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4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구판절판


쉽게 말하면, 나의 문화비평은 나의 장르다.장르를 이해하려면 그 장르를 지배하는, 또는 구성하는 내적 논리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나의 문화비평은 이런 장르의 논리에 기대어 불가해한 영역을 가해한 매개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19쪽

칸트에게 "개념"은 경험적 세계에 "선험적"으로 적용됨으로써 타당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칸트에게 개념은 선험적 비판의 근거들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런 맥락에서 칸트는 개념의 비합법적 사용을 폭로하고 그것의 합법적 사용을 궁구했다. 한편, 신칸트주의자들은 명제의 타당성이라는 것은 이런 경험적 세계와 무관하게 "논리"를 통해서 수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가치체계나 타당성의 영역은 플라톤의 "아이디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플라톤에게 "아이디어"는 일종의 형식forma이었는데, 이는 절대적 인식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35쪽

허위를 통해서 진실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는 것, 바로 여기에서 개념을 통한 새로운 사유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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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1-07-25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그레이효과 님 아침형 인간이시군요...!

얼그레이효과 2011-07-25 05:02   좋아요 0 | URL
아니. 팝님도 이 아침에! (근데 요즘 잠이 안 오네요..큰일입니다.ㅜ.ㅜ)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음 / 뜨인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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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화해할 수 없는 상황. 화해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도모하는 화해는 나쁘다. 이럴 때 어설픈 제3의 길이 등장한다. 제3의 길을 걷는 사람은 중립을 표방하며 화해의 전령사가 된다.-22쪽

독립을 위해 상하이에서 폭탄을 던졌던 조선 청년 윤봉길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악몽이다."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는 외침과 함께 분신을 하여 노동권 실종의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을 어떤 자본가가 좋아할 수 있겠는가.윤봉길과 전태일의 삶이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화해를 모색한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23쪽

(얼그레이효과 주: 양치기 소년을 저자는 예로 들고 있다) 위험을 과대 포장하여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식은 우리 군사 독재 시절이나 요즘의 미국 정부랑 정말 닮았다. 나는 이 얘기가 공포감을 조성하여 아이들이 말을 잘 듣게 하려는 어른들과 백성들이 말을 잘 듣게 하려는 치자들에 의해 사랑받았으리라는 데에 과감히 배팅한다.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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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에 주의하라
n+1 지음, 최세희 옮김 / 마티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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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의 예술과 사유는 유년(22)시절,원시주의primitivism,고급스러운 동물 가면을 지나칠 정도로 자주 재연repetition하고 옹호한다.그리고 힙스터의 반권위주의에는 중산층 젊은이들로 하여금 펑크족이건,반자본주의자이건,아나키스트이건,컴퓨터 괴짜이건,60년대주의자이건 상관없이 하위문화의 특징인 쿨한 태도는 유지하면서,정작 반문화의 권리는 포기해도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 책략이 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미래의 아방가르드는 '얼리어답터'의 커뮤니티로 변질될 소지가 크다.-22,23쪽

제이스 클레이튼 : (전략) 제 생각에 힙스터가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이고 유럽 친화적이기 때문이에요.단적인 예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를 대표하는 힙스터(71)도시임에도 언제나 파리나 런던을 모델로 삼는다는 거죠.페루의 수도 리마에서는 지금 쿰비아라는 전통 음악이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거리 곳곳에서 들을 수 있죠.하지만 정작 그 음악은 컴필레이션 앨범 한 장이 영국에서 수입되면서부터 리마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죠.훌륭한 해설지와 삼십 년 전의 페루 음악인들을 찍은 화려한 사진들로 재포장돼 역수입되었다는 말입니다.그렇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의 힙스터주의는 포스트식민주의와의 싸움에서 이미 패배했고,다시 싸워 이길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보는 겁니다. -71,72쪽

지금까지 토론 과정에서 두 가지 대답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정리해 보면 첫째, 차이를 주장하는 메커니즘으로써의 힙스터주의입니다.너도 나도 점점 더 사소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려다보니,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동질화 압력으로서의 힙스터주의입니다.이것이 일종의 종합적'저항'소비문화를 만들어냈고,그에 대해 사람들은 '나는 참여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참여하고 있죠. -87쪽

