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다시피 스웨덴에는 '늑대의 시간'이라 일컫는 게 있다. 새벽 3시~새벽 5시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의미다. 남들이 코~하고 깊은 잠에 빠진 시간, 잠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설명하는 데 자주 쓰이는 용어다.

실수가 자꾸 기억난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두렵고 그 목록이 떠오른다. 교회에서 방언이라 말하는 알 수 없는 괴랄한 언어들이 누군가의 방 안을 떠도는 시간이다.


늑대의 시간을 겪어나가는 이들은 '과소감정'(과소감정에 대한 견해는 친구 정용택님의 소중한 생각을 참조했다)이 주는 내면의 억압상태에 예민하다. 혹은 누구나 한 번씩 진단하려는 '과잉감정'에 대한 피로감으로 인해 녹초가 되기도 한다.


새벽3시~새벽5시는 아침9시나 저녁6시에 비해 의미 부여가 뭐 있을까 하는 시간일 수 있다. 허나 내향성의 사회학은 바로 이 '늑대의 시간'을 떠도는 감정의 장에 주목해보려 한다.

늑대의 시간에 쏟아지는 혼잣말, 욕설, 외계어 같은 자기주문 혹은 누군가를 향한 저주는 단순히 심리학의 수리수리마수리만 다룰 문젠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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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양준모는 연이어 울리는 카톡 알림음에 잠이 깬다. 원래 진동 모드로 해두었는데, 무얼 잘못 만졌는지 알림음 모드로 되어 있었다. 카톡을 열어보니 준모가 알고 지내는 저자 F다.

 

"양 선생님, 늦은 새벽 죄송하지만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선생님 안 그러신 분인 줄 알았는데 입이 그리 무겁진 않으시네요."

 

준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하고 카톡 메시지를 계속 읽었다.

 

"어젯밤에 영욱씨랑 영욱씨 친구들과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눴는데, 영욱씨가 제 주변일 이야길하더라구요. 근데 그 이야긴 제가 선생님만 알아달라고 한 이야기 아니었던가요? 당황스럽고 그렇습니다."

 

영욱 또한 준모가 알고 지내던 저자였다. 준모는 잠이 덜 깬, 눈을 찡그린 채로 "선생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란 메시지를 보냈다. 

 

편집자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4개월째. 준모가 들어간 출판사 편집팀 분위기는 조용한 그 어느 편집팀과 마찬가지로  도서관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다. 화장끼 없는 담백한 표정을 한 선배들이 커피 한잔이 가득 담긴 컵 하나 갖다 놓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교정교열만 보는 곳. 점심시간이 되면 각자가 싸온 소소한 도시락을 꺼내 어디 혼자 조용히 나가 먹고 오거나, 몇몇 휴게실에 모여 반찬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거나 혹은 "미안해요. 준모씨 오늘은 별로 생각이 없네요"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채 점심시간에도 교정교열을 보는 그런 분위기.

 

대표부터 막내까지 다 조용조용하고 말이 없는 가운데, 준모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다만 그들보다 조금 더 활발한 정도였다. 말이 잘 돌지 않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준모가 말을 하나 꺼내야 사람들은 "그래요?" 하며 연이은 웃음으로 반응을 주는 그런 분위기였다. 대표는 저자 미팅이나 기획 건이 있으면, 준모를 꼭 데리고 나가거나 처음부터 기획력이 괜찮았던 준모에게 저자 미팅을 잘 부탁했다. 

