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의 용모와 머리 모양이 자네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네. 선택의 능력이야말로 자네가 누구인지 온전히 드러낸다네. 선택이 아름다우면, 자네 또한 그렇게 될 것이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3.1.39b-40a

시작에 앞서 지켜야 하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네. 하나는 쾌와 불쾌가 우리 자신의 이성적 선택 바깥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사건을 이끌어갈수는 없지만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는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3.10.18어떤 사람도 내 마음을 지배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사람의 마음도,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지배할 수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지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이다.
그래서 20세기 중엽, 인도 출신의 예수회 수도사인 앤서니 드 멜로는 『사랑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분노의 원인은 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왔다."
기억하자. 모든 사람이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제할 수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그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저것은 나쁜 것이다‘
라고 하는 우리의 관념은 내부로부터, 편견이나 기대로부터 오는 것이다. 관점을 바꿈으로써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거부할지 받아들일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변치 않는 지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모든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전해져 왔다.

우리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동물이라네. 자네는 이 사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네. 우리는선을 바라면서 악을 껴안는다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의 반대편을 욕망하는 게지. 우리의기도는 기도에 맞서 싸우고 계획은 계획에 맞서 싸운다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45.6부모들은 말한다. 내 아이가 훌륭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그러면서 정작 아이에게 훌륭한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직장인들은 말한다. 좋은 회사로 옮기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그런 회사로 이직하기 위한노력은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책상에앉아 있지 않고 사업가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서 돈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은 모른다.
이들은 자신을 기만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욕망과 분리되어 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은 욕망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마틴 루서 킹이 지적한 것이 바로 이 모순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나 내전이 일어나고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를 욕망의 충돌, 잘못된 판단, 편향된 사고의결과라고 보았다. 내가 희망하는 것과 내가 행동하는 것 사이의 모순을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에 반하는 행동을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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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나 미국에서 "저 사람은 뭘 하는 분이지?"라고 묻는다면대부분 그의 직업을 말한다.
"저 사람은 변호사인데, 돈 많이 벌고 있지."
그런데 프랑스에서 같은 질문을 하면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변호사로 일해서 번 돈으로 여행 블로그를 하지."
"슈퍼마켓 장사로 돈 벌어서 음악도 배우고 공연도 다니지."
이처럼 프랑스인은 직장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해주는 일종의 돈줄 역할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내 프랑스 친구들도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행복을 찾으려 하는 것은 아주 멍청한행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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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봄볕에 깨어나는 경작지 위에서 늙은 농부들은 흙을 주무르고 있다. 마늘밭과 봄동밭과 시금치밭에 김을 매고 있다. 부부가 함께 일할 때, 늙은 부부는 이쪽저쪽으로멀리 떨어져서 일한다. 늙은 부부는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지만,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 돌아갈 때도 남편이 앞서고 아내는 몇 걸음 떨어져서 뒤따른다.

그들은 말로 의사 소통을 하는 단계를 넘어섰거나, 아니면 소통되어야 할 의사가 이미 다 소통되어버린 것 같았다. 밭 가운데 무덤들이 들어앉아 있다. 한평생 그 밭을 갈던 농부가 죽어서 그 밭 속에서 누워 있다. 부부가 함께 밭으로 들어가서누운 무덤들도 있다. 그 밭 옆에는 구석기시대의 고인돌 무덤도 있다. 부푸는 봄의 흙 속에서 새파란 것들이 일제히 솟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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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실은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팩트fac‘도 유일무이함을 상실할 수 있다. 팩트를 왜곡하고 금기禁忌로 만드는 일, 애써 무관심하거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치환하는 것으로 팩트는 훼손되고 정신은 상실된다. 이것이 훨씬 치명적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과 <보이지 않는 시선이 이를 증거한다. 팩트가 팩트로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 혹은 그런 나라에서 결국 역사는 그 자체로 불행하다.
"우리는 왜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아야 하는가?" "왜 역사적 사실을 지금에 와서 복기해야 하는가?" 문화재제자리찾기운동 사무처장 혜문스님이 답했듯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일은 우리의 슬픈 역사와 짓눌린 역사를 회복하는 것"이며, 지난한 과정을 통해 역사를 다시 찾는 것은 자기 자신을 다시 찾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문화재 반환과 역사적 팩트를 복기하는 일은 자기 상실을 극복하는 첫단계다.
『조선왕조실록』은 임금이 죽고 나서야 편찬작업을 시작했다. 권력과 후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자 함이었다. 이책에는 수많은 권력자들이 두려워했던 시대의 기록이 담겨 있다. 기억을 기록하는 일은 이제 남은 우리의 일일지도 모른다. 서문을 쓰며 다시 한 번 〈역사채널ⓔ〉의 첫 장면을 돌려본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人君所畏者, 史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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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요? 사람은 최종 목적지만 보고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 따위가 아니잖아요. 직접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고 가끔 브레이크를 걸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제 맛이죠. 유명 작가가 되는 게 전부가 아닌걸요. 전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는 게좋아요. 그러다가 해안가에 도착하는 사막에 도착하는 그건 그때 가서 납득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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