제임스 포그 : (전략)힙스터 식의 정치행동주의에는 특히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전했는데, 크라임스Inc에 대해 말한 것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아카식 북등을 읽으며 자랐고 더 이상 히치하이킹은 하지 않지만,여전히 일탈하고 있죠.저는 그런 게 다분히 지젝적인 '아무것도 하지 않음'do nothing이라고 봅니다.즉,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해라'는 것이죠.제 생각에 바로 그런 점 때문에 힙스터를 비판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비판하면 할수록 뭔가 긍정적인 것들이 생겨났죠.-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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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이야기 -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애니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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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이야기'를 알아가는 여정을 통해 나는 '시스템적 사고자 systems thinker'가 되었다. 즉, 모든 것이 시스템의 일부로서 존재하며, 어떤 것이든 다른 부분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0쪽

GDP 계산 방식에는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성장이 유발하는 생태적,사회적 비용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기업들은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에만 분주할 뿐이다.자신이 일으키는 부작용,즉 지표수(16)가 오염되고 사람들이 발암물질에 노출되고 대기가 오염되는 것 등에 대해서는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비용도 물지 않는다. -16,17쪽

다운시프트족downshifts도 있다. 이들은 상업문화에서 벗어나, 노동과 구매를 덜 하면서 자발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간다.그러나 '취하고-만들고-버리는'모델에서 탈피한 삶의 방식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들의 작은 공동체를 넘어서까지 광범위한 문화적 견인력을 갖기는 힘들다. 의식적인 소비를 주창하는 사람들도 있다.기술적 향상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비슷하게,이들은 우리가 친환경 공정과 친환경 제품이 팔릴 수 있는 충분한 시장을 제공하고 그런 것들을 구매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내가 강연을 하고 나면 꼭 이렇게 묻는다. "알겠어요.그럼 무엇을 사면 될까요?"-19쪽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소비가 아니라 '소비주의'(258)와 '과다소비'다.소비는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화와 용역을 취득해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비주의는 정서적,사회적 욕구를 쇼핑으로 충족시켜려 하고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르 규정하며 내보이려고 하는,우리가 소비와 맺고 있는 특정한 방식의 관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과다소비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자원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현재 미국 대부분에서 과다소비가 벌어지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도 점점 그렇게 되고 있다. 소비주의는 과잉의 문제고, '물건을 추구할 때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생기는 문제다. -258,259쪽

심지어 소비 문제에 대해 활동하는 비영리기구와 운동단체들도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많은 단체가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의 질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활동한다. 이를테면,사람들이 억압적 노동환경에서 생산한 초콜릿보다 공정무역 초콜릿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유독한 성분이 들어 있는 면제품을 유기농 면제품으로 바꾸기 위해, 어린이 장난감에서 PVC를 없애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소비의 '양'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어려운 질문을 꺼내는 사람이나 단체는 거의 없다. "우리가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스템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이다. 그런데 내 경험상, 우리 사회에서 이것은 그리 환영받는 질문이 아닌 것 같다. -263쪽

다운시프팅,만족주의, 자발적인 단순함 등 다양한 언어로 표현되는 이들의 접근방식은, 일과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삶을 전환하고자 한다. 이런 전환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일자리를 잃은 후 그것을 일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갖는 계기를 삼는 경우도 있다. 다운시프팅을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여가, 공동체 활동, 자기계발, 건강 등을 우선시하는 쪽을 택한다. 어떤 사람들은 옷을 중고로 사고, 먹는 것의 일부를 직접 기르고, 차를 몰지 않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등 자그마한 실천들을 일상생활에 적용한(280)다. 어떤 사람들은 파트타임으로만 일해도 되도록 지출을 크게 줄여서 생활방식을 조정한다.또 어떤 사람들은 집,자동차 등 목돈이 들어가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쓴다. 여기서 핵심은,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비물질적인 측면을 고양하는 것이다. 그들은 비물질적인 측면들이 행복과 안정감을 주는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280,281쪽

다운시프팅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삶의 전환이 그들이 가진 특권 덕분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석,박사 학력도 많을 만큼 교육수준이 높고, 사회연결망이 더 넓고,이 시스템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더 많이 가진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다운시프트족들은 어쩔 수 없이 적게 갖고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 다르다. 또한 이들 중 많은 수가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난'뒤에는 더 이상 정치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281쪽

어떤 비판을 받고 있든 간에, 다운시프트족들은 1주일에 50시간 이상 일하고 부업을 두 개씩 뛰는 삶 대신 더 즐거우면서도 충분히 잘 영위되는 대안적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다한 노동은 미국인들의 유전도,천성적 열망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과다한 노동-과다한 소비'모델은 정부,기업,그리고 일부 노조 지조자들이 의식적으로 의사결정한 결과로 생긴 것이다. 희망적인 부분은, 이런 결정을 번복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점이다. 개인의 수준에서 다운시프트족들이 그렇게 했듯이 말이다. -282쪽

