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지나가다가 빨간 장미꽃이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으로 남겼다.

 

이렇게 예쁘게 피어나다니!

 

감탄의 순간을 남길 수 있다는 게 기뻤다.

 

5월이 가고 있다.

 

장미꽃도 자취를 감춘 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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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장미꽃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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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지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남들 말고 내 눈에 만족할 만한 글을 써 보는 게 소원이에요. 그게 안 돼요.”

 

 

그때 난, 건방 떨고 있네,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말이 내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공감할 수 없었으니까.

 

 

오랫동안 글을 써 오다 보니 글 수준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글을 보는 안목이 높아졌나 보다. 나도, 남들 말고 내 눈에 만족할 만한 글을 써 보는 게 소원이 되었다. 이젠 내가 건방 떨게 된 것이다.(그러니까 남에 대해 흉을 보면 안 된다.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

 

 

칼럼 한 편 쓰고 나면 느끼곤 한다. 내용은 좋은데 재미가 없거나, 재미는 있는데 사유와 성찰이 빠져 있거나, 좋은 내용과 재미를 갖추었다 싶으면 글이 길고 구성이 엉망이고, 다 괜찮다 싶으면 밑줄을 그을 만한 좋은 문장이 없고. 이런 식이다.

 

 

그러니 내 눈에 ‘이건 완벽한 글이야.’라고 생각되는 칼럼을 써 보고 싶지 않겠는가. 

 

 

내가 완벽한 칼럼이야, 라고 생각한 글을 퍼 왔다. 다음 글이다.

 

 

....................
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 <84> 푸른 눈과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갖고 싶은 소녀가 있다. 소녀는 영화에 나오는 백인 여자들의 눈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백인 인형의 눈을 닮고 싶다.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을 것 같고 폭력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비현실적이지만 허황한 생각만은 아니다. 푸른 눈을 가진 백인이었다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인간답게 살았을 테니까.

 

 

흑인 소녀의 이름은 피콜라. 노벨 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에 나오는 인물이다. 소녀가 꿈을 이루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소녀는 자신이 푸른 눈을 갖게 됐다고 믿는다. 결국 미친 것이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라서 아득한 과거의 일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피부색이 차별의 이유가 되는 미국 사회니까.

 

 

어디 미국뿐이랴. 차별은 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 우리에게도 있다. 김재영의 소설 ‘코끼리’를 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코끼리의 나라 네팔에서 온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피부가 까무잡잡한 소년. 소년은 다른 한국인들처럼 피부색이 옅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보호색을 띤 나방처럼 한국인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왕따’가 되거나 아이들이 쏘는 BB탄 장난감 총의 표적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아침마다 표백제를 풀어 세수를 하고 저녁이면 거울을 보며 얼굴이 얼마나 하얘졌는지 확인한다.

 

 

미쳐버릴 정도로 푸른 눈을 갖고 싶어 하거나 피부색이 옅어지기를 바라며 표백제로 세수를 하는 일이 현실에서 그리 흔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스토리 뒤에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차별과 상처의 그림자들이 아른거린다. 그 그림자들을 조금씩이라도 걷어내려는 노력, 바로 이것이 공동체의 윤리적 역량이다.

 

 

문학평론가 · 전북대 교수
....................

 

 


원문은 이것이다.
http://news.donga.com/3/all/20190416/95085130/1

 

 

 


동아일보(2019-04-17)의 오피니언 지면에 84번째 연재된 왕은철 님의 짧은 칼럼이다. 4.8매의 글이니 이백 자 원고지 다섯 장이 안 되는 글이다.

 

 

두 개의 소설을 가지고 딱 네 문단의 글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용 면에서 깊은 울림이 있고 형식 면에서 글이 깔끔하고 완벽하다는 느낌을 준다. 나도 흉내 내어 써 보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이런 글은 고수만이 쓸 수 있는 글인 것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연재되는 글이기에 수요일이 되면 신문을 펼칠 때마다 이번엔 어떤 글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는 왕은철 님의 광팬이 되었다. 연재한 글들을 묶어 책으로 출간하면 좋겠다. 당연히 구입할 것이고 책이 닳도록 읽을 것이다. 

