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피터 L. 버거 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구입했다. 다음의 글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의사한테서 아무래도 앞으로 일 년밖에 못 살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그 사람은 그 끔찍한 소식을 듣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의사한테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단다.

“사회학자와 결혼해서 노스다코타로 가세요.”

“그럼 낫나요?”

“아니요 일 년이 아주 길게 느껴질 겁니다.”(8쪽)

 

 

 

내가 보니까 사회학은 인간 세상의 거대한 파노라마에 변함없이 끌리는 사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 죽겠는 사람, 그래서 필요하다면 열쇠 구멍이라도 들여다보고 남의 편지라도 훔쳐보는 사람에게 매우 적합한 학문이다.(9쪽)

 

 

 

앞으로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사회학과 심리학이다. 그래서 이 분야의 신간이 나오면 관심이 간다.

 

 

고세훈 저, <조지 오웰>도 구입했다.

 

 

이 책을 구입하고 참 뿌듯했다. 원래 두꺼운 책을 싫어하는데, 이 책은 두꺼워서 오히려 좋았다.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읽으면서 오웰에 대해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웰에 대한 책을 찾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

 

 

 

내가 요즘 읽은 책에 ‘믿음’과 ‘사실’을 구분하는 것과 관련한 내용들이 있어 정리해 보았다.

 

 

 

1. 피터 L. 버거 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이 책에 재밌는 농담이 있다.

 

 

 

 

 

한 미국인 부부가 6개월 된 중국 사내아이를 입양했단다. 그리고 그 부부는 강도 높은 중국어 레슨을 받았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 알아듣고 싶어서 말이다. 우리의 이론은 이 농담이 왜 어처구니없는지를 (그래서 왜 웃기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 피터 L. 버거 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120쪽.

 

 

 

 

 

이 글은 틀렸다.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6개월 된 아이는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 또 그 어린애가 커서 말을 한다고 해도 중국어로 말을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 어린애가 중국어로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믿음’이지 ‘사실’이 아니다.

 

 

 

 

여기서는 따옴표가 중요하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이런저런 철학적 기준으로 봤을 때 타당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경험적인 사회과학 방법론을 벗어나는 일이다. 마크 트웨인은 이를 멋지게 표현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에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 또 윌리엄 토머스의 말을 빌리면(모든 사회학 입문 과정에서 암기하는 그 유명한 ‘토머스의 금언’) ‘만일 우리가 어떤 상황이 실재한다고 규정하면, 그 때문에 그 상황은 실재하게 된다.’ 그래서 이쪽 사회에 사는 사람은 자기가 귀신 들린 것으로 ‘알고’ 저쪽 사회에 사는 사람은 자신이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안다’. 경험적인 사회과학자는 각각 ‘앎’의 내용과 결과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 피터 L. 버거 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121쪽~122쪽.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올바른 생각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시각이 올바른 시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믿음’과 ‘사실’을 구분하려면 자신이 무엇이든 알고 있다는 태도를 지양하고 자신의 '믿음'을 의심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2. 고세훈 저, <조지 오웰>

 

 

 

 

 

 

 

 

 

 

 

 

‘오웰’, 하면 생각나는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하나의 예술로 만드는 것”이라는 고백이다. 오웰이 글을 쓴 것은 '예술작품을 만들기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밝히기를 원하는 거짓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겐 너무도 명백하여 변경 불가능한 사실들, 그리하여 조만간 직면해야 할 사실들을 무시하는 능력, 곧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믿으려는 성향이 있다. 마침내 틀렸음이 밝혀졌을 때에도 옳음을 보이기 위해 사실들을 비트는 것이 인간이다. 전체주의 사회는 물론이고 민주사회에서도 득표를 위해 남발되는 공약들, 주요 쟁점에 대한 침묵, 언론의 왜곡 등 이런 정신분열증적 현상은 만연한다.

 

- 고세훈 저, <조지 오웰>, 503쪽~504쪽.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믿으려는 성향이 인간에게 있는 한, 믿음과 사실의 구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오웰은 정치작가로서의 다짐을 이렇게 토로한다.

 

 

 

 

 

책을 쓰는 일이란, 어떤 고통스런 질병을 한 차례 길게 앓는 것 같은 끔찍하고 탈진시키는 투쟁이다. (...) 자신의 개성을 말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쓸 수 없다. (...) 내 작업을 돌아볼 때, 내가 생기 없는 책을 쓰고, 미사여구, 의미 없는 문장, 화려한 수사, 곧 눈속임에 취해 있을 때는 예외 없이 정치적 목적을 결여했을 때였다는 것을 본다.

 

- 고세훈 저, <조지 오웰>, 514쪽.

 

 

 

 

 

여기서 자신의 개성이란 '주관적인 감정'을 말하는 듯하다. 주관적인 감정을 없애야 '믿음'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오웰로서는 진실, 사실과의 정직한 대면, 그리고 그러한 대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는 인간이 주관적인 감정을 온전히 배제하지는 못할지라도,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가능하면 사고로부터 그것을 걷어내는 일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읽을 만한 것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성을 말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가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 정치적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글이라는 의미 - 고 말했을 때,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 고세훈 저, <조지 오웰>, 502쪽~503쪽.

 

 

 

 

 

 

 

3. 이승우 저, <생의 이면>

 

 

 

 

 

 

 

 

 

 

 

‘믿음’과 ‘사실’을 구분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신뢰하는 점이다. 나는 인간의 기억은 신뢰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일이 있다. 과거의 일기장에 현재의 기억과 반대되는 내용이 있어서 놀란 일이다. 그 뒤로 내 기억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작가가 ‘기억’에 대해 쓴 글은 음미할 만하다.

 

 

 

 

나는 내 취사선택되고 검열된 기억 속의 과거로 들어가는 것의 무의미함을 안다. 과거란 희미한 밑그림, 그 위에 어떤 색칠을 하고 어떤 형태를 그려내는 것은 현재의 나이다. 과거란 결국 인상(印象)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승우 저, <생의 이면>

 

 

 

 

 

 

4. 맺는말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수많은 갈등이 ‘믿음’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연인이(또는 친구가) 늦게 오면 자신에게 소홀히 대한다고 생각하고(늦을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인데도) 연인이 하품을 하면 자신과 있는 시간이 지루해서라고 생각한다.(그 전날 잠을 적게 잤기 때문인데도)

 

 

어떤 여자가 말했다. 남자와 맞선을 볼 때 상대가 맘에 들면 자신이 말이 많아지고, 상대가 맘에 들지 않으면 말이 적어진다고. 남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 시간이 지루한 게 싫어서 이런 저런 말을 하며 시간을 때우게 되고, 남자가 맘에 들면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말을 적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상대는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왜 말이 없으시죠? 제가 맘에 안 드시나요?”와 같이 말하는 남자가 있더라는 것.

 

 

두 사람 중 한쪽에서 “당신이 나를 오해했기 때문에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거야.”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당신이 ‘믿음’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거야.”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관계에서든 상대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관계가 악화될 수 있는데, 문제는 왜곡되었다는 것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러니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수전 손택에 의하면, 사물에 대한 해석은 장소에 따라 다르다. 해석이 장소에 따라서만 다르겠는가. 같은 사물이라도 시간에 따라 다른 경우를 우리는 흔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예를 들면 무서운 그림이나 귀신 이야기를 낮에 접할 때와 깊은 밤에 접할 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래서 수전 손택의 다음의 말을 깊게 새겨 둘 필요가 있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즉 잘못된 시각일지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비로소 ‘믿음’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날 것이다.

 

 

******************

 

 

 

어떤 사람이 좋아졌다면 그 사람의 장점 때문일까, 아니면 좋아져서 그 사람의 장점이 돋보이는 것일까. 좋아했던 어떤 사람이 싫어졌다면 그 사람의 단점 때문일까, 아니면 싫어져서 그 사람의 단점이 눈에 거슬려 보이는 것일까. 예를 들면 상대의 목소리가 좋아서 그가 좋아진 것일까, 상대가 좋아져서 그의 목소리가 좋게 들리는 것일까. 이것의 답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곧 ‘사실’일까.

 

 

경험을 통해 무엇을 알았다고 확신하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무엇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 같다. 내가 한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도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에 따라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데, 과연 인간은 어떤 것의 진실(사실)을 알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언젠가는 알게 되는 진실(사실)이 아니라, 끝까지 모를 진실(사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내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진실로 여기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믿음'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진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을 때가 많은 게 우리의 삶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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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6-2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는 곳에서든 안 보이는 곳에서든
진실은 늘 진실일 테지요.

올바르며 좋은 생각을 이끌어서 살아가려 했기에
조지 오웰 님은 숱한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느껴요.

페크pek0501 2012-06-21 13:03   좋아요 0 | URL
예, 된장 님. 오랜 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어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그만큼 세상에 대해 할 말도 많을 거예요. 그것을 글로 쓰겠죠.
요즘 조지 오웰에 대한 글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프레이야 2012-06-2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오랜만의 글 더 반가워요.^^
저도 늘 생각하는 게, 기억이란 인상이더라 하는 거에요.
그렇게 믿고 싶은 대로 마음에 그려진 기억을 스스로 맞다고 옳다고 믿고 우기곤 하지요.
과거의 어떤 동일한 상황이나 장면, 공간을 두고도 어떤 사람과 대화 중 그 사람과 나의 기억이 다르게 그려져 있는 걸 발견할 때면 참 놀랍고도 신기하구요.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라" .. 겸손하게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경구이기도 하네요.
마음에 갖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2-06-21 13:05   좋아요 0 | URL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듯이, 기억 또한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것 같아요. 누구나 주관적 감정이란 게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나고 나서 제 생각을 고치고 또 고치고 그러다 보면 마치 진실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요. 제가 찾을 수 없는 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듯한...

또 봐요. (난 프레이야 님을 자주 봤으면 좋겠네...ㅋㅋ어쩐지...)

2012-06-21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2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6-21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학과 심리학은 전혀 다른 접근을 하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면 참 골치 아프죠.역사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결국 부딪히는 문제는 '이게 사회구조의 문제냐 개인심리의 문제냐' 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일류급 사상가들도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했잖아요.페크 님은 이 라이벌 학문 중 어느 것에 더 기울어지는지도 알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12-06-22 11:54   좋아요 0 | URL
1. 사회학과 심리학에 대해 공부 많이 하셨나 봐요. 저는 초보입니다. 체계적인 공부보다 그냥 마음 끌리는 대로 책을 하나씩 읽는답니다.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이란 책에 심리학 서적 50권이 소개되어 있어서 그것에서 뽑아 사서 읽는 경우가 많아요. 프로이트, 융, 가드너, 피아제, 파블로프 등의 명저를 비롯, 50권의 내용이 잘 소개되어 있어요.

