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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중에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다. 거기서 나오는 주인공들 중 좋은 책을 만드는 멋진 출판사를 꾸려나가는 것이 꿈인 '한정원'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그녀는 좋은 집안에서 좋은 부모 밑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누린다. 하지만 그 드라마에서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가난한 집 딸이었는데, 병원의 실수로 아이가 뒤바뀌었다는 사실.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과연 그녀의 그 밝음과 삶을 긍정하는 성격은 상황이 바뀐 뒤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내가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정원이라는 여자가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은 것들을 발견하는, 그래서 그걸 믿고 나아가는 힘과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시궁창 같은 삶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그러한 가운데 자신을 합리화 시키며 과연 선(善)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곤 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선이라는 것이 악에 맞대응하여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심은 언제나 고개를 가로 젓는 것으로 끝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희망 없어보이는 세상 속에서 책과 드라마 같은 예술 분야는 우리에게 언제나 '선'은 이겨야만 하고, 결국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단언해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니 꼭 그 믿음을 버리지 말라고 말이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일본의 전래동화 내용을 알지 못했기에 어떤 내용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전래동화 내용을 찾아 읽어보고 이 제목만큼 이 내용에 적합한 제목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교활한 원숭이가 착한 게를 속여서 게의 재산을 갈취한 후에 게를 죽여버리고, 이에 증오심에 가득 찬 게의 새끼들이 계략을 꾸며 원숭이를 죽여 복수한다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마지마 미쓰키는 6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일하고 있다는 신주쿠 가부키초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가사키 외딴 섬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던 미쓰키는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 도모키를 만나러 무작정 그곳으로 갔지만 남편은 없고, 남편의 친구인 준페이를 만나게 된다. 준페이는 얼마 전 일어났던 뺑소니 사건의 범인을 두 눈으로 확인한 까닭으로 자수한 사람이 자신이 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건에 연루되고, 도모키와 함께 그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진짜 범인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나토임을 알게 되고, 그를 협박하여 돈을 얻어낼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엉뚱하게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치와는 무관한 소시민인 그들에게 나타난 거대한 정치세력. 미나토가 죽인 사람은 집안의 원수인 '에노모토 요스케'였고, 그가 죽기 전에 가지고 있던 중요한 서류가 정치계에 비리가 잔뜩 담긴 거라 그것을 찾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과 맞서 거대한 거래를 하듯 준페이는 뜻밖에 국회의원 준비를 하게 된다.  고작 술집에서 일하던 한 남성이 자신의 고향에 내려가 사람들을 모아 문화적인 페스티벌을 열면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강력한 국회의원 후보를 몰아내어 결국엔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쾌거를 거머쥔다. 물론 그 과정에 있어서는 음모도 있었고, 그를 도와주려는 야쿠자 세력의 피해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승리는 '선'하고 '약한' 자에 대한 보상 심리를 안겨주듯 후련하고 통쾌한 면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요시다 슈이치가 말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의 한 모습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을 알아보듯이 거대한 힘이나 권력은 없지만 그들이 가진 에너지와 힘을 뿜어내며 조금씩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 진심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나비의 몸짓이었을지 모르나 결국 그 결과는 거대했고 엄청났다.

 

