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1장, 장의, 산 자를 위한 의식 중에서


6화-최종화


*그는 우리의 환각지幻覺肢, 우리의 다른 손을 씻기는 한 손이 되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어니스트 풀러가 사무실로 온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어떤 심각한 방식으로 상처를 입었다. 상처의 구체적인 내용을 동네 사람들은 모른다. 어니스트 풀러는 다리를 절지도 않고 어디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두들 그가 한국에서 뭔가를 보는 바람에 좀 단순해졌다고, 이따금씩 몹시 당황한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가 느닷없이 발을 멈추고, 쓰레기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병뚜껑과 껌 종이를 유심히 살피곤 한다. 어니스트 풀러는 신경이 곤두선 미소를 짓고 죽은 물고기를 만지듯이 악수를 한다. 그는 야구 모자를 쓰고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다. 매주 일요일 밤이면 슈퍼마켓에 가서 보통 샴쌍둥이나 영화배우나 UFO가 등장하는 표제가 달린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계산대 옆 판매대에서 살 수 있을 만큼 산다. 어니스트는 속독을 하고 수학을 잘하지만 그 상처 때문에 일을 한 적이 없고 얻으려고 한 적도 없다. 어니스트는 매주 월요일 아침 601파운드 남성 관 밑이 빠져 추락—심각한* 상황 또는 스타들의 방부처리 담당자 엘비스는 영원하다고 말하다 같은 표제가 달린 기사 스크랩을 나에게 가져온다. 월요일 아침에 마일로 혼스비는 죽었다. 어니스트의 스크랩은 동 앵글리아 어딘가에서 나온 유골이 가득 담긴 단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툴툴거리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고, 가끔 휘파람을 불고, 곧 말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단지였다. 잉글랜드의 어떤 과학자들은 이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그러나 자식 아홉만 달랑 남겼을 뿐 재산은 남기지 않은 유골의 미망인은 허무하게 줄어들어버린 지극히 사랑하던 남편이 그녀에게 복권 당첨 번호를 말해주려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재키는 우리 앞길을 밝혀주고 떠나려 했을 게 분명해요.” 그녀는 말한다. “그이는 그 어떤 것보다 자기 가족을 사랑했으니까.” 그들 둘의 사진이 실려 있다. 미망인과 단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육신과 청동, 빅터 축음기와 빅터 축음기의 개. 개는 귀를 쫑긋 하며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늘 기다리고 있다. 어떤 좋은 소식이나 당첨번호를 기다리고 있다. 징조나 이적, 우리가 사랑하는 죽은 사람으로부터 그가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어떤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눈에 띄는 일을 하면, 무덤에서 일어나거나 관을 뚫고 추락하거나, 백일몽 속에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면 기뻐한다. 마치 죽은 사람이 여전히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계획이 있는 것 같아,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아 대단히 즐겁다.




하지만 잘 알려진 슬픈 진실은 우리 대부분이 관에 그대로 있을 것이고 오랫동안 죽어 있을 것이며, 우리의 단지나 무덤은 절대 소리를 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과 레퀴엠, 우리의 묘석이나 장엄미사는 우리를 하늘로 데려다주지도 않고 하늘에 가지 못하게 막지도 않는다. 우리 삶의 의미, 삶의 기억은, 우리의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산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지금 어떤 존재를 가지고 있든, 그것은 산 사람들의 믿음에 의해서 가지게 된 것일 뿐이다.


우리는 겨울 매장을 위해 여기 무덤들에 열을 가한다. 파 들어가기 전의 일종의 전희前戲로, 묘지 관리인과 그의 굴착기가 땅을 열기 전에 땅을 쥐고 있는 서리의 손아귀를 좀 느슨하게 풀려는 것이다. 우리는 수요일에 마일로를 땅에 묻었다. 우리가 거기에, 떡갈나무 관 안에, 서리 선線 바로 아래, 묻은 것이 이제 마일로이기를 중단했다는 것은 자비로운 일이다. 마일로는 그 자신의 관념이 되었다. 3인칭과 과거 시제로 영원히 고정되었다. 그의 미망인의 식욕 상실과 수면 장애가 되었다. 우리가 그를 찾는 여러 장소에서 결석자가 되었다. 우리에게서 마일로라는 습관은 사라져, 그는 우리의 환각지幻覺肢, 우리의 다른 손을 씻기는 한 손이 되었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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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1장, 장의, 산 자를 위한 의식 중에서


