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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편지 - 제2회 네오픽션상 수상작
유현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덱스터]가 시즌 5의 엔딩을 쳤다. 법망을 피해 사는 흉악범들을 연쇄살인하는 살인마의 취미생활에 주목했던 까닭은 "정의사회구현"도 아니었고 "대리만족"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다는 관찰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거기에 무슨 정의의 잣대를 댄다거나 희열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쨌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라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 불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가끔 덱스터에게 의뢰하고 싶을만큼 사회 암적 인물을 발견하게 될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아니라 덱스터가 아닐까 하고 상상해 보는 정도였을 뿐.
그런데 덱스터와 마주치면 어떨까 싶어지는 인물을 소설 속에서 발견하고 나는 그 책에 꼬박 5일을 투자했다. 읽고 또 읽고 메모해가며 또 읽어댔다. 2010년의 마지막을 이 소설과 함께 넘겼고 2011년의 첫 시작을 소설 속에 코를 박고 시작해야했다. 손에 책이 쥐어지면 좀처럼 놓치 못하는 건 10대때나 지금에나 별반 다를바가 없지만 세상은 점점 더 재미난 것들을 찍어내 살아가는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살아가는 것과 읽어대는 것은 늘 같은 의미를 지닌다.
2011년의 첫 소설, [살인자의 편지]는 간단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겉표지로 우리를 유혹해댄다. 쉽게 읽고 빨리 잊혀질 것 같은 표지엔 단순화 된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의 늘어진 목엔 줄이 감겨 있는데, 그 줄의 의미는 소설을 읽는 순간 금방 깨닫게 된다. 희화화된 표지 속 소설은 숨어다니는 범인이 아니라 드러나고자 하는 범인의 욕구로부터 시작된다.
범인으로부터 부쳐진 편지의 처음은 "나를 막아라"였으나 그 이후엔 "나를 찾아라"였고, 종국엔 살인 전 미리 써놓은 편지로 마지막 대상될 여경찰을 유혹하고 그녀의 정신을 산산히 부셔놓는다. 그의 횡보가 무섭게 느껴진 까닭은 범죄해명용이 아닌 범죄의 일부로, 놈의 욕망이 담긴 범인의 편지 때문이었다. 우리를 향하고 세상을 향한 그의 범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책의 일부처럼, 한 인간의 행동을 데이터로 만들어서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속물적인 과학일 뿐일지도 모른다. 수학이나 과학으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듯이 환락과 타락의 도시 영흥시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은 "사적처형"을 넘어선 행위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수학공식처럼 단순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바라보며 한 인간으로 느껴야 하는 좌절감의 끝의 소설은 암호처럼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만든 허구 도시, 영흥시에서 교수형 밧줄로 네 명이 살해된다. 처벌을 주장하는 범인의 편지가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도착되고 경찰과 범죄전문가, 기자들이 달려들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나간다. 탐정의 등장도 없고 CSI나 본즈의 도움도 없지만 소설은 그 누구보다 사건을 파헤치고 싶어지게 독자를 몰아간다. 바로 독자를 경찰이자 탐정으로 바꾸어가며 스토리의 탄탄한 구성 가운데서도 일말의 틈을 찾아 저자보다 먼저 범인을 찾고자 하는 욕구를 분출게 만들고 있었다. 이미 추적은 등장인물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독자는 제 3의 탐문자가 되어 범인의 흔적을 꿰맞추게 만든다.
학대받은 모든 사람이 트라우마를 지니게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모방범죄를 낳는 일은 흔한 일처럼 보인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읽으면서도 생각했던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에겐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빨리 배우게 되는 습득력이 있는 것 같았다. 경찰이 범인으로 주목했던 천성철 역시 그렇게 모방의 보균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인간과 사회.
무슨 교양 과목의 제목같은 화두는 언제나 우리에겐 숙제같이 던져진다. 건강함보다는 음울하고 습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오는 두 단어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한 숙제는 난제나 미제로 남겨질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숙제를 부여받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고 또 읽고 있다. 한 해가 시작된 지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