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링조르를 찾아서 1
호르헤 볼피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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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클리드 공간 안에서 직선 위에 찍을 수 있는 점의 수. 한 특정 정수整數와 같지 않은 정수들의 집합의 수. 이런 것들을 우린 ‘무한’이라고 부른다. 평행한 두 직선은? 언젠가는 만난다. 비 유클리드 공간에서. 즉 평행한 직선이 휘어있는 공간 안에 그려져 있다면, 공간이 변형됨에 따라 우리가 한때 평행선이라고 칭했던 것들, 불변의 진리라고 여겨왔던 것, 지들이 언젠가는 안 만나고 배겨? 뉴턴 역학 안에서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질량이라는 것이 20세기에 와서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시간도 아인슈타인이란 한 포인트를 거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아인슈타인의 이론들도 이젠 굉장한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물리학, 화학은 경계가 거의 무너졌다. 제일 앞에서 말한 ‘무한’을 분모로 하면, 분자가 아무리 큰 양과 음의 자연수라 하더라도 이는 영zero으로 수렴하는 수가 되며, 물리학, 화학에서 이런 경계를 다룬 것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는 ‘양자 역학’이 들어 있다. 그런데, 나는 유클리드 공간, 뉴턴 역학 밖에서 일어나는 수학적, 물리학적 현상에 관해서는 완전 절벽이다. 이 책을 읽으며 수도 없이 쏟아지는 양자역학과 비 유클리드 수학에 관한 이야기는, 그래서 눈으로 따라가기만 해야 했다. 그것들을 다 이해하는 소수의 독자들에게 축복 있기를.
 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천재들. 얼핏 예를 들더라도 그들의 공적은 뭐 전혀 모르겠고, 이름만 플랑크, 칸토어, 아인슈타인, 보어, 슈뢰딩거, 폰 노이만, 하이젠베르크 등등이 진짜 실존 인물이다. 실존 인물인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평생 연구한 내용들도 간략하게나마 소개를 했다. 작가의 끈질긴 탐색이 대단하달밖에. 여기에 이들에 미치진 못하겠지만 두 명의 영재급 (허구의) 등장인물, 미국인 이론물리학자 프랜시스 P. 베이컨과, 화자話者이자 독일인 수학자 구스타프 링스가 등장해 책의 제목처럼 ‘클링조르’를 찾아 독일의 현대 과학사를 뒤지기 시작한다. 책은 구스타프 링스가 오랜 세월이 지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1권 150쪽까지 펼쳐지는 미 해군 중위 프랜시스 베이컨이 유럽 전선에 오기까지의 내력과, 그와 일정 기간을 함께 활동하면서 그로부터 들은 내용, 또는 일인칭 (반쯤)전지적 시점으로 여겨도 무리가 없을 관점으로 쓴 두 권짜리 장편소설. 프랜시스 베이컨 중위는 스콧 핏제럴드와 프린스턴 동문으로 양전자를 전공했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쿠르트 괴델, 존 폰 노이만 같은 당대 세계 최고들이 포진한 고등연구소에 폰 노이만의 제자로 들어간다. 물리학자가 수학자의 제자? 고수들의 세계에서는 별로 상관이 없는 얘기. 베이컨은 불친절한 폰 노이만 교수로부터 뜻밖의 호의적인 평가를 받으며, 백인 부르주아의 따님과 약혼 상태를 유지하는 동시에 흑인 여성과 내연의 관계를 갖고 있다가, 꼬리가 길어서 자기 침대 위에 흑인 아가씨가 누워 있는 걸 약혼녀에게 제대로 들키는 바람에 고등연구소에서 미 해군 정보부로 자리를 옮겨 유럽으로 들어오게 된 것. 약혼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의 강연회에 들이닥쳐, 베이컨 나와(우리 말로 하면 '삼겹살 줘'?), 네 침대에 흑인 창녀가 누워 있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봤단 말이야, 아우성을 쳐대는데 사건의 당사자를 연구원 자리에 그냥 둘 수 있겠어?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고등연구소에서 말이지.