5화


*“한 손이 다른 손을 씻는 거지.”*


마일로가 죽은 병원은 최첨단이다. 문마다 신체부위나 어떤 과정이나 신체 기능을 가리키는 표지가 붙어 있다. 나는 그 말들을 다 합치면 결국 ‘인간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마일로에게 남은 것, 유해는 지하실에, 배송 및 접수와 세탁 사이에 있다. 여전히 물건들을 좋아한다면 마일로는 자신의 자리가 마음에 들 것이다. 마일로의 방은 병리라고 부른다.


죽음을 가리키는 의학적이고 전문적인 어법은 무질서를 강조한다.

우리는 실패, 변칙, 부족, 부전, 정지, 사고 때문에 늘 죽어가고 있다. 이런 것들은 만성이거나 급성이다. 사망확인서의 언어—마일로의 경우는 “심폐 기능 부전”이다—는 허약함을 가리키는 언어와 같다. 마찬가지로, 혼스비 부인은 그녀의 슬픔 속에서 무너지고 있다거나 부서지고 있다거나 박살나고 있다고 이야기될 것이다, 마치 그녀에게 구조적으로 뒤틀린 게 있는 것처럼. 마치 죽음과 슬픔이 ‘사물의 질서’의 한 부분이 아니기나 한 것처럼, 마치 마일로의 부전과 그의 미망인의 울음이 당혹감을 주는 것처럼, 또는 주어야 하는 것처럼. 혼스비 부인에게 “잘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버티고 있다, 폭풍을 뚫고 나아가고 있다, 자식들을 위해 굳센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녀가 이렇게 하는 것을 기꺼이 도와줄 약사들이 있다. 물론 마일로에게 “잘하고 있는 것”은 위층으로 다시 돌아가, 꺾이지 않고, 계측기와 모니터를 계속 삐삐 울려댄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마일로는 아래층에, 배송 및 접수와 세탁 사이에, 스테인리스스틸 서랍 안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얀 비닐에 싸여 있고, 그의 작은 머리, 넓은 어깨, 튀어나온 배, 가느다란 다리, 발목과 발가락 꼬리표에서 늘어진 하얀 고무줄 때문에, 꼭 크게 확대해 놓은 정자처럼 보인다.



나는 서명을 하고 그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온다.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아직도 마일로가 젠장 참견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물론, 우리 모두 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죽은 사람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장례식장으로 와서, 위층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적힌 문 뒤의 방부처리실에서, 마일로 혼스비는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도기 탁자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비닐을 풀자 쭉 뻗은 마일로는 이제야 그 자신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기 시작한다—눈은 크게 뜨고, 입은 헤 벌리고, 우리의 중력으로 돌아오고 있다. 나는 면도를 해주고, 눈을, 입을 닫는다. 우리는 이것을 이목구비 잡아주기라고 부른다. 아무리 그래도 살아서 늘 뜨고, 감고, 초점을 맞추고, 신호를 보내고, 뭔가 우리에게 말을 해줄 때처럼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죽었을 때 눈과 입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이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정돈해야 할 마지막 세부사항은 마일로의 두 손이다. 곧 한 손은 다른 손 위에 포개져 있고, 두 손은 배꼽 위에, 편안한, 쉬는, 물러난 자세로 놓여 있게 될 것이다.

이것들도 이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그렇게 자리를 잡아 주기 전에 먼저 두 손을 씻긴다.



