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억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2
루쥔 지음, 오수경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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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쥔(陸軍)이 지었고, 왕레이(王磊)가 정리를 했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 현대 희곡, 현대 연극에 무지한 내 수준으로 감을 잡자면, 베이스가 되는 희곡은 루쥔이 썼고, 이 작품을 어떻게 무대에 올릴 지에 관한 큰 줄기는 연출가 왕레이가 틀을 잡았다, 정도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밝혔듯이 현대 연극에 관해 완전히 깜깜한 아마추어의 의견이니 어디 가셔서 인용하지 마시라. 개망신당하기 십상이리라. 예를 들어 작품 속에 가장 강렬하게 읽힌 장면, 흑마(黑馬) 검둥이가 난산 끝에 새끼를 낳고 말들을 돌보느라 나가떨어진 치우즈와 뤄샤오산이 격정적으로 러브씬을 벌이는데, 역자 오수경도 책 뒤편의 해설에서 명장면으로 소개하기도 한 바, 이것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을 하느냐, 하는 연출의 규범을 만든 건 아닌가 싶다는 의미다.
 등장인물을 단 세 명. 치우즈는 서른아홉 살 먹은 여자로 농장 주인의 아내다. 농장 주인이자 치우즈의 남편이 누군가 하면 장얼마오라는 인간인데, 이이는 몇 년 전 시골 농장에서는 아무리 성공을 해도 이름을 날리며 멋있게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돈을 벌기 위해 광저우로 떠나 이제 그의 호언대로 왕창 번 인물. 당시 중국에서 그리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단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장얼마오가, 물론 그가 주장하는 걸 그대로 믿는다면, 어떤 젊고 잘 생긴 여자가 자신의 불법행위를 거의 완전히 알고 있어서,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사법당국에 그를 고발해 콩밥을 먹이겠다고 나섰다는 거다. 독자의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광저우에서 새로 젊은 애인이 생겨 벌써 서른아홉 살이 된 아내 치우즈와 이혼을 하고 아가씨하고 재혼을 하고 싶어 머리를 짜낸 꼼수 같은데 끝까지 사실관계는 밝히지 않는다.
 남은 한 명의 이름은 뤄샤오산. 당년 스물세 살. 광저우 대학 입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합격증을 받았으나 입학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제적을 당할 위기에 처한 인물. 이만 위안만 손에 들게 되면 당장이라도 수속을 밟아 입학할 각오를 다지던 중 장얼마오의 눈에 띈다. 장얼마오가 아내 치우즈에게 농장과 농장에 딸린 가축 전부, 거기다가 이십만 위안까지 엎어서 주는 대신 이혼 좀 해달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눈 하나 껌벅이지 않으니, 싸가지 없는 장얼마오가 뤄샤오산을 고용해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들이닥칠 입추 날 밤까지 오랜 시간 독수공방한 치우즈를 꼬드겨 함께 잠자리를 하는 대신 입학금 이만 위안을 받는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린 인종이다.
 근데, 원래 틀을 잡아놓고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그건 희곡도, 연극도, 하다못해 흔한 우리네 인생도 아니다. 어딘가 적어도 한 군데에서 펑크가 나야 희곡이고, 연극이고, 인생이다.
 뤄샤오산. <여름의 기억>이 초연된 것이 1999년 쯤. 당시 중국에서도 수재들이나 입학 가능했던 광저우 대학에 합격한 이 청년은 자신이 고용된 사유가 매우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말과 가까이 지낸 전력에다가 성실한 생활습관 덕에 농장에서 아주 훌륭한 생활을 해나가 치우즈의 애정을 듬뿍 받는다. 근데 여기서 얘기하는 애정이라 함은 열여섯 살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남녀 간의 애정이 아니라, 자식 없는 여자에게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모자간의 애정과 더욱 흡사한 관계가 형성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런 좋은 관계가 저 위에서 말한 검정말 검둥이의 힘겨운 출산을 함께 겪으면서 육체관계로 엮이게 되고 이후 뤄샤오산은 치우즈를 여자로 사랑하게 된다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겠지? 아니면 적어도, 그럴 수 있겠지?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조금도 걱정 마시라. 그건 극작가가 다 알아서 정리해주는 거니까.