 

준모가 정신적으로 체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저자 미팅이 잦아지고 준모에게 기회가 자주 주어지면서 말수가 그리 평소에 없던 준모는 저자랑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저자의 관심사를 체크하기 위해 저자가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한번 쭉 읽고 나가거나, 저자가 쓴 예전 책 등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마인드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미팅을 가지면, 저자들은 준모가 꺼낸 자신의 책 이야기엔 흐름을 끊은 채, 준모가 다니는 출판사 사정이나, 업계 사정이 어떤지를 계속 물었다. 준모가 만난 저자들은 거기에 흥미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엔 저자 누구누구의 책이 잘 나간다는 걸 비롯해 책의 비화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말을 그대로 전달한다면야 문제는 없지만, 준모는 없던 이야기의 살을 붙이기도 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회사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생겼다. 어느 날은 한 친구에게 격한 분노를 대신 표출하기도 했다.



"아. 사람들이 왜 그리 조심조심스럽고 그런지. 나도 그리 막 말 많고 활달하고 그런 성격 아닌 거 알잖아? 근데 이 사람들은 나보다 더 그게 더 심한 거야. 왜 나한테만 그런 미팅을 자주 가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이젠 나가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러던 어느 날, 준모는 예전에 작업을 같이했던 저자 영욱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할 이야기가 많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맥주잔만 바라보는 어색함이 자주 찾아왔다. 영욱은 "요즘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요?"로 시작하는 주변 저자들의 사정을 하나둘 묻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이야깃거리가 떨어졌다는 생각에 초조했던 준모는 저자 영욱이 꺼낸 화제에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밝은 표정이 되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준모는 저자 F의 이야기도 꺼냈다. 처음에 꺼낼 땐 선의로 꺼낸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F 선생님 이야기 들으셨어요? 아..요즘 되게 힘드신 것 같던데."

영욱은 "응 F가?" 준모는 며칠 전 만난 F의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하게 말했다. 영욱이 인상을 찡그리고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듣는다는 게 느껴진 준모는 요즘 저자들을 만날 때 한 것처럼  자신의 추측 등을 섞어서 말을 쏟아냈다. 

 

.....

 

 

상황은 그랬다. F에게 죄송하다는 카톡을 남긴 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이 씨발!" 하며 욕을 해대는 것뿐이었다. 후회와 자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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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과 연준이 횟집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헤어진 연인 사이다. 2년 7개월 만의 만남, 어색했던 분위기는 소주 한두 잔이 들어가면서 풀어진다. 시현은 추운 겨울인데도 괜히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그러더니 깻잎에 회 하나를 얹어 연준에게 먹여준다. 연준은 웃으면서 엄지를 올린다. 기분이 좋을 때 엄지를 올리는 건 연준의 습관이었다.

근데 사실 연준의 마음이 그리 편한 건 아니었다. 제법 텀을 가지고 보게 된 사이라지만 연준은 '내가 알던 시현이가 아닌데?' 하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연준과 시현은 같은 대학을 나와 어떤 교양수업에서 서로에게 반한 사이다. 연준은 시현의 거침없는 성격이 좋았다. 똑똑했고 자기 주장이 분명했으며 가다듬지 않는 야생의 표현들이 그녀의 입에서 나올 때 마치 섹스를 할 때 좋은 기분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그녀가 지금 연준 앞에서는 너무 다소곳하다. 신중해졌고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연준은 '근데 시현아 뭐 물어봐도 되니?' 하고 싶었지만 속에 그 질문을 넣어두기로 했다.


몇 주 뒤, 시현과 연준의 관계를 알고 있던 예희를 연준은 만났다. 연준은 몇 주 전 시현을 만났다며 근데 시현이가 자기가 알던 그 시현이가 아니라면서 '절친'인 예희 너는 무엇 아는 게 없냐고 물었다.

예희는 머뭇머뭇거리다 그간 자신과 시현 사이에 있던 일을 하나하나 말해나갔다.

"연준씨, 시현이 걔 지금이 시현이 걔 본모습이 맞어"

"응?"

"시현이는 원래 과묵한 아이였어요. 내가 문제였지. 연준씨 나 알잖아요? 누구 눈치 안 보는 거. 욕도 존나 잘하고 나 시험 전날에도 술 땡기면 낮술 마시고 개 되는 거 좋아하잖아.