미나토 게이지의 비서였던 소노 유코는 평생 멋진 정치가를 키워 내는 것이 꿈이었는데 준페이를 통해 그 꿈을 실현하고, 어디서나 리더십을 발휘하며 문화적,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준페이는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또한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신주쿠의 거리를 헤매던 마지마 미쓰키는 자신의 가게를 차리게 되고, 호스티스에 대한 별다른 재주가 없어보였던 도모키는 매니저로서의 삶의 도약기를 펼쳐낸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듯,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졌던 각자의 존재감이 그들의 일상 속에서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누구도 그 시작은 미미했을 것이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나중이 결정되는 것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뜨리는 사람들의 위력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람들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이 책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약자의 편에 서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선'이라는 것이 승리하고야 만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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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번역 프리랜서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형섭은 출판사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 측의 연락을 받고 한 카페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는 먼저 카페에 도착했고, 카페의 문은 닫혀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새떼가 날아드는 소리에 이끌려 그 옆 레코드 가게로 향하고, 비틀즈의 노래였음을 알게 된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있는 레코드 가게의 한 여인. 텅 빈 공간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음악. 어디선가 일어난 듯한 광경을 보고 있는 듯한 묘한 기시감. 그날은 이상하게도 모든 게 다 어떤 강한 기운이 자신을 이끄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레코드 가게를 나와 늦게 도착한 에이전시 측 사람과 장소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다가 출판사 측에서 전화가 와 술집에서 그들을 대접하고 싶다고 하고, 그렇게 이끌려 도착한 술집 '블루문'. 그곳에서부터 이미 뭔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형섭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남자다. 가끔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자신의 존재까지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갔다.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나름 자리를 잘 굳혀가고 있던 중 신상무의 딸을 소개 받아 결혼에 골인한다. 그의 딸 승미는 사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그녀를 사랑했기에 모든 걸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매일 술을 마시고, 자주 외박하며, 가정을 나몰라라 하면서도 언제나 형섭만은 그녀를 집에서 묵묵히 기다려주고, 이해해주기만을 바랐다. 그것은 결코 오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형섭조차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어쩌면 둘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닮아 있었으므로 서로를 견뎌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내 경우는 젊은 날이 공백 그 자체였다. 아무런 흥분도 없이 무기질 청년처럼 밋밋하게 이십대를 보냈던 것이다. 뒤늦게 엄습하는 이 야릇한 떨림은 그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근사한 추억의 성을 쌓고 싶은데, 그런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겠다. 추억을 만드는 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이십대처럼 어느 정도느 무모해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추억이 생기는 것이다. p.54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살아가는 형섭. 번역 프리랜서를 하며 겨우 겨우 끼니를 해결하며 별다른 일이 없이 살아가는 형섭에게 제법 큰 건의 번역일이 들어왔고, 어떤 이끌림으로 인해 레코드점에 들어갔고, 블루문이라는 술집에 들어가 준비된 아가씨와 오래도록 술을 마시며 출판사 측 사람과의 접촉을 기다렸으나 그 사람은 끝끝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난 날, 집으로 돌아오니 E라는 사람으로부터의 팩시밀리가 와 있었다.

 

 형섭에게서 잘려나간 과거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게 될 거라는. 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벌레 구멍'을 찾아내게 되면 E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라는 내용의 팩시밀리.

 

 

 그렇게 해서 나는 형섭과 함께 그의 과거 속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걸어 들어갔다. 어떤 조합이,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득 품기도 하고, 아주 조금은 두려움에 떨기도 하면서 말이다.

 

 

 잃어버린 기억, 잘라나가버린 과거. 이것에 대해 오래 생각을 해봤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형섭에게는 피하고 싶은, 들춰내기 싫은 상처였다. 덮어놓고 나면 그저 사라져버릴 줄 알았던 과거였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생각이 났다. 아오마메는 택시를 타고, 택시 속에서 들려오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듣고 있다가 어떤 지점에서 내려 구두를 신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곳은 1984년이 아닌 미래도 현재도 과거도 아닌 달이 두 개 떠 있는 다른 세계, 1Q84년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곳에서 전혀 다른 자기 자신을 만난다. 하지만 덴고와 아오마메는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기에 그들은 각기 다른 상황, 다른 장소에 있지만 그들은 같은 세계를 살아간다고 볼 수 있었다.

 

 아오마메가 1Q84로 들어가게 된 통로는 음악이 있었고, 그들을 연결하는 세계를 상징하는 것은 달이 두 개 떠있다는 것이고, 그들의 만남은 '공기 번데기'의 형태가 있었다. 그 공기번데기는 아오마메의 형태이기도 했지만 덴고가 고쳐 쓴 소설이기도 했다.

 

 형섭은 레코드점에서 들려온 새떼 소리에 이끌려 간 곳에서 들려온 비틀즈의 음악. 그것을 시작으로 과거로 들어가는 문에는 벌레 구멍이 있었고, 블루문의 주인인 E가 늦은 밤 텅 빈 방에서 함께 있던 것은 누에고치였다. 그 누에고치는 바로 잃어버린 형섭의 과거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사랑한 유진이었다. 유진과 함께 늘 붙어다녔던 희배라는 친구가 바로 E였고, 그는 산 자가 아니라 이미 죽은 자였다. 그랬다. 유진과 희배는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과거였고, 잃어버린 기억이었고, 잘려나간 자신의 일부였다.