 치우즈가 뤄샤오산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무대 저 한 편에 조명을 받고 장얼마오가 서 있어서 뤄샤오산과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 이런 장면이 좀 많이 나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이다. 실제로 먼 길을 나서 극장에 가 한 번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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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의정 옮김 / 맑은소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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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읽은 책은 2003년 출판사 ‘맑은소리’에서 안의정이란 사람이 번역한 책으로 현재는 절판이고 책을 찍은 출판사도 짧은 숨을 멈춘 거 같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반값으로 파는 거의 새 책 수준의 헌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작품을 읽고 싶으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21번으로 간행한 <체스 이야기 · 낯선 여인의 편지>나 고려대 출판부의 청소년문학 시리즈 23번 <모르는 여인의 편지>를 읽는 편이 좋겠다. 두 책은 적어도 직역이다. 뭐, 당신이 스무 살이 넘었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거 같은데, 청소년문학 작품에도 좋은 것들이 생각보다 많으니 선택은 스스로 하시라.
 사흘 동안 산악지대를 여행하고 이른 아침에 비엔나로 돌아온 저명한 작가 R씨는, 문득 오늘이 자신의 마흔한 번째 생일임을 알아낸다. 좀 쓸쓸하기는 하지만 평생 독신으로 자유스러운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R씨에게 집사는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도착한 온갖 우편물을 내놓고, 이 가운데 두툼한 편지를 한 통 발견하는데, 발신 주소와 발신인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어제 제 아이가 죽었습니다.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저는 이 작고 연약한 생명을 위해 죽음과 싸웠습니다. 독감이 아이의 가련한 육체를 신열로 달구었던 40여 시간 동안 저는 줄곧 침대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불같이 타오르는 그 아이의 이마를 식혀주며 불안에 떠는 작은 손을 낮이나 밤이나 꼭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흘째 되던 날 저녁, 저도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제 눈이 저도 모르게 감겨버렸던 것입니다. 딱딱한 의자에 앉은 채 세 시간인지 네 시간인지 모르게 깜빡 눈을 붙인 사이 죽음이 그 아이를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는 본문 10 페이지부터 시작하여 132 페이지까지 이어지는데, 그 안에 인상적이지 않은 무수한 삽화가 곁들여져 넉넉잡고 세 시간이면 한 권 뚝딱 해치운다. 한 페이지가 놀랍게도 열일곱 줄밖에 되지 않는 것도 본문을 133 페이지까지 늘리는 신공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터.
 R이 이사 와서 십 수 년을 살고 있는 아파트 앞집에 살았지만, 젊어서부터 잘 나가던 자유주의자, 귀찮은 거 절대로 싫어하고 관심도 없는 R의 눈에는 띄지도 않던 가난한 가족 가운데 꼬마 소녀가 하나 살았다고 한다. 이 소녀가 가정형편으로 인스부르크에 옮겨 살다가 아가씨가 되어 다시 비엔나로 돌아와, 어려서부터 자신의 우상이었던 R의 아파트 창문을 바라다보며 지낸 세월, 그러다 아이를 낳고, 이제 아이가 독감으로 짧은 생애를 마치고, 자신마저 열병으로 숨을 놓을 순간 평생 자신이 사랑하던 작가 선생 R에게 자기의 온 생애를 고백하며 숨을 거두는 이야기다.
 츠바이크의 문장들이 섬세하게 감정을 자극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것이 다다. 아니면 내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작품을 보고도 이제는 더 이상 감동할 줄 모르는 건조한 가슴을 가졌는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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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아래서
존 골즈워디 지음 / 떡갈나무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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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서 옥스퍼드의 데블런 교수는 영국 소설가 가운데 베스트 네 명이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라드를 꼽은 반면, 워스트는 아니지만 반드시 평가절하 되어야 할 작가로 윌리엄 셰커리,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 존 골즈워디를 선택했다. 다른 사람 작품은 다 읽어봐서 찬성 또는 반대할 수 있었지만 유독 한 명, 존 골즈워디의 소설을 한 편도 읽어보지 않아 뭐라고 찍소리 한 번 할 수 없었던 것이 이번에 <사과나무 아래서>를 읽은 사연이다. 우리나라에서 골즈워디의 번역서를 읽으려면 사실 <사과나무> 말고는 선택의 여지도 없는데, 정작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 건 <재산가>와 <포사이트 가家 이야기>이며 이 중에서도 <재산가>로 193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책 앞날개에 적혀있다. 그래 사실 이 <사과나무> 한 편으로 골즈워디를 판단하는 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란 건 확실한 듯.
