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냄새가 나서 좋아‘

<Haptic - awakening the senses, 느끼는 방법의 디자인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인간의 감각을 창조적으로 각성시키는 ‘느끼는 방법의 디자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은 세상을 느끼고 알기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는 감각의 꾸러미다.  하라켄냐의 디자인의 디자인 중에서>

#1. ‘2018년 11월 24일 아빠의 냄새‘

˝아빠 냄새가 나서 좋아˝

10년 넘게 입었던 생활한복 겨울 바지가 헤질대로 헤져서 더는 입기도 그렇고 해서, 버리지는 않고 한 곳에 놓아 두었습니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제 개인적인 성격의 탓이 크겠지요?
여간해서는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저에게 있어, 겨울 생활한복 바지도 그런 종류의 하나였습니다. 

겨울을 맞이하여
아이는 학교에서 손토시를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마땅한 재료를 찾다가는 저의 바지를 발견했습니다.

˝아빠 이바지 내가 써도 될까?˝
˝응 그래 따뜻 하고 좋아˝

아이는 아빠의 오래된 바지를 입어도 보고 
손에 넣어도 보고
하더니 

˝음~ 아빠 냄새가 나서 좋아˝
˝아빠 냄새가 있어?˝
˝응 아빠 냄새가 있어˝

그러더니 제 몸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이 냄새야˝
행복한 겨울 초입의 저녁이었습니다.

어제는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장으로 
밥을 두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아이는 네그릇 
아내도 두그릇

˝할머니 김치는 맛있어˝
가족에게도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냄새
아버지의 냄새
아이의 냄새
집의 냄새
체취라고 하나요?

아이가 좋아하는 아빠의 냄새가 나서
행복합니다. 
나도 아이의 냄새를 알 수 있어요
풋풋하고 밝은 색이라고 할까요 ~
올 겨울의 초입은 행복한 냄새로 시작합니다. 

#2. ‘2019년 11월 12일 우리 아버지의 냄새‘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아버지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어머니와 헤어지기로 하시면서
지금은 다른 지역에 살고 계십니다. 
막내만 빼고는 저와 형제들이 성인이 된 때라 두 분의 결정을 조용히 받아들였고, 그 시간이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일 년에 몇 차례 연락을 드리고 잘 계시는지 안부를 묻고 손녀딸이 보고 싶다고 하는데, 어디계시는지 알려달라고 해도
아버지는 ˝되었다. 다음에 만나자˝라고 하십니다.
거울속 제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가끔 지켜볼 뿐, 아버지의 맨얼굴을 직접 뵌지 벌써 14년이 넘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이지만
아빠의 두툼한 손
일하시며, 땀 흘리시던 아빠의 체취가 
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일 나가시는 아빠를 따라 갈 때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같이 먹고 그랬는데,
그 때 햇살아래 앉은 아빠는
참 자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은 겨울 아침입니다.

#3. ‘2019년 11월 12일 할머니 냄새‘

몇 일 전 어머니가 싸 주신 무생채를 반찬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아빠 생채 맛있다. 더 있어?˝ 
˝응 한 통 주셨어. 다 먹으면 아빠가 무생채 만들어 줄께. 할머니가 생무도 4개나 주셨거든˝
˝할머니 무반찬이 더 좋아. 아빠가 하는 반찬은 할머니 냄새가 없어˝

아내와 저는 딸의 표현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도 어머니의 반찬을 좋아합니다. 결혼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엄마의 손맛은 참 좋습니다. 

초등생 딸이 할머니의 냄새를 좋아하니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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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에 다녀올께요˝

아침 7시가 조금 안되어 오두막으로 갈 준비를 합니다. 
먼저 따뜻한 커피를 내리고, 두꺼운 컵이 식지 않도록 뜨거운 물을 담아 데워냅니다. 갈색 산미가 진한 과테말라 커피와, 따뜻해진 하얀머그컵, 노트북, 물이 담긴 티팟을 나무쟁반에 들고 뒷마당으로 향합니다.  
오두막에도 책은 몇 권 있으니 준비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비가 오고 있습니다. 이런 날은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산에서 들리는 빗소리, 산과 논 사이, 밭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베지 않은 벼와 마주치는 빗소리가 켜켜이 겹쳐 집니다. 그 소리에 저도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오두막을 찾아갑니다. 