 

 

"모든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 각기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면, 실은 모두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인 셈이잖아. 그렇다면 사람은 영원히 서로 만날 수 없는 존재란 뜻이겠지." p.219

 

"멀리인 가까이에, 혹은 가까운 멀리에. 우린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를 끌어아고 있는지도 몰라. 비록 마주 보고 있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굉장한 거리가 가로놓여 있어. 사람이란 서로에 대해 늘 그런 존재들인 거야." p.223

 

형섭이 사랑했던 유진. 아버지의 자살, 자살한 아버지의 얼굴을 본 유진. 죽은 아버지를 가장 먼저 발견한 유진. 어머니의 남자로부터의 성폭행. 그리고 희배 아버지와 유진의 아버지와의 만남과 관계. 그것을 본 희배. 그 이후로 유진을 못살게 굴던 희배. 형섭이 사랑한 유진. 죽고 싶어하는 유진.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게, 숨을 쉴 수 있게 자신의 목을 조여달라는 유진. 유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싶었던 형섭. 그 이후의 유진의 죽음. 유진과 함께 겪어냈던 모든 시간들이 형섭에겐 너무도 버거웠던 과거의 기억들.

 

 

"오늘 난 한 편의 옛날 영화를 보러 왔네. 영화가 끝나면 나는 내 공간으로 돌아갈 걸세. 현실의 세계로 말일세. 여기가 바로 내 벌레 구멍일세.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회복한 공간 말일세." p.301

 

 형섭, 희배, 유진을 연결시켜주며 다시 만나게 해준 처음과 끝은 바로 '옛날 영화' 였다. 영화와 함께 펼쳐지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는 흥미진진했고, 마음이 조금 저려왔다. 어쩌면 상처와 마주하는 우리들의 자세일지도 모르고,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빠져나오기 위한 몸무림일지도 몰랐다.

 

 나는 죽은 자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동안 나를 지배하던 어둠, 곧 죽음의 그 음습한 그림자들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냄새도 맛도 보이는 것도 만져지는 것도 없는 이 무표정한 세계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는 그가 내쉬는 긴 한숨 소리를 듣고 있었다. p.303,304

 

 

 어쨌든 형섭은 죽은 자의 곁이 아닌, 산 자의 곁에서 진짜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늘 죽음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살았고, 그 어떤 것에도 토를 달지 않고 과거를 잃은 채 살았지만 다시 한 번 살아낸 과거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은 것이다. 온 생애에를 거쳐 다시 만난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상처를 직면하기 두려워 마주할 수 없었던 자기자신을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처럼 그렇게 그는 레코드 가게에서 만난 선주와 함께 일상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살아볼 작정인 듯 하다.

 

 다 읽고 나니, 이상하게도 누군가 내 가슴을 할퀴고 피를 낸 것처럼 아니 그 시간들을 이제 막 다 거쳐온 것처럼 숨가쁘고 처절해졌다. 그러면서 모든 게 희미해졌다. 아주 오래된 영화를 아주 오래 전 겪은 내 과거를 떠올리듯 보고나서 자막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그것이 현실이 아닌 영화라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내내 어둠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영화관을 빠져나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멍한 시선처럼.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차가운 바람을 쐬며 현실의 시간 속으로, 내가 만들어낸 세계 속으로 용기있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간에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아무리 무덤 속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나 기쁨 혹은 슬픔이나 괴로움처럼 어쩌다 끊어지고 이어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 완전히 동일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의 나와 완전히 동일한 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차별없이 적용되고 똑같은 속도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순간순간을 깊이 사색하며 살아가는 거다. 시간은 모든 것에 평등하다. 나는 오늘 이 절대적 평등을 믿기로 한다. 이제부터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련다. 살아가며 느끼게 마련인 견딜 수 없는 고통, 용서되지 않는 시간, 이 추운 겨울의 막막함, 혼자라는 두려움 혹은 서툰 사랑 하나하나까지도 뜨겁게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가야지. 살아야겠다. p.3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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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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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첫 장에 쓰여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대화가 강인하게 나를 이끌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믿는 지옥에 대한 이야기의 대한 모든 압축이 그 대화에 응집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피스토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도다.

우리가 영원히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곳.

지옥은 경계도 없고 정해진 자리도 없으니

우리 자신이라는 장소, 우리가 있는 곳이 지옥이라."  

 

사건의 시작은 대구의 한 호텔에서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의문의 살인사건. 그것을 맡은 담당 수사관 김호는 사건 현장에서 여러가지 조작의 흔적을 찾기에 착수한다. 그 흔적을 찾느 과정에서 보통 사람보다 열 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범국가적인 조직 공생당이 그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강화인간들에 대한 연쇄 테러에서 심각한 위험을 감지한 안준경은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죽은 이유진이 만들어낸 최면 세계 인페르노 나인(지옥 9층)으로 내려간다. 인페르노 나인의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반란군의 혁명을 이끌게 되고…. 그러나 이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인페르노를 파괴하지 않고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옥의 설계도'가 필요하다. 

