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독자(篤字) (얼그레이효과 서재)</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어쩌면 마지막인지도.</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4 May 2013 04:39:25 +0900</lastBuildDate><image><title>얼그레이효과</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17962125799140.jpg</url><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얼그레이효과</description></image><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쉬플레망</category><title>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  </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375970</link><pubDate>Tue, 21 May 2013 13: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375970</guid><description><![CDATA[아래 내용은 페북에 '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 혹은 '단행본을 내고 싶은 연구자들을 위한 제언'이란테마로 끄적인 메모를 모아본 것이다.&nbsp;<br>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1)+날렵한 글쓰기를 고민하는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표현과 문장의 경제성에 대하여<br style="color: rgb(55, 64, 78); font-family: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font-size: 13px;"><br>1. 보통 "신식씨 저는 논문만 써서 이 단행본 스타일의 글이 영 힘드네요"라고 상담을 요청하는 단행본 저자를 꿈꾸는 연구자들이 있다.&nbsp;<br style="color: rgb(55, 64, 78); font-family: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font-size: 13px;">2. 논문을 단행본으로 바꾸는 일을 예전부터 해보면서 좀 정리해둔 생각이 있다.<br style="color: rgb(55, 64, 78); font-family: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font-size: 13px;">3. 일단 자신의 글이 장황하다, 장문이다, 복문이 많다,라는 문제에서 출발해보면, 독자를 배려하고자 논문의 내용을 툭툭 끊어 단문으로 주는데, 이런 배려심이 과하다보면 글이 '초딩스럽게' 된다. 장문 혹은 복문이 단문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표현의 경제성이 아닌가싶다.<br style="color: rgb(55, 64, 78); font-family: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font-size: 13px;">4. 일단 대학원 연구자들은 자신의 논문 독자 대상이 자기 동료와 교수들이기 때문에, 표현의 경제성보다는 어떻게 하면 논리적으로 공격당하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있다고 본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아무래도 더 많이 봐야 하고 그 본 것을 덕지덕지 붙여야 하기 때문에, 그 마음 그대로 가져와 단행본을 꿈꾸면, 그 배려심의 방향이 조금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껴야 하지 않나 싶다.&nbsp;<br>5. 자기 문장이 어떻게 공격받지 않을까라는 심리를 일단 떨쳐버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문장을 다시 고치려고 보면 가령 자기가 주장하는 전체 메시지가 있다면, 자신의 주장 a로도 그 의미가 독자에게 충분히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엇비슷한 주장 b를 더 써서 독자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 '지루하게' 보이는 시각적 형태로 굳어버리는 듯하다. 논문을 쓸 땐 심사위원이 아니 a밖에 안 됩니까? 하지만, 일반 독자들은 심사위원이라고 생각하지말고, 자기 글 읽어줄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이 정도면 알고 있겠지? 하는 과감함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랬을 때 a와 b 중 연구자는 어느 한 문장을 빼고 갈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이 이뤄지면 a를 더 깔끔하게 만들어 보여주면 된다.&nbsp;<br>6. 사실 용어나 학문적 글쓰기에서 나오는 어떤 특유의 문체들이 주는 쉬움/어려움의 문제보다 이 표현의 경제성을 얼마나 연습할 수 있는가가 좀 연구자에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nbsp;<br>* 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2)<br style="line-height: 18px;"><br>1. 대학원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자신이 가진 소양에 비례하는 글쓰기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밥을 먹거나 술을 먹으면 경험상 "우리 같은 사람은 글을 쓰니 마감이라든지.." 운운하며 글쓰기라는 것이 일종의 밥벌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늘 하고, 또 자신이 어떤 저널에 기고를 하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며 공부만 파며 그리 뒤떨어진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그러면서 "어휴 이건 뭐 논문도 아니구요. 잡문인데요 뭘"이런 겸양으로 자신의 능력을 감추는 의례를 발휘하기도 한다.<br style="line-height: 18px;">2. 근데 냉정하게 말해서 나도 그랬지만 대학원을 다니면서 가장 뒤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글쓰기인 것 같다. 이것을 나름 분석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논문 쓰기 탓을&nbsp;많이 하는데,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사실 논문 잘 쓰시네요라는 게 글쓰기의 부분으로 평가받는 건 잘 없는 것 같다. 단지 이런 부분을 오타나 비문 정도로 한정짓진 말자.<br>3. 가령 이런 공부 방식과 그 정서구조를 연관지어봐야 한다. 연구자 자신은<br>왜 수동태에 길들어져 있는가. 연구자들이 단행본 작업에서 가장 고치기 어려운 것중 하나가 바로 '수동태에 길들여진 글쓰기'다. 자신이 무엇을 바로 했다고 바로 치고 나가도 되는데, 항상 연구 대상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에 의해, 그것에 따라라는 문장을 많이 써서 문장이 많이 길어지고 별로 시각적으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영어로 된 원서를 읽고 발제문을 준비할 때 그것도 하나의 번역 연습이라 생각하고 주체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연습이 필요하다.<br>4. 연구자들은 접속사를 남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리고 등의 접속사를 최대한 안 쓰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책을 쓸 때 접속사가 많은 것만큼 흉해 보이는 건 없다. 김혜리의 &lt;그림과 그림자&gt; 같은 책을 권한다. 이 책은 얼마나 접속사를 안 쓰고 독자에게 미문을 전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최고의 텍스트 중 하나다.&nbsp;<br>5. 암튼 대학원에서 필요한 건 글쓰기 교육이다. 