 베이컨 중위의 역할은 1930년대 나치 치하 이후 전쟁이 끝나기까지 독일 과학자들에 의하여 진행되어 온 과학적 자료를 분석, 종합하는 일이었다가, 정말로 전쟁이 끝나자 핵무기 제조에 관련이 있는 과학자들이 소련으로 유입되어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기 전에 그들을 체포, 연합국의 손 안에 쥐는 것으로 바뀌었다. 중위는 정말로 이 과학자들 가운데 우두머리 격이었던 하이젠베르크를 자택에서 체포하여 이송시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과학자들을 취조하는 과정에 연합국 측은 히틀러의 측근에 있으면서 과학과 신무기 제조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과학자가 있었지만 누구도 실제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하며 과학자들 사이에 그냥 ‘클링조르’라는 이름으로 암약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클링조르가 누구인지 밝혀내고, 나아가 체포하는 임무가 새롭게 베이컨 중위, 초급장교에게 부여된다. 미국에서 유망한 물리학자이며 박사라는 이유 하나로, 구상유취口尙乳臭, 아직 입에서 젖내 나는 젊은이를. 이이가 혼자 독일 과학계를 두루두루 꿰찰 수는 없어서, 독일 출신 수학자 구스타프 링스로부터 도움을 받아 ‘클링조르’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소설 독자 가운데 나 한 명에 국한되는 이야기겠지만, 이런 추리, 음모, 스파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이 있는 건 아무래도 남녀상열지사. 호르헤 볼피 역시 내 생각에 맞춰주느라 엘리자베스-비비안-프랜시스, 마리안네-나탈리아-구스타프의 트라이앵글이 등장하고, 비비안-프랜시스, 나탈리아-구스타프, 잉에-베이컨의 연애 장면도 연출한다. 여기까지 얘기하니까 비 유클리드 수학과 비 뉴턴 물리학, 과학자들의 연구, 클링조르를 색출하는 스파이전, 이런 것들로 다소 딱딱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책은 상당히 재미있는 문장과 구성으로 만들어졌다. 독일인 조언자 구스타프 링스가 누구인가 하면, 1944년 7월에 실제로 있었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미국 배우 톰 크루즈가 주인공 클라우스 폰 슈타펜베르크를 연기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 (가상)인물로, 자기 전공인 수학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확률로 인해 벌어진, 유죄 판결로 총살형을 받을 것이 분명한 재판 도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지붕이 무너져 내려 재판장이 앉은 자리에서 머리가 쪼개져 죽는 바람에 판결이 무기한 연기되어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다. 그래 이 책은 자연스럽게 영재 과학자(였던) 베이컨 중위의 생애와 연애담, 링스의 생애와 연애담과 우정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20세기 중반까지 물리학과 수학의 발전, 원자탄 개발을 둘러싼 독일과 연합국의 경쟁, 과학자들 사이의 음모와 이합집산 등이 아주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럼 ‘클링조르’가 누구인가. 크레티엥 드 트루아의 <페르스발>,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파르치팔>에서 악당으로 나오는 등장인물인데, 결정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바그너의 <파르지팔>에 와서라고 1권 228쪽에 링스 교수가 설명한다. 먼저, 주의하라고 일러드리고 싶은 건, 이 재미난 책 <클링조르를 찾아서>를 읽고 클링조르가 등장하는 <파르지팔> 역시 재미있는 작품이라 여겨 무심코 <파르지팔>의 음반이나 DVD 같은 매체를 구입하지는 마시라는 것. <파르지팔>은 바그너가 가장 아꼈던 작품이라고 하고, 당연히 말기 작품인데,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웬만큼 경력이 쌓여야 들을 수 있을 만큼 심오하고, 엄숙하고, 진지하고, 철학적이고, 사변적이며, 무엇보다, 지루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물론 작지만 그래도 열린 공간인 알라딘 서재에서 감히 바그너의 작품을 지루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바그너 광신교도들로부터 집중적인 기총소사를 받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하는 이야기지만, 내가 듣기에 그렇다는데 뭐. 작품의 내용은 책에 아주 자세히, 내가 여태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생략한다. 나는 <파르지팔> 전곡 음반을 총 아홉 가지로 가지고 있는데, 그래봐야 가장 최근에 전곡을 들은 것이 한 5년 전쯤 되는 관계로 어떤 음반이 좋더라, 라고 품평을 할 처지는 못 된다. 얼핏 들으니 제임스 레바인이 바이로이트 극장 관현악단을 지휘한 판과, 역시 레바인 지휘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관현악단이 연주한 판이 제일 훌륭하고, 제일 지루하다고 한다. 기어이 듣고자 하시는 분 있으면 참고하시라.

