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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경영인문학'을 비판적으로 고민하기 (공감2 댓글2 먼댓글0) 2010-02-19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가 낳은 중요한 성과를 '시민의 자기계발'에 두는 것은 이 연구가 가진 핵심을 얕게 훑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계발'을 뛰어넘는 이 연구가 제시한 잠재적 중핵은, '기업문화'가 가지고 있는 전략.기업이라는 영역 안에서,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종교학,철학,역사학, 문학 등등의 지식이 자본주의 논리에 맞춰 '문화'라는 항을 통해 재구조화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문화라는 항을 통해 지식을 재구조화하는 전략은 새삼 새로운 전략은 사실 아니다. 다만, 더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진화는 대략 2단계로 진행되는 것 같다.

 1단계

우리가 이런 사례에서 너무나 잘 떠올리는 조지프 히스, 앤드류 포터의 수작 <혁명을 팝니다>가 제기한 문제처럼, 자본주의는 '저항'과 '혁명'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잠재태를 '문화적 상징주의'로 재현하면서, 그것을 절묘하게 소비 사회의 틀로 편입시켰다. 이를 통해, '실체적 적대'는 '문화적 적대'와 혼동되었다. 더불어 '실체적 저항'과 '문화적 저항'의 조합은 시험대에 올랐다.자본주의의 이러한 '문화적 상징주의(Cultural Symbolism)'에 대하여, '반문화주의자'를 비판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변화를  꿈꾸어야 하는가의 딜레마를 제기했다.  

2단계 

서동진이 '자기계발 비판 담론'을 통해 중요하게 지적했듯이, 국가와 '자본'으로 대변되는 기업의 전략, '자기계발'전략이 어떻게 지식을 재구조화하는가의 문제다. 이 구조의 문제 틀 안에서, '창의력'이라는 개념은 순수한 진공 상태에 머무를 수 없었고, 이러한 개념의 물질성이 시민 영역의 생활상에 진입하면서, 지식은 하강하였지만, 지식의 하강과 맞물린 딜레마는, '창의력'이라는 개념이 자본에 경도되면서 생성된 '라이프스타일 성'지식의 범람을 제시했다. 이 생활 양식 속에서, 지식을 둘러싼 테마는 '생산 결핍'을 동기화하여,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기 확신, 자기주도성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가상적 내면 공간'을 마련했다. 이 공간은 한 신체 안에서 움직이며, 지식은 이 공간의 융성함을 촉진하기 위한 유연한 에너지로 작용한다. 지식은 곧 무한한 결핍을 원동력으로 삼아, 개인의 일상을 제약한다. 그리고 '창의력'이라는 개념이 진공상태를 깨고 자본중심적 경향의 모토로 강화되었듯이, 이제 '일상성'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문화주의적 발상'에 착안한, 인정될 수 있는 삶의 양식을 넘어, 자본의 진화된 책략 안에서, 그 나름대로의 섬세함을 자가-계발하고 있다. 

내가 2단계를 넘어 2.5단계 차원에서 고민하는 것이 바로 '경영인문학'의 도래다. 사실 이 용어가 널리 쓰여지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있는 용어인지 모르겠으나, 몇 년 전부터 한 유명 원로 지식인의 <ceo를 위한 인문학>등의 강좌가 인기를 얻는다는 사실, 스티브 잡스가 좋아하는 사람이 블레이크 같은 문학가라는 점을 종종 떠올리게 하면서, 이런 '경영인문학'의 확산이 낳는 오늘날 현대자본주의의 전략을 심층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2.5단계인 이유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자기계발 담론'의 분석 기획 방향은 여전히 시민들의 일상성에 침윤된 '자기계발'이라는 문화적 개념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것이 일종의 '수용자 연구'로 정리될 수 있다면, '경영인문학'연구는 기업의 리더쉽과 그 리더쉽을 발휘하는 주체와 연관된 네트워크 체제가, 어떻게 인문학적 지식을 재통합, 재구조화시키는가라는 '생산자 연구'를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연구를 고민하는 차원은 강준만의 <이건희 시대>같은 책에서 볼 수 있듯이, 이건희가 평소 많은 양의 비디오를 본다더라, 영화광이라더라 정도의 가십을 조금 더 깊이 파헤치는 정도로 가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1인의 카리스마 리더쉽을 바라보는 차원을 부연하는 '부연적'지식의 개입이 아니라, 오늘날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로 대변되는 기업가들의 두뇌 안에 들어가있는 전략이, 갈수록 삶의 영역과 친밀해 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일상성의 긍정적 측면과 맞닿는 전략의 개발을 통해, 그러한 기업가들의 두뇌 안에서 전유되는 지식의 성향들 자체가 '문화적'으로 친밀하게 '테크놀로지'속에 스며들어간다는 점의 주목은, '경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지식친화적인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경영인문학 비판'은 특히 기업문화의 구조안에서 경영자들과 지식인들이 어떤 관계 안에서 갈등하고, 서로 조합을 맺는지에 대한 중층 결정점을 잡을 수 있다는 점. 즉 '경영인문학'을 가르치는 자들의 커리큘럼을 통해, 우리는 그 강의를 배우는 사람들의 입장과 그 강의를 직접 수행하는 자들의 입장을 서로 비교분석할 수 있다.   

