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eBook]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종 직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모 아니면 도 다

 

살려만 달라 벌벌 떨거나

바삐 죽여달라 애원하거나.

 

보통은 전자일 경우가 허다하나

혹 가다, 정말 혹 가다 열에 하나 정도는

무심한 듯 내 손을 잡고는 솜사탕처럼 말한다 - 나 좀 죽여 주면 안될까?

 

처음엔 '저는 하느님이 아닌 걸요?' 하며 농담으로 뚱치지만

어느 순간 그 격조 높은 농담에 중력이 느껴 질 때면,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쳐 진단말이지.

 

독약 하나 사다 줄 절친 하나 없을 줄,  내 목 조를 힘하나 없을 줄, 이래 죽는 게 힘들 줄

미처 몰랐다며 그 많은 사람들을 제쳐두고 유독 나.에.게.만. 죽을 힘을 다해 말할 때는 그 진심에 진저리가 쳐져 나도 모르게 마약 대여섯발을 장전한 주사기를 그 가슴 팍에다 그대로 꽈악 꽂아 주고 싶어진다

 

의사조력자살 또는 의사조력사망은 나름의 가치관에 따라 허용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각자의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몇몇 나라에서 이미 법적인 보호 아래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아마도 우리 세대의 마지막쯤에서는 이슈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히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 가다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현란한 말들로 입막음한다

뭔 소리냐, 붓다도 말년엔 지독한 설사를 만나 죽을똥 살똥 고생하다가 열반에 드셨다, 이봐라 아무리 훌륭한 성인이라도 그 '업'을 다해서야 비로소 세상과 하직할 수 있다, 만일 오늘 눈 떠 아직도 고통 속에 숨이 붙어있거든 아직 탕감할 '업'이 남았겠거니 하고 종일 염불하시라........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벨을 누르는 손가락이 절로 떨렸다

점집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박수무당이라니.

딱히 물어볼 말도 없었다. 직장에 사표는 진즉에 폼나게 던져 놓았고,

저 잘난 맛에 사는 남편은 황천길에서도 허세를 부리며 한량 짓을 할 양반이고

이런 유전자를 장착한 우리 아이들은 하늘이 두 쪽이 난대도

제 갈길 갈 녀석들이고.

그렇다면 난

대체 뭐하러 훤한 대낮에 이렇듯 멋대가리도 없는 낯선 문 앞에 서서 애궂은 손가락을 떨어대고 있는 지 모를 일이었다

 

약속 보다 일찍 오셨습니다

 

허우대가 멀쩡한 남자 였다. 예의 티비에서나 봄직한 요사스런 행색의 늙수레한 남자가 아닌

몸매가 다부지고 눈빛이 진중한 흠..뭐랄까 동네 태권사범 같은 반듯한 사내였다

 

제가 너무 일찍 왔나요? 도로 나갔다 올까요?

몸을 돌리다 말고 어중하게 섰다

 

말이 끝나자 그가 피식 웃었다.

 

용하긴 한가본 데 성질머리가 지랄맞다, 예약시간보다 십여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된소리만 듣고 쫓겨났다 는 친구 말에 예약을 잡아놓고 종일 설레발을 치는 바람에 오히려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이다.

친구 말대로의 성깔이라면 삼십 분이나 일찍 왔대서 꼭 쫒겨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나 저나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커피믹스를 탄 종이컵을 내밀며 물었다

 

그 성질머리 지랄맞은 무당 놈에게 그만 호기심이 동해 왔다고 말해 볼까 하다가

오가다 간판을 보고요.