 

왼쪽이 바이로이트, 오른쪽이 메트 연주판이다.


 책을 읽어가는 중에 내 관심은 클링조르보다 누가 쿤드리, 또는 꽃의 정령 역할을 하는 여자일까를 밝히는 일이었다. 극적 반전은 없지만 재미있는 작품. 추리 스파이 소설이라고 꼭 극적인 반전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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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마터면 책으로 된 <파르지팔>
을 구입할 뻔 했습니다.

제 수준으로는
오페라는 서곡 정도 듣는 것으로 만족
해야지 싶습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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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을 23년 동안 구상했다고 한다. 내가 읽은 마르케스가 이번까지 합해 총 다섯 편. 이중에 이번에 읽은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와 <썩은 잎>에서는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콜롬비아의 산골 습지에 위치한 시골 벽촌 동네 ‘마콘도’와 바나나 농장에서의 파업, 보수당과 자유당 사이의 내전, 네에를란디아의 항복, 자유당 반란군의 수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항복 조인의 대가로 자유당 반란군 장교들이 받기로 했던 연금 가운데 적어도 한두 가지의 상황이 펼쳐진다. 이런 것들은 <백년의 고독>을 오랜 세월에 걸쳐 구상하면서 오대(五代)의 성쇠라는 서사를 만들었기 때문에, 구상 중에 <백년의 고독>과 이어지기는 하지만 개별 독립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 역시 탄생했을 것이고, 작가 입장에서 이에  대해서도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썩은 잎>과 <아무도 대령에게....>의 발간시기가 <백년의 고독>보다 앞선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자세한 내용은 혹시 <아무도 대령에게....> 뒤편에 실린 해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은 본문이 88쪽에 불과한 반면 해설이 38쪽이라 아무래도 본문에 비해 장황한지라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의 주인공 ‘대령’이 누구인가 하면, <백년의 고독>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네에를란디아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할 당시 노새의 등에 현금을 꽉 채운 돈 자루 두 개를 싣고 부엔디아 대령에게 고스란히 전해준 인물이다. 이이의 이름이 뭔가 알기 위해 다시 <백년의 고독>을 훑어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자. 항복문서에 조인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고향 마콘도로 돌아와서 연금술사 멜키아데스의 방에서 작은 황금물고기를 만들며 세월을 죽이는 동안 오랜 시절 그의 부하였던 많은 장교들은 정부가 연금을 지불하기로 약속한 것을 믿고 별다른 직업 없이 연금 지급이 개시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정작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일찌감치 연금수급을 거절한 바 있긴 하지만, 그게 자신에게 패배를 가져다 준 보수당 정권이 베푸는 돈은 받지 않겠다는 깊은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니라 애초부터 그 작자들이 자신들에게 연금 따위를 건네주지 않을 줄 훤히 알았기 때문이란 걸, 부엔디아 대령의 수하들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선 노새에 두 자루의 돈을 네에를란디아까지 싣고 왔던 청렴한 반란군의 또 다른 대령이 마콘도에 바나나 공장이 들어서 자본주의의 악덕이 판치는 걸 보고 바닷가 고향으로 귀향한 상태. 대령부부와 싸움닭을 키우며 양복점에서 일하는 아들과 살면서 무려 56년 동안 그놈의 연금 지급을 개시하겠다는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은 반정부 운동에 가담, 이라기보다 그냥 조금 적극적 관심을 두고 있다가 불법 유인물 소지죄 비슷한 죄목으로 투계장에서 총살을 당하고 아홉 달이 지났다. 그간 돈벌이는 거의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들이 양복점에서 푼돈이라도 벌어와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었던 대령부부에게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집안의 고물들을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것 말고는 없다. 아들의 영혼이 담긴 듯도 한 투계를 팔면 900 페소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굶주림의 끝까지 몰린 대령 부부가 이 수탉을 팔아 3년의 삶을 더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석 달 후에 열릴 닭싸움까지 기다렸다가 승리할 경우에 얻게 될 20%의 파이트머니를 챙길 것인가를 두고 한 바탕 설전이 벌어지는 이야기.
