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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수단>
2009-11-17

 1

 (조금 과장을 보태어)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자리에서 '나는 꼼수다' 이야기는 여태껏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왔던 것 같다. 적어도 그 대화 자리에서 내가 '나꼼수의 열혈 청취자'라는 입장에 서 있던 적은 없었다. 늘 끌려 다니면서 나도 들어봐야 하나, 이 정도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며 고개만 끄덕이는 수준이었다.  

드디어 도전. 그러나 나는 10분 정도 듣다가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 이유는 뭐 사람들이 다 들으니까 나는 하기 싫다, 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희화화'의 묘미만 대중들이 간직한 채 '정치'라는 본질에 대한 회피가 우려된다는 일부 시각에 동의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따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마치 문화연구의 '성찰 게임'에서 늘 등장하던 문화연구가 정치의 연성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 라는 추억 '돋는' 시각이었다.)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김어준의 웃음 소리가 싫었다. 이것은 내 귀와 라디오라는 매체, 그 매체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김어준과 나의 감정 교류에 대한 문제였다. 그렇다고 김어준씨 청취자 입장에서 부탁하는데 제발 그 웃음 좀 어떻게 해주시오! 하고 드라마 끝나는 마당에 제발 우리 주인공 죽이지 말아주세요~ 같은 요청을 하고 싶진 않다. 이 프로가 당당하게 내세우는 '싫으면 안 들으면 되니까' 그 룰을 난 지키려고 하고 그래서 앞으로도 '나꼼수'는 듣지 않을 생각이다. 

'나꼼수'와 '나꼼수'를 듣는 대중. 그리고 그 두 항에서 피어 올랐던 '영향력'의 문제. 이 문제에 대해 인터넷은 고맙게도 우리에게 뛰어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주시어 풍성한 관점의 바다에 풍덩 빠지도록 한다. 그러나 나는 잠시 육지로 내려와 저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쳐다 보며 비평을 하기 보다는 전혀 다른 영역을 고민하고 싶었다.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섬과 같은 고민이자 그래서 아직은 '동의 지수'는 미약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고민. 

5. 

그 고민은 그냥 김어준의 웃음 소리에서 느꼈던 부담감, 내 귀, 라디오, 미디어라는 각각의 항. 그리고 그 항이 만들어내는 의미들. 어쩌면 좀 과학적인 문제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꼼수'는 올해 '귀'라는 인간의 신체 기관과 정치의 긴밀함을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보여준 인상 깊은 사례가 되었다. 사람들의 귀는 아직 라디오라는 매체를 버리지 않았고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대중에게 '나꼼수'는 귀를 달달하게 만들어주는 풍성한 이야깃거리들을 보장했다.  

6. 

이런 생각을 문득 해봤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고 하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인간의 신체 기관 중에서 정치 때문에 가장 피로도가 누적된 곳은 어디일까. 의외로 나는 '눈'보다 '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 피로도 누적의 문제는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살면서 정치와 관련하여 어떤 신체 기관을 가장 많이 사용할까, 라는 능동의 문제와 연결된 것이기도.  '귀'라는 신체 기관의 중요성을 개인적으로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7.  

조금 더 나아가 '나는 가수다'에서 내가 느꼈던 감각의 문제는 '시각'이었다. 관중들이 눈물이나 감동을 받는 장면을 클로즈업하면서 나타나는 '감동의 강요'. 나는 이 프로그램이 주는 '시각적 피로도'에 관심이 갔다.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듣기'라는 행위에 기초한다.(왜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텔레비전 음향 모드도 '음악 모드'로 바꾸면 더 좋은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다는 친절한 자막도 나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텔레비전이라는 공감각적인 매체에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기관은 '시각'이기에 '나는 가수다'가 내게 주는 시사점은 이런 것이었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아이돌 위주의'(그리고 이 아이돌이 시각문화를 대표하는, 즉 비디오 스타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고 있는 마당에, 라는 가정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면) 판도를 우려하며 더 좋은 음악을 대중과 공유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결국 '대세 자체'는 여전히 거스를 수 없었다는 점. 청중평가단은 이 프로그램에서 노래가 빠르든 느리든 신나든 슬프든 퍼포먼스라는 시각 중심적 행위를 좋아했고 프로그램 또한 관객의 반응이라는 시각적 퍼포먼스를 최대한 이 프로그램의 대단함을 강조하려는 전략으로 활용했다.  

 

 

 

 

 

 

 

 

 

 

 

8. 

반대로 이제 내가 '나꼼수'에서 느끼는 피로도의 전이는 '귀'에서 '눈'이 될 것 같다. 라디오는 라디오대로 놔두었으면 하는 그 고유성.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바로 자동적으로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던 "이거 결국 책으로 나오겠지?"하는 반응이 실제 결과물로 나타났을 때. 나는 '읽기'라는 시각 문화와 '듣기'라는 청각 문화의 중요한 행위를 떠올렸다. '닥치고 정치'라는 제목은 그래서 내겐 신선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닥치다'라는 것은 말하기 - 듣기의 문제인데 나는 이 문제가 '보기'의 영역도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꼼수다 뒷담화'라는 제목도 말하기 - 듣기의 문제를 연상시킨다. ) 

9. 