한 손으로 쟁반을 가슴에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 손잡이를 들었습니다. 비오는 날을 대비해서 뒷문에 빨간 우산이 항상 놓여있습니다. 시내에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낡고 실밥도 드러난 우산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기능은 문제 될 것이 없어 버리지 않고, 문 한켠에 두었던 것이 요긴하게 쓰이고 있네요. 

우리집 오두막은 나무로 지어진 것이라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이에 따라서 문의 크기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어림잡아 3~5mm 정도될까요? 여름에는 나무가 습기를 먹어 벌어지면서 열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지난 여름이 그랬습니다. 비가 오고 나면 문이 뻑뻑해지면서 열고 닫는데 여간 불편한게 아닙니다. 반대로 겨울이 되면 공기가 수축하고 대기 중에 습기도 30% 미만으로 낮아지면서 문이 마른다고 할까요? 잘 열리고 잘 닫힙니다. 요즘이 그렇습니다. 대신 그 틈으로 찬기운이 그대로 들어옵니다. 나무문의 특징입니다. 

문제는 오늘 같은 날입니다. 비오는 소리를 느끼고 싶어서, 커피와 우산을 들고 문을 여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몇 번을 밀고 당기고서야 열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대패질을 한 번 더 하거나 엄지손가락 만한 나무 손잡이를, 장식 삼아서 하나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은 먹고 있지만 날이 맑으면 아마도 잊어버리겠지요. 

제가 관여하고 있는 건축일 중에는 현장에서 짜야하는 원목 나무창과 문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마다 현장 목수들은 ˝또 이러신다˝는 표정을 지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이력이 날 만도 한데, 창과 문을 나무로 만들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나 봅니다. 이유는 앞에서 오두막 문을 이야기 한 바와 같습니다. 

원목문과 창은 계절의 차이에 따라 신축과 팽창을 반복 하면서, 열고 닫는데 불편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문이 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탓을 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사정상 괜하게 목수탓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문이 휘고, 틀어지면 집주인이 불편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손을 보러 다녀오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그런 탓에 외부와 맞닿는 곳에 나무문을 써야 할 경우에는 쇠로 된 파이프로 틀을 짜서 용접을 하고 겉에는 판재로 가공된 나무나, 쪽으로 나누어진 널을 사용해서 마감을 합니다. 일전에도 작은 집 하나를 디자인하고 공사하는 중에 개방감있는 양미닫이 나무문으로 제안을 하자, 목수님은 틀어질 수도 있으니 기성제품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잠시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주장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목문이라 변형이 염려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성제품을 쓰기에는 작은집 스럽지않다는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랜 동안 함께 일하다 보니 정이 들어, 싫은 소리를 서로 못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목수님하고 정이 들어서  싫은 소리도 못하네요. 그래도 저는 목문으로 짜는데 한 표 입니다.˝ 몇 일 후 작은 집에 가보니 알뜰하게 나무문을 짜서 걸어 놓은 모습을 보고 괜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틀어지면 손을 보면 되지 뭘˝하는 목수의 표정을 보며 여전히 손맛을 좋아하는 목수들과 저를 보게 됩니다. 

지난 봄에 오두막문은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습기가 많은 오늘 같은 날은 사용하기 불편하네요. 
우리집 오두막은 2.5평짜리 입니다. 이 작은 장소에 현관 미닫이문, 여닫이 뒷문, 작은방 양미닫이까지 모두 3개의 문이 있습니다. 문 하나를 두고도 쓰임과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문을 설치할 때는 그 장소에 어울리는 문을 만들게 됩니다. 
신발을 신고 들어올 수 있는 봉당이 있고, 봉당에서 양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1평 정도의 작은 마루방이 나옵니다. 
작은방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마루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준비해온 커피도 다 마셔가고, 아침식사 준비를 같이 할 시간이 되어갑니다. 나무는 손때가 들면 반들반들한 정감이 생깁니다.
오늘은 윌리엄 코퍼스웨이트의 핸드메이드라이프를 읽고 몇자 더 보태어 봅니다. 