문장력은 평생 글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표현해야 하는 연구자에게 주요한 요소다. 그런 면에서 나도 어쩌면 많이 배렸다. 찌들어지기 전에 다들 탈출하기 바란다.<br>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3)+단행본을 내고 싶은 대학원생들을 위한 제안&nbsp;<br style="line-height: 18px;"><br>1.#1에선 표현의 경제성, #2에선 수동태 가급적 자제하기, 접속사를 되도록 많이 안 쓰고 글을 써보는 연습하기, 이렇게 정리를 해봤습니다.<br style="line-height: 18px;">2.#3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br style="line-height: 18px;">섬세함과 과한 설명적 문장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후자의 예는 이렇습니다.<br style="line-height: 18px;">길동이가 김홍중의 &lt;마음의 사회학&gt;을 읽고 비판적 리뷰가 담긴 논문을 쓴다고 칩시다. 이 책의 주요 개념인 '마음의 레짐'을 설명하는데, 길동이는 앞에서 마음의 레짐이 어떻다고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려는데, 길동이는 ~한 마음의 레짐이라고 씁니다. 논문 심사를 받을 때는 교수들이 아무래도 논지 전개를 따지면서 길동이가 이 개념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나, 점검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심사자인 길동은 결국 자신이 이 개념을 적확하게 쓰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한 이야기를 재정리해서 ~한 무엇. 이렇게 반복을 합니다.&nbsp;<br>3. 논문을 위해선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그러나, 단행본을 읽는 독자에게 이런 문장은 시각적으로 매우 지루함을 줍니다. 여기선 과감한 점핑이 필요합니다. 이런 책을 사볼 독자에 대한 배려를 상상하면서 그런 과한 설명적 문장을 놓아두면, 독자는 그것에 고마움 대신 이 책 왜 이렇게 지루하지?라는 냉정한 반응을 돌려줄 것입니다.<br>4.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연구자들이 단행본을 처음 쓰면 자주 보이는 글의 형태가 '앞에서 말했듯이' 유의 문장입니다. 앞에서 설명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정도에서 이렇게 쓰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같은 챕터 안에서도 '앞서 설명했듯이' 이런 문장을 넣어 자신의 글을 따라가달라고 하면, 이 또한 시각적인 지루함을 주고 본인의 주장이 스스로 꽤 탁월해 보여도 이 사람의 논지 전개에 자신감이 없나? 하는 의도치 않은 반응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라는 유의 표현을 같은 챕터 안에서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면 되도록 지양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nbsp;<br><br>*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4)+장문의 유혹을 벗어나기 위하여<br style="color: rgb(55, 64, 78); font-family: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font-size: 13px;">1. 모두 일을 제때 깔끔하게 끝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결심과 달리 매일 허겁지겁할 때가 많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소논문을 내는 대학원의 경우, 이러한 상태는 늘 고민입니다. 잠은 오고, 보고 싶은 것은 많고(그래서 텔레비전 소리라도 들으면서), 연락 안 오던 친구들은 술 마시자고 하고.&nbsp;<br style="color: rgb(55, 64, 78); font-family: 'lucida grande', tahoma, verdana, arial, sans-serif; font-size: 13px;">2. 단문과 장문의 마음 상태. 일단 제 경험을 공유해보자면 처음에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 쓴 단락은 내가 보기에도 깔끔한 것 같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곱습니다. 그러다가 이틀 전, 하루 전이 되면 문장이 요상해집니다. 무엇보다 문장이 엄청나게 길어집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고 그래도 공부한 건 꽤 되는데, 안 넣기는 아깝고&nbsp;하니. 문장 속에 공부한 것을 마치 기네스북 종목 중 티코나 프라이드에 사람 얼마나 많이 들어가기 게임처럼 그렇게 막 집어넣게 됩니다.<br>3. 논문 쓸 때도 그랬고, 편집하면서 조금 스스로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된 지점 중 하나. 장문과 자신이 선택한 단어의 어려움은 같이 간다는 것 같습니다. 가령 ' 다문화주의' 하나를 설명하는 데 문장이 끊이지 않고 5~6줄 정도나 되어야 그 설명이 끝나는 문장.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이야 공부하는 언어를 서로 공유하다보니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래도 알아듣습니다. 그때부터 유혹은 더 깊어집니다. 머릿속에 이래선 안 된다는 감기 기운 비슷한 것이 늘 맴돌아도, 그 기운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기란 쉽지 않은 듯합니다.<br>4. 장문 중에서도 분명 미문이 있습니다만, 장문을 쓰냐 단문을 쓰냐 이 여부를 딱 잘라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장문과 함께 따라오는, 내가 설명하려는 개념에 대해 내가 정말 잘 소화하고 있는 건가라는 문제입니다. 대학원에서는 이론적 공부와 현상 적용이라는 두 범주 안에서 논리를 계속 끌어가야 하는 운동을 연습합니다. 그 연습 과정에서 표현의 기술인 글쓰기에 대해선 제대로 짚어주는 과목이 없습니다. 이 정도 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 쓰지 않겠냐라는 인식도 있는 듯합니다.<br>5. 대학원 안에서 교수가 자신의 글쓰기까지 챙겨주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겁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교수들은 학회 발표하러 가면, 생전 신경 안 써주던 오자나 비문 같은 것을 걸고 넘어지면서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들지요. 그땐 외려 좀 내용으로 교수와 맞장뜨고 싶은데 말입니다. 제 말인즉슨 글과 관련해서 서로 돌아볼 타이밍이 좀 엇갈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스스로를 계속 의심해보는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이 모든 내용은 결국 저의 반성문입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독서 2013</category><title>나는 얼마나 나의 평범성을 사랑하고 있을까 - [완벽한 날들]</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362519</link><pubDate>Sun, 12 May 2013 22: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3625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1555&TPaperId=636251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413/35/coveroff/89609015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1555&TPaperId=63625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완벽한 날들</a><br/>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02월<br/></td></tr></table><br/>1
