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뺑덕
백가흠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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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을 넘어 25금이라는 이 영화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고전이 원작이라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궁금해서 책을 통해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너무 바른 이야기라서 너무 교훈적인 이야기라서 이야기를 비틀어도 별 재미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나면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어서 세상에 나왔다.

 

작가는 작가로 사는 시간이 더딜수록 잘 살아보려는 의지를 버렸다고 했는데, 마흔을 넘어 시작했다는 이 소설은 그래서인지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속의 이야기로 사람냄새가 잔뜩 묻혀져 있었다. 세월이 허락한 나이테가 묻어 있었고 착한 마음 이면의 욕망이 들춰져 있었다. 사랑과 욕망 그리고 집착 후에 남은 것은 여전히 사랑이었다. 나는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이들의 관계를. 무척이나 위험했다. 또한 무척이나 위태위태했다. 하지만 나빴을 망정 천박하지는 않은 이야기가 바로 오늘 읽은 소설 [마담뺑덕]이었다.

 

[심청전]의 주인공은 심청이였지만 [마담뺑덕]의 주인공은 심학규였다. 영화를 본 이들은 뺑덕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소설을 읽은 내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심학규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던 학규가 기증자로부터 두 눈을 받고 시력을 회복한 뒤 되찾고 싶은 시간은 가족을 찾는 일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자살해버린 아내가 아니라 그토록 자신을 경멸하던 딸 심청과 집착과 사랑을 반복하며 자신 곁에 머물던 애인 뺑덕. 그들은 머리카락 보일까봐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었는데 그래서 그는 인연이 처음 시작되었던 s읍으로 향했다.

 

p13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보지 못해도 좋으니 다시 자기 곁으로 되돌려달라고 신께 기도했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길이는 짧아보여도 깊이는 깊어서 사람도 그 속에 쑤욱 집어넣어 없애 버리고 기억도 시커멓게 태워버렸다. 처음 s읍에 도착했을때 다방에서 그를 재워주던 뺑덕의 어미는 사라진지 오래. 로리타콤플렉스에 빠진 듯 어린 여제자들과 육체적 탐미를 즐기던 그는 대학에서도 잘리고 작은 시골로 내려와 글선생이 되어야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의 나락까지 미끌어져버린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제 탓이었지만 그는 반성을 모르는 나쁜 남자였다. 이 곳에서도 뺑덕 어미와 뺑덕이가 없었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었겠지만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어미와 자고 딸과도 육체적으로 얽혔으면서도 그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서울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p57 이제 나 기다리지 마. 나 너한테 다시 돌아갈 일 없어.

 

천벌이었을까. 시력이 점점 사라지는 시점에 뺑덕은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를 간병하려는 건지 벌주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던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옛날 그가 잔인하게 그녀에게 퍼부었던 그 말 그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요량으로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드문드문 아름다운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그리움. 그건 분명 그리움이었다. 그 암울하고 떨치고 싶은 시절 속에도 그리워할만한 추억들이 숨겨져 있었다. 롤러코스터 타듯 인생의 굴곡을 거친 학규는 다시 눈을 떴다.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지만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너무 늦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전. 그에게 눈을 기증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눈을 각각 한짝씩 받아 눈을 뜬 그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슨 힘으로 누구를 의지하며 그는 살아가야 할까. 결말은 끔찍했지만 역시 고전적 교훈은 남겨졌다. 나쁜 놈에게 걸맞는 결말이.

 

책의 홍보문구처럼 효의 텍스트였던 심청전. 이제는 욕망의 텍스트로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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