2. 친구가 이번에 대학 입학해요. 대학을 두 군데나 졸업했는데 또 3학년으로 편입학하게 되었어요. 며칠 전 통화했는데 사회복지학과 심리학을 복수전공 한다는군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심리학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추천하는 교재를 사고 모르는 건 물어볼 참이에요. (왜 그런 친구 있죠? 반에서 1등만 하고 공부를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 친구요.ㅋㅋ)

3. 뒤르켐(‘자살론’의 저자)은 자살의 이유를 개인의 심리적 원인에서 찾지 않고 사회적 원인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는 사회가 문명화할수록 도덕이 붕괴된다는 생각으로, 잘못된 현대사회에서 자살 이유를 밝혀내려 했다.- 제가 올린 페이퍼의 일부분임. (저는 사회구조와 개인심리 두 가지 다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

4. 제가 사회과학 분야의 논문을 썼었는데, 학교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논문들을 찾아보면서 모든 학문은 하나의 길로 통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 학문마다 그 경계선이 모호한 경우가 많아서, 한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선 다른 분야의 공부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5. 둘 중 하나 고르라면 심리학이에요.

(그런데, 제가 왜 이렇게 길게 썼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누가 물으면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나 봐요.)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6-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도 이렇게 꼼꼼한 댓글이 좋습니다.

사회학이나 심리학 분야를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어요,다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사회냐 개인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죠.그래서 역사철학 분야는 반드시 이 문제를 다룹니다.

요즘 심리학을 대중의 취향에 맞게 풀이한 책들이 잘 팔리는 반면 사회학은 잘 안되죠.대학에서도 사회과학 분야 중 제일 많이 없어지는 학과가 사회학과더군요....이것도 시류인가 봅니다.

사회구조와 개인심리 두 가지 다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페크 님은 결국 심리학을 고르셨군요.여기서도 사회학이 판정패했네요.

페크pek0501 2012-06-22 13:56   좋아요 0 | URL
아, 재밌어요. 사회학이 판정패했다는 표현...ㅋㅋ

심리학도 선호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아요. 취직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죠. 다만 대중들은 인간심리에 대해 호기심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쉽게 쓴 심리학 대중서가 잘 팔리나 봐요.(아무래도 심리학 전문서보단 읽기 편하겠죠.) 저 역시도 사회보다 인간심리가 더 궁금하거든요.

<세계명저 사회학30선>, 다케우치 요우우가 쓴 이 책도 괜찮은데,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사회학 명저도 하나씩 읽을 예정입니다.

아, 아까 댓글을 길게 쓰는 바람에 반갑웠다는 말씀 못 드렸어요.

마태우스 2012-07-1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아이에 관한 농담, 재미지네요^^
글구 제가 요즘 너무 서재에 뜸해서, 그리고 페크언니한테 문안도 못드려서,
"좋아했던 어떤 사람이 싫어졌다면 그 사람의 단점 때문일까, 아니면 싫어져서 그 사람의 단점이 눈에 거슬려 보이는 것일까"란 구절을 보면
이거 혹시 내 얘기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페크언니도 요즘 활동 잘 안하셨군요.
전 요즘 갑자기 글발이 불타올라서, 여기저기 마구 글 써제끼고 있답니다.
페크언니도 다시 멋진 모습으로 돌아오시길.
님 글은요 늘 무언가를 배웠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한답니다

페크pek0501 2012-07-14 14:42   좋아요 0 | URL
ㅋㅋ 제 서재에 오랜 만에 방문하시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리신 겁니까? 그런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반가운 마음으로 이렇게 답글을 쓰는 것으로 보아, 저는 지금도 님의 팬이 맞고요...ㅋㅋ

글발이 불타오르신 건 부러운 일인데요. 그럴 때 많이 써야 하는 거죠. 저도 그럴 때가 있었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또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죠.

페크언니라는 말, 언제 봐도 재미지네요. ^^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요즘 우울증은 흔한 병이 되었다. 내 주위에도 우울증 약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친구 중에도 있고, 고모와 사촌도 현재 이 약을 먹고 있다. 우리 친정어머니도 한때 이 약을 먹었다.

 

 

친정어머니는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마음의 병을 앓았다. 그 충격과 허전함을 이기지 못해 병원에 다니며 우울증 약을 먹게 되었다. 그것도 한참 동안이나.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어서 잘 몰랐고, 나중에야 듣고 알았다. 어머니가 방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어머니의 병이 감기인 줄 알고, 그 감기가 너무 오래 간다고만 여겼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내가 당신을 닮아서 부모님이 다 세상을 떠난 뒤에 내가 우울증에 걸리게 될까 봐 걱정이다. 그걸 대비해서 아예 우울증 약으로 뭐가 좋은지를 가르쳐 주기까지 한다. 우울증 약도 종류가 많은 모양이다.

 

 

사람마다 저항력이 약한 정도가 다 다를 것이다. 어머니는 우울증이라는 병에 약한 것이다. “암환자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40% 이상이라고 한다.”(이승혁 저, <고정관념을 깨면 암은 정복된다>에서.) 그러니까 암환자가 되는 불행을 겪는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에 걸리는 게 아니라, 100명 중에서 40명쯤만이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 이들이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머니가 바로 이 40%에 해당하는 셈이다.

 

 

병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사람의 반응은 제각기 다르다. 똑같이 불행한 환경 속에 있더라도 누구는 그것을 극복하고 누구는 그것에 좌절한다. 이것은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리라. 예를 들면, 명랑한 사람은 작은 일에서도 즐거움을 느끼는가 하면, 우울한 사람은 작은 일에서도 비극의 렌즈를 끼고 본다. 그러니 자연히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인식하는 불행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건강과 관련한 책을 읽고, 또 심리학 분야의 책을 즐겨 읽어서 우울증에 대한 글을 많이 보게 된다. 또 주위에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우울증에 관심이 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우울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왜 누구는 우울증 환자가 되고 누구는 우울증과 무관하게 사는 것일까. 또 어떻게 하면 우울증이라는 병을 예방할 수 있을까. 이런 게 궁금했다.

 

 

 

 

1. 착각을 즐겨라

 

 

 

 

 

 

 

 

허태균 저, <가끔은 제정신>은 행복하기 위해선 착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자 테일러와 브라운의 연구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정확하게 지각하면서 비현실적 낙관성을 보여주지 않는 집단, 이른바 착각을 덜 하는 사람들은 다름아니라 바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한다.”(116쪽)

 

 

“우울증에 걸려 착각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착각하지 않아서 우울해지는 것인지, 그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진 않았지만, 둘 다 말은 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본인이 원치 않아도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긍정적인 착각이 힘든지도 모르겠다.”(116쪽~117쪽)

 

 

긍정적인 착각을 하지 못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므로 건강하고 행복하고 싶다면 ‘착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주변에 사업만 했다 하면 실패하는데 아무리 말려도 또 뭔가를 저지르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아! 내가 그래서 실패한 거야. 그것만 아니었으면 성공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반면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는, ‘나는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해도 또 실패할 거야’라고 믿는 것이다.”(107쪽)

 

 

“심리학에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흔히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실패를 많이 경험하면 무기력해져서,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다른 일조차 아예 노력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106쪽)

 

 

이 현상의 핵심은 흔히 생각하듯이 실패를 겪는 것이 아니라, 통제감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실패한 이유를 명확히 알면 무기력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만 고치면 성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 무력감을 경계하라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에 대해 서민 저,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이렇게 설명한다.

 

 

“개를 방에 두고 전기충격을 주면 옆방으로 도망간다. 그런데 개를 묶어 놓고 하루 동안 전기충격을 준 뒤 다음날 자유롭게 풀어 준 상태에서 전기충격을 주면, 개는 옆방으로 도망갈 수 있음에도 그 자리에 서서 전기충격을 다 받는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좌절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은 무력감이 학습되어 상황 변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111쪽)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가 1.6 : 1.0으로 황금비율을 이루지만, 우울증 환자에서는 이 균형이 무너져 부정적 생각이 압도적으로 많이 관철된다”(111쪽)고 하는 것도 무력감 때문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살하는 비율은 세계 5위에 달하고, 사망 원인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 또한 경쟁한 여러 암들을 제치고 10위 안에 랭크되어 있다. <건강프리즘>(홍혜걸)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자살하는 사람 2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이라고 하는데, (…)”(113쪽) 이것은 우울증이라는 병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우울증을 흔히 ‘정신의 감기’라고 부르는데, ‘감기’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현실을 보면 우울증을 그냥 ‘감기’라고 생각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이 병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3. 감정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데이비드 번즈 저, <우울한 현대인에게 주는 번즈 박사의 충고>라는 책에선 중요한 사실을 밝혀 낸다. 인간의 사고(思考)가 감정과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감정과 기분이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사고가 감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사고’이다.

 

 

“기분 변화를 초래한 것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당신의 지각이다.”(41쪽)라고 보는 것이다. 즉 “당신의 기분은 사고들에 의해 창조된 것이지, 실제 사건들에 의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경험은 당신이 어떠한 정서적 반응을 체험하기도 전에 두뇌를 통해 처리되고 의식적 의미가 주어지는 게 틀림없다.”(41쪽)는 것이다.

 

 

“당신을 자신의 정서적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킬 열쇠는 무엇인가? 단순하게도 다음과 같다. 당신 사고는 당신 정서를 창조한다. 고로 당신 정서는 당신 사고가 정확하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불쾌한 느낌은 단지 당신이 뭔가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낼 뿐이다. 당신의 정서는 마치 꼬마 녀석이 제 엄마를 뒤쫓아다니듯이 당신의 사고를 뒤쫓는다.”(62쪽) 그러므로 정서(감정)는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우울증 환자의 잘못된 사고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우울증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겠다.

 

 

 

 

4. 상실감을 극복하라

 

 

 

 

 

 

 

 

실제로 우울증에 걸려 본 적 있는 사람이 쓴 책이 있다. 윌리엄 스타이런 저, <보이는 어둠>이란 책이다. 이 책은 영화 <소피의 선택>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스타이런이 직접 경험한 우울증에 대한 보고서이다.