누가 들어도 무난한 말을 했다

 

오가다였는 지, 간판이었는 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가 또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요 했다

그의 뒷꽁무니를 따라 방으로 들어서자 벽면가득 색색깔의 휘황찬란한 동자복들이 걸려있고

산신령 처럼 보이는 벽화들이 중앙에 늘어서 있었다

물론 그 앞으로는 과일과 옛날 과자들이 박제처럼 놓여 있었다

방 한 쪽 구석에는 적당한 크기의 좌탁이 있고 그 탁자 위에는 서넛의 방울이 달린 막대와 소복히 쌀이 담긴 놏 그릇이 놓여있었다

그가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고 향을 피우고 호이호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신을 깨우고 불려내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탁자를 마주하고 앉은 그가 마침내 그 방울대를 요란하게 흔들며 연신 휘파람을 불어댔다

왠지 그가 불러낸 신이 코트 깃을 올리며 내 몸 구석구석을 뒤지고 돌아다닐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단추를 턱밑까지 끌어 채우고 있었다

 

엄마, 갇혔네 갇혔어. 너무 오래도록 그러고 있어 갇힌 줄도 모르네 그지? 그래서 못 나오는 거야. 그러지 말아. 그건 그냥 둬. 엄마 몫이 아니야. 답도 없는 것을 들고 너무 오래 놀았다 그지?

종일 제 꼬리 물려드는 강아지처럼 그런다, 평생 그런다, 그러니 지금에라도 털고 나가 놀아 엄마,  여느 인간처럼 먹고 싸고 울고 웃고 탐내고 욕하고 살아. 그래야 사는 거지. 안그래? 엄마는 심심도 안해?

 

 

 

종이컵을 거실 탁자에 내려 놓고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었다. 내 등짝에다 오가다 또 오시란 말을 듣고 나도 뭔가 말하려다 말았다. 가슴은 알고 있는 데 머리로 해석해서 입으로 나오지 않는 미완성의 말.

운전대를 잡고 신호등 앞에 섰다. 아이스크림을 물고 재잘대며 가는 학생들, 그 아이스크림 위로 녹아지는 햇살, 들큰한 바람.  난 심심하지 않아

 

 

 

 

 2

나는 어쩌면 위로를 받고자 했는 지 모른다. 그게 여느 길가 전봇대여도 좋고 공중그네였어도 좋고 지랄맞은 동자에게서든 그게 무슨 형태의 것이든지 간에 말이다

 

 

 

 

   이번엔 그 위로가 영화의 형태로 왔다

   꼭 보게될 이 시점의 나를 위한 것 처럼.

 

   딸이 고향 시골 집에서 '반복되는' 계절을 준비하며

  무료함에 넌더리를 칠 즈음에, 집나간 엄마에게서 온 편지가 그것이다

  정작 이런 뜻은 아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받아 먹었다

 

  매일 원을 반복해서 그리다보면

 그 원안에 갇힌 것 같지만

 그 원은 이미 같은 원이 아니다

 깊이가 다른 사선이다

 

 원과 사선의 연속, 그게 바로 삶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국인의 거짓말 - 지금까지 몰랐던 한국인의 거짓말 신호 25가지
김형희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생님, 거기 어디셔요?! 지금 교실이 발칵 뒤집힌 것 모르시고! 제 아들, 그니까 우리 현이가 도둑으로 몰려 교실구석에서 아이들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있다구욧!!!

 

다짜고짜 치고 들어오는 거친 중년여자의 목소리에 순간 얼이 빠졌지만, 금새 상황파악 되더라고. 아닌게 아니라 오늘 조회시간에 우리반 여학생 3명이 동시에 돈을 잃어버렸다고 볼멘소릴 하길래 반 아이들에게,  이만한 시기에 실수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다, 훔칠려고 작정하고 그러지 않았다는 거 다 아니까 창피해하지 말고 언제든지 선생님한테 와서 사실대로 말해주면 좋겠다, 것도 힘들면 선생님 서랍에 자백서든, 돈이든 몰래 넣어두고 가면 된다 했지. 왜 흔히들 그 나이에 한두번씩은 그런 경험이 있잖아 다들.

 

그러고나서 교무실로 들어오는데, 구가 나를 조용히 따라와서는 이러는 거야. 선생님, 저 그 돈 누가 훔쳤는 지 알아요, 현이가 어제 내게와서 자랑했어요, 걔들 돈 내가 훔쳤다고, 하는 짓이 얄미워서 그랬대요.

