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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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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강지영



  표지를 보면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소파를 기준으로 상하 대칭으로 서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날씬한 허리라든지 곧게 뻗은 다리, 뽀얀 피부로 추측컨대 미모의 여인일 것 같다.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은 듯.


  두 대학생이 있다. 외모도, 학벌도, 집안도, 성격도 비슷한 부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단시 여성이라는 성별만 같을 뿐이다.


  박이경은 병든 아빠와 간병인으로 일하는 어머니와 살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지금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사건 현장을 처리하는 특수 청소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구역질이 나는 사건사고 현장이지만, 이를 악물고 살아가고 있다. 책에 나온 묘사를 보면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별로 존재감이 없는 학생이다.


  단아름다운. 이름처럼 늘씬하고 예쁘장한 외모로 연예기획사에서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엄마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비밀리에 일탈을 꿈꾸고 있다.


  전혀 접점이 없는 두 여성이 꿈을 공유한다. 그러니까 이경은 다운이 되고, 다운은 이경이 되어 서로의 생활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시차는 약 5개월 정도.


  단순한 꿈이라고 생각했던 이경은 점차 다운이 겪었던 일들이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나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한다. 다운이 꿈을 꾸고 적은 일기를 바탕으로, 이경은 과연 누가 다운을 죽였는지 밝히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어느 순간부터 다운이 그녀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과연 다운은 이경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처음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 다운이 이경의 꿈을 통해 미래를 보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신을 죽인 자를 찾아서 복수를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


  하지만 그건 섣부른 지레짐작이었다. 작가는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경의 친구이자 신 내림을 받은 유나가 등장하면서 얘기는 뒤틀렸다. 이경과 사주를 바꾼 아이가 누군지 궁금하게 만들면서, 운명을 바꿀 방법이 있다는 암시를 내비쳤다. 그것이 소설 후반부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읽는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참 잔인했다.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잔인했고, 등장인물도 다 비정했다. 친구, 애인, 심지어 가족까지 그곳에는 없었다. 오직 자기 자신의 욕망만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모두가 다 내 욕구와 자존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딸도, 엄마도, 남편도, 친구도, 애인도. 모두가 다 나를 위한 수단이었다. 처음에는 친절하지만, 나에게 쓸모가 없으면 거침없이 이를 드러낸다.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가족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납치나 협박 내지 괴담 유포는 기본이다.


  이를 드러낸 인간은 무서웠다. 그것이 그 사람의 본성인지 아니면 자기 방어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사람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것이 주위 사람을 함정에 밀어 넣는 일이라도 말이다.


  다디달게 자고 일어난 하품은 맛있다. 하지만 거기서 깨어나면 비정한 사람들로 둘러싸인 현실에서 살아야한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은 나 자신도 그런 인간이 되길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군더더기를 붙이자면 이 책을 ‘타임 슬립 Time slip’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타임 슬립은 과거, 현재 또는 미래를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소설은 꿈에서 상대방의 일상을 공유할 뿐이다. 이런 경우도 타임 슬립에 해당하는 걸까?


  그리고 다운이 갖고 있던 휴대폰 동영상에는 자기 자신이 찍혀있다. 누가 찍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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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키의 저주
돈 만치니 감독, 피오나 듀리프 출연, 브래드 듀리프 목소리 / 유니버설픽쳐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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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urse of Chucky, 2013

  감독 - 돈 맨시니

  출연 - 브래드 듀리프, A 마르티네즈, 다니엘 비서티, 피오나 두리프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놈이 돌아왔다. 무려 9년 만에! 영화는 예술가인 엄마와 하반신을 못 쓰는 딸 니카가 사는 큰 저택에 택배가 오는 걸로 시작한다. 배송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처키. 그리고 딸이 자는 사이에 처키는 엄마를 처참하게 죽여 버린다. 장례식이 끝나고, 니카가 혼자 있는 것을 염려해 언니네 가족이 찾아온다. 언니, 남편, 조카 그리고 베이비시터. 거기다 교구 신부님까지.


