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탄핵과 문재인대통령의 당선 이후 요즘처럼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본 적인 없는 것 같다. 나만 아니라 한국인이라서 어디에 살더라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다.  물론 30%는 언제나 30%로 남겠지만. 미국의 뉴스는 또 다른데 트럼프는 골수지지층을 끌어안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남북화해국면을 최대한 이용해서 개인적인 허영을 채우고 정치적인 이득을 보려고 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뮬러특검을 계속 진행중이고 트럼프에게 불리한 다른 정황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워낙 이슈의 파장이 큰 사안이라서 아마 시간을 꾸준히 끌어갈테니 트럼프가 남북화해국면에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 이유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노벨평화상이 대단한 명예라고는 하지만, 그걸로 트럼프가 한 짓을 국내적으로 퉁칠 만큼 미국의 삼권분립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기 때문에 한국이 남은 시간동안 최대한 필요한 것을 얻어내고 여러 가지로 지금의 분위기를 계속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토대를 굳건히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사실 국제관계는 100% 힘의 관계이고 거기에 명분이란 것이 살짝 숟가락을 얹을 뿐이라서 남북은 필히 사회나 문화, 그리고 경제 전반에 걸쳐 계속 상생관계를 만들어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 즉 지금의 모든 것을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기정사실화하고, 되도록이면 많은 국내외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게 해야만 보다 더 안전한 미래로 갈 수 있다고 본다.  나도 북한땅에서 옥류관냉면을 먹고,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인가 어딘가 하는 북쪽의 꼭대기를 가보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냉면킬러라서 아마 두세그릇은 그냥 넘겨버릴 수 있을텐데...닝닝한 원조평양냉면의 맛이 남쪽의 영향으로 새콤달콤해지기 전에 가보고 싶다.


톨킨, 롤링, 루이스 등 현대의 대표적인 판타지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책이다.  마녀나 마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종교계의 보편적인 우려와는 달리 상당 부분 이들의 뿌리가 결국은 서양의 기독교문화권에 있음을 도출하는 것으로써 작가들마다 겪었던 종교문화적인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편역자 자신의 종교관도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이런 논쟁, 특히나 보편적인 기독교관하고도 특정분파에서 치중하는 이슈는 지겹기 그지 없다. 무엇이든 종교와 연결을 지어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고와 세계관이 이젠 딱하다는 생각도 아깝다.  톨킨의 방대한 세계관은 사실상 거의 모든 현대 판타지소설과 게임의 모태가 되었을만큼 그 자체가 하나의 천지창조적인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 톨킨이 어린 시절부터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훗날 이런 대서사시로 표현된 것을 보면 역시 작가란 어느 정도는 타고나야 한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원래 판타지와 SF를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좀더 개론적인 지식을 위해 구했고 읽은 후에는 당연히 더욱 판타지의 세계관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계획하고 뿌린 대로 거둔 독서의 씨앗과 열매가 아닌가.


이젠 벌써 근 4-5년이 다 되어가는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던 로맹 가리.  돈이 생길 때마다 틈틈히 그의 책을 사 모은 끝에 최근에 주문한 '징기스 콘의 춤'을 제외하고는 한국어 번역으로 나온 로맹 가리는 모두 갖고 있다. 당시의 계획은 한창 한 작가를 전작하던, 정확하게는 하루키를 전작하면서 생긴 버릇에 따라 로맹 가리를 전작하는 것이었는데, 워낙 읽을 책도 많았기 때문에 계획보다는 훨씬 늦게 조금씩 로맹 가리의 책을 읽게 되었다. 전작을 꿈꾼 작가는 소세키도 있고, 카잔차키스를 비롯한 고전문학속의 거장들이 다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왜 모두 고전을 읽지 않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모아두니 생각이 날 때, 아니면 우연히 펍에 앉아 맥주를 마시다가 지인을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듯이 손에 들어오면 눈에 담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책이 천지사방에 널려 있고 도서관이나 헌책방이 지척에 있으면 모를까, 이곳에서 한국책이란 일부러 노력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자투리로 남이 고른 책을 읽는 것만 가능할 뿐이다.  