 

누구? 현이? 우리반 그 현이? 공부 잘하고 인사성 밝고 운동 마저 잘하는 그 모범생 현이? 순간, 뜨아했지만 선생님이 자세히 알아볼 때까지 발설하지 말라 신신당부하고 돌려보냈어.

 

그러곤 현이를 긴밀히 불렀지. 왜 그랬니? 네가 구에게 '그랬다고' 자랑했다면서 어제. 그냥 장난으로 한번 해본 말이었다고?

 

 

흠..이런 경우 이 대목이 가장 예민해. 폭탄이 되느냐 폭죽이 되느냐. 한 아이 말만 듣고 물증도 없이 도둑으로 몰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나마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어. 녀석은 오래도록 범생이었으니까.

 

거짓말을 거짓말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최악은 진실을 거짓말로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다 207 P

 

현아, 친구들이 잃어버린 돈이 얼마지? 만원, 오천원, 이천원이라고? 넌 그걸 어떻게 알았지? 잃어버린 돈 액수에 대해 알고 있는 친구들은 당사자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데 말이야. 선생님 조차도 몰랐어.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이 들 때 돌발적인 질문을 던져 말이 어떻게 꼬이면서 실수가 나오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거짓말을 간파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103 P

 

그러더니, 그 녀석이 잠시, 아주 잠시 머뭇거렸어. 꼼지락대던 손가락이 정지했고 눈동자는 허공을 향해 치켜들었어. 이녀석, 거짓말을 하는 구나.

 

얼마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최순실게이트에 연루된 고영태씨가 딱 이짝이었어. 박근혜대통령과는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움찔하며 반박자 늦추어 말했거든. ‘가방으로 알게 되었다고.

물론 희대의 사기꾼들은 눈하나 깜짝안하고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해대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지어낼 때는 답을 바로 할 수가 없어. 머리를 회전시켜 조작된 기억을 끄집어 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진실을 말하는 사람든 뇌의 기억 저장소에 있는 것을 꺼내오면 되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 사람, 환경 등을 창조해내야 한다. 49 P

 

 

하여튼, 그 녀석은 그 잠깐의 찰나를 빌어 이렇게 말하더라고. 아니에요, 걔네들끼리 말하는 걸 제가 슬쩍 들었을뿐이에요.

 

현이를 교실로 돌려보내고 나니,

아니나다를까 현이 어머님이 덩치가 산만한 고모님을 두 분씩이나 대동하고 납셨더라고. 내 손으로 그 도둑놈을 발본색원하겠다며 달려드는 폼이 당장에라도 선생인 나를 포함한 우리반 학생들 모두를 아작낼 분위기였어.

그래서 그간의 정황을 그대로, 현이와 나의 대화를 포함해서 만연체로 오랜 시간에 걸쳐 전해드렸더니,그 살기등등했던 어머님이 무슨 낌새를 챘는 지 그만 풀이 죽어서는, 그 놈 찾아 뭐하겠어 그만, 이제 그만하면 됐어요. 하며 눈을 내리깔며 애궃은 코만 수십차례 만지작거리지뭐야

 

'피노키오 효과'라는 것이 있다.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코와 눈 주변 근육의 온도가 상승한다. 거짓말을 하면 카테콜라민이라는 화학물질이 분비되면서 코 속의 모세혈관이 팽창되고 혈압 또한 상승한다. 모세혈관의 팽창으로 코 조직도 팽창하게 간지러움을 느끼는데,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코를 만지게 되는 것이다. 106 P

 

후훗. 이런 일들은 속전속결이 답이지. 종례시간, 범인을 찾았어, 다른 반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우리반 말고도 여러교실이 털린 모양이야, 다행히 실토를 해서 우리반 친구들 잃어버린 돈까지 돌려받았어.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둔 돈을 챙겨 아이들에게 돌려주었고 말이지. 다음에는 친구를 함부로 의심해서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모두 신경쓰도록 하자. 하며 끝냈어.