 

 

우울증의 원인은 대단히 다양해서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저자는 자기 우울증의 원인을 지독한 상실의 경험에서 찾고 있다. 저자가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원인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을 열거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느닷없이 술을 끊게 된 것, 막 예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심한 타격을 받은 것, 작가로서 느낀 무기력의 습격,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그의 아버지는 상당 기간 우울증과 싸웠다.), 열세 살 때 겪어야 했던 어머니의 죽음 등이다. 이런 이유들은 다른 이들이 우울증에 걸리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하나의 사건이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기보다 그것이 ‘잠재되어 있는 우울증’을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참고로, 이 책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맹가리와 까뮈의 우울증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게 전개되어 있다.

 

 

***

(위에서 소개한 네 권의 책들은 우울증을 예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우울증과 관련 없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주위에 우울증 환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을 돕기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5. 많이 웃어라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가 기질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많이 웃는 사람들과 적게 웃는 사람들 중에서 적게 웃는 사람들이 우울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확실하다. 또 웃음이 우울증 치료약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웃는 웃음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진짜 웃음이든 가짜 웃음이든 웃음으로써 근육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우리의 몸에 좋은 엔돌핀이 분비되어, 억지로라도 많이 웃는 것이 우울증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고 한다.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 인생론>. 쇼펜하우어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기질이 우울하고 마음이 어두울 수 있다고 하며, 이는 타고나는 것이며,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용한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천성적인 기질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신은 괴이한 인간들을 많이도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눈을 껌벅이며 그다지 우습지도 않은 피리 소리에도 앵무새처럼 웃어 댄다. 또 어떤 사람은 몹시 언짢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네스토르가 우습다고 하는 농담에도 웃지 않는다.

 

 

- A. 쇼펜하우어 저, <쇼펜하우어 인생론>, 21쪽

 

 

 

 

그다지 우습지도 않은 피리 소리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우스운 농담에도 웃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우습지도 않은 피리 소리에도 웃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결국 웃을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추신 : 웃기 위해서 텔레비전을 통해 개그 프로그램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우울증 예방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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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4-1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페크님! 글 잘 읽었어요. 저 자신한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뜨끔하는 부분도 몇 군데 있고, 마지막에 기질에 대해서 읽으니 저 자신도 우울증과 상관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사소한 일에 웃는 거... 잘 못해요. 아니, 잘 안 하는 건가요? 개콘의 용감한녀석들을 봐야겠어요. 안 될놈은 안되~~

정성 들여 이런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페크pek0501 2012-04-17 12:21   좋아요 0 | URL
아, 오랜만이에요. 반갑습니다.

정성 들여 이런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 요런 감동적인 멘트를 날리시다니... 눈물이 나오려고 그래요.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4-1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윌리엄 스타이론이 저런 글도 썼군요.페크 님의 독서는 정말 다양합니다.

페크pek0501 2012-04-18 15:11   좋아요 0 | URL
ㅋㅋ 다양하지 못해요. 다양하게 읽으려고 노력할 뿐이랍니다.
책은 다양하게 구입하는 편인데, 요즘 읽고 싶은 분야쪽으로만 많이 읽게 됩니다.

숲노래 2012-04-17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증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될 텐데요...
마음에 쌓이는 슬픔은 약을 먹는대서 사라지지 않잖아요.

삶을 바꾸고 삶터를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꿈을 품도록 옆에서 도와주어야 할 텐데요...

에구...

페크pek0501 2012-04-18 15:1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우울증 약을 오래 먹으면 총기가 없어질 듯해요. 그래도 할 수 없는 건 그 약을 먹지 않으면 당장 고통스럽기 때문이죠. 저도 에구...

프레이야 2012-04-1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뇌는 억지로 웃는 것과 진짜 웃는 걸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구요.ㅎㅎ
웃어서 웃을 일이 더더 많이 생기는 하루 보내요 우리^^

페크pek0501 2012-04-18 15:14   좋아요 0 | URL
몸이 웃음의 진실을 판독하지 못함은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가짜 웃음으로 우울함을 날려 보낼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므로... ㅋ

마녀고양이 2012-04-21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가끔은 제정신 이라는 책은
정말 제목만으로도 60점은 주고 가고 싶다니까요...
그런데 서점에서 실제로 본 목차는 제가 원하는 내용이 아니길래 엉뚱하게 <가족의 심리학>만 냉큼 사서 왔지 뭐예요.... 우울증은 정말 무서워요. ㅠ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조울증이더라구요...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연예인의 대부분은 실은 조울증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조울증은 힘이 생겨서, 자살로 가기도 쉽고.. 참 슬퍼요. 서로 사랑해도 힘든 판에, 이렇게 경쟁적이고 서로의 아픔을 딱딱 집어내야 하는 세상은 더욱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론은... ^^ 뽀뽀, 쪼옥~

페크pek0501 2012-04-23 08:17   좋아요 0 | URL
ㅋㅋ 반가운 마고님에게 뽀뽀 반사. ^^
으음, 마고님은 여성적이신가 봐요. 혹시 레이스 달린 치마를 입는 분?
저는 주로 바지를 입는데...

저는 좀 중성적인 면이 있는지라, 여성적인 여성을 보면 재밌고 신선해요. 물론 좋은 뜻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2012-04-2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4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5 0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5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4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소설을 읽는 재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줄거리, 작가가 말하려는 메시지나 의도, 좋은 표현의 문장 등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들보다도 소설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읽는 재미를 최고로 친다.

 

 

신형철의 해설에 이런 글이 있다.

 

 

“소설의 가치를 정서적, 미학적, 인식적 가치로 분류해 보는 일은 단순하나마 쓸모 있는 일일 것이다.”(박완서, <기나긴 하루>, 265쪽)

 

 

그에 따르면 소설에서 다음의 세 가지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정서적 가치 - 감동과 교화로 요약될 정서의 어떤 파고를 유발할 때의 가치.

미학적 가치 - 문장 세공술과 서사 건축술의 장관을 보여 줄 때의 가치.

인식적 가치 - 인간과 세계의 ‘숨은 진실’을 예리하게 제시할 때의 가치.

 

 

이를 쉽게 말하면,

정서적 가치란 감동과 교화가 있을 때 생기는 가치.

미학적 가치란 문장의 아름다움이 있을 때 생기는 가치.

인식적 가치란 숨은 진실이 있을 때 생기는 가치.

 

 

이 중에서 인식적 가치에서 말하는 ‘숨은 진실’이 내가 앞에서 말한 ‘비밀’에 해당하겠다. 그러니까 나는 소설에서 인식적 가치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소설가는 자신이 아는 ‘비밀’을 독자에게 알려 주는 사람인 셈이다.

 

 

밀란 쿤데라가 <소설의 기술>에서 “소설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커다란 주제로 삼지 않는다. 그는 더듬거려 가며 실존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밝혀 보려고 애쓰는 발견자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또 “이제껏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의 부분을 찾아내지 않는 소설은 부도덕한 소설이다. 앎이야말로 소설의 유일한 도덕인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세상에는 인간의 비밀, 세계의 비밀 등 수많은 비밀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다 알지 못한다. 소설가는 자신이 포착한 그 비밀들을 작품을 통해 보여 준다. 이때 그 비밀이, 인간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선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긴 하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일 때에 독자는 소설가의 통찰에 감탄한다. 이것이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다.

 

 

 

 

 

 

 

 

 

 

 

 

 

 

 

 

 

 

 

2.

 

우리가 예상했던 일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일치하는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소설이 있다. 박완서 저, <기나긴 하루>라는 소설집에 들어 있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소설이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이 소설에서 화자의 아들 창환은 1987년 ‘민주화투쟁’의 거리에서 경찰의 쇠파이프를 맞고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아들이 죽은 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화자는 손위 동서와 전화로 통화하며 쏟아 낸다. 이 쏟아 낸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경험하지 않아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비밀’이라고 이름 붙이겠다. 그럼 이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비밀’이 무엇인지 정리해 본다.

 

 

비밀 1 :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겪고 있는 화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배려해 주면 고맙기보다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

 

 

화자의 친한 친구 명애는 아들 잃은 화자를 배려하여 자기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는다. 딴 동창을 통해 그 결혼 소식을 전해 들은 화자는 결혼식장으로 달려간다. 화자는 친구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남에게 배척당하는 기분을 느낀다.

 

 

“형님 제가 뭘 잘못했다구 이렇게 손도를 맞습니까? 제가 손도를 맞는다는 건 창환이의 죽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게 되거든요. 그럴 수는 없었어요. 저는 떨치고 일어나 즉시 준비를 하고 환하게 웃으며 결혼식장으로 달려갔죠. 명예가 어쩔 줄 몰라했지만 저는 늠름하게 굴었어요. 마음으로부터 축하도 했구요. 명애 아들이 장가드는 거 저 정말로 안 부러웠어요. 걔 아들하고 창환이하곤 댈 것도 아니니까요.”(185쪽)

 

 

“(아들 장가들일 때 저를) 따돌리는 것만 아니꼬운 줄 아세요. 너무 잘 해주는 것도 싫어요. 그게 다 한통속이거든요.”(187쪽)

 

 

 

비밀 2 : 아들을 잃고 나서 화자가 부러운 사람은 ‘남의 산 자식’이 아니라 ‘죽은 남편’이다.

 

 

“우리 그이가 회갑도 못 넘기고 세상 뜬 데 대해서도 여한 없어요. 창환이를 앞세우지 않고 자기가 휘딱 앞서갔으니 참 복도 많다 싶어 부럽다 못해 얄밉기까지 한걸요. 제가 부러운 건 오직 그이뿐이에요.”(189쪽)

 

 

 

비밀 3 : 아들을 잃고 나서 화자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달라진다.

 

 

“창환이를 잃고 나서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뭔 줄 아세요. 그때까지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이 하나도 안 중요해지고 하나도 안 중요하게 여겨온 것이 중요해진 거예요. 증조모님 제사도 안 중요해진 것 중의 하나일 뿐이지, 다는 안녜요. 그런 변화엔 저 스스로도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192쪽)

 

 

“(또) 전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중요했는데 이젠 내가 보고 느끼는 내가 더 중요해요. 남을 위해서 나를 속이기가 싫어요. 무엇보다도 피곤하니까요. 가장 쓰잘데없는 걸로 진 빼기 싫어요. 또 있구말구요. 그전엔 장만하는 게 중요했는데 이젠 버리는 게 더 중요해요. 형님보담은 좀 덜했지만 저도 물건 욕심이 꽤 있었잖아요. 누구네 집에 가서 예쁜 접시나 찻잔만 봐도 어디 쩨인가 물어보고, 역시 다르다고 감탄하고, 눈독 들인 건 기어코 장만하고, 그게 사는 재미였죠. (…) 갖고 싶은 걸 애써 장만하고 나면 그리 기쁘더니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다 짐스러워요. (…) 생각만 해도 타지도 썩지도 않을 물건들한테 치여 죽을 것처럼 숨이 답답해지네요.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내가 물건이 싫으니까 남에게도 물건을 선물한 적이 없어요. 물론 창환이 잃고 난 후에 생긴 새 버릇이지만서두요.”(193쪽~195쪽)

 

 

 

비밀 4 : 아들을 잃고 나서 화자는 젊어졌다는 소리가 욕같이 들린다.

