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사람이다 - 사회심리에세이
이명수 지음 / 유리창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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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가스와 전기가 끊긴 건물 옥상에서 경찰 헬기가 발사하는 최루액을 뒤집어 썼고 고압 전기총과 볼트자국이 지워지지 않을만큼 강하게 볼트총에 맞았고, 곤봉과 발차기로 구타당한 폭력장면이 외신의 어느 보도 장면에서 보여진 것도 아니고 70,80년대 데모대의 영상에서 보여진 것도 아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P22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세월호 유가족의 사연이 담긴 책을 읽을 때도 꼭 저랬다. 사람이 있었다. 그곳에-. 쌍용차 해고자들의 파업현장에도 사람이 있었다. 폭력도 난무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의깊게 보지 못했다. 살아가는 것이 바빠서. 나의 일이 아니므로. 반성하고 통탄해도 나누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은 여전히 가슴 밑바닥에 잔여물처럼 고여버린다. 언론을 통해 왜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바른 언론보도는 이제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현실이 되어버린 것일까?!

 

서민이 울고 서민이 쓰러지고 서민이 죽고나면 '시민'이라고 불릴 사람들 없이 국가가 어떻게 존속하려고 이렇게 서민의 눈시울을 수도꼭지처럼 줄줄 틀어놓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 조국 대한민국은. 먼 타지에서 마약범으로 몰려 국가에 도움을 청했던 배우 전도연 주연의 한 영화 속에서 외교부는 국민을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분노케했고 배우 송강호가 주연했던 영화 속에서 국가는 한 대학생을 본보기로 삼아 처단하고자 할만큼 잔인했다. 그런 모습으로 보여지곤했던 내가 태어난 나라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이기거나 어느 한 인물이 글로벌한 시선을 받을 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임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하지만 반면에 이런 글들을 접할때면 답답해지고 화를 내게 된다. 내 나라 대한민국에. 울고 울리고 웃기고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내 나라. 이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언제쯤 알아줄 것인지.

 

P29 함께 사는 게 문제가 돼서 전복될 국가라면 진작 무너지는 게 좋다

 

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 하지만 함께 사는 게 문제가 되는 나라라면 분명 문제가(?) 큰 나라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는 나라에서 왜 이런 야만적인 시간이 도려내어지지 않는 것일까. 이것도 정상이고 저것도 정상이다라며 고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의 그 태도가 문제가 아닐까.

 

물론 파업을 하면 제일 답답한 사람들은 국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 민영화를 두고 "불편해도 괜찮아. 철도파업 이겨라"라는 온라인 격려글들이 올려졌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는 파업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잠깐의 불편함을 참고 후일 닥칠 큰 곤란을 막고자 한 사람들 역시 국민이요 시민이고 서민들이었다. 심심해야 좋은 사회라는데 뉴스를 봐도 불편하고 드라마를 봐도 불편하고 당장 내 집 창문만 열어도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면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가겠는가.

 

P30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

 

지난 2년 내내 나는 노동법이 노동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닌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한 경제인들을 위해 존재하는구나를 뼈저리게 느끼며 노동청과 법률구조공단, 법원 등지를 드나들었다. 백화점가서 제 쓸 것 다쓰고 남으면 1만원씩, 10만원씩 월급을 주며 직원들의 울화통을 터지게 만든 악덕 고용주의 악행을 막기 위해서.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그냥 접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야심 하에 작정하고 직원들을 무료료 써먹고 "월급 주세요"하면 한 달, 두 달, 석 달 밀린 월급은 나몰라라하고 바로 잘라버리는 단두대의 여왕처럼 살고 있다. 지금 이순간에도. 누구라고 말하면 알만한 회사의 대표로. 돈이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정작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활동비, 진행비를 직원의 월급으로 써 버리고 빈 손을 내밀기 일쑤인 이 아줌마에게 법원은 고작 '지급하라'는 명령서 한장을 발부했을 뿐. 이마저도 특별히 자신이 살아가는데 제재가 가해지지 않으니 코웃음을 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더 분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처럼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눈을 찔러 울음을 터뜨리게 만들면서 뒤에서 웃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나라여서.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노동부가 노동자들에게 생색용으로만 존재하고 실질적인 최후의 보루가 되지 못한다면 해체하는 게 백번 맞다 는 말.(P97) 예전같으면 다소 과격하게 들렸을지도 모를 이 말에 이제는 고객가 절로 끄덕여지는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성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울음을 삼켜야할만큼 잔인하고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건 저자나 나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책을 펼치면서 저자의 이력보다 "어느 편으로 살지 않았다. 늘 내편이려고 했다."라는 문장이 먼저 눈에 차 한참을 읽고 또 읽으며 되뇌였다. '사람'답게 살고프면서 '나잇값'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 '상식이 통하는 오늘'을 살고 싶어지는 바램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다잡으며 나는 제목처럼 '그래야 사람이다'라는 그 말을 이 책에서 억울함을 생성해낸 사람들과 여전히 파렴치한 처럼 살아가고 있는 그 아줌마에게 퍼부어주고 싶어졌다. 언제쯤 속시원하게 그 면상 앞에서 이 말을 퍼부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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