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애리얼리의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에는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흥미로운 추천사가 담겨 있다. 브룩스는 애리얼리가 책에서 전반적으로 하려는 생각, '모럴 다이어트Moral Diet'를 이야기하면서 이 책의 각을 잡아준다. 모럴 다이어트란 무엇인가. 짧게 정리해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도덕성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허나 이러한 도덕성 유지가 다분히 '선한 행위'의 지속을 뜻하는 건 아니다. 모럴 다이어트는 대형 사고 규모의 부정 행위까진 부담스럽지만 소소한 부정 행위는 해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만들어준다. 

즉, 다시 말해서 점심, 저녁엔 샐러드를 먹었으니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네, 쿠키 좀 더 먹어도 되겠지? 하면서 낼름 집어먹는 태도. 그것이 모럴에도 해당될 수 있단 것이다. 

 

모럴 다이어트는 자신이 굿 퍼슨, 즉 착한 사람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어느 정도의 안전선을 그려놓음을 설명한다. 적절한 착한 행위, 적절한 부정 행위가 섞이면서 착한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쌓이는 압박감은 적절한 부정 행위를 통해 해소된다. 균형이 맞춰지는 셈이다. 적절한 부정 행위를 하고 나서의 죄책감은 자기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감정선 안에서 나름의 착한 사람으로 맞춰지기 위한 심리 기제다.

 

내향성의 사회학이 주목하는 것은 이런 모럴 다이어트처럼 '감정 다이어트'를 하는 개인과 환경이다. 감정 다이어트란 용어의 활용이 가능하다면, 감정 다이어트는 부정 행위를 했냐 하지 않았냐를 따지는 게 핵심은 아니다. 문제는 '성격 문화'의 차원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성격을 유지하느라 쓰고 있는 심리적 에너지의 변형과 귀환이다. 이것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무조건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고 조용하며 예민하다는 것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고려사항이 된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기 안의 고양이성을 활용하되, 그것을 넘어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거나어느 정도 지켜줬으면 하는 외향성을 소소하게 표출한다.  내향성과 외향성의 균형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내향성 체계 전반을 지켜나가는 데 주력한다. 수전 케인이 『콰이어트』에서 가장 고민하고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 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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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에서 '내향성의 사회학'을 통해 나는 사회학이 다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세세하게 해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싶다 말했다. 고로 '회복'이라는 일종의 대안을 먼저 정해놓고 사회적 풍경을 고찰하는 방식을 택했다. '회복탄력성'의 무력감을 드러내는 일, '회복사회'가 주시하는 낫거나 낫지 않은 상태의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주목하는 일, '회복환경'이 역설하는 자신의 심리적 에너지 소비에 따른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 감정 환경의 조성을 만들어보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내향성의 사회학'이 단순히 개인의 규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정치적 언어의 확장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주목하는 사례로 모임피로감과 가짜외향성, 가학적 유머에 신경 쓰는 내향성 인간에 대한 스케치를 시도해보았다.

 

2주차에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사기꾼, 피해자, 쿨러cooler' 모형을 발전시켜볼 것이다. 특히 사회라는 무대에 심리적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이제 열 좀 식히시고(진정하시고) 차분히 돌아보세요'라고 말하는 쿨러는 어떻게 내향적 인간에게 타격을 입히고 있는지 정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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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민성(가명)은 몇 달 전부터 동료 석진(가명)의 전화를 피하고 있다. 석진이 주도한 모임을 가면 어떤 부딪히고 싶지 않은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민성은 한때 석진이 부러웠다. 흔히 '넉살 좋음'으로 표현되는 저 둥글둥글한 대인관계도 그렇거니와 처음 만난 사람의 이름도 한 번에 다 외우고, 자신이 만나는 사람에 대한 정보량이 대단했다. 

한데 민성은 석진과 이야기할수록 석진이 분위기를 띄우고자 던지는 상대방의 약점을 소재로 한 유머가 자신과 맞지 않음을 만남이 더해질수록 느꼈다. 민성은 이 유머를 시작으로 석진의 장점으로 생각했던 넓은 대인관계 자체에도 부담을 느껴갔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 어느 교수의 연구테마부터 그 교수의 사생활까지 쭉 훑어내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에 대한 반감도 생겼다.

민성이 결정적으로 석진의 전화를 피하게 된 것은 민성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정보로 챙겨온 석진이 술자리에서 그 정보들을 풀어버린 어느 날의 일이었다. "너 이 새끼 겉은 얌전해가지고 속은 시커먼 노무 새끼" "너의 그 예의 바름을 내가 다 풀어줄게 임마" 

민성은 뭔가 들킨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부인하고 싶은 감정도 생겼다. 외향적인 석진이 구사하는 가학적 유머가 자신의 방어수단인 연극적 자아를 타겟으로 삼은 순간 민성은 발가벗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부끄러움이었지만 점차 분노로 변해갔다. 허나 대놓고 싸울 수는 없었다. 민성은 기본적으로 심리적 에너지 소비가 싫은 '에너지 절약주의자'다. 그가 표할 수 있는 최대의 분노는 부재중 전화 만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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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가명)는 팀별 과제가 두렵다. 조가 짜이면 '이번에두 그냥 내가 다 하고 말지' 하는 상태가 된 지 오래다. 선아는 사실 몇 번의 팀별 과제 때문에 마음이 다친 적이 있다. 이는 선아의 성격 그리고 이 성격과 우연히 이어진 공교로운 상황과도 연관이 있었다. 

