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를 나누었다는 속박으로 인해 모두가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부모를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단지 그것만으로 사람으로서 소중한 걸 잃은 건 아니라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8시 주말 드라마 내용처럼 사람에게 가족이란 가장 안전한 울타리이며 가장 이해받고 싶은 집단일텐데 그 피의 혈맹이 때로는 속박이 되고 상처가 되고 구속이 되어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소설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뉴스를 봐도 그런 이야기들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사회소설 작가로 그 작품의 내용이 탁월해 나는 그녀의 팬이 되었다. '미미여사'로 불리우는 그녀의 작품은 사건의 일면을 이면, 삼면으로 쪼개면서 날카롭게 파고들며 그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 추악함, 욕망 등을 여실히 드러내는 쪽이라 도리어 읽고나면 시원해지는 경향까지 있어 좋았다. 물론 그 문제를 안고 있는 문제 자체의 무게는 항상 무거웠다. 하지만 가슴 언저리의 묵직한 우울감만 얹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밑바닥까지 파헤쳐 눈 앞에 까뒤집어 보이면서 자, 봐라! 어째서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우리 사회가 지금 이렇다. 라고 가감없이 드러내는 면이 통쾌하게 느껴질 정도라는 거다.

 

그런데 잠시 에도 시대로 건너가며 나는 잠시 그녀와 멀어졌다. 작품 읽기를 게을리 하진 않았으나 읽으면서도 현대 사회 소설을 쓸 때의 그녀가 더 좋았다라고 감히 고백한다. 이번에도 사실 현대물인 줄 알고 기대를 잔뜩 했었는데 그 배경은 에도 18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있었다. 한 사무라이의 할복 자살로 인해 시작된 이야기는 꽤나 두꺼운 양의 소설로 완성되어 내 앞에 던져졌는데 가족애를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는 이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는 슬픔은 바로 '가족'이라는 멍에 때문에 시작된다.

 

내가 내 가족을 의심해도 좋을까. 정말 내 가족 중에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이 있을까. 모든 것을 떠안고 떠난 아버지에게 가족은 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주인공인 둘째 아들 쇼노스케는 아버지와 여러면에서 닮았다. 비겁자라는 오명을 쓰고 살 지언정 불필요한 살상을 택하지 않을만큼 따뜻한 맘씨를 가진 사내였고 결국 모든 것이 가족 내에서 빚어진 음모임을 알면서도 그는 자살을 택했다. 가족을 위해서.

 

 

p590  생각해라, 여생을 다 바쳐 생각해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타인의 생명까지 앗아가면서도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 인간을 정말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인간으로서의 그 마음을 잃은 사람일진데. 이번 이야기를 읽으면 가장 크게 든 의문은 이것이었다. 옳다는 판단의 기준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출발된 것이었을까. 그 밑바닥에는 출세에 대한 욕망이 거름이 되었고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 가족의 목숨은 사소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면서 또 묻게 된다. 과연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인간형인가? 에도 시대에만 있었고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런 류의 인간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