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레이라는 이름은 왠지 가명 같다. 존 스노우나 지미 카터처럼 그냥 왠지.

시리즈가 꽤 많은데 이런 종류의 책이 그렇듯 우려내기로 보일 소지가 있으나 타깃군이 명확하달까 복붙하고 양산하는 책과는 달리 문장이나 구성이 나쁘지 않다.

일종의 실용서인데 얄팍하지 않다. 그게 롱런하는 비결이겠지. 팬을 실망시켜서야 장사 오래 하긴 그른 가게일테니.

제목은 ˝넘어서(beyond)˝이지만 자기부정은 아니다. 전통적 남녀 역할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에 자신의 해법(이론이 아님에 주의)이 어떻게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그래서 왠지 웃음이 나는) 고찰 탐색 뭐 그런 것들의 집대성이다. 기존 팬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라는 느낌도 들고.

테스토스테론=남성성, 에스트로겐=여성성이라는 암묵적인 등식이 전제되어 있는 점은 이 책이 가지는 힘이자 한계로 보이는데, 과학적 사실을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일대일 번역하는 일은 인정하기 어려우나 ˝성차˝의 존재를 여전히 긍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꽤 논쟁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성차가 존재하냐 마냐를 두고 토론하는 건 학술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실용성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대체로 생물학적 사실이라는 근거가 있다손 치더라도 타인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윤리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인이 아프리카인에 비해 열등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치고 그 사실로 인해 아시아인은 이등인류이므로 비행기 좌석 선택에서 선거권 행사에 이르기까지 (황송하게도) 절반에 해당하는 권리만을 보장받는다는 주장을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주요 논거로 사용되는 호르몬 물질 들에 대해서도 본인에 맞게 유연하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왠지 꼭 씨를 붙여드려야 할 것 같은) 존 그레이씨도 여성성이 많은 남성, 남성성이 많은 여성이 꼭 생물학적 성에 근거하여 지침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감사하게도) 명시하고 있다.

이를 덜 논쟁적인 언어로 희석해보면 공격적인 행동 타인을 지배하는 행동을 해야 만족감이 높아지는 사람이 수동적이고 피지배적인 행동으로의 교정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는 극기의 과정을 통과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 옳다고 믿어지는 행동들이 나의 성향과 부딪힐 때 자신의 성향을 부정하기 쉬운데 그보다는 사회적 요구(이 책에서는 상대의 요구)와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성향을 분출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듯 하다.

쓰다보니 왠지 비꼬는 것 같은 말투가 되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예전부터 이러저러 여러모로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존 그레이 씨에게 이죽거릴 이유가 있나. 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에 대한 과도한 애정 탓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워요 그레이 씨.

추신. 화성과 금성에는 물론 우주에는 인간형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현저히 적다고 하네요. 하지만 박테리아는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하니, 다음 신간으로 ˝화성원핵생물과 금성진핵생물˝ 같은 제목 제안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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