 

 

“지금은 아네요. 젊어졌다는 소리도, 좋아졌다는 소리도 꼭 욕같이 들려요. 그렇다고 늙어 보인다거나 야위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도 아녜요. 그런 소리 들으면 내가 하루하루를 얼마나 힘들게 보내고 있는지 들킨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요.”(197쪽)

 

 

 

비밀 5 : 화자가 집에 들어왔을 때 아들의 빈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질 땐, 안에서 맞아줄 사람이 없을 때가 아니라 있을 때이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할 때와 안에서 창숙이나 창희가 열어줄 때가 있잖아요? 안에서 맞아줄 사람이 있을 때가 없을 때보다 좋은 게 인지상정이련만 전 그 반대예요. 그들의 마중을 받으면 창환이의 빈자리가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나도 모르게 무너져내리듯이 밖에서 꾸민 나를 포기해버리죠. 그러나 열쇠로 문을 따고 빈집에 들어섰을 때는 딴판이에요. 창환아, 에미 왔다. 그렇게 활기 넘치는 소리로 말을 걸며 들어가는 거예요. 핸드백을 내던지면서 옷을 벗으면서도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마시면서도 연방 말을 시키죠. 그럴 때는 집 구석구석이 창환이로 가득 차는 거예요.”(200쪽)

 

 

 

독자는 여기까지만 읽어도 자식을 잃고 나면 어떤 모습의 어머니로 살아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소설이 여기까지만이라면 이 소설은 그저 평범한 소설에 불과할 것이다. 이 소설을 평범한 작품에서 수작으로 끌어 올린 것은 다음의 비밀에 있다.

 

 

 

비밀 6 : 화자는 병든 청년인 아들을 웬수덩어리로 취급하는 친구를 보고서 위로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친구를 부러워한다.

 

 

화자의 친구 명애가 화자를 어느 친구의 집에 데리고 간다. 그 집엔 몇 년 전에 차 사고로 뇌와 척추를 다치고 나서 하반신마비에다 치매까지 된 청년 아들이 있었다. 그 친구는 그 아들을 이름 대신 ‘아이구 이 웬수, 저놈의 대천지 웬수’라고 불렀다. 화자는 명애가 왜 그 집 모자의 비참한 꼴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아들이) 죽는 것보다 못한 경우를 보고 위로받아라’하는 것이었음을.

 

 

“인간성 중 가장 천박한 급소죠. 그 급소만은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남의 아무리 잘나고 건강한 아들을 보고도 부러워하지 않는 것으로 미리 보호막을 친 거였는데, 딴 친구도 아닌 명애가 나를 그렇게 취급하다니, 정말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205쪽~206쪽)

 

 

“(그 친구가 아들이) 욕창이 생길까봐 하루에도 몇 번씨 그 짓을 한다나봐요. (아들을) 엎어 뉘었다가, 바로 뉘었다가, 모로 뉘었다가, 그 장대한 아들을 자유자재로 굴리면서 바닥에 닿았던 부분을 마사지하는데, 그동안도 잠시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리는 거였어요. 아이고 이 웬수덩어리는 무겁기도 해라. 천근이야, 천근. 근심이 있나 걱정이 있나, 주는 대로 처먹고, 잘 삭이고 잘 싸니 무거울 수밖에. 내가 이 웬수덩어리 때문에 제명에 못 죽지 못 죽어, 이 웬수야.”(206쪽)

 

 

“우리는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하다가 명애가 먼저 아이 참, 하면서 손을 내밀어 거들려고 했죠. 나도 덩달아 환자를 뒤집는 일을 도우려고 손을 내밀었구요. 그러나 웬걸요. 우리의 손이 몸에 닿자마자 환자가 이상한 괴성을 질렀어요. 여지껏 흐리멍덩 공허하게 열려 있던 환자의 눈이 성난 짐승처럼 난폭해지더군요. 얼마나 놀랐는지요. (…) 그때 비로소 악담밖에 안 남은 것 같은 친구 얼굴에서 씩씩하고도 부드러운 자애를 읽었죠. 아이구, 이 웬수덩어리가 또 효도하네, 하는 친구의 말로 미루어 어머니 외에 아무도 그를 못 만지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닌가봐요.”(207쪽)

 

 

그리고 화자는 난폭해진 아들을 다루는 그 친구를 부러워한다. 이것이 반전이 있는 대목이다.

 

 

반전.

“저는 별안간 그 친구가 부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남의 아들이 아무리 잘나고 출세했어도 부러워한 적이 없는 제가 말예요. 인물이나 출세나 건강이나 그런 것 말고 다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그렇게 부럽더라구요.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질투가 다 있을까요? 형님, 날카로운 삼지창 같은 게 가슴 한가운데를 깊이 훑어내리는 것 같았어요. 너무 아프고 쓰라려 울음이 복받치더군요. (…) 제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참고 있었을 줄은 저도 미처 몰랐어요. 대성통곡, 방성대곡보다 더 큰 울음이었으니까요.”(207쪽~208쪽)

 

 

친구 명애가 화자를 위로하기 위해 '병든 아들이 있는' 친구 집에 데리고 갔는데, 위로는커녕 화자를 더 질투 나게 부럽도록 만들었다는 것. 놀라운 반전이다.

 

 

 

*****

나는 이런 여러 개의 비밀들을 음미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누군가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의 생각과 감정이 어떠할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이 빗나가기 십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게 해 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모처럼 수작을 읽는 좋은 독서를 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깐 예전에 어떤 소설집에서 읽은 거였다. 그래서 두 번 읽은 게 되어 버렸다.)

 

물론 독자마다 다른 시각으로 이 소설을 읽을 수 있다. 해석의 다양성이 있다는 것, 이것은 문학의 매력이다.

 

끝으로, 작가는 실제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미 경험한 뒤에 이 소설을 썼음을 밝혀 둔다. 이 사실을 알고 읽는다면 독자로서 더 공감하기 쉬울 것이다.

 

 

 

*****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는다면, 그는 그 작가의 애독자일 것이다. 나 역시 애독자로서 박완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었다. 한때 그의 단편소설집을 ‘문학 교과서’로 생각하고 즐겨 읽은 적도 있다. 그는 ‘문학성’과 ‘대중성’을 다 갖춘 작가 같다.

 

 

그의 작품 중, 추천할 만한 것을 골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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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3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란 군데라가 그런 말을 했군요.
"실존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생각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 하는 게 소설간 것 같아요.
박완서 소설은 나이들면서 정말 읽고 싶어지는데 이렇게 못 읽고 있네요.
다른 책에 치어서...ㅠ

페크pek0501 2012-03-30 17:24   좋아요 0 | URL
박완서 작가의 글을 좋아해서 8권쯤 읽었어요. 책장에 한데 모여 꽂혀 있지요.
전 그의 산문보단 소설이 좋았어요. 문장의 좋은 표현이 많아서 그의 소설을
베껴 쓴 적도 있어요. 고독을 잠깐씩 꺼내 먹는 맛있는 알사탕으로 비유한 문장이 인상에 남아요. (아, 내 기억이 맞나?)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3-3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경리 씨도 아들을 먼저 보냈기 때문에 박완서 씨와 공감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박경리 씨가 아들을 잃은 체험담을 담은 단편으로 '불신시대'가 있죠.

페크pek0501 2012-03-30 18:27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 얘기 생각나네요.

작가는 그런 슬픔을 겪어도 그것을 가지고 작품으로 탄생시키면 위안이 될 것 같아요. 글 쓰는 동안은 어쨌든 몰입하게 되니까요. 슬플 때 다른 일에 몰입하는 것만큼 좋은 게 있겠습니까. 쓰면서 슬프기도 하겠지만 치유의 글쓰기가 되는 셈이죠.

프레이야 2012-03-3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기나긴 하루' 전 못 읽었어요.
그치만 님이 골라주신 책들, 그 중에서도 전 '친절한 복희씨'를 참 좋아해요.
생의 이면에 있는 이야기, 생의 비밀.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페크pek0501 2012-03-31 13:44   좋아요 0 | URL

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문학적이면서도 쉽고 재밌어요. 그래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8권쯤 읽어서 더 구입할 생각은 없고, 그냥 집에 있는 책으로 한번 더 읽어야겠어요. 같은 책 두 번 읽는 건 다른 책으로 두 권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깊이 이해할 수 있거든요. 감사합니당. ~~

순오기 2012-03-3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님은 1988년 5월에 남편을 보내고 같은 해 8월에 생떼같은 아들을 보내셨지요.
하늘이 무너졌던 그 해~~ 소설 속의 화자가 작가님의 체험이라 더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저런 참척을 안 겪었다면 어찌 저런 묘사를 할 수 있겠어요.ㅠ
이런 페이퍼는 아무나 못쓰는 페이퍼지요~~ 좋아요, 아주 많이!

페크pek0501 2012-03-31 13:45   좋아요 0 | URL
인기 블로거님이 그렇게 호평을 해 주시니 감격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ㅋㅋ
사실 소설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느낌을 객관화해서 쓰는 것 같아 이런 글이 좀 부담스럽거든요.
감사합니다. 아주 많이!


숲노래 2012-03-30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한테나 오늘 하루가 가장 좋은 날이라고 여기며 살아갈 수 있다면
다 소설꾼이 되겠지요

페크pek0501 2012-03-31 13:46   좋아요 0 | URL
하루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삶을 사랑하며 살 수 있겠죠.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마태우스 2012-03-31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경험을 그대로 쓴다고 좋은 소설이 되진 않는다,는 걸 오래 전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박완서님의 저 소설은 제 머리칼을 쭈뼛거리게 만드네요. 어쩌면 좋은 소설가와 일반인은 유전저가 다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네요. 삶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느낌이랄까요. 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됐어요 감사.

페크pek0501 2012-03-31 16: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제가 30대 초반에 문학 강의 - 드라마, 소설, 수필, 시 등 - 를 들으러 문화센터,평생교육원 같은 데를 한참을 다녔는데(이런 공부하는 재미로 살던 시절임) 제가 내린 결론은 문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유전자가 다르고, 또 삶의 경험이 달라요.