언젠가는 모든 다른 사람들은 소비자들이 계속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생각해냈으니, 바로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e'다.다른 말로는 '쓰레기장으로 가기 위한 디자인'이라고도 한다. 1950년대에 계획적 구식화라는 말을 널리 알린 미국 산업 디자이너 브룩스 스티븐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구매자가 어떤 물건에 대해 필요한 정도보다 더 새롭고 좋은 것을 필요한 정도보다 더 빨리 원하도록 만드는 것."-285쪽

계획적 구식화 전략 하에서 제품들은 사람들이 가능한 빨리 버리고 새 것을 사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고안된다. 이를 '교체 주기의 단축'이라고 한다. 이런 계획적 구식화는 기술적 구식화와 다르다. 기술적 구식화는 전화가 전보를 몰아냈듯이, 실질적인 기술의 변화 때문에 기존 제품이 구식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285쪽

인식된 구식화 perceived obsolescence'라고 한다. 물건은 망가지지도 않았고 정말로 구식화되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구식이 되었다고 '느끼는'것이다. '소망하게 만드는 특성의 구식화' 또는 '심리적인 구식화'라고도 한다. 바로 여기에서 '취향'과 '유행'이 한 역할을 한다. -287쪽

'인식된 구식화'의 가장 눈에 띄는 형태인 유행, 그리고 제품을 실제 특성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를 통해 판매하는 브랜드 마케팅의 성공은 미국인이 미국의 시민으로서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인(293)식과 관련이 있다. 미국인은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293,294쪽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그란데,벤티,싱글,더블,톨,쇼트,스킴밀크,두유,디카페인 등에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커피에 대해 우리가 내려야 할 의미 있는 의사결정은,그 커피가 어디에서 재배되고 어떻게 운송,가공,판매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커피숍에서 제공되는 선택지 중에서 의사결정을 할 게 아니라, 농장과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서 국제무역협정에 이르는 모든 것에 관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298쪽

나는 우리 각자가 두 부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소비자 자아'고 다른 하나는 '시민,공동체 자아'다.오느랄의 미국 사회에서는 태어나는 날부터 소비자 자아가 육성되고,정당화되고 대변된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메시지들에 둘러싸인다. 우리는 소비의 전문가다. -304쪽

우리의 소비자 자아는 너무 과다하게 개발되어서 핵심 정체성이 되어야 마땅한 부모,학생,이웃,전문 직장인,유권자 등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익사시켰다. 우리 대부분은 시민으로서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내용도 모른다. 소비자 자아의 과잉 개발과 시민 자아의 쇠퇴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사회과학자,역사학자,아동 개발 전문가, 학자 등 많은 사람은 이런 현상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형성된 소비주의적 조건들의 결과라고 본다. -304쪽

많은 사람이 단지 더 친환경적인 것을 사면, 저것 대신 이것을 선택하면 만사 오케이일 것이라고 믿는다(혹은 바란다). 찬물 끼얹어 미안하지만,우리에게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필요하다. '녹색'제품, '친환경'제품 라인이나 도처에 생겨나는 '그린 쇼핑 가이드' 같은 것들에 내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306쪽

회의주의자들은 이를 '그린섬션 greensumption'이라 칭하고, 옹호자들은 '의식적으로 소비하기 conscious consuming'라고 부른다. 소비할 때 좀더 높은 수준에서 경각심을 갖자는 것이다. 실천의 측면에서는 덜 유독하고 덜 착취적이고 덜 오염시키는 제품을 고르고, 환경/건강/사회적 부정의와 관련된 제품은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중략)하지만 '의식적인 소비'가 곧 '시민 참여'인 것은 아니다. '참여적이고 정보가 많은 소비자'가 되는 것으로 '참여적이고 정보가 많은 시민'이 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307쪽