&nbsp;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메리 올리버의 &lt;완벽한 날들&gt;은 당신에게 극렬한 찬사와 흥분을 원하는 책이 아니다. 김연수의 귀엽고도 탐스러운(?) 추천사에서 나오듯, 당신 내면의 요염하고도 내밀한 애정과 약간의 시기심이 이 책을 통해 느껴진다면 이 책은 그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 뉴스에서 날씨의 변화를 알리는 소식을 몹시 싫어했다. 사시사철 그냥 그렇게 물 흐르듯 흐르는 날씨가 왜 뉴스 첫 꼭지가 되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은 내가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면서 언론의 무용함을 알아가면서 더 커졌다. 
나이가 들면서 귀는 더 얇아지고 주변의 목소리는 더 잘 듣게 되었다. 여기서 잘 들음이란 관용의 차원보다는 타자의 내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내 재미없는 삶의 활력으로 보충하려는 일상적 도청의 의미였다. 중년들은 날씨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그냥 던지는 덧없는 말들에 날씨가 희생되는 것 같았다. 차라리 말을 아끼지, 왜 햇살을, 왜 구름을, 왜 비를 끄집어내어 자신들의 허기에 담으려 하는 걸까. 이런 퉁명스러움이 오래 갔다. 여전히 이런 생각은 남아 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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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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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겐 작은 도전이었다. 메리 올리버는 책에서 평범한 날씨도 보도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이 문장이 나오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완벽한 날들'을 다시 읽었다. 어떤 찝찝함 그리고 약간 틈이 만들어져 그 속에서 방황하는 내 마음들. 쉽게 올리버의 시선에 동요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이 시인이 모아놓은 단어에 박수를 칠 정도로 환호하진 않았지만, 하나 확실했던 건 내 마음속에 깃든 '소소함의 여진'이었다. 이 책이 주는 풍경에 대한 예찬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기보다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도 계속. 페이지를 여러 쪽 넘기고, 아포리즘 같은 문구의 아찔한 경계에 유혹을 받지 않고자 이 책이 주는 특유의 부들부들함에 속지 않으리란 경계심을 부쩍 늘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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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지독한 싸움이 끝났다는 진부한 결론을 내리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속 시시한, 아니 그 누군가가 에이 뭐.
이렇게 시시한. 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진부함에 대한 수긍은, 이 책은 그래도 이 세상은 살 만하다는 가능성에 몇 퍼센트
기여하는 소품이라는 것이다. 트위터에서 쏟아지는 그 매혹적인 냉소의 말에 당신이 조금 지칠 때쯤, 그러나 너무 달달하고 의심으로 대하게 되는 그 찬사로 가득한 언어의 풍경에 지칠 때쯤, 당신은 당신이 지극히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건 ~할 것이다,라는 선언에서 이미 자신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채 그 소진의 상태를 본문 속에 티를 내는 수많은 발기부전의 글과는 달리, 묵묵히 자신이 보이고자 하는 세계를 걸어갈 뿐이라는 태도에 있다. 메리 올리버는 세상을 그냥 이야기해보라고 한다. 많은 이가 이야기해보라고 한다에 방점을 찍지만, 외려 이 책이 찍는 방점은 '그냥'이다. 어깨엔 힘이 빠져 있으며, 글의 표정은 '세상에 바치는 찬사'라는 이 책의 무게와 달리 그 나름 담담하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어떤 자극을 느낄 수는 없지만, 대신 그것보다 더 나은 안정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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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lt;완벽한 날들&gt;은 로저 프라이가 말했던 '정서적 색조'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주치는 예술이란 곧 그 예술과 교류할 수 있는 개인의 회상 혹은 반성에 기대어 그 감흥을 주고받는 매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술은 개인의 회상 혹은 반성이란 일차적 의식 세계를 넘어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무의식의 풍경에 자신의 살을 부대끼는 매개이기도 하다. 로저 프라이는 바로 이 과정을 예술의 상징형식이란 틀 안에서 설명했으며 이를 '정서적 색조'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다.(나는 이 개념을 허버트 리드의 &lt;예술의 의미&gt;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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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완벽한 날들&gt;에는 소소하고 담백한 풍경이 등장한다. 활기차고 명랑한 구호로 가득찬 풍경이기보다는 좀 더 차분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풍경 말하기를 택한 저자는, 풍경을 이야기하며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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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일단 써봐. 노래해. 피가 혈관을 흐르는 것처럼."(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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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찾아본 나만의 정서적 색조는 연두였다. 그곳에는 마치 프로이트적인 '어머니와 아버지와 나'로 구성된 정신분석학적 연대기도, '사회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그물망으로 거창해져보고 싶은 사회학적 야심도 없었다. 연두는 그냥 연두일 뿐이었다. 이 마음이 오래 가길 바라면서. 지금 이 정도로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는 고백이 이 사회가 포획해버린 정체감과 두려움 그리고 세월 따위에 복속되질 않길 바라면서. 지극히 평범한 언어들에 애정을 가져본 지도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 하나가 이 책을 덮을 때쯤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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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나의 평범성을 사랑하고 있을까. 