 

 

쉽게 쓴 것 같고 쉽게 읽히는데 막상 써 보려고 하면 그렇게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되는 것. 그것이 고수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왕은철 님의 책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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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허영심의 좋은 점

 

 

P부인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울 거리 거리, 골목 골목을 헤매었다. 불쌍한 거지들을 찾아다니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하면 불쌍한 사람들에게도 탄일에 기쁨을 알릴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P부인은 단 하루저녁만이라도 불쌍한 이들을 위해 따스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자기 집을 열어 놓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난로에 불을 피우고, 뜨끈한 국과 밥을 장만하고, 포근포근한 융으로 만든 속옷 한 벌씩을 주려고 준비해 놓고는, 거리에 나와 불쌍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문둥이를 만날 때엔 아무리 불쌍하긴 해도 우리 집으로 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쌍한 사람 중에도 비교적 몸이 깨끗한 사람을 붙들고 크리스마스에 자기 집에 오라고 친절히 말해 주었다.

 

 

크리스마스날 저녁, P부인의 집엔 절름발이, 곰배팔이, 소경, 늙은 것, 어린 것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다. P부인은 밤이 깊도록 손님 대접에 최선을 다했다. 거지들은 속옷 한 벌씩을 얻어 입고 맛있는 음식이 잘 차려진, 눈이 부신 식탁에 둘러앉아 후한 대접을 받았다. P부인은 나중에는 사진사를 불러다가 쾅 하고 사진까지 찍고 손님들을 보냈다.

 

 

P부인은 자기 방으로 올라와서 바로 침대에 엎드려 감사하였다. 이렇게 기쁘고 의의 있게 크리스마스를 지내보기는 처음이라고 스스로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 사진을 많이 만들어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낼 것을 기뻐하며, 천사 같이 평화스럽게 잠들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천사 같은 P부인의 가슴속엔 뜻하지 않은 분노의 불길이 폭발하였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가 자기 몸뚱이처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새 자동차 안에서 엊저녁에 왔던 거지 중에도 제일 보기 흉한 늙은 것 하나가 얼어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태준 작가의 소설 ‘천사의 분노’는 이렇게 끝난다.

 

 

이 소설은 속 다르고 겉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인간에게 내재된 허영심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그래서 내가 주목한 것은 P부인의 허영심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던 P부인은 급기야 자신이 아끼던 자동차가 시체로 인해 더럽혀진 것을 보고 가식적이었던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P부인은 '진실처럼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을 쓴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스스로 훌륭한 일을 했다고 여기는 허영심, 그리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다. 사진을 많이 만들어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낼 것을 기뻐했다는 게 자신이 훌륭한 일을 한 것에 대해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임을 증명한다.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따르면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데일 카네기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는 소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뿌리 깊은 욕구.”라고 말한 존 듀이와 “인간 본성의 가장 끈질긴 욕망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하여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욕구이며, 인간이 문명 자체를 진전시켜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욕구 때문이라고 하였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안락(安樂)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허영(虛榮)이다. 그러나 허영이란 항상 자신이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고 시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념(信念)에 기초한다.”라고 하였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에 대해 우선 부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욕구로 인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직업을 선택할 때조차 자신이 원하는 직업보다 남들이 인정해 주는 직업을 선호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무시하고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집착하며 살기 때문이다. 만약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 욕구를 위해 못할 일이 없게 되어 남의 삶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이 없다면 현재 자선을 베푸는 사람 수가 감소하지 않을까 싶다. 자선기금을 내놓는 사람의 명단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하는 것이다. P부인처럼 자기 스스로 훌륭한 일을 했다고 여기는 허영심, 그리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허영심 때문에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P부인 역시 그런 허영심 때문에 불쌍한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서 후하게 대접하는 선행을 베풀지 않았던가. 이런 게 허영심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에게서 좋은 평판을 듣고 싶은 허영심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 어느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23번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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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넣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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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5-17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P부인은 그래도 좋은 사람이네요. 요즘엔 다들 바쁘고 살기에 바쁘다고 해서 누군가를 돕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서요.
페크님, 오늘 서울은 30도 가까이 되는 날씨라고 하는데, 많이 덥지는 않으신가요.
5월은 이제 여름이 되어버린 것처럼 더워지는 하루입니다.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5-18 21:45   좋아요 1 | URL
그렇죠? 그런 허영심은 있어도 될 것 같지요?

