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기억의 잔상으로 오랫동안 남아 '전쟁소설'이나 '전쟁영화'는 피하는 편이다. 물론 범죄소설이나 스릴러물 역시 잔인하다. 하지만 궁금해서 탐구하며 읽게 되는 장르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들을 지켜봐야하는 쪽의 괴로움은 분명 다르다. 적어도 내겐. 그 상처의 깊이와 기억의 시간이 달라 전자는 회피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하지만 후카미도리 노와키 작가의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좀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함께 잠들었던 전우가 오늘은 시체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는 전장에서 요리를 해야하는 '조리병들'의 레시피는 어떤 요리들일까. 그 양은 어떻게 맞추며 삼시세끼를 다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주둔하는 땅은 안전했을까. 전쟁터에서 조리병들은 그 어떤 훈련도 없이 요리만 하다가 돌아오는 것일까. 전장에 가 본 적이 없는 내게 <전쟁터의 요리사들>이라는 제목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토리는 예상밖으로 진행된다. 놀랍게도...

 

 

1941년 12월, 일본군이 진주만을 폭격했다. 이듬해인 1942년 '지원병 모집 공고'가 붙여졌을 때 열일곱이던 티모시 콜은  지원병이 되었다. 처음부터 '조리병'으로 입대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콜의 친절한 잡화점'에서 인기있는 반찬들을 요리하고 판매하던 할머니의 레시피 노트 한 권을 가지고 들어오긴 했지만. 선견지명이었을까. 일반병으로 훈련받던 그는 '조리병'으로 보직을 변경했고 그곳에서 '에드','디에고','라이너스' 같은 동료를 만나 특별한 사건들을 함께 했다.

전쟁이라는 배경을 빼고 보아도 매력적인 이들 캐릭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 추리하고 진실에 다가서면서 궁금증을 해결해나가는 남자들. 이들은 동료 일반병들에게서 무시당하고 미움받는 '조리병'들이었다.

 

 

평화롭다. 이게 바로 평화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싸웠다
p500

 

 

사실 일본작가가 쓴 책임을 확인하고는 '일본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뭐가 있지?'라고 생각했다. 소설의 첫장을 넘겨보기도 전에 전쟁을 미화하는 내용일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차 대전에서의 일본군인들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아시아를 침략하고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여자들과 침략국에 저질렀던 만행을 미화하는 이야기로 쓰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같은 망설임으로 책을 펼쳐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걱정없이 읽어도 좋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강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읽히는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참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라고 살짝 귀뜸해주면서.

600상자 정도의 계란이 사라지고, 하나만 있으면 될 낙하산을 계속 모으는 동료가 보이고,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기간 동안 살인사건이 발생하고...전장에 나서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만 혹은 적을 죽이기 위해서만 혈안이 되어 있을 법한 병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생각보다 다채로웠다. 어쩌면 영화속 전쟁장면들보다 이 소설 속 에피소드들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1989년이 되어 예순네 살의 노인로 살고 있는 티모시는 '콜의 친절한 잡화점'을 접고 '키드의 맛있는 식당'을 운영 중이다. 조리병시절 그의 별명이었던 '키드'를 본따 만든 식당은 2호점(지점)을 고민할만큼 성업중이었고 전쟁 중 부모를 잃은 로테와 테오는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그의 젊은 날이 전장에 바쳐졌던 것이 아닐까.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