선아는 기본적으로 거절을 잘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떠밀려서 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그때그때 맡은 일은 최선을 다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괜시리 엄마에게 화를 내는 일도 잦아졌다. 
과제를 위해 모임을 가지면, 다들 쭈뼛쭈뼛하게 있을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선아는 가짜외향성을 발휘해 모임을 이끌어나간다. 팀별 과제에서 관건은 역할 분배의 어려움이다. 이 과정을 아는 이들은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너흰 피티에서 요것만 담당해"라고 말하곤 모임에서 나올 긴장감과 갈등선에서 벗어나려 한다.

가짜외향성은 순간의 갈등 그리고 선택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에겐 일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나 모임피로감을 가중시킬 뿐이다.
문자와 카톡으로 쌓였던 불만이 터져나오고 과제 발표 하루 직전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는 비극도 일어난다. 


큰 문제는 교수가 과제를 할 때 네가 맡은 건 무엇이었냐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다. 선아는 자기가 알아서 대신 과제를 준비하는 것보다 이젠 이때의 곤란함이 싫어 팀별 과제가 꺼려진다.
교수가 묻자 선아와 팀원들은 서로의 얼굴만을 쳐다볼 뿐이다. 어색하게. 선아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애초에 나누었던 역할을 떠올리며 팀을 구하려 힘을 써보지만 교수는 선아의 곤란한 내면 상태를 알고 있는 채 질문했던 것이다.

선아는 이전과 달리 자신이 주도적으로 과제를 했음을 밝히고 집으로 돌아왔다. 카톡 단체방에서 팀원들의 이름을 확인한 뒤 개별 카톡으로 미안함을 전달하려 하지만 지웠다 썼다만을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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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성의 사회학을 위한 비평 작업. 노명우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프레시안 서평에 생각을 담았다.



고양이성의 사회학은 가능할까?


"언젠가부터 책을 읽을 때 눈에 띄는 테마가 있다면 바로 '내향성의 장'이라 이름 붙이고 싶은 것들이다. 내향성의 장은 활달하고 친교에 능하며 과감성이 위주였던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에게 가린 어느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감성 대신 섬세함을 대동한 감수성을, 활달함과 친교 대신 고독과 사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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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성의 사회학을 통해 주목하고 싶은 것은 '회복'이다. 다친 감정 상태에 대해 사회학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란 틀에서 출발한 결과, 꺼내보고 싶은 회복론은 이미 나와 있는 세 가지 개념을 되짚어야 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먼저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무력감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작업이다. 흔히 '바닥을 쳐봐야 안다'는 서사가 현실 속에서 얼마나 더 다양한 층위를 고려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바닥으로의 추락'이란 상태는 무엇인지 감정사회학의 측면에서 그 정서 환경을 분석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바닥'을 재정리하는 작업이다. 빈곤, 배제, 소외라는 큰 틀에 안주하지 않고 '바닥' 자체에서 심리적 에너지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는 그 상태의 인간을 감정사회학은 이야기할 수 있는가를 발전시키려 한다.

이러한 회복탄력성의 무력감 드러내기는 아서 프랭크의 '회복사회recomission society'론을 수용, 확장시킴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회복사회는 질병의 경험 전후 가운데 개인이 병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회복사회는 '나았지만 고쳐지지 않은 상태'의 인간을 주목한다. 누가 나았다고 하는가? 의료사회학자인 아서 프랭크는 근대 의료 담론이 간과하며 함부로 재단하는 개인의 질병 상태에 대한 시선을 비판한다. 
완쾌는 의료 담론의 '인정'일 뿐이다. 한 번 다친 사람이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동일한 이전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둘러싼 전과 달라진 다른 이의 인식, 스스로의 자기 감시와 보호하게 되는 감정이 있다. 
내향성의 사회학은 회복탄력성이 주도하는 긍정적인 멘탈 훈련을 비판하면서 회복사회의 상태에 있는 개인에 주목한다. 아서의 논의보단 좀 더 내면적인 차원에 주력하면서 나은 것과 낫지 않은 것 같은 중간 상태에 있는 인간의 상처받음과 그 사회 현실을 스케치하는 게 내향성의 사회학이 떠안으려 하는 임무다.

마지막으로 내향성의 사회학이 대안으로 바라보는 것은 현대인의 '회복환경restorative niche'을 감정사회학이 만들어줄 수 있나다. 수전 케인이 가짜외향성을 위시한 삶의 연극성에 지친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은 있는가란 문제제기를 한 것에 공감하면서. 내향성의 사회학은 사적 영역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공적 영역의 정서적 연대를 위해 개인이 충전되어야 한다는 사회 현실 수긍과 새로운 정치 언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어떠한 정치 언어를 제시할 수 있을까. 계속 연구해나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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