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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기 시작하면 10년은 늙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10년을 늙는다는 표현을 돌려서 제 나름대로 해보자면 “늘어나는 욕심과 늙는 세월은 비례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미리 겁을 먹는 분들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제가 추측 하자면 성사동 세가족은 3개월 정도는 확실히 늙고, 살면서 3년은 더 젊어 질 것이니 남는 장사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칸짜리 작은 집을 지으며 건축의 세계를 탐구하듯이 글을 써내려간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에 나오는 대목을 나누면 집짓는 걱정이 웃음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이 잘 풀릴 때면 아내와 나는 찰리(시공소장)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고 심지어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다 쓰러져 가던 작은 오두막이 번듯한 집으로 탈바꿈했고, 크기며 구조도 딱 우리가 원하던 대로였다. 하지만 일이 잘 안풀릴 때면 나는 혹시 이놈이 마냥 자기만의 이상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은 죄다 파멸로 몰아넣는 ‘건축가의 탈을 쓴 아합(Ahab. 성경에 등장하는 부패한 폭군 왕)’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지난 목요일 아침에 현장에 도착한 저에게 시공 소장도 심정을 이야기 해주더군요. 

“소장님 저 정말 책 한 권 쓰고 싶습니다. 절친한 지인의 집을 짓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졸이는 일인지 몰랐습니다. 저를 믿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공사비 요청을 할 때는 눈치가 보여질 때가 있다니까요. 정말이지 망설여 질 때가 많아요. 돈도 절약 해야하고 살면서 잔소리도 듣지 않으려고해서 그런지 갈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입이 타네요.”


잘 못하는 술이지만 편안하게 한 잔 따라주며 속이야기를 나누며 지내온 세월이 있어서 그럴까요? 현장소장의 몇 마디 말속에서 들려오는 그 사람만의 진솔함이 따뜻하게 묻어나옵니다. 이럴 때는 잘 들어주고 처지와 놓인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공사도 공사지만 돈은 아끼면서 공사의 품질은 높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잘 해왔잖아요. 그 많던 주변 민원도 다독이면서 오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요. 천천히 갑시다. 날씨가 추워지니 현장 관리 조금 더 하고, 안전모 쓰는 것 잊지 말고요. 다치는 작업자 없도록 합시다.”라는 말로 건축주이자 지인들의 공사까지 하느라 마음 고생하는 허소장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늦은시간 통화를 마칠 때가 되니 바람개비의 마음이 풀린, 웃음진 목소리로  

“참! 소장님 우리 아이들이 협동조합 소장님들은 이제 안오시냐고 하네요. 정이 들었는지 보고 싶다고 언제 오냐고 해요. 조만간에 맛있는 저녁 모임 같이 하도록 해요.”


지금 바람개비와 스머프에게는 현장소장이 ‘Ahab’ 같은 폭군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실은 허소장도 바람개비와 스머프가 최선을 다하는 자기 마음도 몰라주는 ‘건축주의 탈을 쓴 Ahab’이라고 느낄것이고요. 그렇지만 조금 더 지나면 모두가 온화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것이니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묘미가 있는 것이 건축이기도 합니다.


소한(小寒)을 맞이하고도 비를 뿌리던 겨울이 드디어 쌀쌀한 추위를 데려왔습니다. 추위가 반갑기도 하지만 속도를 더 내고 싶은 현장 식구들을 생각할 때면 염려되는 마음이 반은 됩니다. 딸아이는 “아빠 이번 겨울에 눈은 안오려나봐”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아이가 갖고 싶어하던 겨울 털부츠를 선물했는데 언제 신을 지 모르겠다며 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잿빛 하늘에서는 살짝 살짝 비가 내리기도 하고 눈발이 날리기도 하네요. 두꺼운 외투를 입었다가 벗어도, 오래 사용해서 실올이 많이 풀린 스카프 덕분에 몸은 따뜻합니다.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속담은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욕심을 내는 만큼 늙는 이치가 있으니 저도 제 역할에 욕심을 내지 말아야겠습니다. 

제가 욕심을 내는 만큼 건축주와 디자이너, 시공소장도 자기 욕심에 제 욕심까지 더해서 더 늙을 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딸아이가 부츠를 신고 눈길을 다닐 수 있도록 눈발 날리고, 엄청 추운 날도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겨울이니 이것은 욕심이 아니겠지요?


작은 땅에 세가족의 집을 짓는 일은 고단한 일입니다. 주변에 민원도 작지 않고, 대지의 경계를 나누는 땅의 경계선도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지적도입니다. 이웃집의 벽이 내집 땅에 들어와 있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공사차량이 들어오고, 공사현장의 망치질 소리가 들리면 민원도 작지 않습니다. '건축가의 탈을 쓴 허소장'은 주변이웃들에게 매일 "깨끗하고 조용하게 하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라며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인사를 드리고도 부족한지 한숨과 주름이 늘었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면 아내와 나는 찰리(시공소장)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고 심지어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다 쓰러져 가던 작은 오두막이 번듯한 집으로 탈바꿈했고, 크기며 구조도 딱 우리가 원하던 대로였다. 하지만 일이 잘 안풀릴 때면 나는 혹시 이놈이 마냥 자기만의 이상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은 죄다 파멸로 몰아넣는 ‘건축가의 탈을 쓴 아합(Ahab. 성경에 등장하는 부패한 폭군 왕)’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마이클 폴란‘『주말 집짓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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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오랜 지인도 있고 매년 새롭게 만나는 각별한 인연들도 있습니다. 각별하다는 글자를 강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집을 짓기 위해 인연의 고리를 연결하는 일 만큼 우리들 삶에서 중요한 일도 흔하지 않으니 각별한 인연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소장님 늦은 시간인데 전화 괜찮으세요?”