<내 집의 기원은 중아아시아의 스텝지대에 있다. 내 펠트부츠는 아시아의 목자들을 통해 핀란드를 거쳐서 온 것이다. 내 오이는 이집트에서, 라일락은 페르시아에서, 보트는 노르웨이에서, 카누는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 온 것이다. 노를 만들 때 쓰는 굽은 칼은 베링해연안의 에스키모에게서, 도끼는 19세기 메인주의 디자인에서, 픽업 트럭은 20세기 디트로이트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문화 혼합체다. _ 윌리엄 코퍼스웨이트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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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19-11-11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두막 안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빙긋 웃었어요. :)

빵굽는 건축가 2019-11-1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어쩜 그런 멋진 공감의 댓글을 ㅋㅋ 고맙습니다
 

‘동네 총무의 겨울 준비‘


아침에 동네 사람들과 함께 먹을 빵을 구웠습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8시면 동네 청소도 하고 간단하게 간식도 먹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모이는 느슨한 규칙입니다. 강요하거나, 나오지 않은 동네 사람을 뒷담화하거나 시비하는 일은 없습니다. 소소한 농담은 있습니다. 간밤에 있었을 법한 부부사이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친구 오늘 꽤를 피우고 있는 것 같은데˝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입니다.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이런 일로 흉이 되지 않습니다. 우스개 소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9년도 하반기는 제가 총무를 맡고 있어서 매주 진행할 마을 청소거리나 이런 저런 대소사를 챙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동네 대학생이 졸업을 하면 선물을 준비한다거나, 마을 회관 보일러 수리를 요청하거나 같은 일들입니다.

아파트에서 살 때는 생각도 안해 본 것들이죠. 옆 집에 살아도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지 이웃의 대소사를 챙겨본 적은 없습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면 불편한 것을 해결해주니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 손 쓸 일은 없었습니다. 눈이 많이 온 날도 눈 청소는 관리인 아저씨들 몫이었는데 우리 동네의 관리인은 자기 자신입니다. 댓가를 줄 사람도 받을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눈을 치우지 않으면 당장 출근을 보장 못할 만큼 진입로가 얼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 진입로는 동쪽 산비탈 아래에 있어서 겨울 아침 시간에 잠깐 해가 들고, 종일 그늘이 지는 곳이라 눈을 치우지 않으면 빙판을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눈이 오는 낭만을 즐기더라도 눈청소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새벽부터 눈이 오면 마을 카톡에 ‘띵동‘ 하고 글이 올라옵니다.

˝눈이 옵니다. 눈 치우러들 나오세요˝ 대충 차려입고 나가면 그 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깊게 호흡하고 뽀드득 소리를 내며, 손에는 눈삽을 들고 걷는 나의 시간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아침 먹을 빵 이야기를 하다가 눈 청소까지 시간을 너무 앞질러 가는군요. 제 머리속에는 다가올 겨울이 그렇게 그려집니다. 올해도 눈이 많이 올 것 같습니다.

마을 총무는 제비뽑기로 진행이 됩니다. 아주 단순한 선거라고 할까요? 마을 어른들 수에 맞게 만든 20장의 종이 중에 총무, 회장 이렇게 써 놓고 임기를 마치는 회장이 제비뽑기를 돌립니다. 일 년에 두번 있는 선거인데 제비를 줍는 마음은 늘 떨리고, 우습고 그렇습니다. 어른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덩달아 소리치며 웃습니다. 아이들 눈에 우리 어른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요?