+ '서동진'의 '자기계발 담론'이 운동의 전술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되려면 

나는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를 둘러싼 반론을 몇몇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확인하면서, 그들이 서동진이라는 아이콘을 갖고, 상당한 '운동의 전술'을 이 책이 강조하는 '자기계발'개념과 엮어보려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들이 '운동가'서동진에게 기대했던 '운동적 전술'로서의 자기계발 전략에 대해 왜 그리 모호했는가 같은 '책망하는 뉘앙스'가, 얼마나 이 책이 갖고 있는 중핵 혹은 잠재성을 갉아먹는 짓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이 책이 그렇다고 무조건 시민의 '자기계발'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진화된 구조주의'다. '진화된 구조주의'안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무조건 간과하는 구조란 있을 수 없다.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구조주의. 개인의 능동성에 문을 열어놓은 듯한 구조주의. 이 구조주의의 틀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계발'이라는 개념에 너무 닫힌 채로, 그것을 일상적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는 시민적 삶의 차원 안에서 이른바 '학문적으로 '소비'하는 연구를 넘어서야 한다. 지금 그 책에 운동적 전술을 갈구하는 자들이 잡아야 할 방향타는 오히려 시민의 차원을 넘어 기업의 전술에 대한 고민의 심화가 아닐까. 이른바 기업문화라는 개념을 통해 말이다. 더 깊은 문제, 문제를 생산하는 문제적 주체(기업)들에 '자기계발'의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 진정 필요한 '운동적 전술'이라고 본다. 고로, 다시 문제는 '일상성'이라는 개념을 더욱 더 섬세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계발하게 된 매개는, 기업 경영가를 비롯해 지식을 구성하는 기업 주체들의 지식 재배치 작업이다. 베버식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대한 언급을 넘어, 단순히 지식이 부연적 기능으로 기업 조직의 엘리트의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것을 넘어, 지식 자체가 어떻게 기업가 주체들의 생산 전략에 재구성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과정 안에서 오늘날 인문학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어떤 순응과 대립의 역학을 만들어가는지를 조망해봐야할 것이다.   

문제는 기업 주체들의 반발이다. 그들은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지식 섭취 과정을 단순히 일상 안에서 편하게 구현하는 스타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얻어내야 할 것은 그 스타일의 이면을 넘어, 기업 주체의 지식 섭취 -> 조직 네트워크 안에 확산,분포, -> 내부 논의되는 과정과 그 생산물이며, 여기에 우리가 '비판적이며 성역이라고 여겼던' 진보적 지식인들의 메시지들은 기업 주체들의 가면에 선함을 덧씌워주는 전략으로 자리잡는다.  

공부라는 것을 하는 우리들에게 정녕 지식은 우리들의 편이었다는 희망은 점점 사라지는 것인가. 나는 이 적극적 회의주의에 기반한 도전적 물음, 사회학적 사유를 좀 오랫 동안 고민해보고 싶다.



 
 
Carrot 2010-02-19 09:23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제목이 아무래도 '자기계발의 의지'이다 보니 그 부분에 많이 천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책의 목적 자체는 거기서 더 나아가잖습니까. 결국 지금의 한국사회를 이야기하는 하나의 작업이구요. 그러나 실은 저도 '경영 인문학'이 과연 후속논의의 주제가 될 수 있을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탁월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는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도 좀 더 밀고 나가서 특히 교육 부분에서는 어떤 분석이 가능할지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물론 책에서 어느 정도 다루고는 있지만 단지 담론 형성 과정에서 그 맥을 따라가는데 그쳤다고 보고, 현재 상황과는 아무래도 좀 유리되어 있지요. 그 시간적, 과정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작업들이 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덧. 그러고보니 네트에 재미 있는 서평 하나가 떠나니더군요. 본 책에도 인용되는 공병호 씨께서 서평을 쓰셨는데 그렇게도 수용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달콤 2010-02-21 00:00   댓글달기 | URL

스티브 잡스 운운하며 '시詩'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책도 나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