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스쿠루지 영감, 놀부 영감에 이은 괴팍 삼총사 영감 세트에 어울릴만한 노인을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속에서 발견했다. 그 이름은 오베. 무뚝뚝하면서도 불뚝불뚝 불뚝 성질을 내고 평생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 줄 모르던 영감은 지금 자살을 꿈꾸고 있다. 아내가 죽은지 6개월만에.

 

p58  그는 딱히 필요가 없는 이상 무언가를 굳이 기억하려 든 적이 없는 남자였다

       무척 행복하다가 몇 년 뒤에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성장과정이 특별했던 사람, 오베. 그는 참 쓸쓸하고 외롭게 자랐다. 현재의 고집불통 상태의 노인네 오베를 보면 골목 어귀에서 마주치면 피해갈 그런 유형의 인간이지만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외롭게 자라 보듬어주고 싶은 그런 소년이 서 있었다. 사람들 한 가운데. 자신이 얼마나 쓸쓸한지조차 모르게 자란 그런 아이.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도 사람들과 섞일 줄 몰랐다. 중상모략을 당하는 순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자신을 믿고 소신을 꿋꿋하게 지켜냈을 뿐.

 

짧은 시간을 함께 한 아버지였지만 그에게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던 그의 인생에 유일한 한줄기 빛이자 인연을 맺고 살게 된 사람은 그의 아내. 도둑의 누명을 썼지만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그는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내는 이제 세상에 없다.

 

p21 좀 느긋하게 살면 좋지 않아요?

 

누군가가 오베에게 물은 적 있지만 그는 절대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이웃이 이사 오건 말건 누가 죽건 말건 신경쓰고 싶지 않았지만 매일매일 자살할 생각만 하고 있던 이 까칠한 할배에 어느날부터 하나 둘씩 귀찮은 일이 일어났다.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법 없이 참견만 하고자 하는 무한 긍정의 이웃이 옆집으로 이사를 왔고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얼떨결에 구하게 되었고 귀찮아질 것이 뻔한 고양이 한 마리가 집 주변을 얼쩡대기 시작했던 것.

 

p114  모든 길은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일로 통하게 돼 있어요

 

우리 모두 눈 앞의 시간을 살아갈 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토록 사람과 소통할 줄 모르고 살아왔던 오베영감의 장례식날 300명이 넘는 사람이 참석했다. 분명 조문객 금지라고 말했는데 불구하고. 그 언행은 다소 퉁명스러웠을지 모르나 올곧은 마음 속에 따뜻함을 담을 공간을 간직한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던 외로운 영감의 진심이 사람들에게 전해졌던 것은 아닐까. 이웃에 이런 영감이 있었다면 분명 나는 맨날 대문을 사이에 두고 싸웠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로 만나본 오베 영감은 괴팍하기만 한 노인네가 아니었다. 2015년 말에 개봉될 영화의 주인공으로 누가 낙점된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마지막엔 눈물 가득한 얼굴로 막 웃어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스토리.

 

p177  자살하기에는 내일도 오늘 못잖게 괜찮은 날이다

 

일년 365일은 자살하기에 참 좋은 날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을 고르건. 하지만 그 별난 오베 영감이 자살을 포기하고 주어진 삶을 살다 간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자살을 꿈꾸는 세상 어디의 누군가에게도 조금 더 살아보면 멋진 내일이 준비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견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쓸쓸하다면...하지만 조금만 더 게을러져보는 건 어떨까. 자살하고 싶은 마음에서....멀어져. 그 실행을 조금 더 미루고 미루다보면 그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이 할배가 누렸던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