 본문이 88쪽에 불과한 단편이라 더 이상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당연히 단편 특유의 마지막 촌철살인의 결론 역시 알려드릴 수 없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이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 대령이 매주 금요일마다 부두 앞 동네 의사의 진료실 입구 의자에 앉아 우체국장이 우편물을 하역하는 걸 바라보며 한 주도 빠짐없이 자기에게로 오는 정부의 편지를 기다린다는 거. 우체국장 역시 단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의사에게 신문 뭉치를 전해주며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한다는 거. 그래서 책의 제목이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가 된다는 거. 이거만 가지고도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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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19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설은 패스했습니다.

굳이 필요 없는 해설은 빼고
단가를 낮추는 게 어땠나 싶습니다.

제가 해설 읽자고 돈을 지불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Falstaff 2019-02-19 11:50   좋아요 0 | URL
도서 정가젠지 뭔지 그것부터 없애야 합니닷!
그러면 지들이 다 알아서 할 거 같거든요.
다른 건 다 ‘적폐‘라고 없애는데 왜 이건 그냥 내버려두는지 말입지요.

뒷북소녀 2019-02-19 12:59   좋아요 0 | URL
저도 해설은 읽지 않았어요...

Falstaff 2019-02-19 13:45   좋아요 0 | URL
그래도 가끔은 눈으로 그냥 휘리릭 넘길 때는 있습지요. ㅋㅋㅋ
 
산문팔이 소녀 말로센 시리즈 3
다니엘 페낙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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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페낙. 분명히 이 사람이 쓴 다른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 뭐였더라. <떠도는 그림자들>? 한 번 이 책이 떠오르자 완벽한 혼돈상태가 됐다.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와. 일단 키냐르를 생각하니 본문만 570쪽이 넘어가는 장편인데 암호해독에 특별한 능력이 없는 독자에겐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키냐르의 길고 긴 장편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하물며 200쪽이 겨우 넘는 <떠도는 그림자들>도 억지로 읽었음에야, 걱정을 하며 장바구니에 넣고 주문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이런 심정, 조금 과장하면, 다시 말해, 과장하면 그렇다는 건데, 주문하기 버튼을 클릭하는 비장한 마음이 목에 돌을 매달고 벼랑 위에 서서 깊은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과 비슷할까. 하여간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으로 구입을 하고, 드디어 책장을 열었고, 한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아, 이 사람이 <떠도는 그림자들>을 쓴 파스칼 키냐르가 아니고, <몸의 일기>를 ‘다니엘 페나크’란 이름으로 번역 출간한 바로 그 사람이구나, 알아챘다. 완전 형광등. 하긴 나로 하여금 스스로 형광등을 자처하게 만들 만큼 파스칼 키냐르의 이름이 공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니까. ‘다니엘 페나크’가 됐던 ‘다니엘 페낙’이 됐던, 이이라면 읽어내는데 별 문제 없지. 일단 안도.
 호, 놀랍게도 엽기성 연쇄살인과 코미디가 마구 섞여 있는 프랑스판 서부영화다. 소위 누아르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누아르 장르로 만들기에는 작가의 직업이 너무 교양적이다. 학교 교사였을 걸? 그 나라에선 중등학교 교사가 소설도 많이 쓴다. 참 좋은 책 <프랑스 식 전쟁술>을 쓴 알렉시 제니도 학교(심지어 생물) 선생이었잖은가. 동화책도 많이 써서 동화작가로 분류하기도 하는 다니엘 페낙이 연쇄살인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썼다고 해서 잔혹 엽기로 일관하기는 쉽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든 악인은 극히 일부의 선량한 희생자들을 길동무 삼아 저 세상으로 가고, 남은 착하거나 보통의 인간들은 다시 사회에 복귀해 지겨운 일상을 계속 이어가는 쪽으로 결말을 냈다. 물론 교직을 경험한 작가답게 교훈 한 가지는 주어야 직성이 풀렸겠지. 기어이 뱅자맹 말로센의 애인 쥘리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야 만다.


 “누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든 말리지 않을 거야. 히틀러가 미술 장학금을 받았다면 정치 같은 걸 했겠어?” (571쪽)


 초반에 이 책이 ‘말로센’이란 프랑스의 콩가루 집안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쓴, 소위 ‘말로센 가족 시리즈’라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러니 만일 <산문팔이 소녀>를 포함해 이 시리즈에 관심이 있으시면 1편에 해당하는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부터 찾아 읽으시면 좋을 듯하다. 1편은 내 단골집 알라딘에선 품절이고 나머지 이너넷 책방에선 팔고 있다. 나도 얼른 주문했다. 한 5월경에 읽을 듯. 모두 여섯 편이라는데 그걸 다 챙겨 읽은 정성까지는 없을 것 같다.