정말 요즘 서울이 많이 덥습니다. 반팔을 입고 다녀도 될 정도예요.
벌써부터 올 여름의 폭염을 어떻게 견뎌낼지 겁이 납니다. 내일은 전국 비 소식이 있는 것 같은데 비가 기다려지네요.
서니데이 님도 남은 푸른 5월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아직 여름이 시작된 건 아니니 즐기자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방문자 수가 왜 469명일까요? 토요일에 방문자가 많이 들어오는 이유는 뭘까요? 궁금합니다. ㅋ)

서니데이 2019-05-18 21:55   좋아요 1 | URL
좋은 글을 쓰셔서 더 많이 오셨나 봐요.
페크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5-18 22:00   좋아요 1 | URL
설마요... ㅋ 우리 딸에게 말했더니 전산 오류라고 합니다.
새 글이 있어서 방문자 수가 많을 수 있으나 새 글도 없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오류 같습니다.

굿 밤 되시길...^^
 

 

 

 

 

 

 

 

1.
밤에는 잠자기 싫다. 잠자는 시간이 아깝고 읽고 있는 책을 덮어야 한다는 게 싫다. 아침에는 일어나기 싫다. 잠을 더 자고 싶다고 느낀다. 왜 나는 어긋나길 좋아해서 규칙적인 생활이 어려운가.

 

 

 

 

 

2.
김형석 저, <백년을 살아보니>에 따르면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라고 한다. 저자처럼 백년쯤 살아야 그런 결론을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다가 백년을 살지 않아도 알 것 같다고 느낀다. 난 50대이니 아직 60대가 되지 않아 정확히 모르지만 확실한 건 40대로 돌아가는 건 싫고 지금 50대가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40대는 너무 바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육아에 전념하느라 바빴고 돈 버는 일에 전념하느라 바빴고 살림하느라 바빴다. 세 가지의 일을 병행하면서 나는 육아의 노예, 돈벌이의 노예, 살림의 노예였다.(이 표현이 심한가. ㅋ)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밥을 해서 둘째 아이를 먹여 학교에 보내야 했다. 이제 아이 둘은 성인이 되어 내가 챙겨 주지 않아도 되고 남편은 원래 밥과 국만 있으면 스스로 챙겨 먹고 출근하니 내가 늦잠을 자도 될 만큼 한결 여유로워졌다. 

 

 

새벽밥을 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진 지금이 좋다. 돈벌이에서 자유로워진 지금이 좋다. 살림을 하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든 지금이 좋다. 이제 아이들을 챙겨 줘야 하는 일이 많지 않고 내 시간이 많아졌다. 친정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이 추가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이 좋다.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몇 년 뒤에는 딸이 결혼을 하게 되어 손주를 돌보는 일을 내가 맡게 될 수 있으니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하고 이 자유를 즐겨야겠다.

 

 

현재 자유를 즐기고 있다. 국문학과 교수님의 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있다.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남으로부터 배우는 입장이 되고 나니 마음이 참 편하다. 수업 준비를 할 필요가 없고 가기 싫으면 결석해도 되니 그야말로 ‘내 맘대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동네 가까운 곳에서 발레를 2년쯤 배웠다. 저녁 때 배우러 다니느라 불편한 점이 있었다. 이제 시간이 여유로워서 내가 배우고 싶었던 현대 무용을 지하철을 타고 배우러 다닌다. 낮 시간에 현대 무용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그리 되었다. 발레도 재밌지만 현대 무용은 더 재밌다. 멋진 동작을 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현대 무용 시간이 행복하다. 그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다.

 

 

인생은 알 수 없으니 내가 또 돈벌이를 하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를 즐기고 싶다. 때로는 고단해 하면서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내가 자유를 맘껏 누리며 즐겁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문학 강의와 현대 무용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3.
....................
선잠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서.
....................