대부분의 회장자리는 학력도 따지고, 덕이 좀 있고, 재력도 좀 있고, 나이도 있어야 가능할텐데 우리 동네는 나이가 작아도 되고, 학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고, 재력이 없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나이는 조금 있는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야 실무를 담당하는 총무를 다독이고 마을 대소사에 시비가 걸릴만한 일들을 넉넉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좋겠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실은 이렇게 살기까지 10년의 세월이 둥글게 해주었다고 할까요?

해를 넘기면서 의견을 맞추고 오해가 생기면 10개 중에 9개는 풀고, 한 개는 세월이 가면 해결이 되겠지 하고 적당히 묻어두고, 또 은근히 모른척 하기도 하고, 서로의 거리를 한 두 걸음 정도 띠어서 유지하며,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이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오늘빵은 모두 3덩어리를 만들었습니다.
한덩어리는 독일서 살다 오신 번역하는 형님댁에 드리고, 두 덩이는 아침 모임에서 먹었습니다. 막구운 빵에 대한 환상도 있지만 마을 수에 비해 빵이 적어서 그런지 금새 빵이 없어졌습니다. 앞 집 형님은 빵을 더 부풀게 할 수 없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형님 이 빵은 이스트가 들어가는 대신 발효종이 들어가서 그만큼 부풀수는 없어요, 더 부풀게 하려면 상업용 이스트를 넣어야 해요.˝ 이스트와 발효종의 차이를 설명하는 일이 좋은것과 나쁜것을 구분하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아 더 이상 설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실력이 아직은 부족해서라는 말을 하기 싫었나봅니다.준비한 떡과 과일도 접시에서 금방 사라졌습니다.

늦게 오신 맨 앞집 누님댁은 ˝8시에 모이랬다고 정시에 모이는 사람들이 어디있어요. 우리는 빵도 못먹어봤다.˝라며 아쉬워 합니다.

오늘 빵은 제 손보다 조금 더 큰 빵들입니다. 숙성된 반죽밀가루를 3덩어리로 나누다 보니 제 손안에 들어가는 크기로 자르고 모양을 내었습니다. 모양을 크게 나누면 오븐에 넣는 일도 번거롭고 가정용 오븐이 감당해야할 열량도 충분하지 않아서 주먹보다 조금 더 크게 빵을 나누었습니다. 오븐에 들어가면 두 배 크기로 부풀어 오르는 빵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 구입한 빵칼 자랑도 하고 빵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갑니다. 

그나저나 제 빵맛을 이해해 주는 7호집 누님은 오늘 시골에 가을걷이 하러 간다고 간식모임에 나오질 않아서 조금 아쉽네요. 누나가 있었으면 ˝야 역시 아침 빵과 커피 너무 좋다˝고 입꼬리가 함지박 만하게 올라가고 엄지척을 올리며 ˝세계최고의 빵˝이라고 도무지 아무도 믿지 못할 말로 한껏 기분을 살려주는데, 누님의 빈자리가 눈에 뜨이는 아침입니다.

나이 먹은 어른들이 옹기종기 모여 몸을 붙이고 준비한 과일과 저마다의 일상을 밥상위에 올려놓고 빵에 잼을 발라먹듯이 맛깔스런 입담을 이야기에 발라 우리 모두를 웃게합니다. 다음주까지 보일러 수리도 부탁해야하고 마을 수도 동파가 되지 않도록 뽁뽁이로 감싸놓아야합니다. 
숲에서 생활하는 다부치 요시오 선생은 겨울을 헤어리면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저도 겨울 맞이 이야기로 동네살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람도 겨울을 헤아리면서 성장한다. 나는 이산에서 서른두 번째 겨울을 헤아렸다. 그리고 앞으로 서른세 번째 겨울을 헤아리려고 한다. _다부치 요시오, 숲에서 생활하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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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하는 시간들


