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3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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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가여서가 아니라 어떤 필요 때문에 이 책과 거의 동시에 읽게 된 <다윈의 식탁>에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키처의 문제 제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때 르원틴이 나선다. 그는 현존하는 생물학자들 중에서 개념적 쟁점들을 가장 잘 포착하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가령 그는 자신이 모르는 주제에 대한 발표라도 10분 정도만 듣고 있으면 요지를 바로 파악하고 핵심적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를 '세미나의 저승사자'로 부르기도 한다."(91) 

이 문장을 읽으면서 "딱 한윤형에게 어울리는 말이군" 했다. 그는 어떻게 몇 년에 걸쳐 벌어진 여러 사람들의 그 복잡한 논리 주장들을 그렇게 쉽고 단순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발군이다. 게다가 그의 정리는 재미있기까지 해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에 실린 그의 글을 읽었을 때는, "정리법이 재기발랄하긴 하지만 너무 단순화한 것 아냐?"라는 생각했는데, <전투일지>를 읽어보니 그 단순함이 만만치 않은 경험과 논리적 내공으로 이루어진 성과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제대로' 정리해 내는 작업은, 새로운 이론의 틀을 제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중요하다.  정리는 그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정교하고 깊이 있는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므로.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얻은 은밀한 즐거움은 따로 있었다. 바로 "빨간약을 먹을걸!" 하는, 도무지 논쟁의 최전선에서 싸운 전사 답지 않은 독백을 읽는 것. 빨간약을 먹었으면, 즉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가끔씩 해본다는 그 순진한(?) 탄식에 대한 반색.  '그래 확신범일 것 같은 전사도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는 허약한 길티플레져의 즐거움. 

일단 갔다와야 사람된다,는 그 군대를 갔다 온 후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서 있는 지점을 보다 유하게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매사 양면이 있겠지만, 유함을  어둡게 표현하자면 확신은 무뎌지고 위치 선정도 불안하고 자연히 전선도 흐려지고....... 그것이 전사로서의 그의 이력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살 시절에 너무 많은 적을 두었던 것 같아요"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에, 더 많은 적과 싸우면서 더 많이 유해진 어떤 선배가 응수했던 말이 떠오른다. "싸워야 할 적이 없으면 더이상 젊은 것이 아니다."  

그는 아직 젊지 안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