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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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잊지 못할 추억은 없다고,
사람이 이기지 못할 슬픔은 없다고,
아물지 않을 상처 따위는 없다고
p202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에는 애절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너무 빨리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종이에 쏟아부어 작성된 편지글에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잘 몰랐을 일본의 병사로 하여금 뭉치째 가져가게 만들었으며 왕조가 망하고 대통령제가 세워진지 한참지난 현대의 어느날, 일본과 한국 양국을 오가며 그 사연을 펼치게 만들기도 했다. 전쟁전후,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많았을 것이다. 남편을 잃은 부인이 어디 원이엄마 뿐이었을까. 그 중 분명 그녀처럼 망중의 한을 글로 기록해둔 여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소화>>의 애절함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스토리였다.


 

1998년 4월 택지개발 현장인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비석 없는 무덤 하나. 그 안에서 4백여 년 전 조선시대에 죽은 사람의 미라와 가족들이 써 넣은 편지가 발견되었다. 조선 명종 때 사람인 이응태의 무덤으로 밝혀졌는데, 형이 쓴 글과 아내가 쓴 편지들이 발굴되었으나 아내의 글만 상태가 양호했다. "원이 아버지께"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아내의 편지의 판독을 맡았다는 '나'는 너무 쉽게 그 내용을 현대어로 옮겨냈고 이후 잊어버렸다. 하지만 기타노 교수를 통해 일본에도 동일한 편지가 있다는 말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과거속으로.....

 


고성 만석꾼 이요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응태는 검술도 뛰어났고 글재주도 남달랐다. 성품까지 착해 부모의 자랑일법 했지만 그의 아비는 착찹한 마음이 들고 말았다. 딱히 종교가 없던 그에게 그저 친한 벗이기만 했던 하운 스님은 둘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사주를 보하는 이름이 필요하다며 '응태'라고 지어주었다. 그리고 "장차 소화꽃을 들고 집으로 오면 내쳐야한다"고 일러준다. 기품이 넘치는 아름다운 꽃이라 양반가 담벼락엔 응당 피어 있는 꽃을 두고 아들의 요절을 입에 담다니.....사람들의 칭찬이 멀리퍼져갈수록 이요신의 고뇌도 깊어졌다. 세월이 흘러 하운스님은 입적을 했고 응태는 혼인을 할 나이가 되었다. 생전에 스님이 이른대로 박복한 여인을 수소문해서 연을 이었으나 운명을 비켜설 수 없었는지 소화꽃을 찾아 하늘에서 내려온 팔목수라에게 생명을 잃게 된다. 시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화꽃을 다 뽑아버렸더라면 그 운명에서 비켜설 수 있었을 것을.....남편 그리고 자식의 목숨과 바꿀만큼 매력적인 꽃이었을까. 능소화가. 물론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달콤했던 순간은 짧았고 긴긴 그리움이 그녀로 하여금 마음을 적게 만들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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