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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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이경자

 

 

 


  여덟 개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다.

 

  읽으면서 참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우리가 겪었던 과거와 뗄 수 없었고, 삼신 할매의 변덕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 가족의 얘기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답답하고 공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콩쥐 마리아』는 남자 형제들을 위해 희생했던 여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며 형제들의 학비를 대다가 기지촌에서 만난 미군과 결혼한 한 여인. 그녀를 통해 미국으로 이주한 형제들과 그 자식들은 성공해서 잘 살고 있지만, 정작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건너편 섬』 역시 혼자 사는 노인이 주인공이다. 파출부 일을 하면서 홀로 키운 아들. 하지만 성장한 아들은 돈을 보내오지만 얼굴은 내밀지 않는다. 전화도 제대로 받지 않는다.

 

  한인촌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던 마리아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그렇게 살아온 것이 죄일까? 그녀의 도움으로 떵떵거리게 살게 되었으면서, 정작 그녀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가족의 행동에 화가 났다. 『건너편 섬』의 그녀 역시 비슷한 처지이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아들을 키운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그따위로 할머니를 대하니 손자들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은 어쩌면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미움 뒤에 숨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 되어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살아생전에는 폭력을 휘두르고 권위주의적이었던 아버지였지만,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가족들이 느끼는 감회는 다른 것이었다.

 

  『언니를 놓치다』는 이산가족 상봉으로 만난 두 자매에 관한 이야기이다. 금방 돌아오겠다는 언니의 말만 믿고 살아온 동생. 하지만 몇 십 년 만에 만난 북의 언니는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그 언니가 아니었다.

 

  『박제된 슬픔』은 남파간첩으로 돌아온 외삼촌과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식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물보다 진하다는 피 때문에 외면할 수 없었던, 그 때문에 고초를 겪어야 했던 조카와 간첩을 아들로 둔 노모의 슬픔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이 두 단편은 분단과 이념의 대립이라는 상황에서 한 개인, 더 나아가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북에서 온 언니는 동생을 만난 반가움이나 미안함을 말하기보다 당과 장군이 베푼 은혜를 먼저 줄줄 읊어야 했다. 당연히 동생은 그런 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토록 기다렸던 이산가족의 만남은 지나간 세월보다 더 멀어진 거리만 남긴다. 핏줄을 택해서 모든 것을 좌절당한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그 핏줄을 거부한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지 생각해본다.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는 특이하게도 화자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시골에서 영향력 있는 집안의 난봉꾼에게 강간당했지만, 엉뚱하게 무고죄를 뒤집어쓰고 자살한 여인이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녀의 남편이 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과 남편에 대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괜히 평지풍파 만들지 말라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서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단지 소설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더 화가 난다.

 

  『고독의 해자(垓字)』와 『이별은 나의 것』의 주인공은 이혼한 여류 소설가이다. 전자의 주인공은 가족들에게서 동떨어져 고립되다시피 하며 글을 썼다. 그래서 두 딸들은 그런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장례식 날, 팬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남겨진 가족들은 어쩐지 모를 배신감을 느낀다. 자기 자식은 방치하다시피 내버려두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쓰는 데 열정을 바친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후자의 주인공은 이제 갓 이혼한 여류 소설가이다. 그녀는 앞선 이야기와 달리 딸들의 이해를 얻고 있다. 이혼한 전남편의 결혼식 날,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두 가지를 가질 수 없기에, 두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어차피 인생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 그들은 자신을 위한 선택을 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콩쥐 마리아』나 『건너편 섬』, 그리고 『미움 뒤에 숨다』에서의 여인들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들이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았던 때는, 그녀들을 옭아매고 있는 짐들을 내려놓았을 때였다.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다 늙어서 말이다. 이해해주는 사람도 거의 없고, 갖고 있던 마음의 상처는 곪아서 짓물러진 뒤였다.

 

  그래서 그들은 더 외로운가보다. 남을 위해 살건 나를 위해 살건, 그들은 혼자였다. 하지만 그 외로움마저 그들은 껴안았고, 자신들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들은 섬이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있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지만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런 섬이다. 아니, 그들뿐만 아니라 인간은 모두 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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