한마디로 대체로 행복하게만 산 사람은 문학을 할 수 없어요. 마음고생, 고통, 불행 - 이런 것들을 많이 겪은 사람은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데, 또 거기다 그것을 뛰어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도 있어야 해요. 이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죠.

행복보다는 불행이 삶의 스승이에요. 생각을 깊게 만들기 때문.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 때문. (그래서 앞으로 불행한 일 겪더라도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ㅋ)
좋은 하루 보내세요. ㅋ

마녀고양이 2012-04-03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가슴이 찡해서....
마지막 부분에서 울었어요. 그렇군요. 그 부러움.

페크pek0501 2012-04-04 13:03   좋아요 0 | URL
예, 이미 고인이 되신 작가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슬픈 얘기예요.

세상은 즐거운 듯 평화롭게 돌아가고 있지만, 슬픈 일들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죠. 우리가 할 일은 안 슬픈 척하고 씩씩하게 사는 것, 이죠. 그러다 보면 웃을 일 생기잖아요. 웃다 보면 행복해지고요.

마고님, 오랜만의 방문이신데요. 반가웠어요. ㅋ

삐리리 2012-04-0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2-04-08 14:42   좋아요 0 | URL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삐리리님의 닉네임이 아주 좋군요.
경쾌한 삶이 느껴지는 이름이에요. ㅋ

신지 2012-04-14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쉽게 받아들이는 생각을 굳이 책이나 작품에서 반복할 때 가장 맥이 빠지더군요. ( 이거 읽고 바로 '환각의 나비' 주문했습니다. 진득하게 책을 보는 편이 아니어서 정말 소설책은 안 사는데...이 페이퍼가 얼마나 좋았으면요 ㅠ)

페크pek0501 2012-04-14 16:49   좋아요 0 | URL
환각의 나비, 그 책의 목차를 보니까 제가 두 작품만 안 읽었고 다 읽은 것들이네요. 박완서 작가의 책은 8권을 읽어서 이제 단편집은 못 사겠더라고요. 읽은 것과 겹치게 되니까요.

아마 좋은 독서가 되실 거예요. 쉽고 재미도 있으면서 의미는 깊지요.
"이 페이퍼가 얼마나 좋았으면요 ㅠ " - 이거, 호평 맞지요?

신지 2012-04-15 09:57   좋아요 0 | URL
나중에 보니 제 댓글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당연히 호평이지요. 박완서님은 에세이만 몇 권 있는데요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근데 아직은 작품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페크님의 글 보고 아주 많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바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누가 좋은 작품이나 책을 소개해주면, 저는 참 좋아하는 편이어서...

제 말 앞부분은 밀란 쿤데라의 말에 무척 공감이 되어서 한 말입니다. 이 소설의 앞부분을 소개해주실 때 화자에게 저는 좀 삐딱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화자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군요 ㅠ

페크pek0501 2012-04-15 21:11   좋아요 0 | URL
신지님의 댓글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아요. ㅋㅋ 그냥 제가 물어본 것이랍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에세이보다 소설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소설가들의 에세이를 읽고 만족스러운 적은 드문 것 같아요. 항상 소설이 더 낫지요.

호평에 감사드려요. 님처럼 좋게 봐 주시는 분들 덕분으로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브룩스 저, <소셜 애니멀>을 읽었다.

 

 

처음 이 책의 차례를 보고 관심이 갔다.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이 이 책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차례에 나와 있는 ‘동기와 행동에 감춰진 무의식의 법칙’, ‘사람마다 다른 정신 지도’, ‘뇌는 단련할 수 있다’, ‘똑똑한 사람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지는 이유’, ‘사회적 유대와 행복의 상관성’, ‘번뜩이는 통찰의 순간은 어떻게 찾아오나’ 등의 소제목에 끌렸다.

 

 

“이 책은 심리학 전반을 다루고 있어 심리학 개론서라 할 만하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에리카라는 한 여자의 일생을 다룬 ‘그 여자의 일생’이자 해럴드라는 한 남자의 일생을 다룬 ‘그 남자의 일생’을 합친, 심리학 이론을 동원한 이야기책이다. 아니, 한 남자의 일생과 한 여자의 일생을 동원한 심리학 개론서인가?”(옮긴이의 말, 562쪽)

 

 

이 책의 핵심은 ‘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에 있다. 내가 중점을 두고 읽은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1.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야 행복하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일까, 사랑일까, 직업일까, 아니면 명예나 권력일까.

 

 

 

 

학자들이 밝혀낸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무엇이 자기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판단하는 데 무척 서툴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일과 돈, 부동산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다. 또 친밀한 유대감이나 힘들게 노력하는 과정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한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한 해에 9만 달러만 벌 수 있다면 ‘모든 꿈은 이룰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한다. 그러나 증거를 보면 그렇지 않다.

 

돈과 행복 사이의 상관성은 복잡하지만, 사회적인 유대와 행복 사이의 상관성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인간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사람은 더 행복하게 산다. 결혼 생활을 오래 지속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 해에 10만 달러를 버는 것과 심리적 이득 면에서 동일하다. 또 다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 달에 한 차례 만나는 모임에 회원이 되는 것은 소득이 두 배로 오를 때와 동일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 데이비드 브룩스 저, <소셜 애니멀>, 294쪽~295쪽.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라는 것. 결국 얼마나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행복감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는 뜻이겠다. 이에 나도 동의한다.

 

 

‘좋은 인간관계’ 이외에 또 무엇이 우리를 행복한 세계로 이끌어 줄까.

 

 

 

2. 서로 공부해야 행복하다

 

 

우리는 남들로부터 괜한 오해나 비난으로 인해 불쾌해지는 경우를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당신의 바보 같은 생각으로 인해 나는 불행해졌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도 당신은 똑똑해져야 한다. 제발 공부 좀 하시오.”

 

 

 

이런 예를 들어 본다.

 

 

항상 반에서 학교 성적으로 1등을 차지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몇몇 학생들은 그를 미워하여 괴롭혔다. 그들은 그가 머리가 좋아 쉽게 1등을 한다고 여겼고 그 이유로 그를 미워했다. 참고 참다가 어느 날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1등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너희가 아니? 나,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잠이 올까 봐, 밥도 많이 못 먹어. 나도 너희들처럼 놀고 싶을 때가 있지만 참고 공부하는 거야. 너희가 나를 괴롭히지 않아도 나,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으니 괴롭히지 마라.”

 

 

또 어느 탤런트에게 다음과 같은 악성 댓글을 쓴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드라마 연기도 못하면서 인기가 있다. 재능도 없으면서 얼굴 반반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너무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은 부당하다.”

 

 

이에 대해 그 탤런트는 이렇게 답변할지 모른다.

 

 

“내가 연기는 못할지 모르지만 연기를 잘 하기 위해 무지 애쓰고 있다. 인기를 얻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당신은 아는가? 나, 날씬한 몸을 유지하려고 매일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고 음식도 양껏 먹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다음날 아침에 드라마 촬영이 있는 날이면 긴장되어 그 전날에 밤잠도 푹 자지 못한다. 나의 힘듦을 당신은 아는가? 나,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으니 괴롭히지 마라.”

 

 

또 어느 블로거에게 다음과 같은 악성 댓글을 쓴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인기 있는 블로거라는 게 이상하다. 나는 글도 못 쓰면서 우쭐대는 당신이 못마땅하다.”

 

 

이에 대에 그 블로거는 이렇게 답변할지 모른다.

 

 

“내가 글을 못 쓰면서 인기 있는 블로거가 되었다면 그것도 내 능력이다. 그리고 글을 못 쓰기 때문에 다른 블로거보다 엄청 노력하여 이 자리에 올라섰다. 글을 못 쓰기 때문에 사진을 많이 올렸고, 글을 못 쓰기 때문에 책 속의 좋은 글을 많이 인용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으니 괴롭히지 마라.”

 

 

사람들 중에는 어떤 능력이 아니라 어떤 매력으로 인해 인기를 얻는 사람도 많다. 연예인의 경우,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가수라고 해도 인기가 있을 수 있으며, 연기를 잘하지 못하는 탤런트라고 해도 인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그에게 매력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블로거라도 인기가 있다면 그건 그의 매력 때문일 수 있다. 매력은 타고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피나는 노력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매력으로 인해 인기를 얻었다고 해서 탓할 일은 아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공부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모두 공부해서 상대를 꿰뚫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져야 서로 행복할 수 있다.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괜한 오해나 비난을 한다면 누군가가 불행해지고, 자신 또한 불행해진다.

 

 

몽테뉴는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배워야 할 것이라면, 누가 노년기에 이런 공부는 뭣하러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것은 보다 더 나아져서 더 편하게 떠나기 위하여.”라고 대꾸한 자와 같이 대답할 수 있도록 우리의 조건에 합당한 공부를 하자.

 

- 몽테뉴 저, <몽테뉴 수상록>, 170쪽.

 

 

 

 

편하게 떠나기 위해서, 즉 행복한 죽음을 맞기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할 듯싶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고미숙 저자는 말한다.

 

 

 

 

우리 시대의 공부란 책을 읽는 것이고, 책 중에서도 고전과 접속하는 것이다. 독서는 결코 선택이나 취미가 아니라 필수며, 특히 고전 읽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 공부는 말짱 도루묵이다.

 

- 고미숙 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122쪽.

 

 

 

 

 

 

3. 만족해야 행복하다

 

 

남이 봐선 아무리 행복한 사람처럼 보여도, 자신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의 왕관은 머리에 있지 않고, 마음속에 있다.

그 왕관은 다이아몬드나 진주로 장식된 것이 아니다.

그 왕관은 볼 수 없다. 그 왕관은 <만족>이라고 호칭된다.

그것은 임금들이 별로 즐기지 못하는 왕관이다. - <헨리 6세>에서.

 

- W. 셰익스피어 저, <셰익스피어 명언집>, 36쪽.

 

 

 

 

만족하는 삶을 산다면 삶의 큰 발전은 없겠지만, 마음은 행복할 것이다. 삶을 발전시키려는 욕구와 삶에 만족하려는 마음이 충돌한다면, 타협점을 잘 찾는 일이 중요하겠다.

 

 

 

* 이 글을 쓰고 나서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책들을 살펴보며 다음의 세 가지를 주시했다.

 

 

첫째, 인간은 자신이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행복감이란 매우 주관적인 느낌이라는 것 : 그러므로 남들이 볼 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고, 남들이 볼 때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셋째,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것 : 그러므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행복한 삶의 지름길이다.

