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라는 아이
라라 윌리엄슨 지음, 김안나 옮김 / 나무옆의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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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아이였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름조차 '호프'인 이아이는 소파에 앉아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가 tv화면에 나타난 아빠를 발견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빠를 꺼버리고 싶다고 말할만큼 아이는 놀랐고 또 충격을 받았다. 함께 tv를 보며 열 여섯의 누나는 말했다. 우리 가좍에게 저 남자는 죽은 사람이라고. 아빠라는 존재는 저 사람이라고 불릴만큼 멀어져 버린 존재였다.

 

지방 신문 기자였던 아빠는 호프가 일곱 살 무렵 엄마와 싸우고 집을 나갔다. 부부의 싸움 이유는 '그 여자'였고 결국 아빠를 잃은 그들은 tv를 통해서 4년만에 아빠의 얼굴을 확인하게 된 것이였다.

 

p21 지금도 아빠 인생에 내가 있기를 바라는 거죠?

 

호프의 이 마음이 얼마나 슬프던지. 결국 tv를 꺼버리고 싶다라는 마음도 진심은 아니었던 거다. 이혼은 이혼이고 자식은 또 다른 문제일텐데 4년동안이나 아이들을 만나러 오지 않은 아빠에게 부모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게다가 어린 호프는 아빠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보지 않았다. 겨우 20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으면서.

 

한 때 아빠라고 불리던 남자는 다른 아이와 살고 있다. 지금 엄마인 여자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 있다. 이 모든 현실이 어린 호프가 받아들이기에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닐텐데도 아이는 꽤나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상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빠라는 존재는 왜 있는 거냐고 울부짖을만큼 호프는 상처받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늘 그렇듯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도 있다. 댄 호프에게 가족은 상처를 봉합해주는 아주 따뜻한 존재가 되어 상처받은 그를 감싸 안아주었다. 지금보다 더 완벽하게.

 

열 한 살의 그에게는 슈퍼마켓에서 계산하며 사는 생활이 힘겨운 엄마가 있고 그녀와 사귀고 있는 빅 데이브 아저씨가 있고 그들로 인해 '페이스와 호프'라는 쌍둥이 동생이 생겼고 독설을 일삼는 시크한 누나 그레이스가 있다. tv에 반짝 등장했다가 병으로 죽은 아빠라는 존재가 집을 나간 일이 호프를 아프게 만들었다면 이후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 일을 극복하면서 한뼘 더 성장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면 좋겠다'는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슬프면서도 어쩐지 가장 현실적인 답안같은 결론을 만들어낸 [호프라는 아이]는 어른이 읽으며 마음을 성장시키기에도 참좋은 동화같은 소설이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드라마에서처럼 아빠가 마지막에 짠하고 나타나거나 호프에게 왜 그를 만나러 올 수 없었는지 주절주절 이유를 늘어놓지도 않았다. 일곱 살에 아빠와 헤어진 기억이 전부였지만 이젠 '아들'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아빠가 생겼다. 누군가가 아빠라는 존재를 대신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호프도 상처를 덮고 일어설 때가 된 것이다. 아빠가 자신을 사랑했던 기억만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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