 

'선의'라는 매우 주관적인 기준이 들어가는 이상 무엇을 선의의 거짓말로 판단해야 할지는 매우 모호하다. 다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독이 되기도하고 득이 되기도할뿐이다 193 P

 

 

그 녀석 표정이 어땠냐고? 처음엔 얼굴색이 새까매지면서 고개를 숙이고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더라고. 하하, 찾아와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했냐고? 나참. 이 어리숙한 중생같으니라고. 요즘 그런 아이 드물어. 사실 내심 아주 기대를 안한 것은 아니지만 현이 같은 아이, 머리좋고 이기적인, 한마디로 사회를 본능적으로 아는 아이들은 절대 손해볼 짓은 하지 않지.

이 판에서는 선생님이 자기에게 졌다고 생각할거야. 학교에서는 선생님 보다 부모의 권력이 더 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선생님이 그러면 안된다고?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줘야 제대로 된 선생 아니냐고?

네 말이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야.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녀석에게 시간을 줘 보려고. 그게 언제가 되든 훗날  알게 될 날이 있을 거라 믿어. 그러고는 그와 비슷한 상황이 오면 그 녀석도 누군가를 기다려주지 않겠어?

하지만, 이일로 무척 씁쓸해. 미안하기도하고. 아니 아니, 걔들 말고 현이에게 누구보다 미안해.

침울해있다 금방 아무일 없듯이 웃고 떠드는 그 녀석에게 거짓이 진실을 이겨먹은 나쁜 예를 보여줘서 말이야.

 

하하..술이나 한잔 해, 비도 오는데. 세상 참 재밌지. 안그래

 

우리사회에서는 속였다가 들키는 사람의 회복보다 속은 사람의 회복이 훨씬 어렵다. 한국인의 거짓말이 가진 고유성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정하지 못한 게임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11 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각몽과 유체이탈의 모든 것 - 페이즈 현상의 메커니즘, 진입기법과 응용사례, 총체적 조감까지
미하일 라두가 지음, 이균형.이지윤 옮김 / 정신세계사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쨌던  깜놀.

 

모처럼 낮잠을 달게 자고 있는 데 남편이 침대옆에서 옷을 주섬 갈아입는 느낌이 나

어디가 했더니 테니스 치러 가 해서 이 삼복더위 누군 돈 받고도 안할 판에 참 가지가지 하십니다 비아냥 대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데 얼마나 지났을까나. 입안에 침이 고여 스르르 하던 차에 딱 그분이 오셨다 '페이즈!'

 

그래 그분이 내게 드뎌 왕림하셨군하셨어. 침을 닦으러 올라가던 손이 몸의 그것과 분리된 느낌이 파박 전해져 왔다는 거. 자, 그렇담 말로만 듣던 그 유체이탈을 한번 해보자고. 엎어져 자고 있는 이마로 '오베'가 목매달뻔한 밧줄을 주문해 내리고 이탈한 양 손으로 한땀한땀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명품 이미지 다 놔두고 싼티나게 왠 밧줄이냐고? 어차피 페이즈 체험은 잠재의식이 만드는 가상현실이라고 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옛날 해님달님이 잡고 가던 동아줄 한번 쥐어 보고 싶었달까. 끙..소,소박해. 안그래?

 

야튼, 뭐든 한번에 되는 일이 없었던 비참한 과거와는 달리 유체가 그 밧줄과 함께 수루룩 한번에 딸려 올라왔고 이탈 성공하면 꼼달대지 말고 곧바로 행동을 계시하란 말에 침대위 널브러진 나를 한번 힐끗 봐주고는 눈을 감고 무소의 뿔처럼 벽을 향해 돌진했다. 맙소사 토,,통과..가 된다..

