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1장, 장의, 산 자를 위한 의식 중에서


3화


*산 사람들은 당신의 죽음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은 그렇지 않다.* 


나의 전 장모는—그녀 또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입증할 수 있는 진실이었는데—늘 제임스 카그니*처럼 허세를 부리며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것을 좋아했다. 요컨대, “내가 죽으면, 그냥 상자에 집어넣어서 구멍에 집어넣어.” 하지만 우리가 실질적으로 모든 사람을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 언제나 그 여자는 침울해지면서 약간 짜증을 내곤 했다.

나중에 미트로프와 그린빈을 먹을 때 그녀는 어김없이 “내가 죽으면 그냥 화장해서 재를 뿌려” 하는 말로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곤 했다.

나의 전 장모는 관심 없는 태도가 두려움 없는 태도로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이 먹다 말고 서로 바라보았다. 아이들 어머니는 애원했다. “아, 엄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나는 라이터를 꺼내 만지작거리곤 했다.


이와 비슷하게 나를 이 여자의 딸에게 결혼시킨 사제—골프와 황금 성합과 아일랜드 리넨으로 만든 제의를 사랑했던 남자, 와인색으로 실내를 장식한 크고 검은 세단을 몰고 다니며 늘 추기경 자리를 눈여겨보던 남자—는 어느 날 공동묘지를 떠나다 갑자기 마음이 동한 듯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나한테 청동 관은 쓰지 말게. 천만에! 난蘭이나 장미나 리무진도. 평범한 소나무 상자가 내가 원하는 거야. 거기에 ‘평平미사’와 빈민의 무덤. 허식과 요란은 됐네.”

그는 소박, 검약, 경건과 내핍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설명했다—모두 사제의, 또 분명히 기독교의 미덕이었다. 나는 말했다,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당장 오늘이라도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목을 할 수 있다, 컨트리클럽에서 탈퇴하고 공을 치는 일은 퍼블릭 코스에 가서 하고 브로엄을 팔고 중고 셰베트를 사라, 플로샤임 구두와 캐시미어와 소갈빗살에서 자유로워지고, 빙고 게임 하는 밤과 건축 기금에서 자유로워지면, 정말이지, 성 프란체스코의 화신, 아니면 파두아의 안토니우스의 화신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실제로 내가 그 일을 기꺼이 도와주겠다, 기쁜 마음으로 그의 저금과 신용카드를 교구의 자격을 갖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 그리고 슬픈 의무를 이행할 때가 오면, 그즈음이면 그에게도 익숙해졌을 방식으로 공짜로 묻어주겠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나운 눈길로 나를 보았다. 아마 오래전 스위니도 그렇게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뒤에 그를 새로 바꾸는 저주를 걸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말해주려고 했던 것은 물론 죽은 성자가 되는 것은 죽은 토란이나 죽은 전자리상어가 되는 것만큼이나 가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고, 그것은 늘 그랬다. 살아 있는 성자들은 여전히 이 눈물의 골짜기*의 화염과 낙인을, 순결의 아픔과 양심의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일단 죽으면 그들은 자신의 유골이 자기 할 일을 하게 놓아둔다. 내가 그 사제에게 말하려고 했듯이, 죽은 사람은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산 자만 관심이 있다.


되풀이해 미안하지만, 이것이 내 사업에서 중심이 되는 사실이다—당신이 일단 죽으면, 당신에게 또는 당신을 위하여 또는 당신과 함께 또는 당신에 관하여 도움이 되건 해가 되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우리가 주는 어떤 피해나 보여주는 친절은 살아 있는 사람들, 당신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그것이 정말로 누군가에게 사건이 되는 것이라면—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산 사람들은 당신의 죽음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은 그렇지 않다. 당신의 죽음이 안겨주는 슬픔 또는 기쁨은 그들의 것이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한 손실 또는 이득은 그들의 것이다. 기억의 고통과 기쁨은 그들의 것이다. 장의 서비스에 대한 청구서는 그들의 것이고 그 돈을 지불하기 위해 우편으로 보내는 수표도 그들의 것이다.




그리고 진실, 매우 자명한 진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늙은 처갓집 식구들, 교구 사제, 또 이발소와 칵테일파티와 사친회에서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면서 단호하게 또는 의무감에 자신들이 죽으면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은근히 알려주는 낯선 사람들은 잘 파악하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


그냥 놔두라는 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일단 죽으면, 두 발을 편한 데 올려놓고, 하루가 끝났다 여기고, 남편이나 부인이나 애들이나 형제가 당신을 묻을지 태울지 대포에 넣고 쏠지 어딘가의 배수로에 내버려 말라비틀어지게 할지 결정하게 놓아두어라.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당신의 일이 아니다. 죽은 사람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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