저녁을 먹고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성사동 건축주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전화기에 뜨는 발신자 이름을 보는 순간 제 얼굴은 열가지도 넘는 반응을 보입니다.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고 반갑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풀어야 하고 그 중심에 저의 역할이 있다면 단순하지 않기도 합니다. 해결의 과제 중에는 관계, 돈, 일정, 오해, 변경, 다툼까지 다양한 성격의 일들이 섞여 있으니 과제 만큼 표정의 수도 다양해집니다.

 

몇 해 전이죠. 원주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선배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여전히 건축일을 하고 있어요. 토지 준비 하고 계획을 세우고 디자이너들과 상의 하고 건축주와 현장 식구들과 만나면서 지내고 있어요.”

“음~ ‘욕심을 조율’하는 일을 여전히 하고 있군?”

‘욕심을 조율’한다는 선배의 한마디에 탁하니 뭐가 잡히는 듯했습니다. 한번도 욕심을 조율한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이해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 ‘욕심’으로 비칠 줄은 몰랐던 것이죠. 그 이후로 제가 하는 일은 건축업 중에 욕심을 조율하는 일에 특화된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성사동 건축주와의 대화로 돌아오자면 

“집짓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졸이며 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오랜 동안 인연을 맺어온 시공소장이 집을 지어주는 일이라 돈만 준비하면 되고, 쉬울 줄 알았는데 오해만 생기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전화했어요. 생각할 것도 많고 이해할 것도 많네요. 감당할 수 있는 공사비 수준을 넘어가면 안되는데 겁이 나요. 땅을 사는데 3억을 대출 받고, 집을 짓는데 3억까지 모두 6억이라는 돈으로 집을 장만하는데, 여기서 더 대출을 받는 일은 저에게 어려운 일이에요. 그리고 현장소장은 왜 그렇게 심술을 부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현장에 오라고 해서 퇴근 하자 마자 피곤한 몸으로 갔더니 심술을 내는 거에요. 왜 자주 안오냐고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죠?”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건축주의 목소리에 한숨이 묻어나고, 돈을 마련하고 시공 소장과 합을 맞추는 과정, 집주인으로서의 심리적 어려움까지 느껴지더군요. 이쯤 되면 성사동 현장의 분위기에서 무언가를 읽어 내야 하는 저의 역할이 필요해집니다. 집 짓는 과정은 지나치게 직접적인 일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뭐라고 한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있습니다. 아무튼 제 역할은 답답한 건축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순함부터 , 상대에게 생길 수 있는 오해의 여지를 미연에 차단하는 역할까지 부여받은 셈입니다. 


“자금 부담이 크지요? 5개월 후, 입주할 때까지 몇 번 정도 어려움이 있을거에요. 먼저 현장 분위기를 전하자면 겨울 공사라 공사의 속도를 낼 수 있을 때 밀고 가야해요. 아마도 앞으로 보름 일정이 몇 달을 좌우할 거에요. 늦은 계절에 공사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날씨가 도와주고 계획보다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면서, 다음 공사를 앞당겨 준비하면, 봄 공사에 여유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요. 일정을 점검하고 애를쓰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면이 있어요. 좁은 토지에 세채의 집이 서느라 자재 정리도 만만치 않고, 비온 뒤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 공사관리도 어려움이 있어요. 심술부리는 현장 소장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 이 일정대로 가면 현장 소장도 예전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올 겁니다. 

더구나 공동육아부터 시작해서 10년 넘게 인연을 맺은 관계들이니 소장이나 건축주분들 모두가 의심할 것 없이 서로를 신뢰하고 지원하는 위치에서 집이 지어지고 있어요. 자잘한 소리로 불편하게 하더라도 추운데 수고한다고 하면서 맛있는거 사주세요. 더 한 일은 없을 것이니 염려마세요. 

공사비 걱정도 많이 되시죠. 집이 작든 크든 모든 건축주가 경험하는 과정이니 한쪽으로 치우치는 결정만 하지 않으면 비용이 크게 상승하는 일은 없을거에요. 다만 큰 돈을 쓰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씀씀이가 헤퍼지면서 몇 백만원 정도는 가볍게 보이는데 그 때만 주의 하면 됩니다. 현장 소장도 ‘바람개비(건축주의 별칭)네와 스머프네, 베짱이네 세가족의 생활에 맞는 자재를 준비하고 있어요. 세집의 층별 구성도 좋고 가족 구성원에 어울리는 설계가 되었으니 재료는 평범하게 사용해도 자기들 집만의 장소가 만들어질 겁니다.”



도시근교에서 함께 집을 짓는 일은 이웃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고 이웃으로 살아보기 전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집짓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같이 해결하고 즐거움을 같이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좁은 토지에 3집이 함께 집을 짓는 성사동 세가족은 오랜동안 저와 인연이 될 것 같습니다. 사진은 성사동 3가족이 빠른 여름에 입주할 집의 모형입니다.



계단을 올라 회색 회반죽 벽을 마주한 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실내 풍경, 왼쪽은 식땅, 오른쪽은 알코브 공간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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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2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굽는건축가 2020-01-1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그런일이 있으셨네요. 제가 괜한 글을 올렸나봐요. 댓글 고맙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바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은 뉘앙스의 책에 밑줄을 긋고 있다. ˝모름지기 말은 이렇게 구성지게 하는거야˝라고 본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에코샘 덕분에 기차안이 풍성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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