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미스터 찹
전아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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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10대의 눈으로 보면 어른이 되는 나이지만 사실 스무살은 아직 어리다. 철이 없고 경험이 없고 판단력의 잣대가 약하다. 줄곳 함께 살던 엄마가 죽은 지 열 흘, 주둥이가 까만 강아지를 사게 된 스무살 청년의 삶에 외로움이 가득 스며있다. 그런 그의 삶에 어느날 우연처럼 기이하게 생긴 난쟁이가 끼어들었다. 30센티밖에 되지 않지만 호통소리만큼은 쩌렁쩌렁한 "찹"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마치 쪼그라든 박명수 같은 느낌이랄까.

 

그들의 기묘한 동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찹과 강아지와 스무살.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스무살 청년은 아직 엄마가 그립다. 그녀가 사용하던 로션을 버리지 못했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바느질완성품인 쿠션인형도 치우질 못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남자로 성장한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닫혀져 지예와도 노출광과도 올바른 관계맺음이 어려웠고 윤식이라는 친구 외엔 만날만큼 특별히 친한 친구도 없었다. 감정이 잔뜩 실려 있지도, 묘사가 가득한 문체도 아니지만 심플한 문체사이로 그의 외로움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노출광과 기대하던 잠자리에 성공하고 지예와 사귀에 되고 아버지를 만나게 되어도 그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흘러가는 사이 조금씩 변해갈 뿐이었다. 물론 순간순간 따뜻했던 바람 냄새도 맡고 설레는 마음도 느끼는 등 그는 완전 정상인 스무살 남자다. 하지만 어른이기보다는 아이같은 구석이 많고 적극적이기보다는 망설이거나 내버려두는 편이 더 어울려보이는 남자다.

 

그의 이름이 '정우'라는 사실도 글의 중반쯤에 밝혀지는데 '치타'라는 닭을 키우고 '마리앙뜨와네트'라는 신경질적인 고양이를 키운 이력이 있는 특이한 삼촌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그는 정우를 조카나 정우가 아닌 정우군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노출광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유부녀와 사귀던 윤식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연인과 헤어졌던 삼촌이나 짝사랑만 일삼던 아르바이트 가게 주인은 각자의 짝과 맺어졌지만 정우군의 삶은 그닥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도 풍랑을 만난 배처럼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봄 싹 틔우듯이 조금씩 성장해왔으므로.

 

당분간은 오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납골당에 아버지와 함께 다녀온 그날, 찹은 사라졌다. 기묘하게 나타났듯이 휘리릭 떠나갔다. 혹시 찹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들을 위해 엄마가 보내준 "화해"의 메신저가 아니었을까. 사실 찹은 별로 간섭을 한다거나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심심했을 일상에 잡음을 넣어주고 활기를 불어넣고 잠시나마 가족으로 함께 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만 두고보자면 충분했다.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도록 만들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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