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정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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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책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자신과 같은 삶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자신과 다른 삶에서 목표를 얻기도 한다. 즉 책을 읽음으로서 타인의 삶을 엿보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다. 때론 그게 찾는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거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인위적일 때가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희망이다. 책에서 찾은 희망이 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면 그뿐인 것이다.

 

하지만 가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은 흥미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공허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허나 이건 그나마 양호한 경우다. 어떤 책은 세드엔딩 속에서도 하나의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패닉'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또 심할 경우 타인의 삶을 엿본 대가로 자신의 행복마저 빼앗기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희망을 부정하고 산산이 부서뜨리는 듯한 책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처음 <애니>를 읽었을 때, 나는 이 책 역시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다. 광기에 휩싸여 비참하게 죽어버린 어머니와 그로인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여자, 트라우마로 인해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한물간 여배우, 불행을 예감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달려나가는 예비신부... 그 외에도 수많은 얼룩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게다가 이야기의 끝은 어둠으로 막을 내린다. 그나마 희뿌연 불빛이 어른거리는 경우도 있지만 딱 그정도까지다. 희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의아했고 그 다음엔 공허했으며 끝내는 포기했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를 되뇌이며 끝까지 읽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둡고 축축한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책을 덮으려는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어봤던 해설이 아니었다면 내게 이 책은 최악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소연씨의 해설은 이 책에 또 다른 형태의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도와 절망, 심연을 통해 희망을 바라보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결핌과 공허를 똑바로 마주봄으로서 얻을 수 있는 희망, 온몸으로 아픔을 겪어내고 나서 만날 수 있는 희망.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과정을 모두 보여주는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바닥을 치는 과정만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그 때문에 희망을 보기가 어렵다. 바닥을 치는 것 역시 희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려면 그만큼 깊고 섬세한 눈이 필요한 것이다.

 

소설과 해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혹은 해설이 있어 소설이 완벽해졌다, 라고 말한다면 건방진걸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내가 해설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성숙해졌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해설 덕분에 나는 이 소설을 다시 보게 됐고, 다시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또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책들을 떠올리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았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희망을 놓쳤던걸지도 모른다는 반성도 했다. 어쩌면 사람이 글을 쓰고, 읽는 행위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희망'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희망을 보고 싶다면, 좀 더 깊은 생각과 눈을 가지고 싶다면, 두 사람이 함께여서 완벽한 한 권의 책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함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희망을 부정하는 책의 존재 유무에 대해, 있다면 당신이 봤던 희망을 부정하는 책에 대해, 반대로 당신이 봤던 희망이 있는 책에 대해, 또 다른 형태의 희망에 대해.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 잔뜩이라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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