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족, 뒷담화의 탄생 - 살아있는 고소설,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이민희 지음 / 푸른지식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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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  불온한 욕망을 허하라!

 

상업 경제 사회가 소설의 하드웨어 였다면, 휴머니즘은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발전해 온 것이 바로 고소설이라면 고소설은 대체 어떻게 시대를 담고 사람을 담고 역사를 담아냈는지 [쾌족, 뒷담화의 발견]을 읽으면 알게 되리라 생각했다. 사실 책을 접하기 전에는 고전소설을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와는 좀 다른 분위기로 읽혀졌다.

 

 [운영전],[이생규장전]을 통해 본 사랑과 욕망 그리고 성 풍속도는 딱히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규율과 타인의 시선 앞에 자유롭지 못했고 사랑 앞에서도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랬다. [운영전]에서 운영이 자신의 사랑이 탄로나자 비단끈으로 목을 매어 자결했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서 호동왕자도 아버지의 질타와 의심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했다. [이생규장전]에서 이생은 죽은 아내와 살다가 헤어져야했고 [만복사저포기]의 양생은 혼령을 그리워하다 지리산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심생전]의 심생 역시 연인을 잃고 앓다 죽었으며 [주생전]에서는 그마저도 찝찝하게 끝나버린다. 16세기 후반의 한문소설인 주생은 기생이 된 배도와 사랑에 빠졌으나 권력가의 딸인 선화와도 사랑에 빠져 배도를 버렸지만 중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오면서 그녀와의 사랑도 흐지부지 된다. 원전을 읽진 못했지만 이 정도의 줄거리가 현대 소설에 있다면 매우 짜증스럽게 읽힐 것만 같다.

 

고소설에 대한 이야기보다 앵혈에 대한 페이지가 훨씬 흥미롭게 읽혔는데 얼핏 어느 사극에서도 본 듯 한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졌지만 사실 이에 대해 평소 사전지식이 없었지라 언급된 부분들이 모두 재미났다. 앵혈 모티프는 꾀꼬리의 피를 처녀성을 확인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수궁사에서는 처녀 감별도구로 꾀꼬리가 아니라 도마뱀에게 붉은 모래를 먹여 기른 다음 그 이를 빻아서 여자의 몸에 바르면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단 성교를 할 때만 없어진다는 기록으로 인해 도마뱀을 사용한다고 했다. 정말일까?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는 아니지만 옛 사람들은 맹신했으리라. 그 사실을 상상해보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것만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라 양반들에게 성적 유희 대상이었던 여종에 대한 생각을 10개의 사자성어로 표시해놓은 84페이지의 글을 보는 순간!! 사실 페이지를 잠시 멈추고 꼼꼼히 읽으며 한숨을 늘려나갈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여자이기 때문에 더 화나고 슬퍼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지위를 얻은 방한림전의 관주(비록 남장여인이었지만)나 당시 미덕이었던 내조의 여왕 이씨부인 같은 이도 있었고 실리주의를 택한 약은 춘향이나 의붓딸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계모의 입장도 헤아리게 만든 장화홍련전 같은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다. 더 읽을 거리가 없을가? 하던 시점에서 손에 잡힌 책이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나게 읽긴 했는데, 다 읽고나니 오히려 약간의 아쉬움이 남고 말았다. 저자의 안내처럼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욕망을 지녔다. 그러나 갈등과 상관없이 그들 모두의 삶이 지금 여성들의 선택과 많이 달라 이해를 받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마음 속 욕망을 들여다보며 지금보다 훨씬 답답하게 살았을 그녀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어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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