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부자들 - 나답게, 폼 나게 살아온 열 두 조르바를 만나다
조우석 지음 / 중앙M&B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조르비즘이라는 신조어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30년간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저력 있는 저널리스트인 인터뷰어 조우석은 조르바를 잡스과로 분류하고 있다. 항상 목말라하고 자신이 찾아낸 일에 몰두하고 집중하면서 자신의 목소리에 충실했던 사람들. 그런 이들을 조르바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총 12명의 조르바과 인간형이 소개되고 있다. 이 열두 명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고요한 삶의 태도라고 언급하면서 이들이야말로 가짜 위안이 범람하는 요즘 세상에 등장한 열 두 사도라고 일컫고 있다. 서문에서 이쯤 밝히면 너무 거대한 것이 아닐까? 책을 읽기 전에 언뜻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만큼이나 극찬해놓은 열두 명이 과연 누구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몇명이나 알고 있을까? 나는-.

 

국민소리꾼 장사익.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그는 전국민속경연대회 대통령상을 받은 사람이었다. 노래가 아닌 태평소 연주자로. 그러다가 '효재처럼'의 그 효재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주선으로 노래를 부르게 되어 나이 마흔다섯에 가수로 데뷔했단다. 여기까지만해도 놀라운데 그 내공은 과거 그의 고생스러운 행적과 맞닿아 있었다. '순대 속 같은 세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들었던 과거터널을 거쳐온 그는 삼봉마을 7남매 중 맏이로 세상에 나왔다. 상고 졸업 후 가구회사, 무역 회사, 독서실 운영, 카센터 사무장까지 총 15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살았단다. 그래서였을까. 우리가락만 불러댈 것 같은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파바로티의 곡을 불러 목청을 가다듬는단다. 이쯤되면 이 사람, 이럴 것이다! 라는 일반적인 편견이나 감은 없어지고만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외모만으로는 단연 장사익과 버금갈만큼 오리무중인 사람이 전방위 예술가 현태준이다. 전혀 이 인물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보다가 손가락이 멈추어진 것은 0.1t인 이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캐릭터 문구, 생활용품아 가득한 공간 안에서 두꺼운 검은 뿔테를 낀 채 무언가를 보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근엄하기로 치면 '두목님'이라 불려도 좋을 외모지만 그가 수집하는 것들은 의외로 아기자기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뼛속까지 어린왕자라고 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세상의 시선을 얼마나 넘어왔을지 안봐도 보이는 구석이다. 아줌마들 중 안티가 많다고 과감하게 밝히는 그는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오덕후의 느낌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마흔을 훌쩍 넘어선 나이. 체면을 차리기보다 자신답게 살기를 선택한 그는 여전히 '소년 감성'으로 살고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던 두 남자와 달리 시인 문정희는 대중 앞에 서 있다. '한국의 사강'으로 불릴만큼 천재적인 면모를 세상에 드러내며 살아왔지만 '고독해져야 시를 쓸 수 있다고 '역설한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부모슬하를 떠나 공부하러 더 큰 도시로 나오면서 고독과 슬픔을 이해했다고 한다. 무언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을 문학으로 승화 시킨 그녀에게 '시'는 '업' 이었을까.

 

또 한 사람. 대중과 호흡하며 사는 남자가 있다. 그런데 이 남자를 부르는 말들도 정말 독특하다. 미술계에서는 '기인'이라 부르고 건축계는 '졸부'라고 부르며 현대미술계에서는 '파워 컬렉터'로 지칭되는 (주)아라리오 그룹의 회장인 김창일. 이미 20대 청년시절부터 지방 버스터미널 임대사업을 시작했을만큼 비즈니스감각이 탁월했던 그는 10년만에 천안 터미널 전체의 주인으로 급부상했다. 사실 그는 학창 시절 이미 주식으로 큰 돈을 만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당시 아파트 한 채가 1000만원이 채 안되던 시절이었는데 2500만원을 손에 쥐고 있었으니 그의 배팅실력은 그 시절부터 이미 타고난 것이었나 싶어진다. 마치 영국 버진그룹의 대표처럼 여기저기 재미난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 과연 김창일 회장은 '기인'으로 불릴만하다 싶어진다. 이쯤되면.

 

한대수한대수할때도 나는 그가 정확하게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 세대가 달라서일까. 대한민국 근.현대 인물에 대해 무지해서 일까. 그런 그를 오늘 똑바로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펼치고 나서부터였다. 핵물리학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열 살 때 미국 유학을 떠났으니 유복하게 태어난 것임은 틀림이 없는데 수의학을 전공하다 돌연 포크 가수의 삶을 살게 된 까닭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까. 핵물리학자인 아버지가 돌연 실종되고 10년이나 지난 후 찾았을땐 기억이 모두 지워진 채 백인여자와 살고 있더란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머니도 재혼해버려 어린 대수는 연세대를 공동설립한 할아버지의 손에서 키워졌는데 남다른 외로움이 뼛속부터 잠재되어 있다가 음악으로 폭팔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앞서 문정희 시인이 '고독해져야 시를 쓸 수 있다'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책이란 게 그렇잖아요. 누구에겐 명작이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고요." 차분하고 조용하게 말했을 배우 김미숙은 엘레강스하면서도 아름답게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거리를 두고 살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현명함. 그녀의 현명함을 닮고 싶어졌다. 오늘은 문득.

 

반대로 리무진을 타고 다니던 대표가 돌연 시인으로 살겠다해서 충격을 준 일이 있다. 시인 류근. 알고보니 그는 김광석의 노랫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쓴 사람이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룻밤 새 노랫말을 쓰던 대학생은 어느새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그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사나? 했더니 어느날 벼락치듯 그 생활을 청산하고 둥지같은 투박한 시의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어쩌면 그는 이외수 작가의 추천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은 개 같은 시인(?)"일지도 모른다. 파격적인 추천사지만 그답다 싶다. 자칭 독자와 직거래 하는 시인이라고 웃음 섞인 농을 던지는 그는 말그대로 평론가들과  어떻게 소통할까 연구하며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글쟁이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살아숨쉬는 활어같이 느껴진다. 휴대폰 벨소리 사업으로 대박났지만 그는 돌아왔다. 활어처럼 연어처럼.

 

열두 명의 인물 중 일곱명의 이야기만 서평에 남기기로 했다.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메모는 다이어리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서평을 읽고 "이 사람에게 이 책은 이러이러했구나"하면 되지. 책을 몽땅 소개해서 책 읽을 필요를 없애버리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내게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남에게 어떤 사람인지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나란 사람, 그런 사람이기에 정경화/김홍탁/김아타/정목/김열규 의 인터뷰도 화선지에 먹을 뿌려놓은듯 스며드는 속도가 녹록치 않다. 거뭇거뭇하지만 깊숙이 파고든다는 얘기다.

 

저자가 기억하는 (故)최윤의 선생의 행복한 푸념처럼 "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는 거죠? 세상에 감동 아닌 사람이 없어요"라는 푸념을 나도 입에 달고 살게 되었으면....좋겠다!! 싶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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