시현인 그런 내 모습이 부러웠나봐요. 친하게 지내면서 시현이가 나랑 비슷해지더라구. 처음에 내가 알던 걔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거든. 그러다가 싸웠지. 시현이가 먼저 괴로워하더라구. 자기도 자기를 잘 모르겠대."


연준은 그런 거침없던 시현의 매력이 막상 상실되어 있으니 약간의 실망감을 가졌다. 그런 시현을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관계를 유지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아 하던 소심함과 지나친 사려 깊음이 싫어서 더 끌렸던 시현이 결국 자신과 같은 성격의 사람이었다는 것에 묘한 실망과 짠함을 느낀 것이다.


연준은 예희와 헤어진 뒤 오랜만에 그녀의 싸이에 접속해보았다. 그를 끌었던 어두컴컴하던 글과 생각의 흔적 대신 남은 건 단란한 모습의 그녀와 평범한 계획표뿐이었다. 자신에게 "오빠 존나 멋지지 않아 저거?"라며 "뭐야 이 새끼 너 왜 이렇게 반응이 없어 나 소리 막 지른다" 하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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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은 '합류적 사랑' 말고도 챙겨볼 것이 많은 책이다. 그중 '공의존codependence'이란 개념에 대한 기든스의 심층 고찰은 개인과 개인이 감정상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을 때, 개인이 어떤 아픔을 쌓아놓고 사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쉽게 말해서 공의존이란 개념은 타인의 정체성에 대한 선망이 없으면 자신의 삶을 견디지 못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공의존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애정하는 대상을 향한 헌신에 신경쓰며, 이는 '헌신의 중독'으로 나아가기까지 한다.

아울러 자신에게 없는 성격 혹은 매력을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발견했을 때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부단한 노력을 한다. (이러한 닮기 과정이 일종의 정신병적 징후로 나타났을 때 사례는 바벳 슈로더 감독의 영화 <위험한 독신녀>가 잘 보여주고 있다)


공의존 상태의 기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건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자식의 심리와 그 상처. 부모로부터 감정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 내 헌신이 쌓여왔건만, 부모가 정작 그 헌신의 시간을 외면했을 때 이는 엄청난 공격성으로 돌아온다. 물론 이러한 공격성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부모에게 직접 분출되기보다 치료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기든스의 책에 소개된 여성 니키의 사례. 니키는 어린 시절 어떤 장면이 떠올리기 싫다. 피아노에 소질이 있던 그녀는 이런 자신의 연주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임에 유난히 집착한다. 아버지도 니키의 그런 마음씨가 싫을 리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피아노 연주회. 니키는 아버지를 비롯 많은 이가 모였다는 것에서 오는 긴장감에 그만 곡의 일부를 통째로 연주하지 못했다.


문제는 연주 이후였다. 니키는 자신을 위로해주리라 믿었던 아버지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아버지는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면서 니키를 크게 나무랐다. 니키에게 그 연주회는 아버지와 자신을 둘러싼 기억을 하나의 감정으로 엮어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연주회 때문에 그간 쌓여왔던 니키의 공격성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 혹은 불편했던 일들을 다 기억하는 것과 맞물렸다.


+

내향적인 이들에게 잔 실수를 비롯해 자신이 겪은 상처를 감정과 디테일한 기억으로 재구성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공의존은 타인지향형 인간, 연극성과 더불어 내향적 인간이 감내하고 있는 감정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게 참조하고픈 개념이다.