있는 것을 그냥 놓아두지도 못하는 그 두려움의 시간을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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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o:p></o: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413/35/cover150/896090155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1555</link></image></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깊게 생각하기</category><title>왜 그의 필드워크적 글쓰기는 모순적인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308012</link><pubDate>Sun, 14 Apr 2013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3080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933004&TPaperId=630801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426/38/coveroff/899893300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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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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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의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송호근 교수의 이 책은 젠틀하다. 하지만 그 속에 저자의 야심이 가득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쉽게 정리하자면 송 교수는 '50대의 김난도'가 되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어떤 조언 위주의 글보다는 자신을 포함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타인과의 땀냄새/침냄새가 섞인 젠틀한 필드워크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저자가 나름 요즘 텍스트들을 챙겨보고는 있구나라는 점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50대의 엄기호'가 되고 싶어하는 듯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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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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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 스스로 착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필드워크적 글쓰기'란 것이 비단 젊은 연구자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땅과 사람 그리고 접촉의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했던 많은 연구자가 있어왔다는 점에서 그의 필드워크적 글쓰기에 기반한 50대 베이비부머를 향한 그만의 인류학은 사실 그리 신선한 접근 방식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외려 필드워크가 지향하는 경험의 지향성은 소위 "~해봐서 아는데"라는 한국 중년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매우 가깝다는 점에서, 이 책의 필드워크적 글쓰기에 담긴 어떤 태도는 한국 중년 남성들이 흔히 갖는 약간 불쾌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교묘하게 만나는 지점이 있다.
다만 태도의 젠틀함에 섞여 그 교묘함이 약간 순하게 보여진다는 느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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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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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순진한(?) 것이 왜 세대론을 통한 아픔의 위치와 그 중요성이 비단 베이비부머에겐 가면 안 되냐고 아우성치는 것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내가 교묘하다고 쓴 이 표현이 미안할 정도로 저자는 우직하게 베이비부머의 가치 좀 한국 사회가 알아야 한다고 점잖게 그리고 자신이 '사회과학자'라는 그 전문성을 지긋이 내세우면서 책의 결말을 보여줄 때까지 그 태도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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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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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학원생들이 자리잡은 교수들 가운데 술자리를 같이하거나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어떤 학자형 대화의 연구 대상으로도 삼을 만하다. 저자는 호구조사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조상이 누구이냐면서부터 시작되어 그 조상과 관련된 역사적 정보를 꺼내어 공유해주고, 나름 젊은 친구들과도 그 호흡이 끊기지 않을 만큼의 유연함을 선보이면서, 묘한 온기를 내비친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연약한 아버지이자 평범한 아버지이지만, 지적으로 화려하되 경제적으로는 (이 책에서 많이 쓰이는 '운좋다' 등으로 살짝 자신이 이루어놓은 어떤 태도가 자만으로 보일까봐, 그 수위를 낮추고자 겸양된 표현의 전략을 쓰는) 못 미친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위로 대상과 수평적이지만, 그 나름의 차별성도 있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에서 정말 못마땅하다. 수평과 수직의 위치를 교묘하게 겹쳐놓으면서, 내가 이들을 위로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뭔가 관찰자/연구자적 위치에서, 라는 그 객관성으로&nbsp; 그 의중을 숨기면서,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얻은 성과들을 인정해달라고 하는 듯한 묘한 뉘앙스가 이 책에 대한 기분 나쁜 내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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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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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그가 계속 '사회학자'라는 학문적 전문성을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도 매우 불편하다. 가교세대부터 시작해서 나름의 개념 설정/선정을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공유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전문성에 대한 강조가 자신이 위무하려는 세대적 비극-베이비부머의 비극을 온전히 잘 전달하기보단 저자의 나르시시즘 그 이상으론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필드워크적 글쓰기를 통해 최대한 타인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그리고 그것을 젠틀하게 담으려 했지만, 문제는 그 태도의 기본적 설정이다. 