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1장, 장의, 산 자를 위한 의식 중에서


4화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늘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장례식 예행연습을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관계가 있다. 그것은 건강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운전 중에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아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데이트한 여자들, 이 지역 로터리 회원, 내 자식의 친구들 사이에는 하나의 믿음이 널리 퍼져 있는데, 그것은 내가 이곳의 장의사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게 어떤 비정상적인 매혹을 느끼고, 특별한 관심을 갖고, 그들에 관한 내부 정보를 알고 있고, 심지어 그들에게 애착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사람들은, 일부는 어쩌면 옹호할 수 있을 만한 이유로 내가 그들의 주검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생각이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죽는 것은 우리 자신과 몇몇 다른 종을 괴롭히는 일련의 재앙 가운데 하나—최악이자, 마지막—이지만, 결국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이 목록에는 치은염, 장폐색, 분쟁이 되어버린 이혼, 세무 감사, 영적 고민, 현금 유동성 문제, 정치적 격변 등등과 몇 가지가 더 포함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행은 모자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치과의사가 당신의 나쁜 잇몸, 의사가 당신의 썩은 내장, 회계사가 당신의 너저분한 지출 기록에 매력을 느끼지 않듯이 나는 죽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금융 종사자나 법률가, 목사나 정상배와 마찬가지로 불행을 즐기지 않는다. 불행은 무심하고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불행은 부도 수표이고, 전 배우자이고, 거리의 폭력배이고, 국세청이다—이들은 죽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죽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하다. 중요하다. 당연히 중요하다.


지난 월요일 아침 마일로 혼스비가 죽었다. 혼스비 부인이 새벽 2시에 전화를 해서 마일로가 숨을 거두었는데 내가 돌봐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마치 그의 상태가 회복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개선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상태인 양. 새벽 2시에 렘수면으로부터 갑자기 붙들려 나온 나는 생각하고 있다, 마일로는 혼자 알아서 놀라고 하고 아침에 다시 전화해라. 하지만 마일로는 죽었다. 한순간에, 눈 깜빡할 사이에, 마일로는 돌이킬 수 없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혼스비 부인과 자식들 너머로, 그가 소유한 세탁소의 여자들 너머로, ‘리전 홀’의 전우들, ‘프리메이슨 집회소’의 총본부장, 제일침례교회의 목사 너머로, 우편집배원, 지역구위원회, 시의회, 상공회의소 너머로,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가 마음속에 갖고 있는 그에 대한 모든 배반 또는 모든 친절 너머로 가버렸다.


마일로는 죽었다.

눈에 X가 그려지고, 빛이 꺼지고, 막이 내렸다.

힘도 없고, 해도 끼치지 못한다.

마일로는 죽었다.


따라서 내가 새벽 이른 시간에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커피를 마시고 얼른 면도를 하고, 홈버그 모자를 쓰고 두꺼운 외투를 입고, ‘죽은 왜건’의 시동을 걸고 조금 기다리다 프리웨이로 향하는 것은 마일로 때문이 아니다. 마일로는 이제 아무런 이유가 될 수 없다. 나는 그녀를 위해 간다—그녀가 같은 순간, 같은 눈 깜빡할 새에, 물이 얼음이 되듯 미망인 혼스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위해 간다—그녀는 여전히 울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내 청구서에 돈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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