 이거 우리나라 70년대를 풍미하던 멜로 영화와 비슷하다. 요즘 열심히 읽고 있는 중국 남송시대 곤극, 천극, 월극과 내용이 같지는 않지만 유사하다. 남자 주인공은 사법시험을 눈앞에 둔 잘생긴 청년이나 과거를 보기 위해 수도 항저우를 떠나 이제 겨우 곡강曲江에 도착한 선비는 아니지만 막 대학을 졸업해 변호사 자격증을 딴 부르주아 청년. 여자 주인공은 룸살롱 35번 아가씨 미스 박도 아니고, 사당에 기거하는 가난한 아가씨도 아니고, 늙은 남편과 살던 과부도 아니라 시골 숲 속 농가의 과부 여주인의 조카로 거의 하녀 비슷한 신세의 처녀 아가씨다.
 우리의 주인공 프랭크 어셔스트가 친구 하나와 함께 제발트처럼 웨일스 지방 일대를 도보여행 하고 있었는데, 대학시절 축구를 하다가 무릎을 다친 적이 있는 어셔스트의 무릎이 부어올라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가 근처 민가에 숙박을 하게 된다. 친구는 하루 만에 떠나가고 프랭크만 혼자 몇 주 동안 농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떨어진다. 아이고 징그러워. 그럼 최소한 보름이 넘는 동안 이 부르주아 변호사 젊은이는 한 번도 팬티를 갈아입지 않았다는 말씀. 이런 남자의 눈길을 딱 한 번 받는 것으로 순진하고 순박하고 무구하고 마음 착한 메건 양은 그만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사랑은 두 손으로 치는 손뼉. 이에 어셔스트도 메건의 순결하고 선한 진면목을 발견하고는 손바닥도 마주치고, 입술도 마주치는 자연현상이 벌어지고 만다.
 여기까지는 좋다.
 어떠셔? 우리의 프랭크 어셔스트. 부르주아 인텔리겐챠, 런던 사교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젊은이가 겨우 이름자나 쓸 줄 알 뿐 교양이라고는 쥐뿔도 없이 그저 착하기만 하고 때 묻지 않은 시골 아가씨와 맺어질 수 있을까? 아니, 맺어지는 게 바람직한가? 이 책을 번역한 소설가 홍성중은 “어서 메건에게 돌아가, 어셔스트!”하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는데, 참 나, 외칠 걸 외쳐야지, 좋아, 그럼 둘이 진짜로 교회에서 식 올리고, 시청 호적계에 가서 혼인신고 하면 행복해질 거 같아? 흠. 이 책이 초간본인데 1997년에 찍었다. 그럼 인간 행위와 사고를 탐색하는 소설가를 직업을 삼은 홍성중의 나이도 만 서른일곱. 세상을 알 만한 나인데 어찌 그런 걸 ‘외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써놓아도 뒤 이야기는 눈에 훤히 그려지시리라 믿는다. 그냥 전형적인 7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유행했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멜로물. 만일 그의 대표작인 <재산가>나 <포사이트 가의 이야기>도 이 수준이라면 미치너가 주장한대로 이이가 아무리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유명작가라 해도 평가절하가 당연하겠지만, 다시 말씀드리건데, 이 작품 하나로 골즈워디를 그리 폄훼할 수는 없겠다.
 이 책, 지금 절판. 출판사도 망한 거 같다. 마지막으로 책을 낸 것이 18년 전이니. 구해 읽으려 애쓰실 필요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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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 개정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4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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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의 시대>, <기쁨의 집>을 읽고 아이고,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북동부 와스프라는 인종들의 허위의식에 학을 떼고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으면서도 기어이 한 번 더 이디스 워튼을 읽은 이유는 바로 전에 독후감을 쓴 프랭크 노리스를 읽은 사연과 같거나 비슷하다. 미치너의 <소설> 속에서 미국 문학의 앞 세대에 우러러 찬미해야 할 작가 네 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디스 워튼을 선택해서.