 

김호는 이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아끼는 딸이 유괴되는 괴로움을 당하고, 그 사이에 코마상태의 강화인간들이 늘어간다. 현실에서 코마상태란 뜻은 최면상태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지옥설계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배치나 모형이 들어 있는 설계도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이다. 김호는 이유진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의 배후에 있는 자오얼의 행방과 지옥설계도를 자신의 딸의 목숨과 맞바꿔야 하므로 죽을 힘을 다해 진실을 파헤친다.

 

점차 이야기가 이어짐으로 인해 현실과 무의식의 세계 즉 최면 상태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최면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람들의 무의식에서 설계되어진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그곳에서 실체하는 인간들조차도 현실 세계에서 조금씩 모습을 바꾼 사람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몇 천년동안 이어온 그 최면 세계의 사람들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갖은 수난을 겪으면서 당연히 그 속의 현실이 사실은 가상이라는 것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다.

 

준경은 최면상태의 가상 현실에서 지도자로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왔다. 단지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곳에 최면상태라는 사실을 아는 강화인간들 중 몇몇은 더이상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인가.

그건 마치 무엇이 좋은 세상이고, 나쁜 세상인가를 묻는 것과 내게는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가상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같은 단어를 보고도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같은 날씨에도 다른 기분에 휩싸인다. 그들만이 이제까지 구축해 놓은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열망. 그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 하더라도,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그 과정속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폭력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는 것일까.

 

폭력을 없애기 위해 폭력을 가해 그 폭력집단을 사라지게 하는 일. 그것이 과연 정당하고 가치있는 일일까에 대한 의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또한 똑똑하고 지능있는 사람을 원하는 이 경쟁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강력하게 묻는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능이 수십배로 발달해서 이 세계를 장악하고, 자본시장을 이끌어가고, 폭발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예술적인 가치를 상승시키지만 그곳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따스한 감성이 결여되어 있는 곳이라면 과연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성공을 위해 어디론가 달려간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을 깔아 뭉개고 1등을 향하여, 좋은 성적,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향하여 끊임없이 달리는 기치와도 같다. 감정은 배제한 채 일단은 성공하고 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원하는 대로 된 후에 찾아오는 그 공허함은, 그 부질없는 느낌은, 그 쓸모없어진 비참함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작가 이인화는 아마 우리에게 사랑을 배반하고, 인간과 감정을 무시한 대가로 찾아온 감정성의 결여, 구멍이 슝슝 뚫린 듯한 공허함이 만발한 세계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인간의 갈등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은 지옥 설계도에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지옥에서 살고 있는가, 천국에서 살고 있는가. 나는 코너로 몰리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아주 오랜 시간 음미해봐야 할 문제일 듯 싶다. 내가 살고 있는, 나만의 세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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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소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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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9세기의 격동의 시대를 담아낸 이 작품이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리고 시작된 나의 책 읽기. 19세기 민중들의 삶속으로 마치 내가 겪은 듯 쑤욱 빠져들었다. 옹기종기 모여 그들과 함께 고전 이야기에 흠뻑 빠지기도 했고,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불러 보기도 했으며 거나하게 술을 걸친 것처럼 취기가 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그 취기는 흥에 겨운 즐거움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고약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울분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딱딱한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한줄의 차가운 사실이 아니라 뜨끈하고 진하게 다가오는 민중의 삶을 읽어내려가며 내내 출렁이는 마음을 지켜 보아야했다.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의 서녀로 태어난 연옥과 서얼의 서자로 태어나 몰락한 지식인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신통과의 인연. 짧고도 기이한 한 순간의 만남으로 연옥은 이신통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곧 결혼을 앞둔 연옥은 마음에 다른 사람을 품은 채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가 3년 만에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때부터 이신통에 대한 연정은 깊어진다. 그러다 이신통의 소식을 여기저기서 듣게 되고, 결국 그들은 재회하게 된다. 바로 살림을 차리고 서로에게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둘은 꿈같은 6개월이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신통은 삶에 대한 사명이 있었고, 그 단단한 신조를 가지고 신통은 꼭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팔찌를 연옥에게 주고 떠난다. 신통이 없는 동안 아이를 배고 그 아이를 잃게 되는 고통을 겪는 연옥. 결국 그녀는 신통을 직접 찾아나서면서 그의 삶과 사랑과 그가 품은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사실 나는 '역사'에 대한 중요성은 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부족했다. 그래서 예전 삶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기가 일쑤여서 드라마도 사극은 썩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본 '마의'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양반과 평민의 서열구조에 대해,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똑같은 생명을 구하는 일일 뿐인데, 동물을 고치던 손이라고 멸시하고 무시한다. 또한 같은 사람인데도 지위나 위치에 따라서 개만도 못한 시선과 질타를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약자들은 좋은 시대가 올까, 대한 희망을 품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고 포기를 하기도 한다. 좋은 일을 하고 싶을 뿐이고,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일 뿐인데.... 이러한 혼잣말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생각없는 사람이라도 현시대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여울물 소리'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그저 먹고 사는 게 힘이 들었을 뿐이다. 제대로 한 번 살고 싶어 그 바람으로 '사람이 하늘이다' 라는 천지도의 생각에 강하게 공감하며 진짜 멋진 사회를 꿈꾸는 것 뿐인데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자신의 권력이나 지위를 조금이라도 흔들리게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잔인하게 목을 쳐 죽이고, 옥살이를 시키고 가족들을 몰살시키며 재산을 몰수한다. 지금 이 시대는 과연 권력으로부터 안전한가? 나는 아니, 라고 대답하고 싶다. 여전히 굶어죽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혹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군림하기 위해 작전을 꾀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위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진짜 목소리를 내는 문학의 설 자리를 목조여 가고 있는 것들이 눈에 보인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정규직은 커녕 계약직도 점점 더 구하기 힘들어지고 대학 등록금은 점차 비싸지고..... 이러한 상황들을 그래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더 좋은 사회를 살기 위해 자신의 생을 걸었던 이신통이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이야기의 힘인 것처럼. 그는 서민들을 위해 우리의 고전들을 열심히 신명나게 읽어주었다. 가슴치며 힘들었던 날에도 그렇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 누구나 웃음 짓게 되는 것 같다. 이야기 속에는 화가 나는 일도 있고, 분통 터지는 일도 있고, 즐거운 일도 모두 들어있다. 그 모든 감정들을 함께 공유하면서 함께 가슴을 쥐어 뜯고, 함께 욕하고, 함께 시원하게 털어내는 것이다.
 