 

이번엔 깍아지르는 절벽을 상상하니 바로 폭포수 절벽위에 서 있다. 폭포가 내는 굉음으로 고막이 터져 나갈 것 같고 수포로 인해 온몸이 축축히 젖어왔다. 아차 했다. 그때서야 내 꼬라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들면 남녀가 어딨냐며 남편 런닝과 박스팬티를 뺏어 입은 봉두난발의 왠 주책맞은 아줌마 한 분이..소,소박해 그지?

 

이럴 땐 빨리 공중낙하. 공간을 가로 지르며 폭포를 따라 우아하게? 낙하..두렵지 않았다. 여긴 꿈속이니까요. 낙하 도중 등뒤에 혹을 단 이상한 두꺼비와 눈이 마주쳤는 데 알은체를 하며 허를 날름거렸다. 내 무의식 어디에 저 건방진 두꺼비가 있었나. 생각과 함께 요동치는 물속으로 빠졌는 데 그만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거꾸로 파닥대다 어느새 몸안으로 끌려들어와 차분히 침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렇게 허탈할 수가.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 물 한잔 들이키고 나니 울컥 안타까움이 올라왔다.

공중낙하를 하는 게 아니었어. 차라니 외계인에게 피납되어 화성 땅이라도 밟고 오는 게 훨 재미지고 안전했을 텐데..어이쿠.

 

거꾸로 떨어질 때 바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바닥을 뚫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라.

그저 단순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떨어지려고 애쓰면서 빠르게 아래로 돌진해 나가기를 소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다이빙은 오히려 깨어있는 상태로 돌아가버리게 될 수 있다.

 

분위기가 심상찮으니 아이 둘은 후다닥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남편을 찾으니, 아차차. 테니스 치러 간댔지 참. 이래서야 원..화딱지가 나 그예 남편에게 폰을 하니 어라라 웬 젊은 처자의 목소리가 넘어온다아..누,누구냐, 너.

 

저, 댁 남편 여자친군데요..라는 그 처자 배경으로 물소리, 바글거리는 사람들 소리를 비집고 익숙한 소리하나가 들어온다..뭐야, 빨리 와 다 구버쓰..!!!!!!!

 

무,무에야..다 구버쓰으엇!!! 뭘 구벘고 뭘 빨리와아!! 테니스를 계곡으로 갔나 이 양반이.

이 지지배야 당장 내 남편 바꿔. 바꿔 달란 말이다....!!

 

화들짝 눈을 떴다. 입가에 침은 말라비틀어져 있고 여전히 봉두난발에 남편 속옷 풀셋을 입은 아줌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창가에 배게를 받치고 앉아있다. 이탈하지 않은 양손엔 책을 펼쳐들고..오마낫. 내가 이 백주대낮에 인셉션을 찍은 겨? 꿈 속에 꿈?

 

깜놀. 어쨌던 깜놀하여 확인차?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거울에 비친 폰을 든 엽기 아줌마의 옆태를 뚫어져라 지켜보면서 말이지. 혹시 아는가. 이 또한 꿈일지.

 

페이즈 공간은 대상의 세부에 대한 장시간의 면밀한 시각적 집중을 견뎌내지 못한다. 몇 초만 세밀하게 살펴보면 물체의 모양이 왜곡되기 시작하고 색깔이 변하며, 연기를 내뿜거나 녹아버리거나 다른 식으로 변해버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 The Rit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선악의 간극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여운 영혼 마이클. 가업이 장의사인 탓에 소시적 부터 수 많은 사체를 접하게 된다. 평범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그에게 가장 아름답고도 가혹한 잔상은 어머니의 사체. 그에게 어머니는 선善과 같은 존재(성모마리아)이며 이에 반해 죽음을 치장하는 장의사인 아버지는 전형적인 악惡의 상징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며 천사와 함께 있다는 어머니의 메시지와 아내의 식은 손톱에 붉은 메니큐어를 칠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교차하며 그의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러다 성경 한 구절처럼 어느 눈 먼 신이 그를 택해 신학교를 가게 되지만 신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절망감으로 방황하게 되고 그 끝자락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게된다. 퇴마사 사제 양성교육.    