 화자이자 중요한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뱅자맹 말로센. 이이의 직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자기가 쓴 원고를 보내기는 했지만 채택되지 못하고 연이어 퇴짜를 맞는 작가지망생들, 자신이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운명을 타고나 현세에 고난을 받아야 하는 천재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거친 항의를 감당하는 일. 프랑스에선 이런 지망생들이 출판사에 난입해 온갖 사무 기물을 때려 부수고, 담당자에게 폭행의 위협을 하고 뭐 그래도 그게 그냥 일상생활 정도로 여기는 바람직한 문화가 있었나보다. 하여간 남을 달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뱅자맹 말로센에게 사랑하는 여동생 클라라가 있다. 많고 많은 동생들 가운데 어느새 열아홉도 안 된 클라라를 제일 아끼는 건, 그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 자신이 직접 받았기 때문이다. 형제가 여덟인가, 아홉인가, 더 많던가? 하여간 무지하게 많은데 놀라운 건 아이들 전부 다 공통의 어머니를 갖고 있고, 개별적으로 다른 아버지를 갖고 있다는 점. 그러니 내가 저 위에서 프랑스판 콩가루 집안이라고 한 게 이해가 되시지? 이 가운데 클라라가 누구의 아버지의 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세르비아-크로아티아계인 스토질코비치 삼촌을 면회하러 가서 클라라가 한 남자와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졌으니 누군가 하면, 비스듬히 기우는 햇빛에 흰머리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키 큰 왕자님, 하늘색 눈의 대천사, 쉰여덟의 대천사, 그리고 교도소장.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생보다 세 배나 나이를 더 먹은 늙은이에게 엄마 배 속에서 나온 그대로의 상태로 있(다고 믿)는 동생 클라라를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시집보내겠느냐고. 말 그대로 열불이 난다. 그러나 어이할꼬. 클라라는 키 큰 대천사와의 혼인을 반대하면 퐁네프다리 위로 올라가 센이라고 부르는 파리의 개천에 빠져 죽겠다고 협박을 하는 걸. 그래 어쩔 수 없이 승낙한 상태. 날짜는 어김없이 흐르고 어느덧 결혼식 날이 되어 교도소 성당에서의 혼인을 위해 차 몇 대를 대절해 가고 있는 중에, 저 멀리 성곽 위로 곧게 솟는 하얀 연기. 하필이면 그날 새벽, (여태까지는 차라리 천국에 더 가깝도록 평화로웠던, 그래 일부 수형자들은 형기 연장을 호소할 정도였던)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 창백하고 키 큰 대천사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임을 당한 다음이다. 이게 사건의 시작이다. 첫 번째 죽음. 이리하여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장례식장으로 변해버린다. 뭐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이나 의미로 따지면 거기가 거기긴 하지만.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 했다시피 엽기 연쇄살인보다 더 재미있는 건, 작가의 입담이다. 미칠 지경으로 재미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터진다. 물론 나중에 화해는 한다. 그런데 어째 '가톨릭의 맏딸'이라고 불리던 나라 프랑스에서 이리도 가혹하게 기독교와 기독교의 신을 희화화하는지 놀랍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이 쇼킹이었다. 제목 <산문팔이 소녀>. 애초부터 작가를 ‘파스칼 키냐르’로 오해했으며, 제목이 이런 식으로 붙었으니 분명히 소설, 즉 산문을 쓰는 여러 가지 허풍, 엄살, 과장, 잘난 척, 형이상학, 미학, 두통거리들이 만발할 것으로 생각했다가 유쾌한 연쇄살인이라니. 고생할 걸 각오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웃으면서 책을 덮었다. 이것만 가지고도 웃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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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0