 

 

 

.........................................................................

 

 

<이 글과 관련한 책들>

 

  

          

 

 

 

 

  

 

 

 

혜원출판사의 <몽테뉴 수상록>이 품절이므로

동서문화사의 <몽테뉴 수상록>으로 대체함. 

(위의 글의 인용은 혜원출판사의 책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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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2-2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티아라가 부르는 러비더비를 들으면 행복합니다.이 노래를 아시는지요? 정말 신나는 노래입니다.행복을 주는 노래!

페크pek0501 2012-02-26 23:1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확실히 음악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죠. 저도 매일 음악을 들어요.
러비더비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가수와 제목 모르게 듣는 노래가 꽤 있어요.
제 엠피쓰리에 80곡 넘게 들어가 있거든요.
요즘 빅뱅의 Top Of The World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백 번 넘게 들었어요. 리듬이 좋죠. 그리고 가수는 모르겠고 웃음만, 그리고 미친거니 라는 노래도 좋던데요.ㅋ


노이에자이트 2012-02-27 17:07   좋아요 0 | URL
오...빅뱅을 좋아하는군요.

숲노래 2012-02-2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좋은 꿈을 이룰 수 있어요

페크pek0501 2012-02-26 23:20   좋아요 0 | URL
예, 반가운 된장님, 즐겁게 살아가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ㅋ

jeandemian 2012-02-26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삶을 발전시키려는 욕구와 삶에 만족하려는 마음에 타협점을 찾는 것.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 인간은 자기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웃라이어'책 앞부분에도 미국의 한 이탈라이인 마을에 심장병 발병률이 제로인 이유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나오죠..저도 요즘 좋은 공동체, 네트워크를 찾고 싶은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ㅋ

페크pek0501 2012-02-26 23:22   좋아요 0 | URL
아, 새 손님이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방법, 저도 잘 모릅니다.ㅋ 어려운 문제지요. 다만 제 경험에 의하면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됩니다. 특히 문학과 심리학의 고전을 읽는 게 도움이 돼요. 그리고 어떤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왜 그랬는지, 분석적인 자세로 따져보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ㅋ

마녀고양이 2012-02-27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연 공부가 어떤 공부일까 열심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고전을 읽는다 하여, 과연 마음의 공부, 열어놓고 무엇인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공부가 되지 않는다면, 공부로 얻어진 지식은 그저 우월감을 자랑하기 위한,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한 일환이 될 뿐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저는 공부를 (나름)... 좋아하는 편입니다.. 아하하.

인간 관계와 만족감은 정말 중요하다는 말씀에 저는 완전 공감합니다.
페크 언니, 좋은 한주되셔요~

페크pek0501 2012-02-27 12:30   좋아요 0 | URL
아, 마고님, 전부 옳은 말씀입니다. 완전히 공감해요.
<고전을 읽는다고 마음 공부가 될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연구 좀 해봐야겠네요.
찾아지면 페이퍼로 올려 볼게요. (안 찾아지면 할 수 없고요.ㅋㅋ)
님도 좋은 한 주 되셔요.~~~^^^

마태우스 2012-02-27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언니 안녕하세요
제게 유머있다고 칭찬해주신 거, 감사합니다. 특별히 웃기려고 쓴 것도 아닌데 유머가 묻어난다는 건 유머가 그만큼생활화됐기 때문이라고 혼자 생각하렵니다^^
매력이란 주제로 글을 쓰셨네요.
이 단어를 들으니 참 마음 한편이 스산해집니다.
중고교 때 누가 나같은 걸 좋아하겠냐며 스스로를 저주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런 제가 지금은 학생들에게도 제법 인기있는 사람이 되고,
알라딘에서도 나름의 인기를 얻고 있으니,
그때 안죽기 정말 잘했다 싶어요.
궁금한 건, 그때 제가 노력해서 지금의 매력을 갖게 된 걸까,
아니면 그때도 제게 매력이 있었는데 발휘를 못했던 걸까 하는 거예요.
암튼 그때의 삶, 참 힘들었어요
유머감각을 기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그런 생활이었죠.
이번주도 좋은 한 주~~

페크pek0501 2012-02-27 19:48   좋아요 0 | URL
예, 페크언니 안녕하셨답니다.ㅋㅋ

1) 누구에게나 매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매력도 있을 수 있고요. 남이 미처 발견 못한 매력도 있을 수 있어요. 짚신짝도 짝이 있고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건 누구나 알고 보면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돼요.
2) 열등감은 때로 삶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아마 님은 어떤 열등감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를 갔겠죠.(제 추측임) 또 사람들과 좋게 지내려고 유머도 개발했을 테고요.

저도 알고 보면 열등감 있는데요. 그래서 책에 집착하고 열심히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가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줄 것 같았어요.

반갑고 반가웠습니다. ^^ 님도 좋은 한 주~~
 

 

 

 

언제부턴가 내 마음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일을 좋아하다가 싫어지기도 하고, 싫어하다가 좋아지기도 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다가 싫어지기도 하고, 싫어하다가 좋아지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이 바뀌는 일을 경험하고 나니 내 마음을 신뢰할 수가 없다.

 

 

또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장소나 환경에 따라 그것의 느낌이 달라지는 걸 경험한다. 예를 하나 들면, 병원에서의 식사가 그렇다. 나는 병실에서는 물론이고 병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도 밥 먹기를 힘들어 한다. 평소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밥과 반찬이라 할지라도 병원에서 먹으면 맛이 없어 먹기가 괴롭다. 이렇게 먹는 장소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지는 것은 마음이 유동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마음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같은 풍경이라도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마음이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겠다. 우울·불쾌·슬픔·분노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 상태를 좋은 감정 상태로 돌리는 것도 가능하겠다. 의도적인 노력만 있다면 말이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  

 

 

이와 관련해 세 권의 책을 뽑아 보았다. 내가 아주 흥미롭게 읽은 책들이다. 나는 이런 책들을 좋아한다.

 

 

 

 

1.

당신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알랭 드 보통 <불안>에서,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높은 지위’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며, 그래서 지위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불안’이 생기는 것에 주목하였다.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自我像)을 결정하기 때문이다.”(9쪽)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9쪽)

 

 

그리하여 ‘지위로 인한 불안’을 없애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죽음을 생각하기이다. “죽음은 지위를 통해 우리가 얻으려고 하던 관심의 덧없음, 나아가 무가치함을 드러낸다.”(297쪽)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생각 옆에 갖다 놓으면 어떤 행동들이 하찮아 보일 수밖에 없다.”(301쪽)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 “(죽음으로 인해) 우리 자신의 유한성을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의 죽음, 특히 우리가 큰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게 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지위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306쪽) 아무리 잘난 사람도 결국 죽게 된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갈망하는 ‘지위’라는 것도 별것 아닌 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폐허를 보는 것이다. 폐허는 “어차피 모든 것은 사라질 운명”(316쪽)이며 “국지적인 승리는 가능하지만, 몇 년 정도 혼돈에 약간의 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원시의 용액으로 돌아갈 운명”(316쪽)임을 말해 준다. 이처럼 “영원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들 가운데 중요하다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316쪽) 그러므로 폐허를 보고 나면 ‘지위’라는 것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셋째, 광대한 풍경을 보는 것이다. “광대한 풍경 역시 폐허와 마찬가지로 불안을 다독여 주는 효과가 있다.”(320쪽) “광대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회적 위계 내에서 우리가 하찮다는 느낌은 모든 인간이 우주 안에서 하찮다는 느낌 안에 포섭되면서 마음에 위로를 얻게 된다.”(320쪽~321쪽)

 

 

이것을 정리하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또는 폐허나 광대한 풍경을 보게 되면 마음이 움직여서 불안(또는 불행)을 없애거나 덜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큰 불행을 겪은 사람이 여행을 하면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도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겠다. 여행을 통해 광대한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2.

당신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에서 ‘대조효과’를 이용한 어느 여대생의 편지를 공개한다. 그 여대생은 자신의 나쁜 성적을 부모에게 편지로 알리는데, 부모가 화가 덜 나도록 ‘대조효과’를 이용한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집을 떠나 학교에 온 후로 자주 연락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저는 지금 모든 것이 편안합니다. 이곳 기숙사에 입주하자마자 불이 나서 저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다가 골절상과 뇌진탕의 부상을 입었지만 이제는 거의 다 나아 괜찮습니다. 병원에는 단지 2주일 동안만 입원해 있었어요. 이제는 하루에 한 차례씩 두통에 시달리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정상입니다.

 

 

다행히 저의 기숙사에 불이 난 것과 제가 불을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린 것을 기숙사 근처의 주유소 직원이 목격을 하고 저를 위해 증언을 해 주어서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화재를 발견하고 소방서에 연락했을 뿐 아니라 구급차를 불러 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답니다.

 

 

더군다나 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저를 위문차 찾아와서 기숙사가 불이 나서 갈 데가 없다면 그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도 좋다고 저를 초대하는 호의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사실 그의 아파트라는 것이 지하실의 단칸방에 불과했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요.

 

 

그는 매우 훌륭한 청년이어서 우리는 금방 서로 사랑에 빠졌고 장래를 약속했답니다. 아직 구체적인 결혼 날짜를 잡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 있으면 제 배가 더욱 불러져서 보기 싫어지기 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입니다.

 

 

놀라셨죠? 그래요 저는 임신을 했답니다. (…) 저희가 아직 결혼 날짜를 확정하지 못한 것은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이의 질병이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못했고 저도 어쩌다 보니까 그 병에 전염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부모님은 그이를 우리 집안의 사위로 환영해 주시리라 믿어요. (…)

 

 

(이것에 이어 편지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하하! 엄마, 아빠 이제 정말로 저의 최근 근황을 말씀드릴게요. 사실은 기숙사에 불이 난 적도 없으며 저는 골절상과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어요. 게다가, 저는 남자 친구도 없으며 동거한 적도 없고 따라서 임신도 하지 않았지요. 물론 질병에 걸리지도 않았구요. 그러나 문제는 제가 미국사 과목에서 ‘D’ 학점을 그리고 화학에서 ‘F’ 학점을 받았다는 거죠(--!!). 매우 유감스러운 성적이지만 제가 건강히 학교를 잘 다니고 있으니 별 걱정은 하지 마세요.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샤론 드림

 

(46쪽~47쪽)

 

 

 

이 편지를 받은 부모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성적 문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리라.

 

 

 

3.

