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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독자를 위한 금강경 인문학 독자를 위한 불교 경전 1
김성옥 지음 / 불광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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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이라는 인간의 감정과 생각은 꿈 같고, 이슬 같고, 환영과 같습니다. 생겨난 것이기에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실제로 있다고 믿으면서 언제까지 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괴로움을 부릅니다.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군.’이라고 생각하고 끝내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부정적인 일이 벌어지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라는 생각과 함께 단지 하나의 실패를 점점 내 인생 전체의 실패로 가져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일년, 또 일년 살아가며 한살 한살 나이가 들면서 삶의 기쁨과 슬픔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불청객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나에게만 오는 행복, 나에게만 오는 불행이 아니며 내가 얼마만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나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금강경’의 편견과 어리석음을 부수는 파격의 일침 메시지가 좋았다.
모든 것은 순간일 뿐이라는 것.
그렇기에 지나갈 것이라는 것.

그래서 기쁨과 승리에 도취될 필요도 없으며,
슬픔과 분노에 빠질 필요도 없다는 것.

나는 그저 잠잠히 내게 일어나는 마음을 들여다 보고, 인지하고, 떠나보내면 된다.

금강경은
모든 것을 형상화 시키고, 구체화 시키는 것에 익숙한 삶을 벗어나
존재하는 그대로의 평안함과 만족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이다.

하지만 단지 글자로서 읽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이 경전의 참 의미를 알게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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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어요 - 세상에 혼자라고 느껴질 때,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들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안해린 옮김 / 불광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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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언제든 내가 찾아갈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일까. 힘이 들 때, 지칠 때, 길을 몰라 갈팡질팡할 때.. 그때마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나의 위로가 되어줄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는 삶에 있어서 진정한 승리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그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순간의 위로가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지나가는 짧은 행복일 것이다. 그 짧은 행복이 삶을 계속해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책에서도 위로는 완전한 회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거의 아무것도 회복할 수 없다해도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되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로는 오로지 사람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책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으며, 온전히 나와 만나는 어떤 시간이나 고통에 몸부림치며 나오는 글일 수도 있다.

 

나는 인생에서 사랑을 잃었다. 여기서 사랑은 다만 어떤 대상을 향한 감정만이 아니다. 내 마음에 가지고 있던 밝고 빛나는 것.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사랑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다시 끄집어 올려낸 위로의 조각들은 모두 다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무너뜨리는 것도 사랑이다. 우리가 받는 사랑, 우리에게 부족한 사랑, 우리가 구하는 사랑, 우리가 주는 사랑, 본질적으로 모든 인생은 대부분 이렇게 이해될 수 있다. 사랑의 존재와 부재, 부족과 과잉.”

 

위로는 사랑의 표현이자 사랑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게 그것은 나를 향한 사랑으로 먼저 다가왔다. 나하나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주제에 누구를 사랑한단 말인가. 나하나 제대로 위로하지 못하는 주제에 누구를 위로한단 말인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 변화의 때마다 인생은 덜컹거리고 울렁거린다. 인생의 변화란 시시각각 벌어지는 일이기에 사실 우리의 인생은 계속해서 덜컹거리고 울렁거린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순간의 위로. 순간의 행복. 순간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다시 균형잡게 하고, 숨고르게 해서 다시 움직일 힘을 비축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 덕분에 다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었다.

당신이 필요할 때 나를 찾아요. 나는 언제나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건너가야 할 그 큰 강에 놓인 하나의 징검다리 돌이 되어 주겠습니다.



*불광출판사서포터즈빛무리 활동으로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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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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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비공개 성평등 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다. 트랜스젠더 변호사, 청소년 성소수자 부모 연대, LGBT 인권운동가 등을 모셔서 함께 우리나라의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리로 그때만 해도 조심스럽게 비공개로 이루어졌어야 하는 모임이었다. 자리에 참여한 이들 모두 평범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특히 성소수자인 청소년들의 비밀스럽고도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들의 자살률은 일반 청소년들의 자살률을 훌쩍 뛰어넘는다. 내게도 내 인생의 커다란 반환점을 만들어주었던 사건이 있다. 한 성소수자 학생의 자기 고백이었다. 누구에게도 아무에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말할 수 없었던 아이는 그가 믿었던 신의 사랑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었다. 그리고 사랑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그 신을 섬기는 이들에 대해서도 왜 자신을 인정해줄 수 없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자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인가에 대해서도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 나는 그때 그 아이의 고통을 누구의 시선으로 공감했었던가..

