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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깨갱’모드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자만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시, 이번 선거의 주요 코드였던 ‘심판’이란 단어를 복기해보자. 적어도 투표에 참여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이 ‘예쁜 자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머리말로 달았다. 자식들 다 고놈이 고놈이지만, 그나마 괜찮은 놈이 민주당이기에 찍었다는 원칙. 역사는 민주당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위 ‘반(反)의 정서’로 국민들이 도와준 경우가 몇 번인가를 세어보자. 아니 횟수가 중요하지 않더라도, 민주당이 ‘깨갱’할 때, 국민들이 투표로 도와줬던 그 순간의 농도를 측정할 때, 민주당이 처한 위기의 농도는 꽤 짙었다. 
  

되감기 버튼을 누른다. 결과론적이다, 누구의 탓이다는 6.2 지방선거를 둘러싼 주요 ‘뒷담화’의 틈을 뒤집고 내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장면은, 민주당의 성배를 위해 독배를 들었다는 민주당의 서울시장 경선후보 이계안에 대한 이야기다. 이계안을 언급하는 것이 단순히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의 ‘아쉬운 패배’를 분석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것보다 내가 촉구하는 것은 민주당의 어떤 태도이다. 앞에서 말한 ‘반(反)의 정서’로 대체 언제까지 일관할 것인가. 누군가는 플러스 - 마이너스, 영이라는 이 제로섬 게임의 틀을 깨야 한다. 나는 이 게임의 틀을 깨지 않는 한, 한나라당, 민주당에 대한  ‘도찐개찐론’을 여전히 철회할 마음이 없다.  

 

심판론 앞에 초조해진 또 하나의 정당, 민주당

 

 'MB 심판‘이라는 모토 아래, 이계안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워낙 ’심판‘이라는 모토가 주는 준엄함 때문인지, 당의 결정을 따른 이계안의 태도에 대해 언론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주요 프레임은 “이제 우리를 위해 오실 심판자 한명숙님이여!”였다. 많은 사람들은 “두고봐라, 이명박과 오명박”으로 대동단결한 듯 했다. 심판이라는 정서가 주는 도전자 정신의 주입과 공유는 한명숙과 오세훈의 TV토론과 출구조사의 관련성에 대해 의외의 결과를 내놓았다. 한명숙은 생각보다 준비되지 않았고, 오세훈은 회가 거듭할수록 의기양양했다. 오히려 이 의기양양함으로 빚어진 마지막 TV토론에서의 오세훈의 태도는 분명 마이너스 였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손실을 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출구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 한명숙이 TV토론에서 보인 어눌한 태도는 그리 중요한  감점 요인은 아닌 걸로 판명되었다. 내가 잘 가는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이 점을 안심하고 있었다. “거 봐요, 뭐 TV 토론 사람들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랬잖아요.”

 하지만, 국민들의 안심과 정당의 안심은 달라야 한다고 본다. 민주당은 분명 ‘심판’이라는 모토를 잘 ‘이용’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판을 ‘구성’할 줄만 알았지, ‘창작’할 여력은 역시 없었다는 걸 입증했다. 한명숙의 선전 뒤에 숨은 민주당의 불성실함을 우리가 애써 덮어줄 이유는 없다.

 

