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거짓말 - 지금까지 몰랐던 한국인의 거짓말 신호 25가지
김형희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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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거기 어디셔요?! 지금 교실이 발칵 뒤집힌 것 모르시고! 제 아들, 그니까 우리 현이가 도둑으로 몰려 교실구석에서 아이들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있다구욧!!!

 

다짜고짜 치고 들어오는 거친 중년여자의 목소리에 순간 얼이 빠졌지만, 금새 상황파악 되더라고. 아닌게 아니라 오늘 조회시간에 우리반 여학생 3명이 동시에 돈을 잃어버렸다고 볼멘소릴 하길래 반 아이들에게,  이만한 시기에 실수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다, 훔칠려고 작정하고 그러지 않았다는 거 다 아니까 창피해하지 말고 언제든지 선생님한테 와서 사실대로 말해주면 좋겠다, 것도 힘들면 선생님 서랍에 자백서든, 돈이든 몰래 넣어두고 가면 된다 했지. 왜 흔히들 그 나이에 한두번씩은 그런 경험이 있잖아 다들.

 

그러고나서 교무실로 들어오는데, 구가 나를 조용히 따라와서는 이러는 거야. 선생님, 저 그 돈 누가 훔쳤는 지 알아요, 현이가 어제 내게와서 자랑했어요, 걔들 돈 내가 훔쳤다고, 하는 짓이 얄미워서 그랬대요.

 

누구? 현이? 우리반 그 현이? 공부 잘하고 인사성 밝고 운동 마저 잘하는 그 모범생 현이? 순간, 뜨아했지만 선생님이 자세히 알아볼 때까지 발설하지 말라 신신당부하고 돌려보냈어.

 

그러곤 현이를 긴밀히 불렀지. 왜 그랬니? 네가 구에게 '그랬다고' 자랑했다면서 어제. 그냥 장난으로 한번 해본 말이었다고?

 

 

흠..이런 경우 이 대목이 가장 예민해. 폭탄이 되느냐 폭죽이 되느냐. 한 아이 말만 듣고 물증도 없이 도둑으로 몰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나마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어. 녀석은 오래도록 범생이었으니까.

 

거짓말을 거짓말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최악은 진실을 거짓말로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다 207 P

 

현아, 친구들이 잃어버린 돈이 얼마지? 만원, 오천원, 이천원이라고? 넌 그걸 어떻게 알았지? 잃어버린 돈 액수에 대해 알고 있는 친구들은 당사자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데 말이야. 선생님 조차도 몰랐어.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이 들 때 돌발적인 질문을 던져 말이 어떻게 꼬이면서 실수가 나오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거짓말을 간파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103 P

 

그러더니, 그 녀석이 잠시, 아주 잠시 머뭇거렸어. 꼼지락대던 손가락이 정지했고 눈동자는 허공을 향해 치켜들었어. 이녀석, 거짓말을 하는 구나.

 

얼마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최순실게이트에 연루된 고영태씨가 딱 이짝이었어. 박근혜대통령과는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움찔하며 반박자 늦추어 말했거든. ‘가방으로 알게 되었다고.

물론 희대의 사기꾼들은 눈하나 깜짝안하고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해대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지어낼 때는 답을 바로 할 수가 없어. 머리를 회전시켜 조작된 기억을 끄집어 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진실을 말하는 사람든 뇌의 기억 저장소에 있는 것을 꺼내오면 되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 사람, 환경 등을 창조해내야 한다. 49 P

 

 

하여튼, 그 녀석은 그 잠깐의 찰나를 빌어 이렇게 말하더라고. 아니에요, 걔네들끼리 말하는 걸 제가 슬쩍 들었을뿐이에요.

 

현이를 교실로 돌려보내고 나니,

아니나다를까 현이 어머님이 덩치가 산만한 고모님을 두 분씩이나 대동하고 납셨더라고. 내 손으로 그 도둑놈을 발본색원하겠다며 달려드는 폼이 당장에라도 선생인 나를 포함한 우리반 학생들 모두를 아작낼 분위기였어.

그래서 그간의 정황을 그대로, 현이와 나의 대화를 포함해서 만연체로 오랜 시간에 걸쳐 전해드렸더니,그 살기등등했던 어머님이 무슨 낌새를 챘는 지 그만 풀이 죽어서는, 그 놈 찾아 뭐하겠어 그만, 이제 그만하면 됐어요. 하며 눈을 내리깔며 애궃은 코만 수십차례 만지작거리지뭐야

 

'피노키오 효과'라는 것이 있다.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코와 눈 주변 근육의 온도가 상승한다. 거짓말을 하면 카테콜라민이라는 화학물질이 분비되면서 코 속의 모세혈관이 팽창되고 혈압 또한 상승한다. 모세혈관의 팽창으로 코 조직도 팽창하게 간지러움을 느끼는데,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코를 만지게 되는 것이다. 106 P

 

후훗. 이런 일들은 속전속결이 답이지. 종례시간, 범인을 찾았어, 다른 반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우리반 말고도 여러교실이 털린 모양이야, 다행히 실토를 해서 우리반 친구들 잃어버린 돈까지 돌려받았어.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둔 돈을 챙겨 아이들에게 돌려주었고 말이지. 다음에는 친구를 함부로 의심해서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모두 신경쓰도록 하자. 하며 끝냈어.

 

'선의'라는 매우 주관적인 기준이 들어가는 이상 무엇을 선의의 거짓말로 판단해야 할지는 매우 모호하다. 다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독이 되기도하고 득이 되기도할뿐이다 193 P

 

 

그 녀석 표정이 어땠냐고? 처음엔 얼굴색이 새까매지면서 고개를 숙이고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더라고. 하하, 찾아와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했냐고? 나참. 이 어리숙한 중생같으니라고. 요즘 그런 아이 드물어. 사실 내심 아주 기대를 안한 것은 아니지만 현이 같은 아이, 머리좋고 이기적인, 한마디로 사회를 본능적으로 아는 아이들은 절대 손해볼 짓은 하지 않지.

이 판에서는 선생님이 자기에게 졌다고 생각할거야. 학교에서는 선생님 보다 부모의 권력이 더 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선생님이 그러면 안된다고?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줘야 제대로 된 선생 아니냐고?

네 말이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야.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녀석에게 시간을 줘 보려고. 그게 언제가 되든 훗날  알게 될 날이 있을 거라 믿어. 그러고는 그와 비슷한 상황이 오면 그 녀석도 누군가를 기다려주지 않겠어?

하지만, 이일로 무척 씁쓸해. 미안하기도하고. 아니 아니, 걔들 말고 현이에게 누구보다 미안해.

침울해있다 금방 아무일 없듯이 웃고 떠드는 그 녀석에게 거짓이 진실을 이겨먹은 나쁜 예를 보여줘서 말이야.

 

하하..술이나 한잔 해, 비도 오는데. 세상 참 재밌지. 안그래

 

우리사회에서는 속였다가 들키는 사람의 회복보다 속은 사람의 회복이 훨씬 어렵다. 한국인의 거짓말이 가진 고유성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정하지 못한 게임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11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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