입동을 맞은 어제 하루의 추위로, 걸어 들어오는 입구에 서있는 감나무 잎은 몇 시간 사이에 모두 떨어지고 잎 사이 사이에 가려 있던 감들은 ‘나 여기에 있소‘라는 것 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지난 여름 무더위로 벌레를 많이 타서 먹을 만한 것은 얼마 없습니다. 
대신 새들이 방해받지 않고 쪽쪽 쪼아먹고 있습니다. 
한마리가 날아오면 또 한마리가 날아오고, 어른 손바닥 만한 새들이 주르르륵 달려듭니다. 
우리집 고양이 깜선생은 새사냥을 좋아합니다만, 감나무에 앉은 새들을 잡기에는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입동 하루 만에 고추잎, 가지, 피망, 토마토 잎도 모두 시들었습니다. 처진 잎들만 보입니다. 그나마 허브류와 남천, 장미들은 아직 쟁쟁합니다. 
남천만 빼고는 허브류와 장미들도 곧 겨울을 맞아 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어제는 먼길에서 건축상담을 받으러 오신 분이 계십니다. 
오전 일찍 오시기로 했는데 11시 30분이 되어서 도착하신다고 하니, 맞추어 놓았던 일정이 잠시 흐트러지는 느낌이 들어, 책을 볼까, 글을 쓸까, 건축 계획안 마무리 스케치를 할까 망설이게 됩니다. 사무실 햇살도 좋은데 음악 듣고 책을 좀 보자는 쪽으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제가 보는 책에는 건축책이 많습니다. 
건축가들에 대한 책, 참고할 만한 건축작품집, 건축은 아니지만 그와 연관된 정원, 빛, 조명, 소리, 가구에 대한 책들도 얼마 정도는 있습니다. 
그 중에 요 몇달 곁에두고 읽는 책들을 꼽아보자면 나카무라 요시후미 선생의 ‘집‘에 대한 연작들과 흥선스님의 ‘맑은바람드는집‘, 소우후지모토의 ‘건축이 태어나는 순간‘ 같은 책들입니다. 이 책들은 두고 두고 보게 됩니다. 

먼저 요시후미 선생의 책은 저랑 색깔이 맞는다고 할까요? 멋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장소들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노장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그런 건축가입니다. 흥선스님에 대한 글은 다음번에 자세히 써보려고도 합니다. 일전에 스님이 기거하고 계신 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차담도 나누고, 쓰신 책과 삶이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고는 마음에 담아 둔 분입니다. 좋은 건축가들도 많은데 하필 일본 건축가들을 좋아하냐고 핀잔을 줄 사람들도 많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지금은 일본 건축가들의 작품세계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중에서도 저와 나이가 비슷한 소우 후지모토의 ‘건축이 태어나는 순간‘은 제가 입으로 다 표현 할 수 없던 건축적인 이야기들을 후지모토의 입을 통해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된다고 할까요? 그의 글을 보면서는 ˝그래 맞아 이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긋고, 두고 두고 그 대목을 다시 보게 되는 책입니다. ‘노자‘의 세계를 건축적으로 표현하는 건축가라고 할까요? 사이와 사이에 대한 그의 공간 철학이 저를 끌어당기는 부분입니다. 
책이 가진 매력은 액정화면에 비할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이야기 입니다. 

책에 밑줄을 긋는 동안 
상담을 받기로 하시던 건축주분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주었습니다. 전화 목소리로 상상하던 분과는 다른 음 뭐랄까요? 진지한 개구장이 같은 중년의 여성분이 조금은 미안한 듯이 반갑게 웃으며, 마치 제가 손님이고 당신이 이곳의 주인인 것 처럼, 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런 입장과 분위기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커피 괜찮으세요?˝
˝네 좋아요 커피 좋지요˝

커피를 준비하는 시간이 어색할 틈도 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알게 되었는지, 소개해주신 분과는 어떤 사이인지, 10년 전에 5년 전에 그리고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잠시지만 커피를 내리고 커피향이 오르고, 잔을 따뜻하게 데우고, 선생님 앞으로 내어 드리는 그 시간 동안, 짧은 라이프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커피집에서 일하는 점원이었고 선생님은 카페의 주인인 것 같은, 역시 그런 분위기가 또 만들어졌습니다. 