  9년 동안 연기력이 많이 늘은 처키는 어린 조카인 앨리스를 꼬여서 사람들을 하나둘씩 죽여 간다. 그 와중에 처키의 마수에서 겨우 벗어난 니카가 인형이 살인범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과연 그녀는 하반신 마비라는 핸디캡을 딛고 처키와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영화 중반까지는 의문투성이였다. 왜 하필 처키는 이 집으로 배달이 된 걸까? 무슨 이유로? 이제 앤디는 잊고 새로운 시작을 한 걸까?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처키의 과거가 밝혀진다. 그러니까 인형 몸속에 들어오기 전의 인간이었던 찰스 리 레이와 니카 엄마와의 관계를 말한다. 아주 저질이었다, 찰스 리 레이는.


  과거가 밝혀지면서 왜 처키가 니카네 가족을 몰살시키려는지 알 수 있다. 앤디도 앤디지만, 이 집안 여자들도 그에게는 원수일 것이다. 물론 앤디나 니카네 가족 입장에선 처키가 천하의 나쁜 놈이다. 내가 보기에도 처키는 죽일 놈이고.


  지난 9년 동안 엄청난 수련을 했는지 처키는 특수 분장도 할 줄 알고, 전기과 물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했고, 더 잔인해졌다. 힘도 세져 주변 도구를 잘 활용할 줄 알았다. 심지어 나도 못하는 자동차 운전까지! 와, 대단하다.


  언제나 이 시리즈를 보면 느끼지만, 왜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키의 반도 안 되는 인형이 뭐가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편의 처키라면 충분히 두려워할 것 같다. 독약도 다루고, 운전도 하고, 특수 분장까지 하고 다니고, 연기도 대단하고, 욕도 잘하고, 힘도 무식하게 세고.


  저녁 식사 시간에 벌어지는 러시안 룰렛 같은 분위기는 진짜 아슬아슬했다. 니카와 앨리스가 식탁을 차리는 동안, 처키가 스파게티 그릇에 몰래 쥐약을 넣었다. 무작위로 넣었기에, 그것을 누가 먹는가가 관건이었다.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을 보이는 사람이 나오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진행 상황을 보았다.


  조마조마하게 만들긴 하는데, 너무 길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무나 그냥 죽으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감독이 밀당의 묘미를 모르는 것 같았다. 너무 짧으면 아쉽고 너무 길면 지루하다. 식사 장면은 너무 길었다.


  적절한 길이로 좋은 효과를 준 것은, 2층으로 올라가는 실내 엘리베이터 안의 장면일 것이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중간에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처키는 칼을 숨기고 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각자 일로 바빴다. 무슨 일이 생길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게 했다.


  다리를 못 쓰는 니카가 안간힘을 쓰면서 계단으로 올라가는 장면도 아슬아슬했다. 언니가 위험에 빠졌다는 걸 알고 도우러 갔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보면서 ‘이 멍충아, 그게 아니야!’라고 외치기도 했고, ‘와, 비열하다!’ 내지는 ‘올, 쇼킹!’하는 감탄사가 몇 번 나왔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은 음……. 배우들의 연기는 음……. 처키가 전편보다 많이 깨끗해졌다.


  참, 이 작품은 크레딧이 다 올라간 다음에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과연 또 나올지 궁금하다. 별로 기대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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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네 미술관 - 아름다운 우리 그림 우리 문화 상상의집 지식마당 6
강효미 글, 강화경 그림 / 상상의집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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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아름다운 우리 그림 우리 문화

  작가 - 강효미

  그림 - 강화경




  '와아-' 표지를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한옥지붕위로 꽃이 가득 피어난 나뭇가지가 뻗어있고, 나무로 된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 너머로 고양이와 나비 한 마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지붕 위에서는 역시 고양이와 나비가 창 너머의 광경을 보고 있다. 약간 두꺼운 느낌의 표지를 넘기면 아까 창 너머로 보였던 고양이와 나비 그림이 액자에 넣어져있다.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기 고양이가 우연히 만난 나비를 따라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어 나비가 사라지자 그리워하다가, 다시 봄이 되면서 새로운 나비 친구를 만나는 내용이다.