구리다/구리지 않다를 떠나서 왜 저자는 '피해의식'과&nbsp; '알아주지 못함'이라는 정서를 통해 베이비부머를 위로하려는 시도를 시작했을까. 그러한 정서가 지배적이라서 이 젠틀한 필드워크가 내세우는 베이비부머의 특성 '그들의 소리내지 못함'과 '울지 않음'의 결합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라는 세대적 고통의 특수성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젠틀한 필드워크는 구리다 이상의 느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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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가 사회 속에서 정녕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느냐/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이 책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메시지를 잘 읽지 못하는 것이리라. 문제는 다시 돌아와서 더 이상 그런 고통의 감수를 보여주면서 사회를 위한 헌신과 희생으로 소리내지 못함이란 상태를 연관시키는 건, 필드워크적 글쓰기가 지향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라는 가치와 전혀 만나지 못함이라는 것. 고로 송호근 교수의 필드워크적 글쓰기는 이미 자신이 내려놓은 사회적 법칙과 개념 틀 그리고 마음의 습관 속에서 자신의 말을 누군가의 입을 대신 빌려 전하는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이미 정해진 풍경과 그 언어 속에서 그만의 세계관이 정해진 사람인 것 같다. 그 안에서 자신이 만난 사람은 그를 깨우쳐주기보단 그의 꼭두각시라는 느낌일 뿐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426/38/cover150/899893300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933004</link></image></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짧게 관찰하기</category><title>키틀러의 책을 읽다가..샛길</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79935</link><pubDate>Wed, 03 Apr 2013 09: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79935</guid><description><![CDATA[1. 키틀러의 &lt;광학적 미디어&gt;를 정독중이다. 읽으면서 한국의 커뮤니케이션학 교육 과정에 대해 내 경험들을 돌아봤다. 내가 대학생 때 맥루언과 더불어 키틀러의 견해를 비교해서 공부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났다면, 커뮤니케이션학에 대한 지금의 내 심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 텐데. &nbsp;나는 한국의 커뮤니케이션학에 환멸을 느낀다.&nbsp;<br>2. &lt;광학적 미디어&gt;는 좋은 번역도 한몫하지만, 키틀러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 더 나아가 확신이 들었다.<br>3. 왜 키틀러를 좋아하는 내 지인들이 기술사에 탐닉하는지 그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br>4. 지젝의 책과 키틀러의 책을 읽으면서 하나 공통점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의인화/인간화의 오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두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 말을 한번 만들어본 것인데, 가령 지젝은 시장에 대한 의인화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자기증식이 고도화하는 과정 속에서 자본주의의 인간미가 있는 것처럼 포장되고 있음을 개탄한다. (동감한다) 키틀러 또한 기술/기술사를 대하는 태도가 마찬가지다. 키틀러는 마치 기술에 인간을 덧씌워 기술의 비인간성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주장은 무용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기술사는 아예 인간과 무관하다는 전제하에 키틀러는 조금은 센 이 견해 속에서 기술의 '사회문화적 의미'라는 국내에도 한때 참 유행했던 연구들의 무용함을 언급하는 듯하다.<br>5. 어떻게 보면 문화연구자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과학-'이라는 부분에 대한 광활한 접촉의 필요성과 가능성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본다. 다만,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문화연구의 그 잡식성이'과학'을 흥미로운 수사로 전락시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nbsp;<br>6. 문화연구는 참 다양하고 넓은 공부를 하지만, 논문들을 보면, 이런 게 너무 연구가 안 되어왔다 그 정도의 '외로움 호소' 이상은 아닌 것 같아 아쉽다. 이야기가 어쩌다 여기까지..끝.<br>]]></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습작</category><title>사장님 조퇴할게요</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70985</link><pubDate>Sat, 30 Mar 2013 06: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70985</guid><description><![CDATA[사장님 조퇴할게요<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김신식<br><br>새벽 두세 시 울퉁불퉁한 표정으로 자기 매장우육탕사발면을 드시던 패밀리마트 아저씨의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미스테리다<br>출근길 개그맨 장두석을 닮은, 늘 후드 점퍼를두툼하게 입고 안 어울리는 색감의 루이뷔통 숄더백을맨 청년은 또 이유 없이 나를 뻔하니 쳐다본다미스테리다<br>버스정류장에 뒤섞인 비누향, 샴푸향은 머리를 제대로말리지 않은 채 누군가는 자고도 있을 시간에 헐레벌떡출근하는 그 혹은 그녀들의 행진이다하지만 그들의 축축함은 미스테리다<br>근데 나 왜 이곳에 있는거지 미스테리다<br>사장님, 저 오늘은 조퇴할게요(씩씩하게 누워 있고 싶어요)<br><br>]]></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습작</category><title>쿵쾅거리는 어려움</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55035</link><pubDate>Fri, 22 Mar 2013 22: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55035</guid><description><![CDATA[쿵쾅거리는 어려움<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김신식&nbsp;<br>지젝 할배는 자기를 문제삼는 게자신에 대한 특권이라는데난 스스로에 대한 바닥일 뿐이야그래서 매일 가슴이 뛰지 그것뿐이니까<br>가슴이 뛰니 문제는 문제야뛰는 건 좋은데 사는 건진 모르겠어그래서 살려고 뭐라도 보는데밑줄을 긋고 접을수록 눈이 가렵고마음은 화생방이야<br>그래서 결국 실소만 남았는데웃으면 웃는다고 뭐라 그래찡그리면 찡그린다고 뭐라 그래<br>그래 이렇게 가슴이 쿵쾅거리는 건뭐라 그럴까봐 두려워서 그런가봐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인데웃음이 멈추지 않아가슴은 더 뛰고...쿵쾅거리는 것도 어렵대웃기지? 무서운 사람&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짧게 관찰하기</category><title>말의 땀구멍</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53284</link><pubDate>Fri, 22 Mar 2013 0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53284</guid><description><![CDATA[말의 땀구멍이 점점 늘어나는 사회에서 모순적이지만 어떻게 하면 침묵하면서 말할 수 있는가를 요즘 고민해보게 된다.