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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나는 어떤 특수한 종류의 상황 변수나 과정이 사람을 선과 악의 경계선을 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그 경계선이 건널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살인, 반역, 유괴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경계선 건너편에 있고, 우리는 결코 그 너머로 갈 수 없다고 말이다. 우리는 선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내 연구는 ‘그렇지 않다’는 믿음, 그 선은 넘을 수 있는 선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선한 쪽에 있는 이유는 그들이 실제로 결코 시험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제로 선을 넘도록 유혹당하는 특수한 상황에 빠진 적이 없다.” [마음의 과학, 84p]
필립 짐바르도는 <조용한 광기 : 스텐포드 감옥 실험>으로 유명한 심리학자다. 대학생들을 죄수와 교도관 역할로 자의적으로 나누고 2주간의 실험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실험은 엿새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정상적이고 건강하다는 이유로 고른 학생들이 허물어지며 평화주의자였던 학생들은 죄수를 잔인하고 사악하게 처벌하면서 쾌락을 얻는 사디스트처럼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하거나 나쁜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 놓이면 선한 사람이 나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상황주의적 접근으로 유명한 실험이었다. 선한 사람이 끝까지 선한 것은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쓰메 소세끼의 『마음』은 필립 짐바르도의 상황주의적 접근을 문학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의 추가 어디로 움직이는가. 생명이 움직임이라면 마음도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불신의 사이를 오가는 마음의 추. 생명이 놓은 상황에 따라 마음의 추는 그 방향으로 이끌려진다.
선생님은 아버지가 ‘자주 숙부를 평하길 자신보다 훨씬 능력 있는 믿음직한 사람’이라 평했기에 아버지처럼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은 아무래도 타고난 능력이 무뎌진’ 선생님은 숙부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겼다. 뜻밖의 엄청난 부와 어리숙한 조카만이 남겨진 상황에서 숙부는 형이 믿는 동생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 경계를 넘어갔다. 선생님은 어린 시기에 접한 숙부의 배신으로 마음의 추가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기울어졌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어진 선생님을 되돌려 놓은 것은 새로운 상황의 출현이었다.
“아주머니의 그런 태도가 자연히 내 기분에 영향을 미쳤네. 머지 않아 내 눈은 예전처럼 두리번거리지 않게 되었지. 내 마음이 내가 앉아 있는 곳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네. 요컨대 아주머님을 비롯하여 이 집 식구들이 비뚤어진 내 눈이나 의심 많은 모습을 아예 문제 삼시 않았던 것이 내게 큰 행복을 가져다 주었겠지. 내 신경은 상대에게 반사되어 돌아오지 않았기에 점점 안정을 찾아갔네.” [마음, 175p]
타인을 믿지 못해 주변을 경계하고 두리번거리던 선생님은 아주머니와 아가씨가 주는 따뜻한 햇살로 불신의 경계를 넘어 다시 마음의 추가 믿음으로 움직였다. 선생님은 양가로부터 버림받아 외로운 k를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자신의 환경으로 끌어들일 만큼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했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생명의 작동 방식은 움직이고 변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향했던 마음의 추는 k의 변화로 다시 움직인다. 불신을 향해. 선생님의 적극적인 배려로 ‘정신의 향상심’만을 인내하던 비인간적이던 k는 사랑으로 흔들리는 인간다운 면모를 드러내며 선생님의 마음의 추를 전환시켰다.
“숙부에게 속았던 당시의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뼈저리게 느꼈지만,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했을 뿐이지 그래도 자신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네. 세상 사람들이 어떻든 나만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신념이 어딘가 있었던 거지. 그런데 k 때문에 그 신념이 보기 좋게 무너지고 나도 숙부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을 하자 갑자기 아찔한 느낌이 들더군. 사람들에게 질린 나는 자신에게도 질려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네.” [마음, 265p]
k의 죽음은 선생님을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 숙부의 배신으로 인한 불신, 아주머니와 아가씨가 가져온 신뢰 회복, k의 죽음이 초래한 자신에 대한 불신까지. 선생님의 마음의 추는 진자의 폭을 확대하며 격렬하게 운동했다. 마음은 개인 안에 있지만 추를 움직이는 건 상황이다. 자신만은 다르다는 믿음이 깨진 순간, 경멸했던 믿을 수 없는 숙부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자각으로 선생님은 자신의 놓인 상황에 멈춰 꼼짝하지 않았다. 생명이기에 움직일 수 밖에 없음에도 스스로 가둬둔 감옥에서 움직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버텼다.
“죽었다 생각하고 살아가려고 결심한 내 마음은 때때로 외계의 자극에 펄쩍 뛰어올랐지. 하지만 내가 어떤 방면으로 나아가려고 생각하자마자 어딘가에서 엄청난 힘이 나와서 내 마음을 꽉 쥐고 전혀 움직일 수 없게 하네. 그리고 그 힘이 나에게 너는 뭔가를 할 자격이 없는 놈이라며 억누르듯이 말하지. 그러면 나는 그 한마디에 곧 위축되고 마네. 얼마쯤 지나 다시 일어나려고 하면 다시 단단히 죄어오지. 나는 이를 악물고 왜 남을 방해하는 거냐고 호통을 친다네. 불가사의한 힘은 차가운 목소리로 웃지. 네가 잘 알 텐데, 하는 거야. 나는 다시 축 늘어지고 마네.” [마음, 270p]
선생님의 마음의 추가 멈췄다. 사람에 대한 불신의 방향에서. 진자 운동의 극한 지점에서. 정신적 결벽증이 있던 선생님은 생명의 속성인 움직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추를 끌어당기는 상황을 없애기 위해 고립을 선택했다. 마음의 추가 운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상태다. 선생님은 k가 죽었을 때 함께 멈춘 것이다. 선생님은 과거의 상황 속에서 매순간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있음을 부정했다. 마음의 추가 움직이지 않도록. 살아있으나 살고싶지 않은 상태로 마음의 추가 행여 움직일까 두려워하며 그렇게 오래 세월을 견뎠다. 그리고 마음의 추가 마지막으로 움직이는 방향으로 자신을 내던졌다. 세상 밖으로. 그때 선생님은 어떤 마음의 상태였을까? 불신의 극에서 더 나아갔을까 아니면 믿음의 방향으로 다가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