 ‘사람특별시’라는 이번 선거의 모토 안에서 기획된 공약들의 논리를 점검해보자. 공약의 논리를 관통하는 것은 철저히 ‘심판’이라는 모토 아래 ‘반(反)의 정서’를 이용하는 것 뿐이었다. “여러분, 오세훈식 행정이 이러저러 했습니다. 너무나 엉망이에요”에 주렁주렁 달린, 반대 이야기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그럼으로 우리는 이렇게 하겠습니다의 논리. 상식적으로는 맞다. 근데 민주당은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내세운 분석안을 그럴듯하게 잘 포장은 했지만, 이 포장의 약발이 이번 선거뿐인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반대’를 넘어서, 그것에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식의 공약은 넘쳤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서울을 고민할 수 있는 공약은 빈곤했다. ‘반대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함으로써 국민들이 ‘그래도 이 친구들이 비교적 상황 판단을 잘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심리선에 적당하게 걸쳐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선거에도  국민들을 ‘헉!’하게 하는 민주당의 의외성은 없었다. 선거 준비를 정말 잘했냐고 묻는다면,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또 한 번 국민들의 동정에 업혔다고 봐도 무방하다. 혹자는 이번 정부의 행보를 통해 정말 “‘운빨’ 장난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당의 ‘운빨’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민주당의 의외성이 돋보일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이계안에 대한 이야기. 특히 이계안과 한명숙의 경선 과정이다. ‘정권 심판’이라는 모토의 농도가 워낙 짙어, 대중들이 봐 준 측면도 있지만, 경선 과정에서 tv토론을 거부한 채, 여론조사 형식으로 후보를 추대한 일은, 민주당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었다. 민주당은 후보 추대 과정에서, 사실 “우리에겐 한명숙 ‘씩이나’ 있다구!”를 외칠 정치적 전술을 펼쳐야 했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은 조급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인물이 없었다. 결국 남은 건 “우리에겐 한명숙 ‘밖에’ 없다구!”였다. 물론 이 결핍과 빈곤의 절박함이 한명숙이라는 인물론을 돋보이게 한 건 유효했지만, 만약 ‘심판’이 그리 지배적인 테마가 아니었다면, (좀 더 세게 말해서, 이 ‘운빨의 코드’마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리 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이계안의 정책이 한명숙의 그것보다 더 뛰어난가? 그것을 장담할 순 없다. 다만, 이런 몇 가지는 적어도 생각해볼 수 있었을 거다. 내가 봤을 땐, 민주당에서 경선 과정 안에 토론을 넣었더라도, 한명숙은 이계안을 이기고 후보가 되었을 게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토론이라는 과정 자체를 없애고, ‘심판’을 준비하는 시간 절약의 효과가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측면은 토론을 통한 서울 시정에 대한 학습 효과였을 것이다. 이계안이 내세우는 서울 시정에 대한 생각, 한명숙이 내세우는 서울 시정에 대한 그것들을 주고 받으면서, 한명숙이 나름 서울을 학습할 수 있는 시간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건 민주당 이미지 전반에도 심판이라는 선거 전략과 더불어, 민주당이 현실 정치 안에서 어떻게 한국 사회를 인식하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어필할 수 있는 기회였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할 때, 민주당은 장기적인 입장에서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전술 하나를 놓친 셈이다.

 

 민주당마저 웃을 이유는 없어

 다행히(?), 사람들은 적진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데 동의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좀 모자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덮어 주었다. 그 안에 이계안도 들어가 있다. 그 또한 이 정서의 논리에 수긍해야만 했다. 예상대로 민주당은 힘을 얻어, ‘중단’과 ‘촉구’의 정치적 수사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그래, 이러라고 뽑아준 것이다”라고 자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정확히 이 시점이 민주당에게도 역풍이 올 수 있다는 위기의 징조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체감한다. 민주당이 야당으로 내세우는 그 ‘반(反)의 정서’가 남은 2년을 채운다면, 변덕 심한 대중들이 또 얼마든 다른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노무현 탄핵 이후 총선에서 눈물을 흘렸던 그들의 태도는 결국 자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에 절망했다. 그 절망이 지금 이 정부를 찍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민주당이 그렇게 강조하는 ‘뉴 민주당 플랜’이라는 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혹시 이게 위기 때만 쓰이는 민주당 스스로의 자위 기구가 아니길 부디 믿고 싶다.

 결빙 효과를 깨야 한다

 특히 이번 선거 과정에서 단일화에 합류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 진보정당을 ‘이상주의’로 매도했던 프레임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 사회 내 현실 정치를 구성하는 정당, 언론, 시민의 노력에 대한 어떤 고민을 이야기하게끔 만든다.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라는 영화를 비평하는 진보주의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도, 그들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뛰어들면 철이 지났거나, 너무나 생뚱맞다고 힐난한다. TV토론에서 노회찬이 오세훈의 입을 납작하게 해주길 바라는 대중의 욕망이, 정작 표로 이어지지 않았던 현실이 아직 한국 사회의 진실이다. (많은 네티즌은 답답한 tv토론을 지켜보면서, 오세훈의 복지를 입만 살아 있는 ‘오랄 복지’라고 평가하면서도, 또한 노회찬의 ‘입만을’ 빌리고 싶어 했던 듯하다) <백 분 토론>에 나오는 진보적 달변가와 한국 현실 정치에 뛰어든 그들이 다르다고 혹은 아직 모자라다고 간주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덧씌운 편견이 아닐까. 우리는 정작 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쾌락 앞에 그 현실이라는 ‘구성된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먼저 타이르는 건 아닐까. 민주당에 대한 절망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민주당 자체에 또 하나의 기대감을 갖는다는 것으로 우리의 생각이 이어져선 안 될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귀결되는, 정치사회학에서 설명하는 ‘결빙 효과’를 깨기 위해선, 우리는 꾸준하게 진보 정당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공간의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보 정당 스스로의 노력 또한 필요함은 물론이다. 
 

<온라인 당비의생각(http://dangbi.tistory.com/61)>에 게재된 원고. 



 
 
비로그인 2010-06-07 13:23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6-08 00:35   URL
고맙습니다. 마기님. 다행히 진보적 지식인들이, 민주당이 자만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칼럼들을 계속 써주고 계시더군요.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