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에서 표현이 두려워지는 분위기라는 비극에 의연하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답답하고 두렵다.]]></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난중일기</category><title>퇴근 풍경</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50618</link><pubDate>Thu, 21 Mar 2013 01: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50618</guid><description><![CDATA[1. 시침이 4에서 5사이를 가리키면 신호가 온다.<br>2. "너 왜 이렇게 사람 말하는데 몸을 뒤척이니?"라는 옛 친구의 말이 떠오르면서 다시 컴퓨터를 열심히 쳐다보는 척만 한다.<br>3. 커피를 방금 마셨는데, 포트를 다시 'ON' 상태로. 이미 그날의 에너지는 그날을 위해 다 썼다는 반응이다.<br>4. 야근 할 겁니까라는 비의지적,무의지적 질문이 사무실을 떠돌아다닌다.<br>5. 어이 해야죠. (하지만 '먹튀' 생각 가득)<br>6. 갑자기 내 책상 옆 책꽂이에 책들이 다 잘 있는지 쓰다듬는 눈빛으로 챙겨본다.&nbsp;<br>7. 그리고 조금 더 원고를 본다. (이미 마음은 집에)<br>8.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저녁은 뭐 먹지 하는 기분으로 내일 가방을 쌀 때도 있다.<br>9. 내일 가방이란, 결국 손과 어깨에 아무 부담도 주지 않은 채 워킹화를 신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의 여부.<br>10. 바람이 차네? 파주 날씨를 한번 욕해준다.<br>11. 컴퓨터를 끈다.<br>12. 퇴근 카드를 찍는다.<br>13. 고개를 숙인다.&nbsp;<br>14. 다른 건물을 쳐다본다.<br>15. 버스가 방금 지나갔다.<br>16. 어색한 사람들과 어색한 눈빛을 교환한다.<br>17. 질주하는 버스를 잡기 위해 손으로 미리 여러 번 흔들흔들 신호를 보낸다.<br>18. 탄다.<br>19. 손에 무엇을 쥔 아가처럼 교통카트가 든 지갑을 꼭 쥔다.<br>20. 연습할 오늘의 랩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린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습작</category><title>살점</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47490</link><pubDate>Tue, 19 Mar 2013 22: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47490</guid><description><![CDATA[&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살점&nbsp;<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김신식<br>청각 손상의 위험이 있으니 너무 높은&nbsp;소리로 듣지 마세요란 말을 무시한 채그 빠른 랩 가사를 꼭꼭 씹어먹는다<br>듣고만 있으면 돋아날 줄 알았던 살점은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오징어 눈알이되어버렸다<br>끄덕일 줄만 알면 맨드리 있게 짜일 줄알았던 쥐난 발가락은 발악 끝에차라리 겨울잠을 자자며 스스로를포기한다<br>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라고 묻기가무섭게 눈꺼풀이 무겁다오늘도 불면이다살점이 떠나 방황하는 걸무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밤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습작</category><title>마음이 맵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42409</link><pubDate>Mon, 18 Mar 2013 0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42409</guid><description><![CDATA[마음이 맵다&nbsp;<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김신식<br>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기사의 선의가&nbsp;나의 괜한 심술을 찌푸린다그런 거 있잖나 술에 취해 졸다가다시 깨어나보니 모두 망가져버린그래서 이런 선의가 가시는 정작 아닌데객쩍은 방어의 주문<br>눈이 감기고 졸리는 시간 기사는 날 위해볼륨을 줄여주고 난 거기에 맞춰이어폰을 낀 채 심술을 또 부리고<br>아무 이유 없는데 엄마에게 왜 이리맛없냐며 찬거리까지 따지던 심술은주머니 속은 돈을 가득 구기고 구겨기사 당신이 또 선의를 베풀면 이 돈을 더 구기겠다고<br>눈을 떠보니 세상은 그대로어디서도 연탄 기운은 남아 있질 않아 그치만 매워어디서부터 언제 어떻게 그런 거 다 망가뜨린연탄 기운은 어디에 어디에 너와 나&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쉬플레망</category><title>'결과론적 휴'와 결별하기 </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29487</link><pubDate>Wed, 13 Mar 2013 00: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29487</guid><description><![CDATA[&nbsp;동료 디자이너와 작업을 하다가 디자이너가 좋은 깨달음을 공유해주었는데 꽤 마음에 오래 남는다. '긴장감'에 대한 것이었는데. 내 비유를 섞어 얘기하자면, 928쪽 책을 털어내나 100여 쪽짜리 책을 털어내나 그 긴장감은 늘 '새롭다'는 것. 예전엔 어떻게든 이 긴장감을 멀리하고 싶어 늘 조마조마하다가 '결과론적 휴'라고 내가 이름붙인 행위 한번 내뱉고 말았는데, 요즘은 이 긴장감과 친해져 보려 하는 중이다. 동료 디자이너가 현인이 되어 내가 방금 비유를 섞은 고민을 똑같이 되뇌어줘 고마웠다. 실수했니? 안 했니? 오자가 있니 없니? 보다 내가 갈구하는 건, 내가 이 스릴을 즐길 여유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마음 상태다. 난 정말 내 마음이란 게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그 상태. 외려 그럴 때 긴급한 상황이 고맙다.]]></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난중일기</category><title>출근 풍경</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26545</link><pubDate>Tue, 12 Mar 2013 08: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26545</guid><description><![CDATA[1.&nbsp;'테레비'를 틀어놓고 자면 나름 알람 효과가 있다. 꼭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있는 스포츠 채널을 틀어놓고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린다. 사실 새벽기도 주기라는 것이 몸에 스며들어 있어서 04:30분 가까이에 몸에 반응이 오지만. (그렇다고 드림 워커니 뭐니 하는 신조에 휩쓸린 시간 지키기엔 동참하고 싶지 않다)&nbsp;<br>2. 칫솔을 찾는다. 아니, 그 전에 몸을 한 번 긁는다. 너무 '드라마스러운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어느 정도 '미디어화'된 인간 아니던가. 여기에 큰일까지 보면 더 드라마스럽겠지만, 내 뱃속이 차마 그것까진..<br>3. 클래식을 틀어놓는다. 요즘은 쥴리아 피셔의 연주를 듣는다.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란 바흐의 음악에 조금 몸을 느끼하게 만들어놓는다. 그래야 회사에 가서 온갖 들이대는 자극에 맞설 수 있다.<br>4. 세수를 한다. 클렌징폼이 다 떨어져간다. 그래서 통을 거꾸로 세워놓았다. 기분탓일 텐데 거품이 제법 많이 남았다는 안도감이 부쩍 늘었다. 거품을 '강박적'으로 낸다. 