얼그레이효과 : 애니 레너드는 시민 자아를 다시 활성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로 다음을 꼽는다. 1. 더 강하고 생기있는 공동체에 참여하면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307) 2. 공동체적 라이프스타일은 지구에 미치는 부담을 줄여준다(308). 3. 공공의 정치 참여로 전지구적인 문제에 집단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308)-307,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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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리콜하라
이정전 지음 / 김영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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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경제학계는 크게 두 패로 나뉘어 있다고 말한다.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 진영과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 진영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민물 경제학 fresh-water economics이냐 짠물 경제학 salt-water economics이냐를 구분하기도 한다. 대체로 민물 경제학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보수 성향,짠물 경제학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다.사실,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진보 성향의 학자라고 해 봐야 약간 진보적일 뿐이다.민물이든 짠물이든 자본주의 시장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6쪽

사실 수백 년의 긴 역사에서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고질적 실업이나 부동산 투기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 기간은 극히 짧았다. 이런 문제는 오늘날 경제학원론 교과서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최근 부쩍 높아지고 있는데, 그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일반 서민이 가장 걱정하는 25%에 경제학자들도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10쪽

요즈음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유난히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단어를 자주 내뱉는데, 이는 일반 대중의 시장 원리에 대한 무식을 은근히 비꼬는 말이다.그래서 경제학자들, 특히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일반 대중에 대한 경제 교육의 강화를 외치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경제 교육이란, 반기업 정서를 질타하고,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경제학의 기본 논리를 가르치는 교육이다. -11쪽

(전략) 우선 떠오르는 의구심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철저하게 손익 계산을 하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가이다.요즈음 극성을 부리고 있는 성범죄가 과연 복잡한 손익 계산을 거친 합리적 행동일까,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부터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요즈음 신경 심리학자들이나 두뇌 과학자 등 첨단 분야 과학자들도 인간이 과연 그렇게 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를 의심케 하는 과학적 근거들을 무수히 많이 제시하고 있다. 70여년 전 케인스도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일일이 손익 계산을 해가며 합리적으로 행동할 여지는 별로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12쪽

만일 첨단 과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경제학의 가정은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사실, 이런 비현실적 가정이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실로 오랫동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했으며 그래서 결과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공리공담만 일삼게 되었다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경제학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역시 이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현실적 가정은 '경제학의 실패'를 낳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12쪽

세계 경제 위기가 터진 직후 2009년 7월 영국 여왕이 경제학 분야에서 영국 최고 명문인 영국정경대LSE를 방문했을 때, 여왕은 이렇게 물었다. "훌륭한 경제학자들이 많은데 그토록 심각한 세계 금융 위기를 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는가?" 어느 경제학자가 대답했다. "여왕 폐하, 경제학은 이제 망했습니다."-14쪽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각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공정한 방관자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순전히 개인적인 것에 관해서 공정한 방관자는 자제심을 가질 것, 자신이 세운 규칙을 잘 지킬 것, 자존심을 가질 것 등을 요구한다. 예컨대 금주를 결심한 사람이 저녁 술자리 초청을 받았을 때, 공정한 방관자는 술자리 참석을 자제할 것을 요구한다.사회적인 일에 관해서 공정한 방관자는 양심적으로 행동할 것,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것,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우할 것 등을 자기 자신에게 요구한(136)다. 즉, 마음속의 공정한 방관자는 곧 양심이 되며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상충된 요구를 공정하게 저울질하는 판사가 된다.그래서 마음속의 공정한 방관자는 각자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136,137쪽

물론,그렇다고 사람들이 항상 공정한 방관자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열정이 강렬할 경우, 예컨대 술 마시고 싶은 욕망이 충분히 강할 경우에는 공정한 방관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술자리에 참석한다.개인적 욕망(열정)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각 개인으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행위 동기(열정)도 있다. 동정심과 정의감이 바로 그것이다.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보다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며 이 결과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다수의 사람들 마음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동정심이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된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의 서두를 동정심에 대한 이야기로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그만큼 애덤 스미스가 윤리적으로 동정심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증거다. -137쪽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애덤 스미스는 동정심이나 이타심보다는 정의감을 더 중요하게 보았다.동정심이나 이타심이 종잡을 수 없는 것임에 반해서 정의감은 훨씬 더 예측 가능하고 믿을 만하다고 보았다. 그는 대자연이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정의감을 심어 놓았다고 주장했다.이런 천부적 정의감 때문에 사람들이 공정한 방관자의 요구에 부응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사람들(138)의 정의감이 의외로 강하다는 것을 수많은 실험들을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애덤 스미스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138,139쪽

애덤 스미스는 공평이나 사회 정의에 대한 이런 천부적 감정이 정의의 중요한 원천이며,사회를 지탱하는 주된 지주라고 보았다.정의가 없어진다면,인간 사회의 거대한 조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자본주의 시장의 경제적 효율성도 사회 정의의 토대 위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애덤 스미스는 분명히 하고 있다. 그가 《도덕 감정론》에서 강조한 사회 정의가 확립되어야만 《국부론》의 경제적 효율성이 의미를 가진다. -140쪽