 

이길보라의 책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존재, 평범하지 않은 존재들에 대해 말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존재들 혹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다른 존재라 불리며 사람들의 일상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존재들, 아니면 유난스럽거나 너무 독특하다고 여겨져서 함께하기에는 차마 어렵다고 느껴지는 존재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가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떤 대상에게는 무조건적인 동정의 시선을, 어떤 대상에게는 앞뒤재지 않는 혐오의 시선을, 어떤 대상에게는 무턱대고 경이롭고 아름다운 시선을 보낸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감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서 사용해 왔을까. 우리는 소위 말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평범하지 않은 대상을 향해 일단 먼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틀을 만든다. 그리고 그 틀 안에서 상대를 재단하고 판단하고 이해한다. 그렇게 그를 향한 나의 생각은 틀 안에 갖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이야기에, 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하곤 한다.

 

p25

농인 부모에게서 청인으로 태어난 나에게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부모는 나에게 수어를 가르쳤고, 나는 눈을 마주치며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장애가 된 건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는 농인부모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표정을 찌푸렸다. 제네드를 보며 내가 자란 작은 마을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나의 부모는 불구가 아닌, 와풀과 풀빵을 굽는 사람이었다. 그곳에는 장애가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와 다른 존재의 고통에 대해서 수없이 공감하는 척하며 살아왔다. 그들 또한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의 진짜 삶에 관심이 있었던가 반성하게 된다. 남들보다 좀 더 많이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한 것이 그들에 대해 더 많이 안다는 사실은 될 수 있지만 그들의 고통을 함께한다는 진실은 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느낄 때 당신은 가장 무지한 상태일 수 있다.”

책을 통해 나도 몰랐던 수많은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 안일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p83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타인의 경험과 감각을 상상하며 말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나의 위치가 아닌 너의 위치에서 듣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다르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서평단으로 지원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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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전, 사랑을 계획하다 - 사랑편 웰컴 투 지구별
로버트 슈워츠 지음, 추미란 옮김 / 샨티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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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p

미래는 없어요! 바로 지금이 당신이 존재하는 마지막 순간이에요! 지금 나누세요. 안 그러면 다음 들숨에 이미 기회는 사라지니까요! 미래는 없어요. 지금 여기에서 살아요. 미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아요. 장미는 미래를 모릅니다. 장미는 이 순간만 알고 지금 피어 있는 이 꽃만 압니다. 그런 장미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보세요. 미래가 없는 사람처럼 살고 나누세요. 그렇게 살아봐요. 그럼 자유로워질 겁니다.


-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에서 이 사건은 왜 벌어진 것일까.

왜 이런 일이 하필이면 내게. 벌어진 것일까.


작년 내내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내게 벌어진 그 사건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웠고, 갑작스럽게 내게 닥친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나에게 그런 상황을 가져온 상대에 대한 분노와 배신의 마음으로 고통스러웠다.

삶에 대한 의지. 삶을 붙잡고 있던 끈이 탁. 하고 끊어진 느낌이었다.


그 시간은 ‘죽고싶다’ 라는 단어보다는 ‘살고싶지 않다’는 단어가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살아있는 시간이 끔찍하게 힘들었고 도저히 삶에 대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가지는 생명력은 참으로 끈질긴 것이기에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 채찍질하고 발버둥 쳐야 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하게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며 내가 발견한 한 점의 작은 빛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 나’였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도, 미래에 가있지도 않은 그저 지금 이 순간. 지금 존재하고 있는 나.

그것만이 내가 살아갈 유일한 이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나의 시선이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시선이 지금의 내가 아닌 미련만 남은 과거의 나와 두려움 가득한 미래의 나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 <태어나기 전, 사랑을 계획하다>에는 각각의 이유로 삶의 고통을 겪은 다섯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책의 저자인 최면 치료사와 영매, 채널러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이 겪고 있는 그 시련의 의미를 찾는다. 결국은 모든 것이 사실 스스로가 디자인한 영혼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아주 오래된 과거의 동양 철학에서도,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 과학인 양자역학에서도 이 문장은 대표적으로 사용된다. 

어쩌면 이 말은 시대를 흐르고 흘러 이어지는 삶에 대한 가장 큰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받아들이고 흘러가라.

이런 고통이 왜 나에게 라는 질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 일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내 영혼이 계획해 놓은 일일수도 있고, 혹은 당신이 믿고 있는 신의 계획일수도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나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태어나기 전, 사랑을 계획하다>를 읽으며 누군가는 영의 존재와 그 세계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수도 있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또한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통해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책은 한 사람.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


■129p

“감정의 흐름과 ‘함께’ 가세요. 그것에 거스르지 말고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이 현재 당신의 진실임을 받아들이세요. ‘바로 지금’ 당신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고통과, 또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는 생각과 싸우지 마세요. 변화에 가장 큰 장애가 바로 그런 저항입니다.

..

‘받아들인다’는 것은 늘 ‘지금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저 지금 이 한 순간 항복하고 저항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세요.”