 <이선 프롬>. 사람 이름이다. Ethan Frome. 이름 뒤에다가 수산기水酸基 OH를 붙이면 ’Ethanol' 즉 화학식으로 C2H5OH, 에탄올, 천국으로 가는 가장 저렴한 액체를 우리는 이렇게 부르고, 나는 순수 에탄올에다가 에탄올의 세 배에 해당하는 설탕물을 섞은 액체, 즉 25도짜리 희석식 진로소주를 대단히 사랑한다. 에탄올이 “혀끝을 스치면, 온 몸이 짜르르르” 이게 1970년대 초 중반까지 흑백 TV를 타고 흘러나왔던 CM 광고노래였다. 아마 “진로 한 잔 하면, 어허 기분이 좋아요, 진로 파라다이스!”하면서 끝났지 싶다.
 아 또 삼천포.
 만일 내가 <이선 프롬>을 첫 이디스 워튼으로 읽었으면 그이를 지금처럼 우습게 알 것 같지는 않다. 워튼이 살던 매사추세츠 주, 소위 뉴잉글랜드 지역의 산골을 배경으로, 한 불운한 부부와 이들의 틈에 끼어든 젊은 여인이 만들어낸 더 큰 불행에 관한 이야기.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가 매사추세츠 주의 스타크필드 지역의 한 발전소에 파견 왔다가 직원들 파업 때문에 겨울 내내 북풍한설 몰아치는 뉴잉글랜드에 발이 묶여, 주워들은 이야기를 적은 형식이다. 역시 스타크필드. 원래부터 스타크 가문이 터를 잡은 동네 윈터펠이 이 스타크필드에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확인한 바는 없다.
 그럼 이선 프롬의 집안 얘기를 좀 해보자.
 이선 프롬이 십대 시절, 아버지가 오래 아팠다. 그래 어머니와 이선이 정성을 바쳐 간병을 했지만 아버지는 집안의 재산만 거덜내고, 공과대학 다니던 이선의 대학 공부도 작파시키고 그만 숟가락을 놓아 버리고 만다. 그러자마자 이번엔 또 어머니가 비시시 쓰러져버린다. 이제 이선 혼자 집안일, 목재소, 농장까지 다 도맡아 해야 하는 처지가 되니 도무지 여력이 없어서 어머니의 친척, 이선의 사촌 가운데 ‘지나’라는 이름의 외로운 아이를 골라 집에 데려와 가사일도 시키고 간병도 시키면서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도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하고 남편 따라 먼 길을 가버리니 이제 천애고아가 된 이선. 지나마저 떠나려 짐을 싸는데, 갑자기 세상에 자기 혼자 남아버렸다는 황망함과 상실감에 푹 젖어 그리 애정도 깊지 않은 지나와 불쑥 결혼을 해버린다. 그리고 결혼 7년차. 이제 이선의 나이 스물여덟. 아내 지나는 서른다섯. 벌써 몇 년 전부터 지나의 몸에 이상현상이 생겨 시름시름 앓아 집안 꼴이 말도 아닌 처지. 둘 사이에 아이도 없고, 건강을 망친 지나는 이도 몽땅 빠져 밤이면 물을 채운 컵에 틀니를 담근 채로 침상에 올라야 하는데, 이제 나이 스물여덟, 새벽마다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르는 정념을 날마다 힘겹게 달래야 했던 이선 입장에서 그게 쉬운 일이겠느냐 이거다.
 그래 1년 전부터 아내 지나 쪽 친척으로 ‘매티’라는 사고무친의 아가씨를 불러 마치 몇 년 전 지나처럼 가사일과 간병을 시킨다. 그것이 화자인 ‘나’, 발전소 엔지니어가 눈의 나라 스타크필드에 머물기 24년 전 벌어진 일이다. 벌써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감이 잡히시리라 믿는다. 아이 없는 가정. 이가 몽땅 빠진 병중의 늙은 아내와, 젊은 남편. 반 간병인, 반 하녀 역으로 들어온 아름답고 젊은 친척 아가씨. 병, 특별히 오랜 병은 환자를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만든다. 더구나 자신이 남편의 어머니를 그리 정성들여 병구완을 해주고 살림도 꾸며주었건만, 이제 자신이 병이 들고 늙어버리니 어쩌다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내 친척 동생에게 한눈을 파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을, 이걸 어찌할꼬. 남편과 매티의 눈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눈물이 흐르는지 뻔히 알겠건만, 정작 내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어찌하여 그들은 알아주지 않을까. 여자 나이 35세면 이제 몸의 감각이 어떤 희열을 선물하는지 알게 되는 시기. 그러나 남편은 몇 년 째 같은 침상에 오르지 않고, 매사에 활기차게 재잘거리는 매티를 바라보는 눈을 통해 애절한 갈증의 모스 부호를 쏘아대고 있으니.
