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값이나 인세, 그리고 물가인상 등의 여러 가지를 생각해도 한국의 책값은 비싼 편이다. 물론 단순히 값을 비교할 때 영미권이나 다른 나라들보다는 좀 저렴한 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 계속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그 커다란 글자체, 짧은 내용, 줄어든 두께를 새삼 느끼면서 분명히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90년대 중반부터였나, 조금씩 활자체가 커지고 line space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책 한 권은 이런 트렌드가 이어진 결과 예전 책 반 권이 좀 안되는 양으로 생각된다.  정확히 수치화해서 비교한 것은 아니지만 약 두 배로 커진 활자체, 두 배의 간격을 생각할 때 그런 것 같다는 말씀.  그런데 가격은 예전에 비해서 거의 세 배가 되었으니 분명히 책값은 비싸진 것이다. 인세율이 더 올랐거나 staff들 월급이 두 배로 올랐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으니 필경 값이 비싸졌다고 해석하는 것 외에는 달리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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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토요일 아침. 간만에 나온 BN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읽은 것들을 정리해본다.


김성종작가의 추리소설 두 권을 읽었다. 모두 산타클라라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안개'는 인기추리소설작가로 살아가면서 본업은 킬러인 사람이 우연한 사건이 겹쳐 잡히는 이야기. '밀서'는 대기업, 첩, 질투하는 마누라, 유괴를 버무린 사건인데 결론이 갑작스럽고 어쩌면 가장 나쁜 놈인 부회장에게 남자'답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는 듯함이 맘에 들지 않는다. 여자는 피해자라고 봐야 하는데, 마지막에 유서를 쓰면서 자살해버리는 것도 맘에 들지 않고. 카폰이 고가의 사치품이던 시절이라고 해도, 노작가라고 해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봐도 많이 모자란 듯.

이야기의 재미는 소소하다. 시간을 보내면서 아무런 부담이 없이, 그리고 너무 재고 채는 감도 없는, 아주 술술 흘러가는 대본소의 무협만화 같은 이야기.  그래도 추리소설의 기본에 충실하게 모든 단서가 제공되고 유추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 다 주어진다.  


김탁환작가는 책도 많이 팔고, 드라마와 영화로도 판권을 넘겼으니 상업적으로 굉장히 성공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 선생자리도 갖고 있으니 (가졌었거나) 어느 정도의 명예도 가졌고, 게다가 세월호참사에 대한 그의 마음가짐을 볼 때 충분히 상식적인 수준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니 그의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로 17세기의 조선을 무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워낙 교묘하게 역사와 창작을 섞어내기 때문에 읽다보면 무척 그럴 듯하다.  


정조나 효종으로 추정되는 왕의 시대. 한 옹주가 살았다. 마침 한양에는 조선최고의 마술사라는 환희가 그 이름도 너무 오마쥬적인 '물랑루'에서 공연을 한다. 그리고 당연히 둘은 사랑하게 된다. 신분을 뛰어넘고, 약소국 조선에 횡포를 부리는 청나라의 사신에게서 옹주를 지키기 위해 마술대격이 벌어지고, 신명하는 활극이 벌어진 끝에 둘은 조선을 떠나 환희가 먼저 떠돌았던 세계 곳곳을 돌며 공연을 펼치며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야기의 현재는 빅토리아여왕치세. 즉위식을 축하하기 위한 공연을 펼치는 신비의 마술사, 그 마술사의 과거이야기, 그리고 먼 훗날 빅토리아여왕의 회상으로.  금방 읽을 수 있고 허무하지 않은 충분한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이 소설을 보면서 참 즐겁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브레다의 태양'을 구해다 주실 분 계신가요? 3부작인데 마지막 이야기를 구할 길이 없다. '검의 대가'와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을 보고 과거 '뒤마 클럽'을 재미있게 본 기억을 하면서 새삼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버렸다. 없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마침 중고로 많이 떠있던 작가의 절판작품을 포함, 구할 수 있었던 모든 번역작품을 주문했고 지난 주중에 약 35일 만에 배송을 받았다. 17-18세기 정도, 검술, 스페인, 유럽, 격식과 예절, 그리고 믿음 뒷면의 추악한 음모와 종교적 광기까지 모든 장치와 준비물을 갖춰놓고, 화자와 화자가 섬기는 군인출신의 검객 알라트리스테가 겪는 모험활극. 두 이야기를 모두 관통하는 건 결국 일종의 차도살인음모. 늘 함정에 빠지고 늘 운 좋게 벗어나는데, '브레다의 태양'에서는 어떻게 될런지.  화자는 아주 나중까지 살아남은 먼 미래의 이야기를 가끔 비추는 것으로 볼 때 잘 살아남겠지만, 정작 알라트리스테는 어떨지.  종합격투기를 통해 모든 무술이 짬뽕이 된 시대인 지금, 17-18세기 서양의 레이피어, 그 이전에 잘 쓰이던 롱소드나 바스터드소드, 중국의 검창도부, 한국의 검술, 일본의 검술 이런 것들이 한 군데 어우러져 싸우게 되면 어떤 형태로 표현이 될까.  이런 생각도 하고, 알지도 못하는 마드리드 뒷골목 어딘가가 떠오르기도 하는 등, 참 즐거운 만큼, 빨리 지나간 책읽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돈에 째째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작은 액수도 어려운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얻었다. 늘 배포가 커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덕분에 작은 건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이 책은 무엇을 하라고 독려하면서 그걸 뒷받침하기 위해 이런 저런 고전과 위인들을 quote하는 싸구려가 아니다. 간만게 자계서 비슷한 책을 읽게 되었는데,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담담히 잘 들었다는 기분이다.  실리콘밸리에 '스타강사' 김미경씨가 온다고 표를 준다고 하길래 괜찮다고 했다. 그렇다. 딱 질색이다 그런 강의나 강사. 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건 뭔가 자기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 하는 말이지, 책을 쓰는 것으로 유명해지고, 다시 그 유명함을 갖고 강의를 하면서 계속 바퀴를 굴려가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  이모씨, 김모씨를 비롯해서 엄청 많은 베스트셀러작가이자 자계강사인 사람들 중에서 과연 몇이나 진짜 사회나 기업 등 어떤 판에서 제대로 뭔가를 이뤘는지 따져볼 일이다.  이 책의 저자의 약력을 잘 모르겠으나 최소한 일반적인 자계서의 패턴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마침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ok를 준다.  다만 역시 양에 비싼 글값.


간만에 이런 간지럽고 얄개스러운 이야기를 읽었다. 아이들이지만 나름 괜찮은 추리를 보여주고, 여고를 무대로 일어나는 일들이 소재라서 굉장히 현실적인 면도 있다.  '악의 교전'이 떠오르는 면도 있고, 배상훈교수가 상담한 사례로써 여학교를 무대로 망상을 펼치는 loser선생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중에 중고로라도 구해놓고 싶은데, 한국작가의 추리, SF, 판타지소설은 그 불모지의 성격을 감안하면 무척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소설을 주로 읽었는데, 나는 깊이 공감하거나 등장인물을 음미하면서 소설을 읽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속도가 너무 빠른 감이 있다.  oh well.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거니까.  남은 주말, 몇 권의 책을 만나려나...아르투로 페레즈의 책이 많이 남아있어서 아주 기분이 좋다.  당분간은 책구매를 자제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어쨌든 읽을 책은 넘쳐나니 참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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