아내가 몇 년 전 집을 나갔을 때, 아이들은 이곳에 그대로 남았고, 남부끄러운 일들도 그대로 남았다. 작은 타운에서는 큰 뉴스였다. 뒷담화와 호의가 오갔는데, 이런 동네들은 원래 그런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아무도 나에게 딱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무력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냄비요리와 쇠고기 스튜를 가져오고,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이나 카누 타기에 가고, 어린 누이들에게 나를 찾아가 보라고 설득했다. 마일로가 한 일은 내가 가정부를 구할 때까지 두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자신의 세탁 밴을 우리 집에 보낸 것이었다. 마일로는 아침에 다섯 보따리를 들고 가 깨끗이 빤 다음 개서 점심때쯤 돌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다. 그를 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의 집이나 세탁소에 가 본 적도 없었다. 그의 부인은 내 아내를 안 적이 없었다. 그의 자식들은 우리 자식들과 놀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가정부를 구한 뒤 나는 마일로를 찾아가 세탁비를 냈다.청구서에는 보따리의 개수, 세탁기와 건조기 사용 횟수, 세제, 표백제, 섬유유연제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총액은 육십 달러였던 것 같다. 세탁물을 가져가고 가져다주고, 쌓고 개고 크기별로 정리하고, 내 목숨과 내 아이들의 목숨을 구해주고, 우리가 내내 깨끗한 옷과 수건과 침대보를 쓰게 해준 값은 얼마냐고 물었다. “그건 됐소”가 마일로의 대답이었다. “한 손이 다른 손을 씻는 거지.”


나는 마일로의 왼손 위에 오른손을 얹고, 또 반대로도 해본다. 그랬다가 처음으로 돌아온다. 그랬다가 이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결정을 내린다. 어느 쪽이든 한 손이 다른 손을 씻는다.

방부처리에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일을 다 마쳤을 때는 날이 환하다.


(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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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1장, 장의, 산 자를 위한 의식 중에서


4화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늘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장례식 예행연습을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관계가 있다. 그것은 건강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운전 중에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아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데이트한 여자들, 이 지역 로터리 회원, 내 자식의 친구들 사이에는 하나의 믿음이 널리 퍼져 있는데, 그것은 내가 이곳의 장의사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게 어떤 비정상적인 매혹을 느끼고, 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들에 관한 내부 정보를 알고 있고, 심지어 그들에게 애착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사람들은, 일부는 어쩌면 옹호할 수 있을 만한 이유로 내가 그들의 주검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생각이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죽는 것은 우리 자신과 몇몇 다른 종을 괴롭히는 일련의 재앙 가운데 하나—최악이자, 마지막—이지만, 결국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이 목록에는 치은염, 장폐색, 분쟁이 되어버린 이혼, 세무 감사, 영적 고민, 현금 유동성 문제, 정치적 격변 등등과 몇 가지가 더 포함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행은 모자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치과의사가 당신의 나쁜 잇몸, 의사가 당신의 썩은 내장, 회계사가 당신의 너저분한 지출 기록에 매력을 느끼지 않듯이 나는 죽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금융 종사자나 법률가, 목사나 정상배와 마찬가지로 불행을 즐기지 않는다. 불행은 무심하고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불행은 부도 수표이고, 전 배우자이고, 거리의 폭력배이고, 국세청이다—이들은 죽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죽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하다. 중요하다. 당연히 중요하다.


지난 월요일 아침 마일로 혼스비가 죽었다. 혼스비 부인이 새벽 2시에 전화를 해서 마일로가 숨을 거두었는데 내가 돌봐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마치 그의 상태가 회복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개선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상태인 양. 새벽 2시에 렘수면으로부터 갑자기 붙들려 나온 나는 생각하고 있다, 마일로는 혼자 알아서 놀라고 하고 아침에 다시 전화해라. 하지만 마일로는 죽었다. 한순간에, 눈 깜빡할 사이에, 마일로는 돌이킬 수 없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혼스비 부인과 자식들 너머로, 그가 소유한 세탁소의 여자들 너머로, ‘리전 홀’의 전우들, ‘프리메이슨 집회소’의 총본부장, 제일침례교회의 목사 너머로, 우편집배원, 지역구위원회, 시의회, 상공회의소 너머로,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가 마음속에 갖고 있는 그에 대한 모든 배반 또는 모든 친절 너머로 가버렸다.