면도를 자주 했더니 턱 주위가 거칠다. 이제 나도 아빠의 턱을 갖게 되었다.&nbsp;<br>5. 향기가 너무 세지 않은 바디로션을 찾는다. 몸 구석구석을 만져준다.&nbsp;<br>6. 팬티를 찾는다. CK에서 이젠 리바이스 드로즈가 좋다.&nbsp;<br>7. 옷을 뒤적거린다. 대학교 4학년 때 산 옷들을 아직도 입는다.&nbsp;오래되어 '비냄새'가 나는 옷들은 신호가 온 건데,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집에서라도 입자고 혼잣말을 건넨다.<br>8. 밤에 켜두었던 컴퓨터 본체를 만져본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랑 함께 살 때 집에 불이 날까 걱정되어 구식 테레비의 뒤를손으로 만져보던 버릇이 이렇게 넘어왔다. 시스템이 뭔가 이상한지 윈도우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 되어 늘 짜증난다. 아침짜증지수 조금 올라간다. 잘 하지도 않으면서.<br>9. 마을버스에 가득찰 사람들 모습에 인상을 미리 찌푸려본다. (어차피 앉아갈 거면서)<br>10. 신호등 안 지킬 저 무시무시한 차들을 미리 째려본다. (나도 안 지킬 거면서)<br>11. 탄다.&nbsp;<br>12. 내린다.<br>13. 들어간다.<br>14.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힐링해드린다. (아 진짜 왜 이리 쓰레기가 많아!)<br>15. 컵 씻는다.&nbsp;<br>16. 포트에 물 담는다.<br>17. 앉아서 회사 메신저를 켜둔다.<br>18. 오늘의 한마디를 바꾼다.<br>19. 달력을 본다.&nbsp;<br>20. 조금 눈을 붙인다&nbsp;<br>+ 9시다. 오늘도 지옥이거나 혹은 좀 더 괜찮은 지옥이거나. 둘 중 하나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습작</category><title>너의 허둥지둥 브래지어</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07417</link><pubDate>Wed, 06 Mar 2013 06: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07417</guid><description><![CDATA[너의 허둥지둥 브래지어<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김신식<br>삼겹살집에서 고기를 먹다가뜬금없이 브래지어를 검색해봤다<br>이 고기만큼 입에 달라붙는 건뭘까부라자 브라자 부래지어다시 뜬금없이 우리 할매 브라자<br>열무국수로 입을 헹구다가아바바바버버브처럼부라자 브라자 부래지어이번엔 (조금) 의도하고너의 허둥지둥 브래지어<br>고기는 생각보다 많이 탔고소주병은 처량하게 나를 보고오늘은 그렇게당신들과의 접속.&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난중일기</category><title>오랜만에 이불을 뒤집어쓰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200030</link><pubDate>Sun, 03 Mar 2013 23: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200030</guid><description><![CDATA[1<br>지난주에 어떤 '부드러운' 충고를 들었다. 단단하고 날선 충고보다 그 효력이 오래가는 듯싶었다. 오랜만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냥 불을 끄고 멍하니 들었던 말들을 곱씹고, 다른 일을 시작하면 되는데. 쉽게 그리되진 않았다. 이불에 묻어 있는 섬유유연제향만이 날 위로해줄 뿐이었지만,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하는 그 반복의 소소한 의지만이 위로가 될 뿐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밤행사'가 되어버린 불을 끄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행위의 리듬 속에서 내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민을 한다는 것'은 진한 향수(노스탤지어)이자, 진한 향수이기도 했다.<br>2'나잇값'인지 그래도 충격의 완화 효과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느낌은 받는다. 얼마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슴을 쳤던지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먹먹해진 가슴에 '그냥 오늘 학교는 띵굴까?' 같은 유혹에 쉽게 마음을 열었던 때에 비해선 참 변했다는. 그런 변화의 뿌듯함이 밤을 휘감으면 잠시나마 따가운 소리는 내 귀에 들어오다 그 유입의 과정을 멈춘다.<br>3사람이 간사해서 어쩌다 보면 그러한 따가운 소리를 상상해서 내게 들어오게 만들려고도 한다. 그런 소리를 벌 짓을 늘 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지만, 파주는 요상한 동네다. 이 정적이 나를 그런 따가운 소리의 풀장으로 들어오라는 유혹의 목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이 파주의 침묵이 때론 무섭다. 여긴 너무 조용하다. 말이 없으니 외려 언어의 두려움을 둘러싼 지나친 발설에 대한 경계보다는 지나친 침묵이 주는 이상한 경계심이 나의 감각을 휘감는 듯하다. 그리하여 난 오랜만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난주 들었던 그 따가운 소리를 &nbsp;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확산/확성시킨다. 이래야 이 심심한 동네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몽정이라도 해볼까. 하긴 몽정은 의지가 아니지. 본능인데.&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습작</category><title>고등어를 굽다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199598</link><pubDate>Sun, 03 Mar 2013 2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199598</guid><description><![CDATA[고등어를 굽다가<br>&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김신식<br>테레비를 틀고 고등어를 구웠다한 남자의 미간이 클로즈업된 장면에말랑한 고등어의 몸매를 이리저리 만져보았다<br>그 남자의 미간이 술렁일 때고등어는 더 딱딱해지고뒤집개의 반응은 요상하다<br>불을 끄고 고등어를 접시에담는 순간그 남자의 미간은 어느새잘 익고 있었다<br>누군가의 고등어가 되어보겠다는소소한 맹세가 절어 있는 채로&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얼그레이효과</author><category>독서 2013</category><title>성찰성의 시각화  -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717962125/6192141</link><pubDate>Thu, 28 Feb 2013 06: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17962125/61921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963464&TPaperId=619214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980/23/coveroff/89949634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963464&TPaperId=61921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a><br/>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2년 09월<br/></td></tr></table><br/>1<br>명성에 비해 내가 올리버 색스를 만난 건 비교적 최근이었다. 누구나 해보는 '명성에 대한 거리두기'가 나에게도 작용했던 것인데, 그런 거리두기가 꽤 쓸모없는 태도라는 걸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봤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는 교훈적이면서 나름 섬세하다. 