  두 친구가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여러 민속 행사 구경을 하는데, 그 장면들이 우리 조상님이 그린 그림과 맞아떨어진다.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옛 선조들이 그린 그림에 고양이를 한 마리 넣었다. 그리고 고양이 입장에서,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대사를 넣고 상황을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장면과 장면에 딱히 연결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중간에 딱딱 끊기는 것이,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무리하게 연결시켰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이 너무 어색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고양이와 나비의 귀여운 움직임이나 색감 등이 그런 점을 다 상쇄시킬 정도로 귀여웠다. 책에서 소개할 옛 그림들과 비슷하게 그렸는데, 화려하면서도 너무 요란스럽지도 않고 튀지 않았다.




  고양이 이야기가 끝이 나면, 앞에 나왔던 옛 화가들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나온다. 앞에서 나온 그림 말고 화가의 다른 그림까지 곁들여서, 그의 고유한 화풍이라든지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안견, 사임당, 변상벽, 신윤복, 김홍도 그리고 김득신까지. 대개 조선 시대의 분들이다. 음, 이 부분은 글씨가 좀 많았다. 엄마들이 미리 읽어보고 아이들에게 얘기를 해주는 형식으로 넘겨도 좋을 것 같다.


  요새 아이들 책을 보면 샘이 난다.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예쁘고 다양한 책들이 많은지. 다시 어린애가 되고 싶을 정도이다. 그러면 조카 책꽂이가 아닌, 내 책꽂이에 꽂아두고 읽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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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맨 인 블랙
베리 소넨필드 감독, 린다 피오렌티노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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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en in Black, 1997

  감독 - 배리 소넨필드

  출연 - 토미 리 존스, 윌 스미스, 린다 피오렌티노, 빈센트 도노프리오




  예전에 친구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 벌써 16년 전인가? 노래방도 싫어하고 액션물도 안 좋아하는 친구였지만, 내가 억지로 끌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마 이 영화를 본 다음에 친구 취향의 멜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또 반쯤 바뀔락 말락 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재미있었다. 적절하게 진지하고, 적절하게 재미있으며, CG 장면도 촌스럽지 않았다. 합성 티가 나는 장면이 몇 개 있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도 이 영화의 몇몇 장면은 패러디되어 돌고 도는데,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재미있고 잘 만들었다. 특히 기억을 조작하는 도구는 참 잘 만든 설정이다.


  게다가 그동안 내가 미국 드라마 내공이 쌓였는지, 그 때는 몰랐던 출연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헐, 이 배우가 여기에 나왔단 말이야?’하며 놀랐다.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이 몸속에 들어간 남자 에드거는 바로 ‘Law & Order C.I’의 형사로 나왔던 배우였다. 그 시리즈, 끝나서 참 아쉬웠는데. 거기다 ‘탐정 몽크 Monk’로 유명한 배우까지! 분장을 너무 잘 해서 출연진 명단을 보지 않았다면 못 알아봤을 것이다.


  줄거리야 워낙에 유명하지만 간략하게 적어보면, 일반인들은 모르지만 외계인과 지구의 교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어떤 외계인은 지구로 이주해와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외계인은 관광을 오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어느 행성의 유력 인사가 지구에서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자 그 별에서는 지구에게 책임을 물으며 사건을 해결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경고를 한다. 외계인 대책 기관인 MIB 요원들은 과연 시간 내에 암살범을 찾아내 지구를 멸망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중간중간에 재미있는 요소를 가득 담고 있다. 우선 정체를 숨기고 지구에 사는 외계인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고, 다양한 종류의 외계인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앨비스 프레슬리나 데니스 로드맨이 외계인이라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사람들,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다른 별에서 온 사람 같았다니까. 어쩌면 한국에도 외계인이 있을 것 같다. 가끔 보면 딴 세상에서 온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보이니까.