 정말?
 아니,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진짜 이디스 워튼을 다시 보게 된 거냐고? 그렇다. 왜 그런지는 이 독후감에서는 얘기 못하겠다. 왜냐하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홱 돌아버린 것은 이들의 삼각관계의 비극이 무르익어 드디어 사고를 치는 본문이 아니라, 이제 24년이 다 지나 어느덧 이선이 52세, 아내 지나가 59세가 된 지금, 이들의 본질을 알아내고서다. 즉 에필로그가 죽여주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어떻게 그걸 말해주냐고. 안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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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0-07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작품이 이디스 워튼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Falstaff 2019-10-07 13:54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앞으로 더 읽어볼 생각이 지금은 없지만요. ^^;;
 
맥티규
프랜크 노리스 지음, 심규세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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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노리스의 <맥티그>는 미치너의 <소설> 속에서 편집자와 작가인지 평론가인지와의 재미있는 대화에 주제가 되는 작품이다.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 출판부에서 <맥티규>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내놓았지만 조만간 다시 번역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작품으로 생각한다. 저자 노리스는 1870년에 시카고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유복한 사업가의 자제로 그림을 잘 그려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는데 엉뚱하게도 ① 세계 회화의 중심지 중에서도 중심지 파리에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소설 쓰는 것으로 직업을 바꾸었지만, ② 파리에서 무엇을 했는지 어쨌든 그의 대표작인 <맥티그>를 읽어보시면 즉각 아시겠으나 노리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에밀 졸라는 정작 다시 미국으로 귀국해 캘리포니아 대학을 다닐 때 처음 읽었다는 거다. 작가 소개를 읽어보면 흥미로운 구절이 나오니, “Norris는 놀라우리만큼 잘 생겼으며 자신의 뜻이 강했고 조숙한 재능을 타고났었다.” 뜻이 워낙 강해 신문 통신원으로 근무하다 남아프리카로 파견을 나갔다가 영국의 트란스발 침공 때 보어 공화국 정부로부터 추방되기도 했단다. 하여간 소설 <맥티그>와 <문어Octopus>를 쓰고 명성을 얻었지만, 놀라우리만큼 잘 생긴 노리스는 불과 서른두 살 때 복막염에 걸려 갑자기 숟가락을 놓고 만다.
 이 책은 본문이 1 페이지부터 시작해 270 페이지로 끝나지만, 읽기가 쉽지 않다. 놀랍게도 크라운판이다. 가로 176mm 세로 248mm. 주문제작한 내 책꽂이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게 다가 아니라 한 줄에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47자, 원고지 두 줄 반이 들어가고, 한 페이지가 무려 33줄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편집하기 위해 당연히 글씨체가 보통의 책보다 작아 처음엔 적응이 잘 안 된다. 눈 침침한 세월을 사신 분은 아쉽지만 다른 번역본이 나오기를 기다리시는 편이 만수무강에 도움이 될 듯.
 책의 내용은 완전히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한 권을 읽는 것 같다. 미치너의 <소설>에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목로주점>의 몇 컷은 틀림없이 참고를 했고, 여자 주인공 트리나는 <인간짐승>의 파지 고모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보바리 부인>의 보바리 여사를 섞어 놓은 것처럼 읽힌다. 즉, 미국식 자연주의 소설의 끝판왕. 기껏 프랑스 유학을 보냈더니 거기선 읽지도 않은 졸라의 스타일로 샌프란시스코 중류 계급의 물신적 생활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주인공 맥티그는 키가 6피트 2인치. 19세기 서양인치고도 대단한 거구이며, 어려서 탄광에서 탄차 미는 일을 해 몸 자체도 무시무시한 완력을 지원해주는 근육질이다. 평생 탄광에서 썩을 것 같아 어머니가 지긋지긋한 탄광촌에서 벗어나라고 어려서 탄광촌에 굴러들어온 돌팔이 “야매 치과의사”의 도제로 보내버린다. 그래 새크라멘토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무 생각 없이 대를 이은 야매 치과를 개업해 무려 십여 년 동안 치과를 운영해가며 대외적으론 치과의사이자 ‘맥티그 박사’라는 타이틀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 스스로 단 한 번도 자기가 박사라는 얘기를 해 본 적이 없었건만 어찌어찌하여 환자들과 주민들은 그를 박사라고 공경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은 치과대학은커녕 ‘대학’이라는 게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평소 활발한 활동과 거리가 먼 거구의 매티그에겐 유일한 절친이 한 명 있다. 누군가하면, 생사를 함께할 정도로 밀접한 마커스란 친구, 마커스는 매티그와 달리 활동적이고 눈치가 빤하며 출세 지향적이지만 돈 좀 생기면 남부로 가 목장을 운영하며 카우보이 비슷하게 살 꿈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마커스는 저 위에서 말한 여주인공 ‘트리나’라는 사촌 아가씨를 은근히 연모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맥티그보다는 넓은 사교범위를 가지고 있는 그는, 그네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이가 부러진 트리나를 치료하며 사랑이 움튼 맥티그에게 기꺼이 트리나 아가씨를 소개해 결혼에까지 이르게 해준다. 딱 여기까지가 해피 스토리.