임레 케르테스 지음, 한경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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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케르테스 임레(헝가리는 우리나라처럼 성이 앞에, 이름이 뒤에 온다. 케르테스가 성이고 임레가 이름이다.)는 한 시절 자신의 삶 자체가 극적이었다. 전작 <운명>의 주인공 케비슈톄르 죄르지라는 소년과 마찬가지로, 아직 만 십오 세가 되지 않은 소년시절에 공장으로 출근하던 중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헝가리 헌병들의 불심검문에 걸려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차이츠를 거치고 다시 부헨발트에서 해방을 맞아 헝가리로 귀환한 경험이 있다. 죄르지는 아우슈비츠에서 두 살이 더 많은 열여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나이로 인정받아 부헨발트로 보내졌음에도 가스실 행을 피할 수 있었다. 비록 10개월가량 수용소에 있었지만 열네 살의 소년이 1944년에 부헨발트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 가지고도 기적이라 할 만하다. 당시 수용소장 카를 오터 코흐 치하에 있던 부헨발트에는 “부헨발트의 악녀”, “부헨발트의 암캐”라고 불리던 카를의 아내 일제 코흐라는 엽기 충만한 여자가 살았다. 이 여자가 얼마나 잔인했었는지, 사람의 가죽을 무두질해서 스탠드 커버, 책의 장정, 장갑 등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람의 뼈를 조각해 문진(文鎭)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문진의 모양이 정말 엽기다. 얼마나 잔인한지 (이런 거 좋아하는 내가 '사진 첨부'를 고려하지 않을 정도다.) 궁금하신 분은 ‘Ilse Koch’라는 이름으로 구글 검색해 이미지 페이지를 보시면 안다.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독일에선 ‘아돌프’와, ‘일제’라는 이름이 사라졌단다.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서 독일 대표로 나와 다방면에 지적인 대화를 펼친 다니엘 린데만이란 반半 유대인 청년한테 비슷한 얘기도 들었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악마 같은 여자를 알지 못했던 바,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멘델스존 스페셜리스트 피아니스트 일제 폰 알펜하임(Ilse von Alpenheim) 이후 같은 이름의 독일 여성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지옥에서 살아남았으니 굉장한 행운이기도 하고, 소년기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지옥을 경험했으며, 그때의 기억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더없는 불행이기도 했을 것이다. 인생의 고비마다 불현듯이 뇌리에 떠오르는 죽음과 광란의 아수라장. 마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돌을 굴려야 하는 시시프스와 비슷했다고, 이 책의 결론 부분에 나온다.
 케르테스 임레가 수용된 것이 열네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그때의 기억을 기록해 출판한 시기가 1975년이다. 그의 나이 46세, 수용소에서 해방된 다음 30년이 지나버렸다. 그동안 케르테스는 일간신문사의 편집인으로 2년 여 일하고, 해고를 당하고, 제철회사의 금속 기계공으로 노동자 생활도 하다가 다시 기자 일을 하면서 쉬지 않고, 수용소에서의 경험에 관한 소설 ‘한 편’을 쓰는 것에 집중을 한다. 1970년대의 40대 중반이면 ‘중년’이라고 불리웠던 시기. 거기다가 일찌감치 소년기에 생의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소모해, 스스로 ‘노인’이라 칭하는 이가 드디어 소설 한 편을 완성하여(이 작품을 <운명>이라고 특정하지는 않는다.) 출판사에 보냈는데, 얼마 후 편집자의 편지가 첨부된 원고가 반송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했으나 그것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도 끔찍하고 충격적입니다....무미건조한 문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소설의 주인공은 셰속해서 수수방관하는 태도로....도덕적 평가를 내릴 수 없습니다.” (50~51쪽)


 작품 속 노인(으로 칭하는 케르테스 임레)은 아홉 평짜리 아파트에서 위층에 사는 짐승같이 매너 없는 이웃의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한 상태에서 글만 쓰는 실업자이고, 생활고를 위해 아내는 공산당 치하의 부다페스트에서 식당 일을 해 먹고 산다. 이이가 가끔 먼지 앉은 선반에서 꺼내 보는 상자 하나가 있는데 거기엔 ‘아이디어, 원고 초안, 미완성 원고’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정확하게는 말하지 않지만 여기서 말하는 ‘미완성 원고’가 바로 케르테츠 임레의 첫 번째 소설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운명>을 쓰기는 했으나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우울한 시절을 보내는 장면이 소설 <좌절>의 앞부분. 그때부터 1988년 헝가리가 사실상 붕괴되어 국경에 군인들이 사라질 때까지를 주인공 ‘쾨베시’라는 이름으로 좌충우돌하는 게 157쪽에 달해서야 비로소 나오는 1부부터 9부까지가 뒷부분이다.