 

 

 

 

 

4.
....................
껍질째 먹는 사과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데도
사과 한입 깨물 때
의심과 불안이 먼저 씹힌다

 

주로 가까이서 그랬다
보이지도 않는 무엇이 묻었다는 건지
명랑한 말에도 자꾸 껍질이 생기고
솔직한 표정에도 독을 발라 읽곤 했다

 

그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전례가 그렇다는 거
사과가 생길 때부터 독이 함께 있었다는 얘기

 

이거 비밀인데,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목에 탁 걸리는
이런 말의 껍질도 있지만

 

중심이 밀고 나와 껍질이 되었다면
껍질이 사과를 완성한 셈인데

 

껍질에 묻어 있는 의심
이미 우리가 먹어온 달콤한 불안
알고 보면 의심도 안심의 한 방편이었을까

 

-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서.
....................

 


이렇게 좋은 시를 혼자만 아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올린다.

 

 

 

 

 

 

 

 

 

 

 

 

 

 

 

 

 

 

 

 

 

 

 

 

 

 

 

 

 

 

어제 찍은 사진 두 장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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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4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4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5-1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채화 같아요 글과 사진이...^^

페크(pek0501) 2019-05-15 22:26   좋아요 0 | URL
수채화 좋지요.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만족입니다. 수채화 같은 분위기 좋아합니다. 굿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2019-05-14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5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5-15 1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잠> 박준 시인 이번 시집에서 제가 제일 좋아라 한 시입니다. 그리고 첫 시 ㅎ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9-05-15 22:36   좋아요 0 | URL
syo 님은 시도 많이 아시는군요. 요즘 잘 나가는 시인인데 시를 참 잘 쓰더라고요.
저도 선잠을 읽자마자 반해 버렸어요. 시란 언어의 유희이기도 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의미 또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일인 것 같더군요.
저는 시를 쓸 줄 모르지만 맘에 드는 시를 보면 시를 쓰고 싶어져요. 그래서 박준 시집을 읽고 나서 시 강의를 인터넷에서 찾고 그랬답니다. 결국 적당한 걸 못 찾았지만요.
앞으로 시를 사랑할꼬예요. 반가웠습니당~~ㅋㅋㅋㅋㅋㅋ
 

 

 

 

 

 

 

제목 :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사람들은 연애가 참 어렵다고 말한다. 왜 어려울까. 연애가 어려운 이유 중에는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점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건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아서다.

 


사람에 따라 어휘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몰라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르는 이야기가 있다. 김유정 저, <동백꽃>이란 단편 소설이다. 점순이(여자)는 ‘나(남자)’에게 굵은 감자 세 개를 주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점순이가) “느 집엔 이거(감자) 없지.”하고 생색내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가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하고 말하며 그 감자를 어깨 너머로 쑥 밀어버리자, 점순이는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나중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었다. 점순이가 눈물까지 흘려도 ‘나’는 여전히 점순이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느 집엔 이거 없지.”하는 소리를 ‘나’는 “너네는 가난해서 감자 없지?”하는, 약을 올리는 말로 들었을 듯싶다. 점순이가 ‘나’에게 감자를 준 것은 “내가 너를 좋아해서 너를 주려고 감자를 가져왔단다.”라는 의미였는데 말이다.

 

 

“우리는 상대가 만일 우리를 사랑한다면 그들이 마땅히 이러이러하게 -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 행동하리라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다.”라고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말한다. 존 그레이는,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에는 똑같은 어휘라고 할지라도 그 어휘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면 여자가 “나는 좀더 로맨틱한 기분을 느껴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남자는 “그럼 당신은 내가 로맨틱하지 못하다는 말이오?”로 해석하는데, 이것을 제대로 해석하면 “당신은 정말 로맨틱한 사람이에요. 이따금씩 불쑥 꽃다발을 내밀어 나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데이트를 신청해 주지 않을래요? 그럼 나는 너무 행복할 거예요.”의 뜻이란다.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뜻을 안다 하오

 