 
 이신통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까지 지켜보면서 그의 생이 나는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 고 그를 죽도록 그리워하는 연옥과 같은 마음이 되어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향해 달려가던 그의 시선을 향하는 곳을 함께 바라보려고 노력해본다. 나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견뎌냈을까, 나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나라면, 나라면. 너라면, 너라면. 이것이 바로 이야기가 주는 선물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기꺼이 되어 보는 일. 그를 이해하려고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숨가쁘게 달려가는 일.
 
 모든 것을 누리고 어떤 것이든 가질 수 있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이신통의 삶을 바라보며 정말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매일 펼쳐지는 일들을 생각없이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해, 내 주변에 대해,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더 풍요롭게 사는 일이 아닐까. 나는 썩 가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다. 그 어느 중간지점 쯤에 있을 것이다. 썩 정의롭지도 않고 그렇다도 야비하지도 않다. 그 틈새에서 문학의 힘을 빌려 닫혀있던 내 이해의 문을 활짝 열어 크나큰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나날들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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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킹의 후예 - 제1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영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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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상은 반복된다. 즐거웠던 일들도, 슬펐던 일들도 무력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저그런 흑백사진처럼 멀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모든 게 끝나버리면 더이상 슬퍼할 이유도, 아파할 시간도 사라져 버린다. 습관적으로 멍해지던 때가 있었다. 내가 속한 세계에서 물러나고 싶었다. 그렇게 살면 나는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내 속에 고인 눈물을 모른 척 할 수 있었다. 일부러 들리는 말들을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래요?" 하고 모르는 척 넘겨 버리기 일쑤였다. 모르는 척, 안 들리는 척, 못 알아듣는 척. 그런 척.척.척들은 나를 아주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내 주위를 단단한 유리벽을 쳐놓았던 세계를 깨게 된 건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내 존재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만 같은 위협을 느끼게 됐던 거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고, 자신들이 지닌 날카로운 것들로 지독하게 들쑤셔 나를 상처입혔다. 그건 오랫동안 묵혀뒀던 내 상처이기도 했고, 그들의 상처이기도 했다.