 <운명>에 비해 상당히 버벅거리면서 읽었다. 이게 책의 내용이 전작에 비해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특별하게 각인시키는 장면이 (별로)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하필이면 정말로 내 눈이 (특히 뒷부분 읽을 때부터) 뻑뻑한 게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면, 글쎄 내 경우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씀인데, 권하지 않겠다. 이건 케르테스 임레에 대한 기대가 원래 컸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역자가 작품해설에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자에게 쉽게 읽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해 여러 가지 교묘한 장치를 사용하여 독자에게 생각할 것을, 곰곰이 숙고해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인지도. 하여간 이 책에 관심 있는 독자 제위는 역자의 이런 의견도 감안하시라. 그냥 쉽고 재미있는 책이리라는 건 애초에 기대하지 말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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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수수께끼
V. S. 나이폴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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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소설 <미겔 스트리트>를 읽고 호기심을 느꼈던 작가. 서인도제도의 한 섬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인도인 이민 3세로 태어난 나이폴이 어려서부터 싹수가 있어 시험을 치룰 때마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선장先場하니, 훈장이 이를 보고 채점을 하면, 자자字字이 비점批點이요, 구구句句이 관주貫珠이어서, 당시 식민모국이었던 영국의 문교부장관이 이를 ‘어엿븨 녀겨’ 전액 장학생의 자격으로 옥스퍼드 유학을 시켜주기에 이르렀던 것. 인도 천민 계급으로 서인도제도까지 소작인으로 이주해 와, 이전까지는 흑인 노예들이 하던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에 종사했던 보잘 것 없는 가문에서 이거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한 마리 승천한 꼴인데, 어린 시절을 이방인으로 그것도 식민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의 가난한 동네 미겔 스트리트의 추억을 연작으로 담은 작품은 솔직히 그리 인상 깊게 읽지를 못했다. 아무리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 하더라도 나 싫으면 안 읽는 거지, 이름값 가지고 책 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래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그의 다른 작품, 문학과지성사에서 찍은 두 권짜리 장편소설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을 일단 서점 보관함에 집어넣고 살까, 말까를 무한히 왔다 갔다 하고 있다가, 한 권짜리 <도착의 수수께끼>를 발견, 이를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한 권짜리니까 <비스와스....>보다 부담감이 덜했던 것이 주 이유였다. 근데 왜 나이폴이 별로였다면서 굳이 찾아 읽을 생각을 했느냐고? 모르겠다. 책 구경을 할 때마다 나이폴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그게 안 되더라는 거. 그래 이 책도 조금은 주저하면서 구입했고, 이거 지루하면 어떡하지, 조금은 걱정하면서 첫 페이지를 넘겼다.
 V.S. 나이폴. V.S는 이름이 하도 복잡해서 그냥 영어로 쓴 것. 우리말로 하자면 “비디야다르 수라지프라셔드 나이폴.” 그냥 “V.S. 나이폴”이라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익하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위에서 영국의 문교부 장관이 나이폴한테 전액 장학금으로 옥스퍼드 유학을 허락했다는 거 까지 이야기 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나이폴은 인도에서 건너온 모든 친척들이 모여 트리니다드 공항 건물에서 거창하게 송별회를 한 다음 ‘팬 아메리카 월드 항공’ 소속 경비행기에 탑승해 푸에르토리코를 거쳐 뉴욕까지 가서 일박을 하고, 거기서 배로 갈아타 영국에 도착해 런던 얼스코트라는 동네의 하숙집에서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옥스퍼드로 옮기고, 졸업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고,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 스톤헨지가 멀지 않은 시골 월든 쇼의 한 장원에 속한 집에 정착하게 된다.