 위에서 얘기했듯 졸라의 <목로주점>과 <인간짐승>, 그리고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섞어 놓은 듯한 작품이 해피 엔드면 이야기가 되겠어? 그래 불행이 시작되는데, 언제나처럼 불행은 가장 행복할 때 그 씨가 뿌려진다. 약혼을 하고 결혼을 며칠 앞 둔 시점에 트리나가 돈을 그냥 버리는 셈치고 복권을 산 적이 있는데 그게 무려 오천 달러의 거금에 당첨이 되는 거다. 당시가 19세기. 오천 달러가 지금 돈으로 수십억 원대의 꿈같은 돈은 아니더라도 십억 원 가까이는 되는 거 같다. 게다가 당시 금리가 6% p.a. 수준이라니 한 달에 25달러의 연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 그래 가만히 생각해보니, 마커스 입장에서 말이다, 자기가 트리나를 맥티그에게 넘기지만 않았어도 5천 달러는 결국 자기 것이 됐을 텐데, 괜히 오지랖 넓게 깝친 결과 곰 같은 맥티그 놈만 장땡을 잡은 거 아닌가 말이지. 이런 생각은 한 번만 하고, 술 한 잔 사라, 해서 한 번, 딱 한 번 술주정을 퍼부은 다음에 없는 걸로 해야 정상인데, 아직 세월을 덜 산 마커스는 그걸 평생의 실수를 넘어 심지어 5천 달러는 자기 것이란 이상한 셈법이 머리에 박히게 된다. 이게 점점 향상 발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잡아 맥티그의 앞날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니 이 아니 비극의 씨앗일까.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여쁜 트리나는 또, 나름대로 5천 달러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그걸 사업하는 삼촌에게 맡겨 한 달에 25달러씩 꼬박꼬박 이자를 받는데, 원금을 까먹는 일은 자기 생전에 없어야 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그걸 넘어 원금을 불리려는 집착까지 생겨 마치 보바리 부인이 재미있는 것, 예쁜 것에 광적으로 몰두하듯이 5센트, 쿼터를 저축하기 위해 곰 같은 남편 맥티그를 계속해서 잡도리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데, 이래서 과연 행복하겠어? 플로베르와 졸라가 동시에 잘 하는 것이 사건을 자연스럽게 극한으로 몰아가는 일. 행복의 순간으로 결혼식 만찬 장면이 나온다. <목로주점>에선 제르베즈 아줌마가 거위를 잡아 한 식구가 게걸스럽게 포식하는 유명한 광경을 묘사하는 거 기억하시지? <맥티규>에서도 통거위, 삶은 송아지 대가리, 구운 자도(자두) 같은 음식을 거덜내는 열광의 장면이 압권이다. 마찬가지로 불행과 비참의 순간 역시 기어이 끝장까지 다 묘사를 한다. 물론 19세기 식 끝장이니 지금 수준으로 보면 보는 사람에 따라 귀여운 수준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을 터.
 그럼 내용은 짐작하시겠지?
 다만 심규세 선생이 이 책을 번역한 다음에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래 낡은 표현과 단어들이 많이 눈에 띄어 별점 하나를 뺐다. 미국 문학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이런 훌륭한 책은 이제쯤 새로운 역자에 의해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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