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증언 - 2009년 3월 7일, 그 후 10년
윤지오 지음 / 가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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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나는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모르는 것을 넘어 관심 자체가 없었다. 나만 그런건 아닐거다. 그 나이에 대한민국 언론과 경찰, 검찰의 민낯을 동시에 상대(?)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이것을 경험했고 그것으로 꿈도 일상도 모두 찢겨졌다. 단지 양심에 따라 진실을 증언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후 10년, 저자는 겨우 겨우 일상을 되찾았다. 물론 이는 저자의 본가가 국외였고, 경제적으로도 어느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만약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국내에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어찌되었든 저자는 국내의 사정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신경끄고 캐나다에서 본인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증언을 위해 다시 한국행을 택했다. 단순 증언이 아닌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엄청난 용기를 냈다. 특정 언론과 경찰, 검찰, 사건 당사자들에겐 얼마나 눈엣가시일까.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과 우려가 더 큰 것은 단지 기분탓일까?

돈 있고 빽 있는 소수는 무슨짓을 해도 재산이 늘고 그와 반대로 서민의 삶만 피가 마르는 원인은 뭘까? 내 생각은 이 놈의 나라를 굴러가게 하는 법과 시스템 및 관행들이 있는 것들 위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물론 개인이 게을러서 인 경우도 있지만 여기선 논외). 언론도 법원도 정부도 국회도 뼛속 깊이 있는 것들에게 유리한 유전자를 구축하고, 그것을 유지하려 노력해왔다. 그것도 수십년 동안 말이다. 그건 누구 잘못인가? 재벌? 국회의원? 언론인? 법조인? 공무원? 누굴 탓하랴 그들을 뽑아주고 감시를 게을리한 유권자 스스로를 탓해야지. 국민들은 자기들 수준에 맞는 '국가(국회, 법원, 정부)+언론'을 가지기 마련아닌가.

누가 가진 자를 위해 일하는가. 누가 그나마 서민들을 생각하고 눈치를 보는가. 본인이 재벌이라면 기득권을 위해 일하는 쪽에, 그렇지 않다면 그 반대쪽에 투표하면 그만이다. 국민은 각각 하나의 표로 주권을 행사한다. 이론적으로는 다수인 서민이 항상 유리하다. 그런데 현실은? 거의 그렇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기득권과 그들에게 기생하는 시녀들의 농간에 현혹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게 당연하다. 당장 시민사회단체에 가입하고 집회에 참석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관심가는 사안 별로 여러 매체를 꼼꼼하게 챙겨보고 충돌되는 부분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만 해도 본인에게 어느쪽이 차선인지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이정도도 안 하면서 세상 한탄하지 말자. TV에서 말하니까, 많이 배운 사람이니까, 친한 사람이니까, 높은 사람이니까, 그들이 하는 말만 믿고 주체적인 판단없이 투표하느니 차라리 안하니만 못하다. 하지만 또 그렇게 다수가 무관심하면 일본처럼 극단에 있는 정당이 장기집권하겠지...

현재 한국은 피해자가 더 피해보는 나라다. 저자처럼 양심에 따라 증언하는 자도 피해보는 나라다. "에이 몰라 나 사는 것도 바쁜데 신경 끄고 내 할일만 할래." 그래도 좋다. 개인의 자유니까. 근데 이거 하나는 알자. 본인이 피해자가 안 되리란 법은 없다는 거. 그때 도움을 청했을 때 본인처럼 신경꺼도 불평하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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