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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3호]부르디외의 국가론 출간을 기다리며 (공감5 댓글0 먼댓글0) 2014-05-31
북마크하기 이달의당선작 윤리적 소비와 '인간미'를 판매하기 (공감10 댓글10 먼댓글0) 2010-07-23
북마크하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공감16 댓글6 먼댓글0) 2010-04-28
북마크하기 이건희 코드 (공감3 댓글0 먼댓글0) 201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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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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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2009-12-30
북마크하기 한국적 다문화주의, 또 하나의 새마을운동 (공감0 댓글1 먼댓글0) 2009-12-18
북마크하기 시각 경제 (공감2 댓글0 먼댓글0) 200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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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리즘의 문화정치>
2009-12-03
북마크하기 파문에 반대한다 (공감15 댓글0 먼댓글0)
<목적 없는 수단>
200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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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2009-10-23
북마크하기 '해피엔딩 콤플렉스'를 넘어 (공감8 댓글0 먼댓글0)
<뉴라이트 사용후기>
2009-09-18
북마크하기 국가는 '상태'다 (공감5 댓글0 먼댓글0)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200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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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이카라 여성을 데리고 사누: 여학생과 연애>
2009-04-18

부르디외의 국가론 강의가 국내 계약되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르디외의 국가론에 대해 깊이 공부해본 적은 없다. 다만 이 책의 4장 「국가의 정신들: 관료 장의 생성과 구조」를 읽다보면 부르디외가 국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 정리해볼 수 있다. 지적 자극을 우선시하는 이에겐 외형적으로 푸코의 생정치보다 그 전개 과정이 심심할 수 있다. 허나 "낱말은 사물을 만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부르디외는 국가가 만들어지는 조금은 상식적인 역사를 기술하면서도 권력의 형성과 분배 과정 안에 깃든 실천의 이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이는 또다른 지적인 자극과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가령 부르디외는 국가 권력에서 '임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왕과 영주 사이의 법적 관계를 보면 영주는 자신의 관할구역 안에서 법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왕을 중심으로 한 법 권력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보편'이라는 이름의 상징이 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왕의 이름을 대신하는 '법률적 인간'이 만들어지고, 영주의 법적 권한은 소멸된다. 이 시기에 왕에게 '임명'이라는 절차가 강조된다. 임명은 곧 국가가 부여하는 상징을 배분하는 실천이다. 명예와 평판이라고 하는 상징적 자본을 관료들은 받게 되며, 국가는 이런 관료들의 마음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세금과 군사 등 '보편'이라고 하는 국가의 상징을 유지할 사회 체계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관료 장의 역동성을 기대한다. 내부의 다양한 권력자들이 갖고 있던 물리적 권력은 이제 왕과 관료 장이라는 형태로 일원화된다. 

부르디외는 세금이란 무엇인가도 묻는다. "반대 급부 없는 징수" 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부르디외가 보기에 세금 징수와 납부라는 실천은 곧 국가의 비인격성을 드러내는 사회적 논리로 구성되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을 위한 납부라는 저항을 막기 위해 나타난 큰 이유는 군대와 영토의 보존이었으며, 부르디외는 여기에 영토 방위에 따른 민족주의라는 연원을 끌어들인다. 군주의 이익을 위함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란 동의의 정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여기엔 국가 외부 세력에 대한 안전과 더불어 국가 내부의 치안을 위해 세금 납부와 징수가 상식이 되는 역사적 과정 기술은 빠져 있다). 이러한 세금 징수를 통해 국가가 애를 쓴 것은 자연스레 통계와 조사였으며, 통계와 조사라는 실천은 곧 법률적, 언어적, 계량적 규범의 통일로 이어진다. 부르디외는 이 과정을 기술하면서 '문서'라는 사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사실 이 틀에서 보론으로 실린 '가족 정신'이라는 부르디외의 글에서는 가족은 국가와 동떨어질 수 없다는 그의 입장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은 1970~80년대 가족 관련한 국내 정부의 백서를 연구 자료로 찾아 읽고 어떤 해석틀을 마련하는 데 푸코뿐만 아니라 부르디외의 가족론도 큰 활용도가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으로 꽉 차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르디외는 가족이란 "잘 확립된 허구"라고 본다. 이것은 오늘날 인기 있는 신자유주의의 '-테크론'을 들먹이며 '기획된-'을 주장하는 가족론이 아니다. 어찌보면 좀 더 푸코적인 '국가와 호적'이라는 문서적/인구적 차원의 가족이 어떻게 오늘날 그 존재를 인증받고 있는가를 부르디외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부르디외가 보기에 국가의 관료장은 문서화라는 형식을 통해 가족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구성한다. 부르디외에게 그래서 호적이란 문제는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특히 가족 정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가족 특유의 따뜻하고 은밀/긴밀/친밀한 정서가 그냥 주어진 소여의 상태가 아니라 국가에서 비롯된 공적 활동의 소산이라고 주장한다. 부르디외에게 가족이라고 하는 프라이버시는 곧 공적 기관이 부과하는 기능들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결을 정리해보면, 부르디외는 '보편'이라고 하는 상징적 자본을 행사하는 국가를 향한 의심을 던지기 위해 어떻게 우리는 국가를 상식적으로 따르게 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다시 돌아보는 작업을 선보인다. 부르디외에게 상징 폭력이란 그 폭력을 당한 당사자가 정작 그 폭력이 폭력인지 모르는 상태 혹은 그 폭력을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상태라는 점에서, '보편'이란 상징적 자본은 의혹을 위한 제1항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