 보이던 미국의 80년대의 이면이 쉽게 가슴에 다가오지는 않는다.  궁시렁거리는 듯한 저자의 말투는 예나 지금이나 같고 묘한 아이러니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것도 당시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뭐랄까 현장감이랄까 동시대감이라고 할까, 힘이 딸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다만, 클린턴의 NAFTA 이전에도 이미 미국의 중산층은 조금씩 몰락하고 있었는데 발전된 도시에는 그 물결이 아직 몰아치기 전이었지만 80년대에도 이미 중서부의 많은 도시들은 쇠락하고 있었던 것을 끊임없이 볼 수 있었다.  6-70년대의 블루컬러집단이 미국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인권운동의 산실이 되었고 80년대에는 이들이 약해지면서 조금씩 우경화한 끝에 지금의 미국에 이른 것이라면, 다소 과장이 있겠지만, 결국 레이건의 정책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가 가속화된 끝에 레이건의 공화당이 트럼프라는 사기꾼을 통해 이런 정책에 새로운 에너지를 넣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장난과도 같다. 더구나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해서 하등 좋을 것이 없는 사람들 대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나모씨의 말마따라 적어도 어떤 '민중'은 '개돼지'에 다름 없다.  못 가본 여행지가 너무 많아서 굳이 이상한 곳을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므로 과연 아이다호나 아아오와 같은 곳을 방문하게 될지 모르겠다. 내 포커스는 일단 서유럽과 인근의 유수도시, 그 다음엔 남유럽, 그리고 한국의 좋은 곳들에 맞춰져 있는데, 이걸 다 돌고 나서도 시간과 돈, 그리고 건강이 남이 있다면 그 다음으로 좀더 특이한 곳을 생각하게 될 것이므로 미국 횡단은 요원한 이야기다.  특히 지금처럼 곳곳에 미친 들불이 활활 타오르는 트럼프의 미국이라면 굳이 자동차로 미시시피 같은 곳을 갈 이유가 없다.  


로쟈선생의 신간. 지난 2012-2018까지의 독서평론 모음집이다. 한창 이런 책들을 많이 읽던 시기도 지나 조금은 비교와 배움과 평가에 대한 열망이 가라앉은 지금이라서 과거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서 소개된 이런 저런 흥미가 가는 책을 보관함에 모셔놓게 되는데 어쩌면 독서는 재미나 배움을 넘어 어떤 면에서는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표지그림이 참 맘에 드는데 저자의 첫 책장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받은 것 같다. 요즘에는 좀처럼 가죽제본으로 나오는 책, 그것도 그림처럼 책등에 마디가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 중고책으로 구할 수 있을 뿐이다. 한 권에 싸게는 20불대, 비싸면 보통 50불대인 Easton Press의 책들이 가장 흔하고 그 이상의 책들은 쉽게 볼 수도 없는 수집품에 가까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직업이 취미와 겹치는 로쟈선생만큼 다양하고도 많은 책을 보고 가질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자영업을 시작하고서는 매년 많은 책을 사들여 읽고 보관하고 있어 그런대로 문사흉내는 내면서 살고 있다.  많이 사려고 하는 건 아닌데 갖고 싶은 책을 사들이다 보면 연말결산 때 한숨과 까무러치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넓은 서재를 얻으면 모두 해결될 일인데...넓은 공간을 서재로 정하고 잘 나눠서 조금 cozy한 공간을 따로 만들어 바닥에 앉아 벽에 기대어 책을 볼 자리를 만들고 그 곳곳에 낮은 책장으로 책을 꽂아두면 나머지 공간의 높은 책장과 좋은 대조를 이룰 것이다.  생각해보면 2007년부터 연간의 독서량을 측정했는데 (기록은 달력과 함께 사라졌지만) 대략 2007-2016년, 삼십대의 십년 간 약 2500권 정도의 책을 읽은 것 같다. 그렇다면 십년마다 약 2500권을 읽을 수 있다고 할 때 팔십까지 건강하고 넉넉하다면 충분히 '독만권서'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행만리로'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안 가본 곳이 너무 많아서 독서마냥 부지런히 다녀야 할 이유다.  


명확히 추리소설로서는 반칙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행위가 보여 추리소설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편의 영화, 그것도 플롯의 장치는 작가가 꼭꼭 감춰둔 활극을 보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어두운 과거가 있는 변호사. 그 변호사가 주로 맡는 사건은 역시 변호보다는 fixing에 가까운 일인데 대가가 엄청난 케이스로 번 돈은 그가 흥미를 갖고 돕는 케이스에 들어간다.  마치 파렴치한 처럼 인식되는 그의 수입원은 한국이라면 대형로펌이나 전관예우를 두둑히 받는 판사나 검사 출신의 법조인이어야만 맡을 수 있는 인기상품(?)인데 이들의 행태와 당당함(?)을 보면 소설이 현실보다는 조금 더 양심이 있다는 생각이다.  변수와 변수를 꼬아 놓고 클루는 전혀 제공하지 않았기에 추리에 대한 이야기는 할 것이 없다.  대략 나쁘지 않은 책.


저자는 일본추리소설의 3대기서라는 '흑사관 살인사건'의 오구리 무시타로인데, 내 생각으로는 저자야말로 기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설은 기괴하고 장황하고 복잡하며 여러 모로 많은 배경지식을 자랑한다. 여기에 아무리 봐도 발번역이 의심되는 그대로의 장황한 언설로 도무지 추리나 스토리에 깊이 몰입하기 보다는 그저 내용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무척 복잡하게 설명을 하고 거기에 문장의 맺음이 어려운데 보고서를 그렇게 썼다면 아마 시말서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단편모음집.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질 것만 같은 작품. 그만큼 비주얼이 훌륭한데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일단 매우 과장된 귀족주의와 melodramatic한 면이 있는데 켄 폴릿의 20세기 3부작을 읽으면서 느낀 제정러시아의 귀족에 대한 이미지가 강한 탓에 이토록 너그럽고 의리가 있는 러시아의 귀족의 이미지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여기서 묘사된 매력은 귀족보다는 조금 더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서 주로 보여지는 모습인데 귀족은 기실 이렇게 남에게 잘할 필요가 없는 면도 있고 두루 잘 지내는 건 조금 더 현실적인 일상의 삶을 살아야 했던 젠트리계급에 어울리는 것 같다.  러시아혁명 후 할머니를 탈출시키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온 주인공은 어느 호텔에 영구적인 연금상태가 된다. 처음에는 머물던 suite을 빼앗기는 정도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웨이터로 일을 하는 그야말로 공산주의적인 처분을 받는데 이를 잘 받아들이는 것 이상 현실성이 떨어지는 건 그의 유형상태이다. 조금만 잘못해도 사형이나 시베리아유형이 일반적이던 스탈린시절의 냉혹한 소련에서 구귀족이 이렇게 잘(?) 지내고 있었다는 건 지나친 허구가 아닌가 싶다.  스토리나 전개 그 자체는 넉넉하고 따뜻한데 이런 레트로한 감성이 주는 향수와 추억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전체적으로 현실성은 매우 떨어지고 장치고 좀 맘에 안 드는 면이 있지만, 긴 시간을 잘 나눠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면, 그리고 드라마성이 상당한 덕분에 읽는 재미는 가득했다.


뭐 하나가 해결이 되면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이 이번 해 내내 나의 일이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아니면 그 나름대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돼지를 탓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개돼지는 영원히 개돼지로 남을 것이고 그 자자손손 개돼지가 사람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이리도 넓은 나라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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