당신은 상술로 인해 마음이 움직인 적은 없는가

 

 

 

 

 

에릭 번 <심리게임>에서 인간의 내면에는 부모, 어른, 아이 등 세 가지의 ‘자아 상태’가 존재한다며 그 특성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부모 - 부모 역할을 하는 인물과 닮은 자아 상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자기 부모를 모시고 다닌다.)

 

 

어른 - 자율적으로 객관적 현실 평가를 지향하는 자아 상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어른이 있다.)

 

 

아이 - 아동기 초기에 고착되어 지금까지도 활용하는, 미성숙한 아동기 흔적을 대표하는 자아 상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극적인 판매 게임으로, 상술로 인해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를 소개한다.

 

 

판매원 : “이게 더 낫긴 한데, 고객님한테는 좀 부담스럽죠.”

주부 : “이걸로 하겠어요.”

 

(53쪽)

 

 

판매원은 어른으로서 두 가지 객관적 사실을 언급한다. “이것이 더 낫다.” 그런데 “당신은 이것을 살 형편이 안 된다.” 표면적 혹은 사회적 수준에서 보면 이 진술은 주부의 어른에게 말하고 있으며, 주부의 어른이라면 “두 가지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쯤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면, 혹은 심리적 벡터는 노련한 판매원의 어른으로부터 주부의 아이를 향하고 있다. 판매원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것은 아이의 대답이 입증하고 있다. 아이는 사실상 “가계부에 구멍이 나든 말든 이 거만한 친구에게 내가 누구보다 훌륭한 고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야 말겠어.”라고 말하는 것이다.(53쪽)

 

 

자기 안의 ‘아이’를 잘 지배하지 않으면 남으로부터 지배당하는 일이 생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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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1-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내 마음'을 예쁘게 믿으면서
하루하루 즐거이 누려 주셔요~

페크pek0501 2012-01-28 23:07   좋아요 0 | URL
된장님, 아름다운 말씀 감사 드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1-2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판매원의 사례는 경제학에선 베블렌 효과라고 하지요.경제학 서적도 재미있다는 것을 몸소실천해준 베블렌!

페크pek0501 2012-01-28 23:09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전 몰랐어요. 경제학 서적도 재밌는 것 많지요. ㅋ

늘 감사해요.

oren 2012-01-29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움직이는 문제'와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의 원인으로 지적한 '지위에 대한 갈망'을 결부시켜 놓은 글을 읽어보니, 스티븐 핑커가『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책에서 '지위'에 관한 문제를 그토록 여러 페이지에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한 이유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창고에서 '지위'라는 단어를 검색해서 이 글과 연관이 있겠다 싶은 내용들을 덧붙여 봅니다.

* * *

서열과 지위


인간에겐 엄격한 서열이 없지만,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 사이에 일종의 서열 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서열이 높은 사람은 의견의 우선권이 있고, 공동의 결정에서 발언권이 크고, 대개 공동의 자원을 더 많이 분배받고, 아내와 애인을 더 많이 거느리고, 다른 남자들의 아내와 더 많이 성관계를 맺는다. 남자들은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동물학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법들과 인간에게 고유한 방법들을 이용해 지위를 획득한다. 싸움을 잘하는 남자들은 더 높은 지위를 얻고, 외모가 매력적인 남자들도 높은 서열을 얻는다.(764쪽)

지위

지위는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남들을 도울 수 있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다. 그런 자산에는 아름다움, 독보적인 재능이나 전문성, 유력자들의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 부가 포함된다. 지위를 뒷받침하는 자산들은 대용이 가능하다. 부는 인맥을 만들고, 인맥은 부를 만든다. 아름다움은 (선물과 결혼을 통해) 부로 전환되거나, 중요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거나,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구혼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자산 소유자는 단지 자산 소유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후광이나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총애를 받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당신의 총애를 원하게 만들면 항상 편리하므로, 지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간절히 원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 있고 아첨꾼들은 누구에게 빌붙을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지위는 어디까지나 한정된 자원이다. A의 지위가 높으면 B의 지위는 낮을 수밖에 없으므로 사람들은 경쟁을 해야 한다. (766쪽)

간통의 심리

여자들은 남편보다 애인을 고를 때 외모와 힘을 더 중시한다고 보고한다. 뒤에서 보겠지만 외모는 유전자의 품질을 보여 주는 지표다. 그리고 여자들은 불륜 관계를 맺을 때 일반적으로 남편보다 지위가 높은 남자를 고르는데, 지위를 뒷받침해 주는 자질들은 거의 틀림없이 유전이 되는 것들이다.(명망 있는 애인에 대한 안목은 첫 번째 동기인 자원 얻어내기에도 도움이 된다.) 우수한 남자와 성관계를 하면 여자는 또한 결혼 시장에서의 거래 능력을 테스트할 수도 있다. 이것은 차후에 직면할 그런 거래의 전주곡이 되거나,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입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사이먼은 성관계와 관련된 성차이에 대해, 여자는 남자가 어떤 면에서 우수하거나 남편을 보완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성관계를 하고,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아내가 아니기 때문에 간통을 한다고 요약한다.(737쪽)

경쟁자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권위, 찬성, 존엄, 우월, 명성, 존경, 체면, 지위, 탁월함, 위신, 지위, 존중, 평판, 신분, 고매함 등으로 불리는 그림자 같은 실체를 거머쥐려고 애쓴다. 사람들은 리본과 한 조각의 금속을 목에 걸기 위해 굶주리고, 목숨을 걸고, 재산을 탕진한다. 경제학자 소스타인 배블런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너무 많은 생활필수품을 희생하기 때문에 마치 '고상한 정신적 필요'에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지위와 미덕이 매우 밀접하다는 것은 다음의 단어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사도 정신이 있는 chivalrous, 귀족적인classy, 품격이 있는courtly, 신사다운gentlemanly, 명예로운honorable, 고귀한noble, 위엄 있는princely. 정반대의 단어들도 마찬가지다. 버릇없이 자란ill-bred, 비천한low-class, 천한low-rent, 비열한mean, 역겨운nasty, 무례한rude, 인색한shabby, 천한shoddy. 개인의 사소한 외양에 대해서도 우리는 옳은right, 선량한good, 예절에 맞는correct, 흠잡을 데 없는faultless 같은 도덕적 비유로 그 멋을 표현하고, 볼품없이 입은 자를 비난할 때에는 대개 죄악을 가리키는 어조를 동원하여 초라한tacky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예술사가 쿠엔틴 벨은 그런 태도를 '의복 도덕성sartorial morality'이라고 칭했다.(757쪽)

명예(honor)

자기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칼로 찌르는 빈민가의 폭력배는 특정한 사회의 산물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문화에서 비슷한 유형이 발견되는 보편적 인물이다. (영어를 포함하여) 많은 언어에서 명예honor라는 말은 불가피할 때는 피를 보더라도 모욕에는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결의를 의미한다. 많은 식량수집 사회에서 소년은 살인을 한 후에야 남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한 남자의 존경은 살인을 입증하는 증거의 수에 비례하고, 그에 따라 머리 가죽 벗기기나 머리 사냥 같은 관습이 탄생한다. '명예로운 남자들'의 결투는 미국 남부의 전통이었고, 많은 남자들이 결투를 통해 지도자의 지위에 올랐다. 10달러 지폐에 새겨진 알렉산더 해밀턴 재무장관은 아론 버 부통령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20달러 지폐에 새겨진 앤드로 잭슨 대통령은 두 번의 결투에서 승리했고 그 밖에도 여러 번 결투를 도발했다.(763쪽)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中에서

oren 2012-01-29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제가 가끔씩 떠올리는 방법은 (아담 스미스로부터 배운 것이지만)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 * *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은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그가 어리석게도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적 안정을 교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만 살펴보아도, 인간생활의 일상적인 모든 상황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마찬가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상의 여러 가지 상황들 중에서 어떤 상황은 다른 상황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중(愼重: prudence) 또는 정의 (正義: justice)의 법칙들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격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는 후에 가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회상할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회한(悔恨)으로 마음의 장래의 평정까지 파괴해 가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275∼276쪽)

- 아담 스미스(Adam Smith),『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中에서

oren 2012-01-29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움직이고 다스리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프로이트와 C.G.융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현대심리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쇼펜하우어로부터 배울 수 있는 내용들도 덧붙여 봅니다.
* * *

모든 불행과 고통에 있어 우리에게 가장 효과적인 위안은 자기보다 더욱 비참한 자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153쪽)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것은 그 일의 객관적인 진실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즉 사물에 대해 우리가 하는 해석을 관장하는 주관적인 진실이다. 이것을 에픽테토스는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견해다"라고 말했다.(303쪽)

우리는 자기보다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을 더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재앙이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것은 우리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불행한 등료들'과 어울리는 일이다.(416쪽)

이미 변경할 수 없게 된 불행한 사고를 냈을 경우, 이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거나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자꾸 후회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은 고통을 조장하며, 결국에는 자학에 빠지게 되므로 차라리 다윗 왕처럼 할 일이다. 왕은 자식이 병으로 누워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께 기도와 애원으로 성가시게 했으나, 자식이 죽어 버리자 거문고를 튕기며 이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손쉽게 체념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적이며, 피할 수 없다는 대진리를 자각함으로써 숙명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제일 좋다.(418쪽)

자기 혼자서는 모든 소망 중에서 극히 작은 한 부분밖에 손에 넣을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재앙은 모든 사람들이 당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고 우리의 소망에 하나의 목표를 세워 욕구를 억제하고 분노를 막아야 한다. '그대들은 절제하고, 참고 나가라.' 이것이 하나의 법도이다. 이를 무시하면 재물도 권세도 자신에 대한 우리의 비참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를 주제로 해서 호라티우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모든 일을 손쉽게 처리하는 방법은
현자의 글을 읽고 석학에게서 배우는 것.
탐욕도, 불안도, 무익한 기대도
그대를 이제 괴롭히지 않으리니 ······.
- 《서한집》 1;18의 96 (424쪽)

- 쇼펜하우어, 『세상을 보는 지혜』 中에서


페크pek0501 2012-01-29 12:43   좋아요 0 | URL
아, 감탄사 연발합니다. !!!!!!!!!!!!! 그리고 감사 드립니다. 댓글을 세 개씩이나, 그것도 길게 써 주셔서 썰렁하던 제 서재가 꽉 찬 느낌이 드네요.ㅋ

제가 다 아는 책들이라서 더 반갑네요.ㅋ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사진 않았지만 네이버의 '오늘의 책'리뷰를 읽고 알았어요. 여기에도 좋은 글이 많네요. 명예를 위해 결투를 해서 목숨을 잃기도 한다 - 는 것은 <불안>에도 나옵니다. 그깟 명예 때문에 목숨을 거는, 이런 점이 저는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점으로 읽혀요. 인간의 본질 같은...