작년 내내 인도철학 공부를 하며 추구하게 된 나의 인생의 방향은 오로지 ‘나=아트만’을 찾는 것이다. 내안의 참나를 발견하는 것은 곧 사랑의 발견이다. 나에 대한 사랑의 발견을 시작으로 나를 둘러싼 세계와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나에 대한 발견 없이는 사랑에 대한 발견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대한 사랑이니 다른 이에 대한 사랑을 말하기 전 나에 대한 사랑을 먼저 찾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사실 타인을 향한 사랑은 숭고하지고 않고, 투명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나에 대한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내가 나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게 될 때 타인을 향한 사랑 또한 온전한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으리라.


■92p

그렇게 해서 당신 자신에 대해서도 이런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당신이 자신과 거듭거듭 사랑에 빠질 수 있기를, 자신을 사랑하기를, 그리고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몸으로 도전하고 극복해 나갈 시련,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당신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그런 시련 말입니다.


* 서평단으로 지원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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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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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코로나가 보도되기 시작했던 때를 기억한다. 어디에 누구. 확진자의 동선은 여기저기서 파헤쳐지고 그들의 신상을 알기 위해 우리는 신경을 뾰족이 세우고 있었다. 확진자가 발생한 모임에 갔다는 것이 밝혀질까 두려워 방문을 잠그고 숨어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온 도시가 마비된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확진이 되어 혹여 누군가에게 옮기기라도 한 사람은 쳐죽일 사람이 되었고 그 가운데 또 죽어가는 사람, 휴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라는 것이 세상을 덮은지 벌써 2년도 더 넘어가고 있다. 여전히 하루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확진되고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식당에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콘서트도 열린다. 하지만 이 가운데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영역이 있다면 아마 이 책 페퍼민트에 등장한 시안의 가족과 같은 이들일 것이다. 전염병에 정해진 가해자가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것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책 속 시안의 가족이 그렇다.

 

자신이 있을 곳은 누워있는 엄마의 옆.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아이. 시안은 의무적으로 학교를 다니고는 있지만 자신이 주번인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학교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가지지 못한다. 주변 친구들이 수능이니 성적이니 이야기를 하지만 시원에게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사치일 뿐이다. 시원은 바로 눈앞에 누워있는 엄마만 바라보며 산다.

 

71

내가 깜빡 존 사이 엄마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 때문에 쏟아지는 잠을 쫓는 마음을 넌 모르겠지. 해원의 빡빡한 일정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후로 나는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낙오되어 있는지 실감했다. 보통 사람들의 진도를 죽을 때까지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내 미래에 실망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해일. 해일의 가족은 바이러스의 시초이다. 미국 동생을 만나고 온 해일의 엄마로 인해 동네가 마비되고 해일의 가족은 슈퍼전퍼자로 비난을 받다 못견디고 결국 야반도주를 한다. 그때의 충격으로 해일의 동생 해원은 개명까지 한다. 6년이 흐르고 다시 돌아온 동네. 원래부터 단짝 친구였던 해일과 해원과 시원은 운명처럼 다시 엮이게 된다.

 

소설 속 시안에게는 정말 수많은 감정이 보인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 해원을 만나 기쁘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좋지만 우리 가족이 이렇게 된 것은 해원의 가족 때문이라고 하는 원망의 마음. 자신의 또래들과 같이 평범하게 진로나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결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 뿐이라는 마음. 이 마음들 때문에 복잡하지만 사실 시안과 같은 입장이 된다면 누구나 겪울 수밖에 없는 마음일 것이다.

 

121-122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 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릐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 아빠가 썩든 내가 썩든 누구 한 명이 썩기 시작하면 금방 두 사람 다 썩을 것이다. 오염된 물질들은 멀쩡한 것들까지 금세 전염시키니까.

 

148

과거를 잊고 편히 사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겠다는 것이 고약한 마음이라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 뭐? 누구의 인생은 망했는데 해원의 행복은 보장되어야 할 이유라도 있나?

 

시안의 엄마에 대해 알게된 해원도 함께 복잡해지면서 시안을 피하려고도 하지만 해원은 자신의 엄마처럼 그 문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과연 충분한 보상이란 것은 어느 만큼의 보상인 걸까. 어쩌면 시안과 해원은 아직 어른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앙금이 남지 않는 자발적인 작별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상황을 어른이 된 후 맞이했다면 서로 원수가 되거나 아예 없었던 인연으로 정리되었으리라.

 

청소년 소설은 그들의 성장을 보여준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아이들이 성장해 어른이 되면 다시 퇴보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백온유 작가의 이전 책 유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원과 수현, 정현은 성장하지만 유원이 엄마와 아빠, 수현과 정현의 아빠이자 유원을 구한 아저씨는 끝까지 머물러 있다. 전작보다 많이 등장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작 페퍼민트속 해원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문제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옳음을 강요하고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청소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명의 어른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나는. 이들의 성장을 위해 어떤 도움이 되는 어른으로서 존재하고 있는가? 계속해서 깊게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일 것이다.


*본 서평은 창비 스위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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