그리고 이 책은 유머러스함과 진지함을 제법 사려깊이 같이 깔아놓았다.&nbsp;<br>2<br>(외려 어떻게 그런 단순함으로 이 책을 설명할 수 있지? 하겠지만) 이 책은 꽤 단순하다. 공감과 교감, 아픔과 기쁨, 신체와 자아의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태도를 묻는다. 그리고 이 책은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그 진지한 메시지를 역설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좀 '롤러 코스터' 경향이 없잖아 있는 듯하다. 색스는 아포리즘을 억지로 만들어, 자신의 삶을 전달하려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 환자의 고통을 스스로 느껴보는 과정이 너무 달달하게 읽히는 챕터도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챕터들은 '감동적'이라는 느낌으로도 전달될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겐 그런 지점은 오히려 색스가 이 책에서 배려 있게 '전시하는' 자기 생각의 디테일들을 갉아먹는다고 보기에. 약간 거부감이 든 것도 있었다.<br>3<br>하지만, 이 책은 그런 달달함이 비율로 따졌을 때 책 전체에서 절반도 되지 않는다. 색스는 소탈하며,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으며, 그의 활발하면서 생각 많은 수다는 이 책의 클라이막스인 7장「 이해하기」에서 "이 사람 제법인데? "하는 말을 내뱉게 만들도록 이어진다. 결국 우리가 시시껄껄하게 지껄이는 수다도 해석과 정리의 틀 가운데서 의미를 부여받기 마련이다. 적어도 경험에 관한 한 고백과 수다 자체를 지나친 개입 없이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면, 나는 색스가 7장&nbsp;「 이해하기」에서&nbsp;쏟아부은 통찰의 방식을 친구들에게 제안하고 싶다.<br>4<br>어쩌면 이 책은 소위 '일상생활의 사회학'을 주창했던 이들이 말하는 일상과 경험의 연속성이 중지된 상태에서 도리어 느껴보는 일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책인지도 모른다. 색스는 256쪽에서 그의 관심사를 이렇게 정리한다.<br>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정상적인 경험은 외양과 내면 상태를 결합시키고, 외적인 직관과 내적인 직관을 결합시키고, 공간과 시간을 결합시킨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의 경험과 관찰 덕분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심하게 결함이 있는 경험의 가능성이었다. 내면 상태나 외양이 결핍된 경험, 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결핍된 경험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경험을 급격히 무너뜨리는 요인인 것 같았는데, 나 자신의 경험과 환자들이 모두 묘사했던 장애 경험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경험, 즉 경험의 근본적인 붕괴는 칸트의 공식으로 설명하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br>색스가 이 책에서 보이는 미덕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 그리고 이 관계를 아는 대중의 마음속에서 신체적 정상/비정상의 구도라는 전형성을 탐문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외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자아의 시선. 그리고 꽤 현상학적인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기자신에 대한 해석의 방식을 어떻게 추구할 수 있는가라는 그 지점을 '고통스러운 아픔'의 실제 경험 속에서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게 조금씩 꺼내놓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신체적 고통, 혹은 그런 고통 속에서 도드라졌던 정신적 광기 등으로 이 책을 접근한다면, 그 호기심은 제법 진부한 그간 자신이 접해왔던 사례의 복습으로만 단순 소비될지 모른다.&nbsp;<br><br>5그러나 이 책을 좀 더 색다르게 보고자 한다면, 색스의 7장은 그 야심을 스스로 내보인 챕터이기도 하고, 독자 스스로도 이 챕터에서 '건질 게' 많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256쪽 내용이 어렵다면, 257쪽은 더 선명하게 고민거리를 안겨다준다.<br>행동의 급격한 붕괴, 경험의 급격한 붕괴, '범주'의 급격한 붕괴, 기본적인 공간과 시간의 급격한 붕괴를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간단히 말해서, '칸트적' 일이었다.<br>노르웨이의 한 산을 등반하다 부러진 자신의 다리를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의사의 고백담이 칸트의 시선으로 이어진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부담으로도 작용할 수 있지만, 마음을 좀 더 넓게 쓴다면 이것은 신체와 철학에 대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배려심 깊은 유용한 사례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nbsp;<br>6그리고 색스는 무엇보다 칸트적 일을 통해서 신경학 자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인간의 주관성에 대한 수용과 간여를 강조하면서도, 신체를 인식,지각하는 차원에서 '나의 신체를 성찰하는 힘과 그 힘에서 발휘되는 내면 속 시각이미지'라는 테마를 언급한다는 중요한 차원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데서 책의 가치를 높인다. 인간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을 나는 '성찰성의 시각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이 욕심의 단서에는 색스의 이 고백과 수다가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내 스스로를 성찰하다는 것에서 나를 어떻게 떠올려왔는가라는 문제의식.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과거의 내가 가진 아픔을 뚜렷한 현실의 그림이든, 아니면 추상화된 형태로든 그려보면서 그 성찰성을 시각화의 단계로 틀지어본다는 것. 그랬을 때 칸트적 사유의 도식. 스키마라는 신비는 성찰성의 시각화와 만난다.<br>7<br>이런 맥락에서 색스가 이 책에서 짚어본 '병적결손증'은 성찰하는 인간에 대한 가장 육체적인 고통의 외양을 띠면서도, 그 외양과 함께하는 내면의 괴로움을 가장 시각적으로 &nbsp;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증상으로도 해석하고 싶어진다. 내 신체가 내 것이 아닌 상태로 여겨지는 상황을 '상상해보는' 이들의 아픔을 색스는 상세히 소개하면서 그 누구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면서, 색스는 '성찰성의 시각화'를 위한 단계를 성공적으로 진행해나가며 독자를 설득시키는 기술도 아끼지 않는다.&nbsp;색스는 무엇보다 이 책에서 '병적결손증'이라는 증상의 유형화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그 특수성을 강조해 사람들에게 유별남만을 전달할 우려를 보기좋게 어긴 채, 우리에게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욕심도 내비치고 있다. 물론 이 보편성은 늘 내가 좋아하는 땅의 언어와 맞닿아 있다. 그는 우리에게 고통을 돌아보는 힘에 대한 중요성을 젠체하지 않으면서도 그 깊이를 보장한 채로 전달하는 기술자임에 분명하다.&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980/23/cover150/899496346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96346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