 

악을 선의 결핍이라고 본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악을 선과 대립하는 실체로 본 아퀴나스 신학은 악마의 존재를 실체로 인정했다.  그리하여 후기 중세교회는 악마를 쫓아내는 의식을 전문적으로 집례 하는 퇴마사 사제를 양성했다.     - 벌거벗은 성서 (이상성)

  

 

     

  

- 인간이 악마인데 누구와 싸우란 말입니까.

악령 홀림을 생물학적,인지심리학적 요인에 의한 '질환'으로 바라보는 마이클은 마침내 노회한 엑소시스트 루카스 신부와 조우하게 된다.

이 영화가 살아있는 이유 중 하나인 안소니 홉킨스가 루카스 역으로 나오는 데 그 옛날 살기충천한 렉터박사의 광력狂力은 세월의 풍광에도 날이 서 있다. 

그는 악의 존재를 의심하는 마이클에게 사제이기 전에 악마에게 수시로 농락 당하는 나약한 인간임을 호소하며 차갑게 경고한다.

- 악마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라네.  

  

또..또 시작이군. 두려움을 무기로 인간을 겁박해 그들의 내면까지도 권력을 행사해 보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   

가령 라이프니츠를 생각해보자. 그는 세 가지 악을 구별한 바 있다. 형이상학적 악, 자연적 악, 도덕적 악. 여기서 형이상학적 악이란 '죽음'을 , 자연적 악은 기근이나 질병과 같은 재해를, 그리고 도덕적 악은 문자 그대로 도덕적인 죄를 가리킨다.  

기독교의 전략은 여기서 형이상학적 악과 도덕적 악을 혼동하고 있다.   

 - 춤추는 죽음(진중권)

  

하지만 그 진부한 발상이 먹히기에 우린 이미 충분히 영악하지 않는가. 

 

공 들이던 어린 임신부 로사리아의 죽음을 목도하자 죄책감에 시달리던 루카스는 그만 악마의 먹이가 되어버리고 그런 그를 구하려던 마이클은 반신반의하던 악마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된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마이클의 영혼을 불러들이기 위한 서곡에 불과했던 것 즉, 그를 위한 악마의 오래 전 역사役事임을 알고 경악한다.

불신의 벽을 타고 악혈이 그의 영혼을 집어 삼키려는 찰나, 죽음으로 묻혔던 어머니의 메시지가 그를 구원해 내며 마침내 그 질긴 악연의 이름을 불러낸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불결한 영혼아. 너의 이름을 내게 밝혀라!   

 

이름은 실존이다. 신이 아담에게 내린 첫 소명은 무명의 자연에게 이름을 부여하여 실체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사탄에 의해 지혜를 갖게 된 인간은 이제 자연을 넘어 추상적인 개념에까지 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악의 존재는 인간의 불손한 의도가 다분히 함축되어 있다. 인간의 무한한 탐욕은 종교와 결탁하여 죄에 악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죽음마저 통제하려 한다. 

   

 

 

   부활절(4월24일)을 불과 몇 일 앞두고 영화가 개봉(21일)되더니 관람 후 부작용으로 시달리고 있는 나 같은 종자種者를 위해 친절하게도 그 처방전까지 따끈하게 마련해 놓았다.

이 책은 엑소시즘 이전에 '악'이라는 근본적인 실체에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영화를 보면서 가지는 반감과 의구심들에 대한 조심스런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은 커다란 물음표를 안겨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50년 내로 어째서 그런 일이 생기는지 밝혀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되죠." 마초니 박사의 말이다.P178

언젠가는 과학이 이런 문제도  밝혀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단순히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험을 무시하는 것은 과학적 호기심이라는 명분을 배반하는 일일 것이다.  P283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한동안 나는 혼돈 속에 얼어 붙어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신음神音은 어린 내 영혼을 울려 놓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루카스 신부의 탈을 쓴 악마가 제 이름을 토해내며 울부짖는 마지막 장면은 나의 뇌리에 문신처럼 와서 박혔다.  

바알. 그의 이름은 바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