선생님의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중국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한국에서 한의사 분과 함께 의원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해요. 몇 해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산이 있는데, 2층 건물을 물려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유산을 처분하고 싶지는 않고 그 곳에 한의원을 개원하고 싶은데 현재는 주택이라서 공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건축가로 살다보면 새로운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게 일입니다. 그 일은 심심하지도 않고, 단조롭지도 않은 길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을 가면 보물찾기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도대체 보물을 어디다 숨겨놓으신 건지 찾을 수 없을 때도 많았습니다. 
분명히 보물이 있기는 한데 한동안 찾아 헤매는 시간이 도시락 먹는 시간과 함께 소풍의 매력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건축이 그것과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이들을 위한 장소를 찾아내는 일, 헤매고 헤매는 과정이 비슷합니다. 보물쪽지를 찾았을 때 기쁨처럼  의뢰자의 마음과 우리 건축가들의 마음에 드는 보물찾기 같은 일입니다. 

이번 일에서는 어떤 보물을 찾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감잎 사이에 보일듯 말듯 감추어져 있던 감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겨울날 또 새로운 일을 준비하게 됩니다. 
연애할 때 상대의 마음을 알듯 모를듯 해야 긴장감이 있고 설레임이 더해졌던 것처럼 또 하나의 새로운 장소를 1:1로 마주할 때 까지는 긴가민가 하는 시간을 준비 하게 됩니다. 

<산중에 사니까 좋겠다고를 말합니다. 그냥 웃습니다. 일 줄이고 마음 맑혀 고요히 살고 있다면 예, 그렇지요 하고 시원스레 답하련만, 일은 늘고 마음밭엔 잡초만 수북하여 소란스러움 속에 날이 지고 밤이 새니 열적어 웃을 밖에요. 몸은 산속에 있는데 마음은 아닌 듯하니, 일에 쫓겨 동동거리는 자신이 때로는 한심하고 때로는 우습기도 합니다. 곰곰 생각해도 답은 매한가지인 듯 합니다. 일 줄이고 마음 맑혀 고요히 살 것! _흥선스님의 맑은 바람드는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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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9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굽는 건축가 2019-11-0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축가시군요. 넘 반가워요. 저도 건축가에요. 설계가 주업은 아니고 ^^ 자주 뵙도록 할께요
 


‘어머니의 열무김치‘

<우리는 여전히 ‘내 집‘을 꿈꾼다. ..... 지역사회권은 우리집과 지금의 삶을 다시 설계한다. 내 집 빗장을 풀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집...새로운 생활방식의 제안이다. 야마모토 리켄 마음을 연결하는 집 중에서>

오늘은 24절기 중 19번째 절기인 입동이다.

설입(立), 겨울동(冬) 겨울이 자리를 잡는다. 이제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을 보름 앞두고 있다. 앞집 형님댁 지붕엔 흰서리가 형님의 나이만큼이나 두껍게 내렸다. 우리집 고양이도 추운지 온실에서 잠을 자고 있다. 밥 달라고 할 때만 ˝야옹˝ 하는 녀석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밤새 돌아다니다 아침에 들어왔다. 날이 추워졌는지 깜선생(고양이가 완전 검은색이어서 붙인 이름)이 요즘은 자기 집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늘의 별도 많아지고, 이웃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정말 겨울이 시작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동네는 겨울 추위가 매섭다. 영하 25도 까지 내려갈 때도 있다. 날씨가 추워질 수록 내목은 자라목이 된다.
봄이 되어서야 나에게 목이 있었구나를 실감할 정도로 어깨를 움추리도록하는 추위가 센 동네에 살고 있다. 매년 찾아오는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을 하고 살아온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어제는 경기도 광주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다녀왔다.
˝야 와서 열무 김치 가져가라, 올 때 김장김치 담을 통도 가져오고˝
˝네 내일 다녀갈께요˝
이맘때가 되면 어머니는 열무김치와 생고구마, 말린고구마, 무생채, 쌀을 가져가라고 하신다.
크지 않은 땅인데도 자식들에게 먹거리를 보내주시는 어머니의 부지런함에 놀라고 마음쓰심에도 늘 고맙고 감사하고 그렇다. 

