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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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덱스터>에 주목하고 원작소설 읽기에 몰입하게 된 것은 '남다른 기대감' 때문이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흉악범들을 응징할 수 있다는 쾌감. 어린 시절 '홍길동전'이나 '일지매'를 보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그 느낌. 커서는 '스파이더맨', '배트맨','슈퍼맨'이 자신의 신분을 숨긴채 악당들을 징벌하는 영화속 장면에서 현실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통쾌감을 받게 된 것과 같은 효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덱스터>가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은 잊혀지지 않았다. 사이코패스였지만 기대감을 갖게 했던 '덱스터'와 달리 정유정 작가가 쓴 <종의 기원>의 주인공인 "유진"은 그 어떤 공포영화 스토리보다 더 섬찟하게 만들만큼 '악' 그 자체였다. 같은 사이코패스인데도 둘의 이미지는 참 달랐다. 어쩌면 유진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해야할 사이코패스의 전형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였다.

 

영화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연기했던 살인마와 닮은 '유진'을 통해 우리는 '악 그자체'를 만나볼 수 있었지만 소설을 읽는내내 그는 악의 꽃이 아닌 악의 원석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또한 그는 시한 폭탄이었다. 발작이 언제 일어날지 몰랐고 일단 발작이 시작되고나면 형을 밀고 엄마를 찔러대면서도 죄의식 따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백정. 이런 유진에게 걸맞는 표현이 아닐까. 게다가 그는 아주 똑똑했고 아직 어렸다. 가족을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죽이고 친형처럼 함께 살아온 '해진'도 제거했다. 물론 불특정인물들도 그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미스터리나 공포물보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 더 무섭게 느껴진 것은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케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뉴스에서도 흔하게 등장하고 있다. 아울러 뉴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웃이었으며 동창이었고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그 실체를 모른 채 편의점에서도 마주치고 은행이나 병원에서도 스쳐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어제 밥을 먹은 식당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불안증을 너무 많이 체감하게 만든다. '남의 일'로 치부하기엔 너무 빈번하게 일어난다. 너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뉴스가, 매체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그 고민을 심도있게 하게 만든 소설이 바로 <종의 기원>이었다. 소설 한 권에 붙여지기엔 그 무게감이 너무 무겁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읽고나니 제목은 화두가 된다.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의 화두로 던져졌다. <7년의 밤> 이후 좀처럼 전작을 뛰어넘는 소설을 발견하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독자 한 사람으로써 그녀를 계속 응원하길 잘했다 싶어진다. <종의 기원>은 <7년의 밤>만큼이나 멋진 작품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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