하지만 이 피로도 자체를 내버려두는 짓은 하지 않으리라. 그 피로도가 주는 괜한 생각들. '알맹이'도 없이 괜히 '나꼼수'때문에 엄청 팔리는 관련 책에 대한 시샘 등을 포함한 그런 것 말이다. 라디오가 비디오 스타를 죽이는 날이 과연 올까? 근데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그 유명한 노래 제목을 곱씹어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히 하나의 감각에만 치중했을까, 라는 엉뚱한 의문이 든다.   

 

10.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매번 실적 올리기 위해 하는 대선 후보자들의 tv토론 담화 분석 같은 그런 진부한 논문 말고 한국인들은 정치를 통해 어떤 신체 기관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가, 같은 그런 논문을 읽고 싶다. (부탁합니다. 저는 그 동네를 떠나서리)  



 
 
지나가다 2011-11-10 10:32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꼼수 열혈청취자로서 어줍잖게 답글 하나 올려봅니다.
저도 나꼼수 처음 30분은 짜증이 날 지경이랍니다.
그 시간동안은 말장난만 계속되니까요..

다만..
그런 방식은 정치를 무겁게만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짜증은 나도 재미있을때도 많거든요. ㅋ

중요한 건 본론이지요.
그들이 떠들어대는 (지금까지 27편동안) 50여시간의 분량중에..
지금 머리속에 남아있는 건 그들이 떠들어대는 시간이 아니라.. 여러가지 팩트들이지요.

그 팩트들(전 가감 없이 그것들을 전적으로 팩트라 생각합니다. 다른 경로로 그 얘기들을 들었다 하더라도
제 스스로 그 정보들을 재평가한 뒤 역시 팩트라고 규정했을테니까요)로부터 제가 얻은 것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에 대한 보다 명확한 그림이 그려졌으니까요.

님께서 나꼼수를 듣고 안듣고는 자유지만..
어떤 경로로든 그들이 제시한 여러가지 팩트들을 꼭 접하시길 바랍니다.
그중에서 팩트가 아닌 것들은 님께서도 저처럼 알아서 걸러내실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되도록 손가락에 집중하진 마시구요. 달만..

얼그레이효과 2011-11-19 22:23   URL
나꼼수가 할 일은 나꼼수대로, 제가 할 일은 저대로 있겠지요^^ 이 글이 나꼼수를 듣지 말라는 의도로 보인다면 제 과오입니다. 암튼. 저도 달을 좋아합니다. 그럼.

지나가다2 2011-11-10 12:27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어준 목소리 마음에 안들어서 안듣겠다.' 거기까지만 쓰셨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

얼그레이효과 2011-11-19 22:23   URL
그런가요? 그냥 오랜만에 장문을 쓰고 싶어서. 그렇다고 쥐어 짜낸 것은 아니구요. 지적은 고맙습니다.

來而 2011-11-10 17:57   댓글달기 | URL
얼그레이효과님의 <귀> 혹은 <청각>기관과 <나꼼수> 효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은 정말 탁월합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나꼼수를 들으면서 몇 달 전부터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나꼼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나꼼수>의 성공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친 것은 <귀> 혹은 <청각>기관에 대한 관계성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진데요. 1) 반복적 자극과 그 자극에 의한 무의식적 지층에 어떤 의미들이 켜켜이 쌓여간다는 점 2) 라디오라는 매체의 특이성 때문에 자극을 통한 어떤 <성찰>의 공간/계기가 마련된다는 점.
비디오 킬 더 레디오스타나 혹은 그 역이라는 측면이 <나꼼수>에서 양가적으로 나타난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는 더 두고 볼일 같습니다. 전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상호작용의 측면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자의 측면을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혹은 라디오스타는 라디오를 사랑하는 대중들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봅니다. 비디오 킬 더 레디오스타라는 노래가 나온지 벌써 3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유효합니다. 라디오는 얼마든지 최첨단 매체와의 긍정적 융합관계/컨버전스를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미디어니까요.

얼그레이효과 2011-11-19 22:24   URL
저도 '나꼼수'에 대한 저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이 프로그램이 갖는 영향력은 정말 두고두고 인상에 남을 것 같습니다. 무화과나무님이 저보다 더 멋지게 해석해주시는군요.^^

빵가게재습격 2011-11-11 15:22   댓글달기 | URL
저도 탁월하는데에 한표요~ 저는 나꼼수가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며 잃어버렸던 '대통령을 씹는' 언어를 되 찾았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두 번째 반복되는 '희극'이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거든요.^^; 얼그레이님의 지적대로 '정치의 신체'에 관한 글이 어느분에 의해 올라오길 기대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11-19 22:27   URL
역시 빵가게님 알라디너 중 대표 철학도답게^^ 요즘 책을 많이 못 읽어서 다른 분들 리뷰를 못 따라가 큰일입니다.크크. '정치의 신체' 책 제목으로도 고려를.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