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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문화적 박정희'라는 어설픈 치유책 (공감21 댓글0 먼댓글0)
<박정희 한국의 탄생>
2009-11-07

프리울리friuli. 일산에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을 소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 유명한 역사학자와 예술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인류학자를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1 역사학자 카를로 진즈부르그가 바라본 프리울리




카를로 진즈부르그를 알린 두 권의 책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치즈와 구더기』는 익히 알 것이다(두 권 다 국내에 출간되어 있다).  두 권 모두 이태리 북동쪽에 위치한 프리울리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다.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는 157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프리울리 지방에 살고 있는 수백 명의 주민이 마법을 행한 혐의로 피소된 이단 재판 기록에 근거한 미시사 연구다. '베난단티Ben-andanti ' 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농촌 지역인 프리울리에서만 통용되던 방언이었다. 베난단티로 여겨지던 이를 심문하던 펠리체 신부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어떤 마법적 제의를 겪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내용인즉슨, 

베난단티는 한 해 네 번, 목요일 밤마다 실신 상태가 되고 이 순간 영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걸 경험한다. 그리고 이때 들고양이나 들토끼와 같은 모습으로 변신하여 그들의 회합 장소로 날아가 마녀들과 전투를 치른다. 베난단티는 마녀에 대적하고자 회향풀이나 가막살나무 줄기를 무기로, 마녀는 사탕수수 줄기 혹은 화덕을 청소하는 나무막대기를 무기로 삼았다. 전투의 결과 베난단티가 이기면 풍년을, 마녀가 이기면 흉년을 맞이해야 한다. 



진즈부르그가 파고든 것은 베난단테의 이 신비스러운 행위라기보다는, 행위를 둘러싼 주변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그들이 어떤 위치로 해석될 수 있는가였다.  합리와 이성을 내세운다고 하는 엘리트 계층의 '의 눈에서는 이 행위가 도통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에게 베난단티는 곧 악마적인 행위를 하는 무리였을 뿐이다. 악마라는 규정은 곧 종교 질서 안에서 '이단의 확정'으로 이어진다. 설득하거나, (혹은 처형하거나)


베난단티와 이단 심문관 간의 '밀당'이 시작된다. 그리고 심문관의 압력 속에 베난단티의 진술은 심문관이 원하는 바와 일치되어간다. 진즈부르그는 베난단티가 기독교의 도래 이전 존재해온 고대의 다산 신앙 혹은 풍농제의 흔적이라 보았다. 역사학자 곽차섭의 주장에 따르면,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는 마녀 신앙의 민중적 기원을 새롭게 보여준 연구서이자, 이단 심문관과 분명 주장하는 바가 달랐던 피의자 신분의 베난단티가 낸 목소리를 처음으로 규명한 책이다. 물론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보물은 '민중 문화'다.



『치즈와 구더기』는 익히 알다시피 긴 설명이 필요없는 미시사의 고전이다. 우리는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메노키오'가 겪은 황당무게한 일을 어디선가 들어봤다. 16세기 프리울리 지방, 한 방앗간 주인인 메노키오는 그 마을에서 보기 드물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문명인이었다. 메노키오가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이 담대한 세계관은 놀랍기 그지없다. 세계관의 때깔이 좋다고 할까. 16세기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맹신에 대한 저항 속에서 '다른 종교' '다른 세계'에 대한 고백을 시도한 그는 소위 구리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다. 메노키오를 '시대를 깨운 인간'으로 보이게 한 요소에는 진즈부르그의 해석에 따르면 책도 무시할 수 없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파와 접촉을 했던 적은 있으나 메노키오는 이 모든 세계관은 자신의 머릿속에 나온 것이라 외친다. 물론 책 읽기가 모두 메노키오를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바로 진즈부르그가 주창한 '창조적 오독'이란 개념이 나온다. '구어'로 된 이탈리아의 민중 문화가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영향을 받은 문헌 문화와 섞이면서 메노키오는 어쨌든 '제대로 된 해석'은 아닐지라도, 그 해석을 시도한 결과 자체가 자신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2 예술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바라본 프리울리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우리에겐 소설보다도 〈살롬, 소돔의 120일〉이란 영화 연출로 더 유명한 인물.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잔혹성과 선정성이 그를 다 보여주는 건 아니다. 1950년대 이탈리아 지식인을 각성시킨 문학 잡지 《오피치나officina》의 편집자였던 그는, 이 잡지를 통해 세계를 도식화하려는 모든 움직임을 거부했다. 





늘 이탈리아의 주변부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파졸리니에게 '소수의 언어'였던 프리울리 방언은 눈에 띄었다. 그는 1942년 프리울리 지방 농민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첫 시집 『카사르사의 노래』를 발표해 젊은 나이에 이탈리아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당시 이 시는 프리울리 방언이 구사되었다.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민중의 언어 사용에도 횡포를 가하던 파시즘 정권하에서 프리울리 방언은 '야만어'의 범주에 속했다. 파졸리니는 해독 불가능한 프리울리 방언의 감성적이면서도 열성적인 순간을 표현하기 용이한 형태를 좋아했다. 물론 프리울리 방언을 선택한 것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파졸리니에게 프리울리 방언은 정부가 획일화시킨 언어 정책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언어이자 예술적 언어였다. 


3 프리울리를 다시 찾은 인류학자 더글러스 홈즈






뉴욕주립대 빙햄턴 인류학과 교수인 더글러스 홈즈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유명하게 만든 저서 중 

『Cultural Disenchantments: Worker Peasantries in Northeast Italy』(1989)란 책이 있다. 이 책의 학술적 의의를 정리하자면, 진즈부르그의 연구 이후 인류학 연구로는 처음으로 프리울리 지방을 다루었다. 홈즈는 프리울리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숙지한 채, 마을로 들어가 이태리 시민과 농민이라는 정체성이 교차된 '역사적 순간'을 목도한다. 

베버의 '세계의 탈주술화Disenchantments of world'라는 이론에 착안한 홈즈는 프리울리 지방이 역사적으로 지켜온 관습과 체계적인 변화의 바람 속에서 이 지방민들이 자기 나름의 생활방식과 정치 의식, 경제적 가치를 긴장 상태에 두고 있음에 주목한다.


1980년대 초반에 연구를 수행했던 홈즈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프리울리 지방민의 감정을 살핀다. 이들은 희망을 노래하며, 자신들의 낙천성을 표출한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제2차 대전 이후 나타난 정립된 '이태리 시민' 자본주의체제의 발현 속에서 혜택으로 다가온 듯한 현대적인 삶의 모델들. 프리울리 지방민들도 이를 모르던 것은 아니었다.


프리울리 지방의 인류학 연구를 통해 홈즈가 보고 싶었던 것은  소작농 노동자Worker Peasantries가  맞이한 변화와 이런 변화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그들 고유의 문화와 감정 또 변화를 받아들이는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와 감정이었다. peasantry가 소작농을 뜻한다면, peasanty는 그 어떤 제도의 압박을 받지 않고 단순하게 전통적 삶을 고수하는 사람을 뜻한다.  두 단어의 의미가 언뜻 겹쳐 보인다. 


이러한 내용을 알았다는 기분을 들고 프리울리 레스토랑에 가보는 게 좀 더 나은 시도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앎 자체'를

더 알고 싶을 뿐이다..


* 각 책들, 곽차섭 교수의 「까를로 진즈부르그와 미시사의 도전」, 한성철 교수의 「파솔리니의 빈민-지방문학 연구」

위키피디아, 아마존, 프린스턴대출판부 홈페이지, 뉴욕주립대 빙힘턴 더글러스 홈즈 교수 소개란 등을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