책읽기가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생각하고, 종종은 왜 일년에 열 권도 채 못읽는 사람들이 대다수일까 생각하면서 역시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달고 다녔다. 근데 평생 성적관리만 하다가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어지간히 뛰어난 성적과 스펙, 아니면 돈많은 집에 태어나 이런 저런 네트워킹이 가능하지 않은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취직을 위해 또다시 수험생이 되고, 취직이 되면 빚값고 씀씀이가 큰 도시생활을 버티느라 대기업도시빈민으로 살아가는 요즘 책읽기에 대한 나의 관념은 꼰대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먹고 사는 일이 지난하면 그 밖에 모든 것은 관심밖인 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 '유럽의 교육'에서 전쟁통에 매일이 참극이고 비극인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성장아닌 성장을 보면서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방불케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시가전이랄까, 도시서바이벌공방전이랄까 하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많은 것을 겪고 난 후 많은 것을 이룬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라는 당대의 여배우, 요즘으로 치면 아이유 같은, 아버지와 딸 만큼이나 나이차이가 나는 여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9년을 함께 했다. 그리고 진 세버그가 죽고 나서 일년 후 로맹 가리 또한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데 이 둘의 사랑은 그 파격만큼이나 로맨틱하고 그 로맨틱한 만큼 비극적이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회고록에 가까운 책을 여러 권 썼는데 '밤은 고요하리라'는 대담집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은 독백에 가까운 그의 이야기다. 읽는 내내 진 세버그와 로맹 가리의 사랑을 생각했다.


내 전작의 대상들 중 하나인 소세키의 전집을 모두 구하고 나서도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사들이던 당시에는 바로 다 읽어낼 것 같았는데, 겨우 반도 채 읽지 못한 채 방치되어 지금으로 와 버렸음에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책장에 모셔둔 전집을 바라보곤 한다.  어제였나 그러다가 갑자기 책장에서 '태풍'을 빼들고 읽어내려가다가 내쳐 다 읽었는데, 두 번째 읽는 것이라고 말을 해주는 듯, 아주 쉽고 명확하게 내용과 모티브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학자는 돈에 초연해야 했고, 이재에 밝으면 학자가 아니라는 듯 시종일관 학자나 학자연 하는 소세키의 피조물들은 늘 가난한 편이다. 늘 위장이나 폐가 약하고 더러는 결핵에 걸려 죽기도 하는데, '도련님의 시대'라는 만화책을 보면 왜 그런지도 알 것 같다. 참고로 소세키의 시대를 중심으로 그려진 이 만화책은 생각해보면 소세키와 그 시대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되는 배경지식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주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찾아봐도 좋겠다.  돈에 초연한 건지, 관념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인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학자와 같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위치라는 건 명예도 무엇도 돈에 연결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요즘의 세상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만, 그리고 사실 fair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무엇이 무엇답다'는 관념이 살아있던 시절이 약간, 아주 약간은 그립기도 하다.  선생은 선생답고, 남자는 남자답고, 군인은 군인답고, 흔들림 없는 identity속에 자신을 넣고 이상적인 identity를 체화하려면 꽤나 큰 노력과 댓가를 치루어야 했을 것이니 이런데서 지사와 열사가 나오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말하고 보니 매우 고루해 보이지만 뭐 늙은 영혼이니까...


책읽기를 좋아하고 권하고 예찬하겠지만, 그리고 형편이 괜찮아도 책읽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과 딱히 깊은 교류를 하는 것도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살겠지만, 그래도 일방적은 책읽기에 모든 답이 담겨 있으니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안 그러면 책읽기를 성공과 자기계발론으로 바꿔 팔아먹는 작자들과 내가 다를 것이 뭐가 있나 싶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를,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노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언제나 역지사지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5-04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은 문학 강의를 하셔도 잘하실 것 같습니다.
전 전작은 꿈만있지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네요.ㅠ

그러고 보니 저도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그책을 중고로 사놓고
잊고 있었네요. 도대체 전 제가 산 책들에게 무슨 짓을하고 살았던 걸까요?ㅠ
그런데 그 책을 읽게 되거든 <밤은 고요하리라>도 읽어야겠군요.^^

transient-guest 2018-05-05 00:58   좋아요 1 | URL
아이쿠, 감히 제가 어찌..ㅎㅎ 나이가 들면서 강의나 다른 기회를 통해서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젊은 분들한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합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좀..-_-::

로맹 가리는 삶이 참 특이한 사람 같아요. ‘밤은 고요하리라‘ ‘새벽의 약속‘ ‘내 삶의 의미‘까지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 진 세버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완전한 전작은 어렵습니다만 훗날을 위해 책을 모아두고 있습니다.

stella.K 2018-05-05 19:14   좋아요 1 | URL
아, 제가 말한 그 책이란 게 <숨 가쁜 사랑>이라는 건데
그건 로맹 가리가 쓴 게 아니네요. ㅎ
말씀하신 책 눈여겨 보겠습니다.

그런데 님은 아직도 젊으시다니까요.
아직 젊으시니까 전달은 조금 나중에...ㅋㅋ

cyrus 2018-05-04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책 읽으라고 좋은 말을 해도 꼰대 소리로 취급받을 거예요... ^^;;

transient-guest 2018-05-05 00:5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점점 더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