 <미겔 스트리트>에서는 화자의 소년시절, 그러니까 트리니다드를 떠나기 전까지 그곳에서 실재 살았던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희극적 비극의 감각으로 써내려갔고, <도착의 수수께끼 The Enigma of Arrival>은 월든 쇼의 장원의 한 시골집을 세든 상태, 약 1975년 쯤을 전후한 시간적 배경과, 이 책을 정말 쓴 1984~86년의 시점이 수시로 교차하면서, 어느 정도 시골집에 정착을 한 단계에서 동네 인물들, 1부에서는 ‘잭’이란 야성적이고 성실한 중늙은이와, 이이가 죽은 후엔 그를 대신하는 젊은 남녀들을, 2부에선 자신이 여행을 하며 만나 관계를 맺은 많은 사람들, 3부와 4부는 장원에 속한 장원의 소유자와 관리인 부부, 기타 주변인등을, 5부는 다시 트리니다드로 돌아와 그곳의 친척들에 관해 서술한다. 무엇보다 웨일즈 지역에 인접한 영국 농촌을 완상하는 나이폴의 시각과 문장이 참 좋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내가 일찍이 슈티프터의 <늦여름>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기도 한 적이 있다는 게 떠오른다. <도착의 수수께끼>는 일찍이 슈티프터가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모든 자연현상과 인간의 예술품에 대한 미학에는 감히 미치지 못할지언정, 남부 영국의 시골, 나름대로 소박한 자연의 찬가를 담은 모양이 비슷한 지역을 쓸쓸하게 노래한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생각나게 만든다. 제발트는 영국 남동쪽, 나이폴은 남서쪽을 노래하고 있기는 하다.
 1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이폴의 소설이 이런 거였나? <미겔 스트리트>를 발표한 것이 1959년. 그의 나이 스물일곱. 식민지 출신 이방인으로 영국에 도착해 생전 처음 코스모폴리탄의 위용을 경험한지 9년만의 일이었다. 혹시 그래서(작가가 너무 젊어 쓴 작품이라서) 내가 <미겔 스트리트>를 덜 재미있게 읽은 건가 싶기도 했다. <도착의 수수께끼>에서 ‘도착’은 “본능이나 감정 또는 덕성의 이상(異常)으로 사회나 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나타냄”을 뜻하는 것인 줄 알았다. 왜 안 그런가. 소설 문학에서 ‘도착’이라면 倒錯을 먼저 생각한다고 뭐 이상한 것도 아니잖은가. 하, 그런데 도착arrival이라니. 생각도 못했다. 도착이 있으려면 반드시 ‘출발’ 또는 ‘이별’ 같은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법. 먼 인생으로 비유를 해보자면 사람이 낳는 것을 출발이랄 수 있고, 죽는 것을 도착이랄 수 있겠다. 트리니다드를 출발해 런던에 도착했고, 런던을 출발해 시골동네 월든 쇼의 장원에 도착을 한다. 그럴 때마다 인생 또는 삶은 작가에게 수수께끼를 냈다보다. 아침엔 네 발로, 하루 종일 두 발로, 황혼이 오면 세 발로 걷는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너나 나나 다 출발하고 도착하고, 출발과 도착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일을 세상살이라고 하면서 도착점에 가까이 올수록 괜히 그 누추했던 세상살이가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는 까닭에 그걸 ‘추억’이라 포장하면서 산다. 당신이나 나나 다 마찬가지다.
 나이폴의 작품이 이렇게 아름다운 서정 전원시인줄 몰랐다. 문장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굴곡 없고 사건도 별로 없고, 줄곧 나붓한 단어들만 나열하는 고독의 바다를 건너기만 하면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늦겨울 밤이 기우는지도 모른다. 본문만 552쪽. 내 경우, 적어도 400쪽 까지는 문장을 글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글자들이 모여 쿡쿡 가슴을 찌르는 공감에 기뻐하면서, 읽은 문장 다시 읽어보기까지 했다. 실제로 나이폴(혹은 역자 최인자)은 독자가 문장을 한 번에 쉽게 읽고 지나가지 못하게 썼다. 무수한 괄호 안의 설명, 일부 서양 작가들의 특징인 문장 기호 “―”의 연속. 그리하여 한 문장을 두 번, 세 번, 네 번 읽어야 하는 경우가 숱하다. 일부 독자는 이런 문장을 매우 싫어할 수 있고, 나도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입장이지만, 워낙 아름다운 글들이 쏟아지는지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쓴 시기가, 아, 1986년,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높이 든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이 전 영국 국토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때려잡는데 총력을 기울였던 그때도 영국의 한 시골에서는 이런 미문들이 생산되었던 것이구나.
 그러나, 400쪽이 넘어가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지치더라. 분명히 아름다운 문장, 섬세한 감성의 포착, 삶과 전원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시선, 이것들이 무한히 계속된다고 생각해보시라. 그래, 과하면 부족하느니 못하다는 말, 그건 진리다. 그래도 결심했다. 올해 말에 그의 다른 작품, <도착의 수수께끼>보다 더 긴 장편소설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을 읽기로. 나이폴의 서정적 전원 문장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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