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배웅
심은이 지음 / 푸른향기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한 장의사]라는 영화가 있다. 너무나 오래전에 봤던 영화고 극장에서 봤던 것이 아니라 집에서 TV를 통해 봤던 영화라 가물가물하지만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파리만 날리던 장의사업을 귀농한 두 젊은이가 이어받아 펼쳐지는 잔잔한 코미디 영화다. 잔잔하지만 그 나름의 재미가 있고 순박하면서도 엉뚱한 내용전개들이 담백한 음식을 맛보듯 지켜보게 만들어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뜬금없이 생각난 까닭은 [아름다운 배웅]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다. 특이하게도 국내 첫 여성 장례지도사로 활동중인 저자 심은이씨는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유명한 인물이었다. 장례지도사 하면 숭고함보다는 시체를 만지는 무서운 직업이라는 인식이 아직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가운데 그 편견의 고리를 깨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진심을 다해 배웅하고 있다는 그녀의 소갯말에서 나는 장인정신을 배운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라지만 살면서보니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이웃들을 발견하게 되면 그 발견만으로도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들고 신뢰감이 쌓이곤 했는데 그녀가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그 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을 보며 흐뭇해졌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이승의 삶이 끝난 사람들을 직원들이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서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비춰져 마음이 편치 못했다는 맘고운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어머니의 추천으로 이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보통의 어머니들이라면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직업을 추천하기 마련인데 그녀의 어머니 또한 남다름을 알 수 있었다. 자식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추천하고 이해해주며 격려해주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딸이기에 그녀는 오늘도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깨달음은 우리 모두 시간이 정해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었는데, 적혀진 문장을 입으로 소리내어 읽다보니 이처럼 또 무섭고 경건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장이 근래에 있었나 싶다. 시간이 정해진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나이는 숫자일 따름이라지만 나이는 세면서도 그 시간이 줄어가고 있음엔 둔하게 살아간다. 나 역시 그랬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직업, 꺼려하는 직업일 수도 있는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바꿔가면서 그녀는 누군가의 가족을 외롭지 않게 배웅해주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늙은 할머니나 수녀원에서 생을 마감한 신자들, 감전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어진 청년,반드시 화장대신 매장을 택한다는 화재사망자, 채 가슴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사산아, 멀쩡했다가 갑자기 죽어버린 100일된 아이, 마지막 가는 길조차 기증으로 따뜻한 마음을 전한 사람들이나 외국인 후처에게 재산이 한푼이라도 갈까봐 장례장까지 와서 망자의 죽음을 소란스레 만들었던 한국인 전처 가족들 등등 각양각색의 사연이 소개되고 있었다.

 

어떤 죽음이든 그녀에겐 평등했다. 유족들의 참관 하에 몸을 알코올 솜으로 깨끗이 소독하고 수의를 입힌 다음 머리를 빗기고 화장을 해주고 유족에겐 상복을 내어주는 일. 그러나 이때 자신의 가족을 만진 그녀의 손길을 더러운 것마냥 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해 놀라웠다. 자신의 가족을 만진 손인데 그 손을 피하면 망자의 마지막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은 대체 어떤 마음이라는 말인지.

 

P.9 죽음은 늘 삶 곁에 있다

 

그러나 오만하게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오늘을 산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내야할 하루가 더 주어졌음에 감사함을 잊지 않도록 나는 언제부턴가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있다. 특별한 종교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늘 눈 떠 생긴 하루에 감사하며 어떻게 보내야할지 해야할 일들을 하나하나 챙겨본다.

 

생각난 김에 그 옛날 [행복한 장의사]를 다시 찾아 보아야겠다. 어딘가에 그 영상이 남겨져 있을텐데 찾아서 그때봤던 그 기분과 책을 읽고 난 다음 보는 기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봐야겠다. 그리고 영화가 선물하는 아름다운 배웅은 어떤 의미였는지 되새겨보고 싶어졌다.

 

국내 첫 여성 장례지도사의 책은 늘 함께 있는 죽음뿐만 아니라 주어진 삶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고맙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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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날 2012-02-2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장의사는 가벼운듯 보이는 영화였지만 장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인지 알게 해준 영화였어요. 저도 오랜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은 영화인데..
일본영화 굿바이 보다 행복한 장의사가 훨씬 좋은것 같아요

마법사의도시 2012-03-01 14:16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