애덤 스미스의 글은 저도 밑줄을 쳐 놓았던 부분입니다. 지금 확인하고 웃습니다. ㅋㅋ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견해다"라고 말한 에픽테토스의 말, 외워 놓고 싶은 문장이군요.(어디다 적어 놔야지...ㅋ)

아, 이 말씀 진작 드리고 싶었어요. 오렌님의 이미지 사진은 참 멋있어요. 꼭 오렌님이 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댓글 쓰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켜요. 물론 이곳에도 배를 타고 오신 것 같고요. 멋진 상상 아닙니까. ㅋ

아, 그리고 아쉬운 점은 댓글도 잘 쓰면 추천 누르기가 있어야 하는 건데,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말로(그냥 말로만) 제가 추천을 한 번 눌러 드리겠습니다. 댓글에 추천을 꽉~~~^^^:)

oren 2012-01-30 02:24   좋아요 0 | URL
"마음을 바꾸거나 다스리는 법"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건 아무래도 고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아닐까 싶은데, 세네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책들을 읽어보면 우리로서는 도저히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 같아서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에픽테토스의 『불확실한 세상을 사는 확실한 지혜』라는 책도 구입해 놓고 있는데 (매우 얇은 책이지만) 여태 읽어보지 못하고 있답니다.

'명예'를 위해 어리석게 '결투'를 하는 '한심한 풍경'은 쇼펜하우어에게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던지 그의 책 『삶의 예지』에서 너무나 '지겹도록' 길고도 상세하게 '철학적으로' 고찰해 놓았더군요.

'마음을 바꾸기 위한' 얘기들을 이래 저래 떠올려 보니 문득 평생동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애를 썼던 몽테뉴 생각도 많이 납니다.
* * *
몽테뉴의《수상록》에 대한 독후감(1984. 9.18)
(관련글 ☞ http://blog.aladin.co.kr/oren/4070322)






페크pek0501 2012-01-30 14:01   좋아요 0 | URL
아, 오렌님은 글씨를 꽤 잘 쓰시는군요.(저는 내용보다 필체를 더 눈여겨 봤음) 혹시 학창시절에 모범생에다가 우등생이셨나요? 아무래도 그런 듯해요.

저는 몽테뉴의 <수상록>은 혜원출판사의 것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보니 이런 글에 줄이 쳐져 있네요. "한 사람에게 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해롭다" - 즉 우리 마음 속의 소원은 대부분이 타인에게는 손해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죠. 저는 이런 깨달음을 주는 글에 미쳐?요. 다시 꼼꼼히 읽어야겠어요. 좋은 인용문도 많이 나오죠.

다음 페이퍼엔 '마음'에 대한 제 생각의 글을 쓰려 해요. 제 생각 많이 담아서요. 구상은 끝났는데 잘 될지는 써 봐야 알겠어요. 사실 그걸 쓰고 싶었는데 저의 생각 짦음을 들킬까 봐 이 페이퍼엔 제 생각 쓰기를 자제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전 자신감이 없답니다.ㅋ 며칠 뒤 다시 배를 타고 놀러 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하찮은 글의 댓글에 님의 필체까지 공개해 주신 점, 감사할 뿐입니다. 호호~~

oren 2012-01-30 23:33   좋아요 0 | URL
"한 사람에게 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해롭다"는 말은 '불가피성'을 띠고 있어서 '필연'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몽테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지만, (좀 더 범위를 넓게 확대해서 바라본) 다윈의『종의 기원』에서도 무수한 생명체들이 결국 '개체의 보존과 번식'을 위해 '다른 개체'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잡아 먹습니다'. '생의 의지'가 작동하는 한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식물은 물과 공기와 여러 원소들을 소비한다는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필연이지요.

다윈보다 좀 더 앞선(출생으로 따져보나 대표적인 저작의 집필과 출판으로 따져보나) 쇼펜하우어도 '다윈의 주장에 버금갈 정도로' 이 '생명의 필연'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 *
우리는 자연의 도처에서 항쟁, 투쟁, 그리고 승리의 교체를 본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의지와의 근본적인 분열을 한층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의지의 객관화에서 각 단계는 다른 단계의 물질, 공간, 시간과 투쟁한다. 기계적, 물리적, 화학적, 유기적인 여러 현상은 각기 자신의 이념을 구현하고 싶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발현시키려고 애쓰면서 인과성의 실마리를 따라 서로 물질을 탈취하려고 하므로 지속적인 물질은 끊임없이 그 형태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싸움은 모든 자연 속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 자연은 이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만약 사물 속에 투쟁이 없다면, 모든 것은 하나일 것이다"라고 엠페도클레스는 말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제5권) 왜냐하면 이 투쟁이야말로 의지와 자신과의 근본적인 분열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보편적인 투쟁이 가장 명백하게 보이는 것은 동물계이며, 동물계는 식물계를 그 영양으로 갖고, 또 각 동물은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고 영양이 된다. 즉 그 이념을 나타낸 물질은 다른 이념을 나타내기 위하여 물러서지 않으면 안 되며, 각 동물은 다른 동물을 끊임없이 파괴함으로써만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생에 대한 의지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먹어 치우고 여러 가지 형태로 자신의 영양이 되고 있지만, 결국 인류는 다른 존재를 제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을 자기가 사용하기 위한 제품이라고 본다. 그러나 제4권에서 언급할 작정이지만, 그 인류도 자신 속에 투쟁, 즉 의지의 자기 분열을 무서울 정도로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고, '인간은 인간에 대한 늑대(homo homini lupus)'가 되는 것이다.(671쪽)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의지의 객관화 과정' 中에서

페크pek0501 2012-01-31 12:41   좋아요 0 | URL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를 읽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나요. ㅋㅋ오래 전에 읽어서요.

제가 <어느 독서광의 노트>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진짜 독서광은 제가 아니라 오렌님 같아요. 감탄!감탄!ㅋㅋ

그래서 오렌님을 독서광으로 임명합니다.(제게 이런 권한은 없지만요...)

배멀미는 안 하시는지...ㅋㅋ

양철나무꾼 2012-01-29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페이퍼와 이 페이퍼의 댓글들과 댓글의 덧글들을 꼼꼼히 읽은 저로서는,
위 글 모두를 캡쳐해서 꽝꽝꽝 추천을 한 백만개 쯤 날리고 싶어요.
글이 논리정연하고 차곡차곡 반듯한 진행이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근데, 마음을 움직이기 전에...제 마음 좀 어딨는지 찾아주시면 안될까요?@@

oren 2012-01-30 01:29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께서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서' 여기까지 오셨군요. ㅎㅎ
'마음'이야 제 스스로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가고 싶은 대로 가는 법일텐데, 궁금한 건 늘 '어디에서 어디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 * *
"인간의 마음이란 한 번 새로운 생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 절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 올리버 웬델 홈스

페크pek0501 2012-01-30 14:0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도 잘 모르는데, 님의 마음을 어떻게 찾아 드릴까요?ㅋㅋ

아, 저도 님을 배워요. 한 백만 개쯤의 추천이라..., 참 스케일 크십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이런 글은 한 20개쯤 추천을 날려야 하는 건데, 라고... 그런데 이젠 백만 개라고 해야 겠어요. 양철나무꾼님을 따라 해서...ㅋㅋ

굿바이 2012-01-3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k0501님의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건데요 저는 어떤 노력도 잘 안하는 것 같아요.
제 마음도 타인의 마음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 같아요.
게으른 것이 원인인지, 겁이 많은 게 원인인지, 둘 다 해당되는 건지 따져봐야 겠어요.

페크pek0501 2012-01-30 14:0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ㅋ
마음이란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사는 게, 속 편하지요. 그럴 수만 있다면요. 또 어떤 면에서는 그래야 될 것도 같고요.
또 뵈요. !!!!ㅋ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12-01-3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그언니 안녕하세요
움 저 여대생의 편지를 읽고 부모님이 안도했을 거 같진 않네요.
너무 엄청난 얘기들을 많이 써놓았고,
나중에 뻥이야,란 말을 듣고도 분이 안풀릴 것 같은데요
제가 너무 인색한가요^^

페크pek0501 2012-01-30 14:19   좋아요 0 | URL
페크언니, 라고 하셨습니까? 크하하하하하하...
왜 저를 이렇게 웃기십니까? 다행히도 커피를 다 마셔서 빈잔이 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 번처럼 쏟을 뻔했는데...ㅋㅋ

님이 인색하신 건 아닌 것 같고요,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사람의 따라서 다를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건 상상의 문제로 볼 수 있을 듯해요. 아이의 성적이 나쁘면 더 나쁜 상황(예를 들면 어디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갔다든지 하는...)을 상상하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교훈 얻을 순 있을 것 같아요. 이 글을 통해서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 좀 나아지는 걸 경험합니다.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것, 빈말이 아닌 것 아시죠?

마녀고양이 2012-01-3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릭번의 <심리게임>은 제가 토요일에 주문한 책인데,
언니네 서재에서 보다니,, 하고 신기해하고 있어요.

마음이라, 마음이라,,, 저는 오늘 같은 날은, 제 마음 없애버리고 싶어요.
왜 이리 벌렁거리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내내. ㅠㅠ

페크pek0501 2012-01-31 12:43   좋아요 0 | URL
<심리게임>, 재밌어요. 탁월한 주문되시겠습니다. 저도 님의 서재에서 정보 갖고 왔어요. ㅋㅋ 나도 사야지, 하면서...


아이리시스 2012-01-3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안녕.
우리 마고님을 위로해주세요.
그리고 저도 응원해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뭔 소리인지;;)

페크pek0501 2012-01-31 12:43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은 제가 응원 안 해도 잘 하고 계십니다. 늘 그렇게 하고 계세요. 늘 지금처럼... 오늘 제가 누가 온다고 해서 시간이 없어서 님의 그 긴 글을 꼼꼼히 못 보는데, 다음에 보게 될 거예요. ㅋㅋ

잘잘라 2012-01-31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드 보통의 불안,을 읽어봐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2-01-31 12:44   좋아요 0 | URL
아, 메리포핀스님,
<불안>을 탐독해 보세요. 저는 이런 책에 열광한답니다. 한 가지 주제로 어떻게 한 권의 책을 만들었는지를 감탄했답니다.ㅋㅋ 좋은 독서 되실 거예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