 

이영호.

그를 통해 잊고 있던 내 상처를 만났다.

 

생명보험회사 심사팀에 근무하는 서른 둘의 영호는 암판정을 받은 마흔 살의 채연을 만난다. 이유랄 것도 없이 이끌림에 의해 그녀를 보기 위해 자주 병원에 다니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둘은 결혼하기로 한다. 채연에겐 열세 살의 아들이 있다. 아들 샘을 데려오기 위해 채연은 결혼을 선택하고, 영호는 동의한다. 모든 것들이 순조롭고 순탄해보였다. 하지만 문제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영호에게만 말문을 닫아버린 샘. 암치료로 정신없는 채연.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이의 팔을 부러뜨려버리는 윤필. 그것을 그냥 못 보고 지나치는 안.

 

영호에겐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툭툭 불거져 나오자 방황하고 헤맨다. 해결해야 할 방법은 찾아지지 않던 어느 날, 샘의 유일한 취미가 텔레비전 시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채널검색을 해보았다. '변신왕 체인지킹'이라는 특촬물만을 연속해서 보는 샘.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영호와 샘은 여전히 침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변신왕 체인지킹을 매개로 샘과 가까워지고 싶은 시도를 하던 중 만나게 된 라이더레인저라는 닉넴을 쓰는 민. 민은 몇 년째 바깥에 나오지 않고 칩거중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민과 끊어질 듯 말듯한 대화들이 이어지고 그 속에서 영호는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자살한 안의 아들과 닮았다는 영호. 안은 아버지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걸 잠자코 바라볼 순 없었다. 안은 윤필의 가정사를 자극하고, 그에 화가 치민 윤필은 가위로 안의 어깨를 찌른다. 그 사건은 영호를 변하게 한다. 

 

 

아버지가 없는 세대의 마지막 생존자. 체인지킹의 후예가 될 것인가. 

그 대를 끊어버리고 진정한 아버지가 될 것인가.

 

모든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영호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결심과 용기가 영호의 아픔을 덜해주는 것도, 두려움을 가시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제야 이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아이는, 그러니까, 겁을 먹고 있었던 거다. 나처럼,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고, 변한 환경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 제대로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겁을 먹어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387

 

얼마 전, 고민을 얘기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말문을 닫아버린 아버지와 아들이 나왔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아이의 실수를 그냥 넘겨 버리지 못하고 화가 난 나머지 때렸는데 심각하게 다쳐서 그날 이후로 십 년이 다 되어 가도록 서로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군대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고, 그 관계의 골이 깊어져 아들은 이대로 사는 것이- 서로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 이제는 편해졌고 곧 군대도 가기 때문에 더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화라는 것이 그랬다. 한 번 말문을 닫아버리면 그 다음은 더 힘들어진다. 시간이 흘러 버리면 그것에 익숙해져 버리고 더이상은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그냥 흐르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마음은 모른 채 각자의 마음 속에 상처들만 더 곪아터지게 된다.

 

 

작가는 아버지가 없는 세대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실제로 아버지가 없는 세대들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어도 대화와 소통이 부재된, 윽박지름만이 난무한 상처입은 세대들에게 어떻게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다."

민을 가리키며 나는 말을 이었다.

"나는 절대로 체인지킹의 후예 같은 건 되지 않을 거다. 그 아이도, 샘도 마찬가지야. 나는 결코 그애를 아버지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거다. 내가."

함부로 올리지 못했던 말이 목구멍에서 끓었다. 나는 입을 열고,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될 거다."

말했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하지만 가슴은 더할나위없이 후련했다. -338

 

 

샘의 아버지가 될 거라고 선택한 영호의 외침. 이것이 바로 그 질문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샘과 마주하고 밥을 먹으며 자신의 진심을 얘기하는 장면을 보고 나는 울컥 울고 말았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소박하게 함께 밥 먹으며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 서로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그로인해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

 

우리에게는 언제나 기댈 언덕, 아버지가 필요하다. 그 아버지가 어떤 존재이든 상관없이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 말문을 닫아버린다해도. 그건 사랑의 다른 형태일 뿐.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어주기를, 단단히 만들어놓았던 유리벽을 녹여 내 속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대화와 소통을 잘 하지 못하는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좋은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내 속에 깊숙히 박아두었던 상처들을 꺼내어보고 실컷 울기도 했다.

 

 

아, 나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변신!" 하고 외치고 싶다.

 

"변신!"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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