마일로는 죽었다.

눈에 X가 그려지고, 빛이 꺼지고, 막이 내렸다.

힘도 없고, 해도 끼치지 못한다.

마일로는 죽었다.


따라서 내가 새벽 이른 시간에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마시고 얼른 면도를 하고, 홈버그 모자를 쓰고 두꺼운 외투를 입고, ‘죽은 왜건’의 시동을 걸고 조금 기다리다 프리웨이로 향하는 것은 마일로 때문이 아니다. 마일로는 이제 아무런 이유가 될 수 없다. 나는 그녀를 위해 간다—그녀가 같은 순간, 같은 눈 깜빡할 새에, 물이 얼음이 되듯 미망인 혼스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위해 간다—그녀는 여전히 울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내 청구서에 돈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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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1장, 장의, 산 자를 위한 의식 중에서


3화


*산 사람들은 당신의 죽음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은 그렇지 않다.* 


나의 전 장모는—그녀 또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입증할 수 있는 진실이었는데—늘 제임스 카그니*처럼 허세를 부리며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것을 좋아했다. 요컨대, “내가 죽으면, 그냥 상자에 집어넣어서 구멍에 집어넣어.” 하지만 우리가 실질적으로 모든 사람을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 언제나 그 여자는 침울해지면서 약간 짜증을 내곤 했다.

나중에 미트로프와 그린빈을 먹을 때 그녀는 어김없이 “내가 죽으면 그냥 화장해서 재를 뿌려” 하는 말로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곤 했다.

나의 전 장모는 관심 없는 태도가 두려움 없는 태도로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이 먹다 말고 서로 바라보았다. 아이들 어머니는 애원했다. “아, 엄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나는 라이터를 꺼내 만지작거리곤 했다.


이와 비슷하게 나를 이 여자의 딸에게 결혼시킨 사제—골프와 황금 성합과 아일랜드 리넨으로 만든 제의를 사랑했던 남자, 와인색으로 실내를 장식한 크고 검은 세단을 몰고 다니며 늘 추기경 자리를 눈여겨보던 남자—는 어느 날 공동묘지를 떠나다 갑자기 마음이 동한 듯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나한테 청동 관은 쓰지 말게. 천만에! 난蘭이나 장미나 리무진도. 평범한 소나무 상자가 내가 원하는 거야. 거기에 ‘평平미사’와 빈민의 무덤. 허식과 요란은 됐네.”

그는 소박, 검약, 경건과 내핍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설명했다—모두 사제의, 또 분명히 기독교의 미덕이었다. 나는 말했다,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당장 오늘이라도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목을 할 수 있다, 컨트리클럽에서 탈퇴하고 공을 치는 일은 퍼블릭 코스에 가서 하고 브로엄을 팔고 중고 셰베트를 사라, 플로샤임 구두와 캐시미어와 소갈빗살에서 자유로워지고, 빙고 게임 하는 밤과 건축 기금에서 자유로워지면, 정말이지, 성 프란체스코의 화신, 아니면 파두아의 안토니우스의 화신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실제로 내가 그 일을 기꺼이 도와주겠다, 기쁜 마음으로 그의 저금과 신용카드를 교구의 자격을 갖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 그리고 슬픈 의무를 이행할 때가 오면, 그즈음이면 그에게도 익숙해졌을 방식으로 공짜로 묻어주겠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나운 눈길로 나를 보았다. 아마 오래전 스위니도 그렇게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뒤에 그를 새로 바꾸는 저주를 걸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말해주려고 했던 것은 물론 죽은 성자가 되는 것은 죽은 토란이나 죽은 전자리상어가 되는 것만큼이나 가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고, 그것은 늘 그랬다. 살아 있는 성자들은 여전히 이 눈물의 골짜기*의 화염과 낙인을, 순결의 아픔과 양심의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일단 죽으면 그들은 자신의 유골이 자기 할 일을 하게 놓아둔다. 내가 그 사제에게 말하려고 했듯이, 죽은 사람은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산 자만 관심이 있다.