<장자>, 추수편에 이런 얘기가 있다. 호숫가에서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들의 즐거움이겠지.”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나?”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물고기가 정말 즐거운 것인지 장자가 모르는 것처럼 혜자 역시 타인인 장자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실 우리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이 즐겁게 노는 것인지, 좋아하던 짝과 헤어져 슬퍼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인지, 먹이를 먹고 난 뒤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운동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우리 맘대로 해석할 뿐이다. 어디 물고기뿐이랴. 참새가 짹짹거리는 것도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소리인지 짐작은 할 수 있어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서로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물고기’나 ‘참새’에 비해 훨씬 쉬워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인간관계에서 서로의 진실을 알기란 헤엄치는 물고기나 짹짹거리는 참새의 기분을 헤아리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말이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므로 다른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연인 사이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다정하게 묻는다. “지난 주말 잘 보냈어요?” 여자가 웃으며 대답한다. “아주 잘 보냈어요.” 이 대답에 남자는 기분이 나빠진다. 남자는, ‘어떻게 나를 만나지 않고도 잘 보낼 수 있는 걸까, 내가 보고 싶지도 않았다는 말인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그리워해서 주말을 자신처럼 우울하게 보내길 바랐던 것. 여자는 남자의 표정이 좋지 않자 역시 기분이 상한다. ‘나랑 함께 있는 게 싫은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진작 여자가 주말을 왜 잘 보냈는지를 남자에게 말해 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여자는 주말에 이 남자를 만날 때 입을 옷을 사느라 쇼핑하며 즐겁게 보냈던 것이다. 누구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옷을 고르는 시간이 어떻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군가의 소개로 몇 번을 만난 대학생 남녀. 여자가 남자에게 말한다. “우리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남자는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인다. ‘나와 애인이 되기는 싫단 말이군.’ 그런데 그녀의 진의는 그 남자를 신뢰하고 좋아해서 계속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찍이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말이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라고 했으며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결국 현상만 보고 그 본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하는 말의 뜻을 잘못 알아듣기 일쑤다. 그래서 서로 오해하고 상처받고 다투고 급기야 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의 마음엔 이미 고정관념과 편견이 들어 있는데다가 제멋대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 타인의 마음을 살필 때는 내가 짐작한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 두어야 하리라.

 

 

 

원문은 이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yechongbon?Redirect=Log&logNo=221531449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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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넣은 책들)

 

 

 

 

 

 

 

 

 

 

 

 

 

 

 

 

 

김유정, <동백꽃>
점순이가 눈물까지 흘려도 ‘나’는 여전히 점순이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느 집엔 이거 없지.”하는 소리를 ‘나’는 “너네는 가난해서 감자 없지?”하는, 약을 올리는 말로 들었을 듯싶다. 점순이가 ‘나’에게 감자를 준 것은 “내가 너를 좋아해서 너를 주려고 감자를 가져왔단다.”라는 의미였는데 말이다. 
 

 

 

 

 

 

 

 

 

 

 

 

 

 

 

 

 

 

 

존 그레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우리는 상대가 만일 우리를 사랑한다면 그들이 마땅히 이러이러하게 -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 행동하리라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다.”

 

 

 

 

 

 

 

 

 

 

 

 

 

 

 

 

 


 

장자, <장자>
<장자>, 추수편에 이런 얘기가 있다. 호숫가에서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들의 즐거움이겠지.”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나?”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말이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라고 했으며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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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9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08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의 말에 확대 해석하는 사람을 친구나 직장 동료로 만나면 정신적으로 피곤해요.. ^^;;

페크(pek0501) 2019-05-09 13:13   좋아요 0 | URL
너무 나가는 사람을 말함이겠지요? 별 뜻 없이 한 말에도 귀를 곤두세우면 피곤하죠. 둥글둥글한 사람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유가 편안함 때문이겠죠.
남의 말이 자기를 겨냥할 말처럼 들려 귀에 거슬리면 다음부터 조심해야겠다, 하는 정도로 끝맺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기가 좋은 날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은빛 2019-05-09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논의해야 할 일이 많은 저로서는 무척 공감가는 글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이 타인과 소통하는 일인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차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회의가 이어진 날에는 정말 피곤해요.
이게 육체 노동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좋아요˝를 백만개쯤 누르고 픈 글입니다. ^^

페크(pek0501) 2019-05-10 13:01   좋아요 0 | URL
정말 백만 개를 누르셨나 봅니다. 좋아요 수가 많은 걸 보니... ㅋ
같은 사물을 봐도 각자가 다른 느낌으로 보니 타인과의 소통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는데 말이죠.

어려운 일을 하시고 사시네요. 전 그래서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단순 노동이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사실 고단하죠.

요즘 계속되는 좋은 봄 날씨로 저처럼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