최근 도덕심이나 사회 정의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들이 많은 나타나고 있다. 도덕심 및 정의감은 상거래를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 활도에 소요되는 비용을 크게 줄여 준다.경제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의 도덕심은 매우 귀중한 자원이기도 하다. 최근 '사회적 자본'이라는 용어가 부쩍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도덕심의 경제적,정치적 유용성을 부각시켜서 구체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141쪽

완전한 합리성이든 제한된 합리성이든 경제학이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은 항상 목적을 뚜렷이 의식하고 있지만, 윤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일상의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규칙 및 관례가 의도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의식하지 못한 채 그것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도 잘 모르면서 기계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번화가에서 좌측통행 규칙이 더 이익인지 우측통행 규정이 더 이익지 알기 어렵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우측통행이 관례라면 사람들은 그냥 남들 따라 우측통행을 한다. 각 개인의 손익 계산에서는 그 어느 것이나 별로 상관이 없지만, 모두들 우측통행의 관례라면 사람들은 그냥 남들 따라 우층통행을 한다. 각 개인의 손익 계산에서는 그 어느 것이나 별로 상관이 없지만, 모두들 우측통행의 관례를 지켜 주면 모두에게 큰 이익을 준다. 다시 말해서 각 개인이 계산하지 못하는 큰 이익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145쪽

윤리학자들은 '공유의 위력'에 주목한다. 즉, 개인적 득과 실을 초월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그냥 바보 같이 규칙과 관례를 따르고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회적 이익이 발생한다. 교차로에서 교통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 개인에게는 큰 불편이다. 그렇더라도 손익 계산을 집어치우고 모두 무조건 교통 신호를 지켜 주면, 질서가 유지되고 사고를 방지해 큰 사회적 이익이 발생한다.길게 보면 개인에게도 이익이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장기적 이익과 당장의 불편을 비교 분석하고 나서 교통 신호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규칙이니까 지킬 뿐이다. 교통경찰이 있든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보 같이 그 규칙을 지킨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바람직하다. 이 바람직한 결과는 개인의 치밀한 계산 덕분이 아니라 개인이 손익 계산을 중단한 덕분이다. -146쪽

규칙이나 관례를 다수가 바보 같이 준수해 주는 것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진다. 아마도 각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공정한 방관자는 이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규칙이나 관례의 사회적 가치에 대하여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공정한 방관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 규칙이나 관례는 곧 사회적 규범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각자 마음속의 공정한 방관자는 자기 자신에게 이것을 지킬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146쪽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이란 주어진 목표를 최소의 희생(비용)으로 달성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선호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147쪽

애덤 스미스는 인간 심리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경제 현상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현대의 경제학자들은 그를 경제학의 시조라고 추켜세우고 있지만,그의 이론에는 현대의 경제학과는 달리 경제학과 심리학 그리고 철학이 불가분의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여 년 동안 정통 경제학자들은 《도덕 감정론》의 가르침은 알지 못한 채, 《국부론》의 가르침만 발전시켰다. 그런 가운데 경제학은 심리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버렸다. 심리학은 고도로 발달된 실험 방법과 통계 분석에 의거해서 실제 인간의 행태를 연구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학문으로 발전한 반면, 경제학은 고등 수학을 이용하여 이론을 정교화하는 추상적 학문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현실의 인간 행테에 바탕을 둔 실천적 학문과 결별하고 경제학이 독자적인 길을 걷다 보니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비현실적 학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63쪽

주류 경제학은 가치와 가격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상품의 가치는 시장에서 얼마에 사고 팔리는가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가격이 곧 가치를 반영한다고 본다. 경제학 교과서는 가격이 수요와 공급 곡선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수요 곡선은 해당 상품이 우리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정도를 반영하며, 공급 곡선은 생산비를 반영한다. 주류 경제학의 주장에 따른다면, 인간 욕망과 생산비가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셈이다. -250쪽

대체로 일반 서민들은 가격과 가치는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도 가치와 가격을 엄격히 구분했다. 간단히 말하면,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고,가치는 물건을 만드는데 흘린 인간의 땀과 수고를 반영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표현에 의하면, 가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며, 가격은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가치는 본질에 해당하고, 가격은 현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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