되풀이해 미안하지만, 이것이 내 사업에서 중심이 되는 사실이다—당신이 일단 죽으면, 당신에게 또는 당신을 위하여 또는 당신과 함께 또는 당신에 관하여 도움이 되건 해가 되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우리가 주는 어떤 피해나 보여주는 친절은 살아 있는 사람들, 당신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그것이 정말로 누군가에게 사건이 되는 것이라면—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산 사람들은 당신의 죽음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은 그렇지 않다. 당신의 죽음이 안겨주는 슬픔 또는 기쁨은 그들의 것이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한 손실 또는 이득은 그들의 것이다. 기억의 고통과 기쁨은 그들의 것이다. 장의 서비스에 대한 청구서는 그들의 것이고 그 돈을 지불하기 위해 우편으로 보내는 수표도 그들의 것이다.




그리고 진실, 매우 자명한 진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늙은 처갓집 식구들, 교구 사제, 또 이발소와 칵테일파티와 사친회에서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면서 단호하게 또는 의무감에 자신들이 죽으면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은근히 알려주는 낯선 사람들은 잘 파악하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


그냥 놔두라는 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일단 죽으면, 두 발을 편한 데 올려놓고, 하루가 끝났다 여기고, 남편이나 부인이나 애들이나 형제가 당신을 묻을지 태울지 대포에 넣고 쏠지 어딘가의 배수로에 내버려 말라비틀어지게 할지 결정하게 놓아두어라.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당신의 일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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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1장, 장의, 산 자를 위한 의식 중에서


*죽은 사람은 관심이 없다. 어쩌면 근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에서는 24시간 내내 아무 때나 죽으며, 어느 요일, 어느 달을 선호하는 것 같지 않다. 계절 쪽으로도 분명하게 좋아하는 때가 드러나지 않는다. 별의 배치나 달의 이울기나 전례典禮 일정도 큰 관계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장소도 중요하지 않다. 쉐보레와 양로원에서, 욕조에서, 주간州間 도로에서, ER에서, OR*에서, BMW에서 앉아서 가기도 하고 누워서 가기도 한다. 알파벳 머리글자로 표시되는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에 장비나 중요성을 더 할당할 수도 있지만—ICU**가 어쩐 일인지 그린브라이어 요양소보다 나아 보인다—죽은 사람은 상관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내가 묻고 태우는 죽은 사람들은 그들 이전의 죽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이, 죽을 만큼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의 결여는 사실 뭔가 심각한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첫 번째 확실한 표시의 하나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그들이 숨 쉬기를 그만둔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는 물론 CVA나 ASHD***보다 흉부 총상이나 쇼크와 외상을 기록하는 데 들어가는 잉크가 더 많겠지만, 어떤 사인도 다른 사인보다 지속성이 부족하거나 하지는 않다. 어떤 것이든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관심이 없다.


누구냐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괜찮고, 당신도 괜찮아, 그런데 그는 죽었어!” 하고 말하는 것이 일종의 위로다.

이것이 우리가 강바닥을 훑고 비행기 잔해나 폭격 현장을 샅샅이 뒤지는 이유다.

이것이 ‘작전 중 실종’이 ‘도착 시 이미 사망’보다 고통스러운 이유다.

이것이 우리가 관을 열어 두고 모두가 부고를 읽는 이유다.

아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보다 낫고, 그것이 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것이 나라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낫다. 일단 내가 죽은 사람이 되면, 네가 괜찮든 그가 괜찮든 나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다 꺼져도 상관없다. 죽은 사람은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살아 있는 사람은, 부사副詞와 보험 통계에 묶여 여전히 관심을 가진다. 자, 그런 차이가 있고, 그래서 내가 사업을 해나갈 수 있다. 살아 있는 자는 주의 깊고 또 종종 관심을 기울인다. 죽은 사람은 관심이 없다. 어쩌면 근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없다. 이것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입증할 수 있는 진실이다.


(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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