열무김치를 싸주시는 햇수 만큼 어머니의 얼굴에 놓인 주름도, 손마디도 할머니처럼 보이게 만든다.
나의 어머니 세월이 가고 있다. 
˝야 그래도 밭에서 농사 짓고, 아저씨들하고 화투도 치고, 밥 해먹으면, 그럼 시간이 잘간다. 바쁜데 어서 가봐라 시간 늦겠다. 며느리한테 고추가루는 얼마나 보내야 하는지 물어보고 전화줘, 까먹지말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집 근처에 살고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1년에 몇 차례 어머니의 보급품을 받는 날, 만나는 선배다. 
˝응 반가워, 어머니 보러 왔구나 그래 커피 한잔 하자˝ 선배는 가을맞이 정원 청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페인트 칠도 하고, 겨울 맞이 풀도 정리하느라 시간 가는줄 모른다는 선배와 커피대신 쥬스 한잔을 마셨다. 

아들은 앞마당에서 텃밭을 꾸미고, 고추와 피망, 푸성귀 정도를 가꾸고 밭에서 난 허브차로 ‘인생은 이런거야‘라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면, 어머니의 농사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열무김치를 가져가라는 말씀에 계절이 아니라 먹거리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집 앞 텃밭을 비우고 보리씨를 파종한다고 해놓고는 시간만 보냈다. ‘입동 전에 보리씨에 흙 먼지만 날려주소‘라는 속담도 있다는데, 농사가 주업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보리씨만 사다놓고 파종 시기를 벌써 한 달이나 넘겼다. 이래선 싹이나 간신히 볼 수 있을레나 모르겠다.   

˝언니 시어머니가 열무김치를 보내셨는데 나누어 먹으려고해요˝
아침에는 빵, 점심은 식당, 저녁은 가볍게 먹느라 늘 김치가 없다는 약사선생님부부는 우리집과 이웃이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보급품이 내려오면 이웃들을 조금씩 챙기는 편이다. 어제도 열무김치를 나누고, 무생채를 덜어주었다. 어머니는 남들하고 조금이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넉넉하게 싸주신다.

김치랑 고구마를 차에 실을 때 ˝엄마 조금만 하시지 뭘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라고 이야기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이웃들과 나눌 때는, 어머니의 속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달여전 깻잎장아치와 마늘 장아치를 보내주셨을 때도 동네 이웃들과 나누며 생색을 낼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 작은 통 하나씩 가져오세요. 어머니가 반찬을 보내주셨는데 나누어 먹을 만큼 되요. 알잖아요 우리 엄니 솜씨. 늦으면 없어요˝ 그날 저녁 민교네, 하린이네, 한결이네, 예현이네, 상엽이네 식구들이 반찬통을 들고 왔다.  

아내는 우리 아이가 분가를 하더라도 시어머니처럼 반찬과 김치를 싸서 보내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시간이 좀 지나봐야 알 것 같지만 내 생각에도 아내는 김치를 싸서 보내지는 않고, 같이 만들자고 부를 것 같다.  

밭농사만 짓는 어머니가 어디서 얻으셨는지 보내주신 햅쌀도 양이 많아서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정원사네 집에 나누어 보내기로 했다. 아내는 두 세 집에 전화를 걸더니 정원사네 집에 쌀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보내자고 한다. 
˝요즘 쌀이 없는 집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까지 해˝라고 할지는 몰라도 나누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덕분에 없던 정이 조금 더 보태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쌀을 배급?받는 정원사의 남편은 피아니스트다. 우리 딸이 그 집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내일 피아노 배우러 갈 때 쌀을 가져다 주려고 한다.  

어머니의 열무 김치 덕분에
겨울이 시작인 날, 나눌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날이다. 
겨울엔 추우니까 이웃들과 나누며 따뜻하게 지내라고 어머니가 올해도 열무김치를 보내주셨다. 
이번 겨울 어머니도 화투놀이에서 돈을 많이 따시라고 화투칠 특별자금을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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