공의존의 기본 단계를 넘어 더 디테일하게 주목하고 싶은 건 누군가를 닮아간다는 것의 성공과 실패를 겪은 내향적 여성 선미의 상처에 대한 기록이다. 이는 외향성을 일시적인 시간 안에 연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닌 외향성으로 자신의 삶을 다 바꾸려했던 한 여성의 좌절과 우울이다(다음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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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한 관찰 메모를 정리하면서 큰 관심 사항 중 하나는 내향적인 사람들의 공격성이었다. 직접 만나고 관찰한 내향적인 사람들은 특히 ‘어떻게 해야 화를 잘 낼 수 있는 겁니까’라는 문제에 마음을 썼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자극을 담고 사는 주변의 몇몇 내향적인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자신의 공격성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때론 그 공격성은 눈물에 따라오는 자책감과 엮이면서 ‘지난날에 대한 섬세한 기억 복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기억 복기가 온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작은 실수에 대한 과해석으로 자신을 자책함으로써 그것이 위안이 되는 감정의 분출 유형이었다. 특히 이러한 작은 실수의 내용을 들어보면, 자리에 함께한 사람이 ‘아 이 친구가 이 실수 때문에 힘들어 하는구나’라는 예상과 다른 엉뚱한 것들이 제법 있었다.

 

+

관찰기, 「밖에선 달콤, 안에선 매콤」에서 부연하고 싶은 심리 상태는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헬레네 브렘베크의 연구)의 심층 해석이다 빈 둥지 증후군을 통해 보고 싶은 것은 중년 여성과 그의 자식들이 만들어가는 감정 환경의 일부다. 


빈 둥지 증후군의 쉬운 예.


남편·자식과 함께 ‘집안일’로 자신의 일상을 채워가는 중년 여성의 삶 속에서 자식이 분가를 하게 되면 여성은 평소 하던 일의 양이 줄어들게 된다. 이 순간은 엄마로 살아가던 그 여성에게 “야호! 해방이다!”라는 순간으로 인식될까. 빈 둥지 증후군은 그 점을 파고든다. 자신이 늘 행해오던 습관의 일부가 사라질 때 습관의 당사자는 좋아하기보단 '빈 둥지 상태'가 되어버린 자신의 환경에 대해 당황스러워한다는 것이 빈 둥지 증후군의 요지다. 고로 빈 둥지 증후군에 걸린 중년 여성은 분가한 자식의 집안일을 챙겨주려 할 때 적극적이 된다. 물론 ‘모성성’이라는 형태의 개입도 해석 가능한 요인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일어나는 흥미로운 일들』의 저자 빌리 엔·오르바르 뢰프그렌이 빈 둥지 증후군을 해석하는 것처럼, ‘일상 속 습관의 상실’이란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성은 자식들이 부모에게 갖는 미안함과 섞이면서 다툼으로 확장된다. 가령 지난주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주인공 은수와 그녀의 엄마 순심이 벌인 감정 싸움에 주목해보자. 순심은 이 드라마에서 주변 상황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감내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다. 은수는 탤런트이자 옛 연인 다미와 섹스를 하게 된, 더 나아가 자신에게 불성실한 준구를 용서할 수 없었고 이혼을 결심한다. 결국 전 남편의 딸 슬기와 함께 따로 집을 얻어 살기로 한다. 순심은 은수의 집을 청소한다. 근데 이 청소 장면은 모성성과 섞여 있는 정서적 허기를 느끼게 한다.


자신의 딸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늘 해오던 ‘집안일’이란 영역에서 은수의 새집을 청소한다는 건 상실되었던 일상의 습관을 제대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은수는 그 기회를 막으려 한다. 물론 이러한 은수의 제지는 엄마를 아낀다는 선의에 기반한 것이다. 허나 그 선의와 달리 표출되는 은수의 공격적인 감정 상태로 인해 내향적인 중년 여성인 순심은 남편 병식의 표현에 따르면 ‘골이 났다’

순심은 딸에게 받은 상처가 자신에게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 제대로 분출하지 못한 채, 이내 다시 딸의 심리적 상황을 변호하기 위한 순응적 제스처를 취한다.

고로 당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편하고 조용하며 안전하게 누려오던 일상의 습관이 조금이라도 틀어졌을 때, 그 예민함을 어떻게 표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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