  또한 MIB 신입 요원인 윌 스미스가 겪는 다양한 사건사고를 보는 것도 즐겁다. 외계인 아가의 출산을 돕는 장면은 여러 번 봐도 우스웠다. 덜렁대지만 실력 있는 신입 윌 스미스와 차분하고 경험 많은 선배 토미 리 존스가 보여주는 조합도 꽤 재미있고 말이다.


  그런데 그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자신을 알건 모르건,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진 채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자신이 관리하는 외계인이나 같은 조직 내의 사람만 기억하고, 그 외 가족 친지 연인들에게서는 잊힌 사람이라는 건, 어떤 삶일까?


  어렸을 때는 MIB 요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척이나 폼 나고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다른 생각이 든다. 잊힌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한 삶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 토미 리 존스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그가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물론 그래도 아직은 MIB 요원으로 외계인을 만나며 사는 게 더 부럽긴 하지만. 보고 싶다, 외계인.


  외계인 얘기를 하니 갑자기 X 파일이 보고 싶어진다. 아, 멀더의 귀여운 그 미소. 아, 스컬리의 ‘멀더 어디 있어요?’하는 목소리. 그리고 스키너 부국장의 빛나는 대머리까지! 이것이 바로 기승전X파일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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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파커 파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8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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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arker Pyne Investigates, 1934

  작가 - 아가사 크리스티



  단편집이다. 파커 파인이라는, 35년간 관청에서 통계수집에 몸 바쳤다가 은퇴한, 덩치가 있고 머리가 약간 벗겨졌지만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탐정이 등장한다. 전직을 살려서, 사람들에게 대가를 받고 모험을 제공한다. 문제가 있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삶이 지루하다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중년 부인]편에서는 다른 어린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편 때문에 속상한 여인이 파커 파인을 찾아온다. 그는 살림에 찌든 후줄근한 여인을 세련되고 매력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옆에 잘 나가는 제비족 하나는 붙여주어, 남편에게 질투심을 유발시키는 방법을 쓴다.


  [불만에 찬 군인]에서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삶이 무료한 군인이 그를 찾아온다. 파커 파인은 그에게 스릴 넘치는 사건을 제공한다. 납치와 보물찾기 그리고 숨겨진 유산이라는 사건들의 멋진 조합이었다. 거기다 더불어서 비슷한 문제를 갖고 찾아왔던 여인까지. 으음, 파커 파인도 포와로와 비슷하게 투 잡을 뛰고 있나보다. 아니면 취미 생활일지도.


  그는 미친 인맥을 총동원해서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사건사고를 만들어준다. 왜 미친 인맥이냐면, 그의 팀에는 추리소설가인 올리버 부인도 있고, 포와로의 비서로 나왔던 레몬 양까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가 사건을 풀어가는 방법을 보면서, 문득 미스 마플을 떠올렸다. 통계를 전문으로 다뤘던 그는 사람들의 불만이나 고민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건을 접수하면, 과거에 비슷한 사례들을 떠올리며 해결책을 꺼낸다. 스케쥴 A라든지 B라든지 하는 계획들이 이미 그의 서류함에 가득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참 재미있는 노릇이야.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경우가 유일하리라고 생각하거든.’-p.13


  미스 마플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추리를 한다. 어떤 사람을 보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비슷한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그녀 역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이란 바뀌지 않아.’


  그렇다고 파커 파인이 꼭 미스 마플의 남자 버전이라고 볼 수는 없다. 비슷하면서 어딘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작가가 써서 그럴까? 포와로 약간, 미스 마플 좀 많이, 토미와 터펜스 커플 살짝. 이런 느낌이다.


  총 12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앞의 6편은 탐정 사무실로 찾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반면에 뒤의 6편은 파커 파인이 중동 지방을 여행하면서 맞닥뜨린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 고고학자인 남편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새로운 탐정의 등장이어서 반가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마음의 포와로에는 미치지 못한 느낌이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역시 포와로는 진리다.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에 파커 파인 같은 탐정이 있다면 찾아가보고 싶기는 하다. 어쩐지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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