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화학 -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과 14가지 독약 이야기
캐스린 하쿠프 지음, 이은영 옮김 / 생각의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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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과 14가지 독약 이야기

   원제 - A Is for Arsenic, 2015

   저자 - 캐서린 하쿠프






  종종 말했지만, 서양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이, 그리고 동양에서는 ‘삼국지’가 후대의 작가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거기에 한 작가가 추가되었으니,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이다. 그녀가 내놓은 작품과 캐릭터가, 그녀의 사후에도 꾸준히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연극 그리고 만화에서 재창조되거나 재해석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화학이라는 학문의 시선에서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포와로’나 ‘미스 마플’ 같은 캐릭터나 작품 내용이 아닌, 특이하게도 작품에서 범인이 희생자들을 죽일 때 사용한 ‘독약’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은 ‘애거스 크리스티의 독약 조제실’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저자는 크리스티가 이렇게 독약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1차 대전 때 간호사로 근무하고 조제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 총 14종류나 되는 독약을 보여준다. 저자는 알파벳 순서대로, 우선 독약이 사용된 책의 도입부를 설명한다. 뒤이어 그 독약이 발견되거나 만들어진 과정, 화학식, 용법, 효과와 효능, 부작용, 그리고 실제 독약을 사용해 벌어진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 중에는 책을 따라했다가 실패한 범죄자도 있고, 크리스티가 소설을 쓸 때 참조한 사건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독약이 소설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려주면서 챕터가 끝난다.



  여기서 다루는 약물은 비소, 벨라도나, 청산가리, 디기탈리스, 에세린, 독미나리, 바꽃, 니코틴, 아편, 인, 리신, 스트리크닌, 탈륨 그리고 베로날이다. 크리스티의 소설을 봤다면, 무척이나 익숙한 독약들이다.



  비소와 스트리크닌, 청산가리는 너무 유명해서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그런데 독미나리?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서, 책을 뒤져봤다. 그 독약이 나왔다는 ‘회상 속의 살인 Murder in Retrospect, 1943’을 찾아보니, 거기서는 ‘코닌’이라는 독이 사용되었다고 나온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책은, 당연하겠지만, 소설 내용이나 인물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고 오직 독약에 대한 것으로 가득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아니 고등학교 1학년 이후 오랜만에 분자 화학식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거기다 독약에서 파생된 화합물이나 혼합물에 대한 이야기까지 곁들여 있어서, 읽다보니 어쩐지 내가 똑똑해지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다룬 독약의 대부분은 적정량을 쓰면 치료약이 되고, 과도하게 쓰면 사람을 죽이는 물질이 된다. ‘두 얼굴의 아수라 백작’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한 가지 약이 치료약과 독약 양쪽으로 사용된다는 게 참 신기했다. 뭐든지 적당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나쁜 것은 독약이 아니라, 그걸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니코틴이 알츠하이머나 조현병 치료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담배를 피우는 건 좋지 않지만, 그걸 의학적으로 사용하면 괜찮다는 뜻인가 보다.



  탈륨을 사용한 소설 ‘창백한 말 The Pale Horse, 1961’을 출판하고, 크리스티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책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약을 사용해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마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음, 무슨 사건만 생기면 게임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래도 크리스티는 나중에 탈륨을 이용한 사건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업적을 평가받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그나저나 덕후의 세계는 넓고 심오하기만 하다. 이 책의 저자도 크리스티 덕후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떤 독약이 어떤 책에서 몇 명이나 죽였는지 파악할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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