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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페북에 '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 혹은 '단행본을 내고 싶은 연구자들을 위한 제언'이란

테마로 끄적인 메모를 모아본 것이다. 


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1)

+날렵한 글쓰기를 고민하는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표현과 문장의 경제성에 대하여

1. 보통 "신식씨 저는 논문만 써서 이 단행본 스타일의 글이 영 힘드네요"라고 상담을 요청하는 단행본 저자를 꿈꾸는 연구자들이 있다. 
2. 논문을 단행본으로 바꾸는 일을 예전부터 해보면서 좀 정리해둔 생각이 있다.
3. 일단 자신의 글이 장황하다, 장문이다, 복문이 많다,라는 문제에서 출발해보면, 독자를 배려하고자 논문의 내용을 툭툭 끊어 단문으로 주는데, 이런 배려심이 과하다보면 글이 '초딩스럽게' 된다. 장문 혹은 복문이 단문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표현의 경제성이 아닌가싶다.
4. 일단 대학원 연구자들은 자신의 논문 독자 대상이 자기 동료와 교수들이기 때문에, 표현의 경제성보다는 어떻게 하면 논리적으로 공격당하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있다고 본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아무래도 더 많이 봐야 하고 그 본 것을 덕지덕지 붙여야 하기 때문에, 그 마음 그대로 가져와 단행본을 꿈꾸면, 그 배려심의 방향이 조금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껴야 하지 않나 싶다. 
5. 자기 문장이 어떻게 공격받지 않을까라는 심리를 일단 떨쳐버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문장을 다시 고치려고 보면 가령 자기가 주장하는 전체 메시지가 있다면, 자신의 주장 a로도 그 의미가 독자에게 충분히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엇비슷한 주장 b를 더 써서 독자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 '지루하게' 보이는 시각적 형태로 굳어버리는 듯하다. 논문을 쓸 땐 심사위원이 아니 a밖에 안 됩니까? 하지만, 일반 독자들은 심사위원이라고 생각하지말고, 자기 글 읽어줄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이 정도면 알고 있겠지? 하는 과감함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랬을 때 a와 b 중 연구자는 어느 한 문장을 빼고 갈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이 이뤄지면 a를 더 깔끔하게 만들어 보여주면 된다. 
6. 사실 용어나 학문적 글쓰기에서 나오는 어떤 특유의 문체들이 주는 쉬움/어려움의 문제보다 이 표현의 경제성을 얼마나 연습할 수 있는가가 좀 연구자에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 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2)

1. 대학원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자신이 가진 소양에 비례하는 글쓰기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밥을 먹거나 술을 먹으면 경험상 "우리 같은 사람은 글을 쓰니 마감이라든지.." 운운하며 글쓰기라는 것이 일종의 밥벌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늘 하고, 또 자신이 어떤 저널에 기고를 하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며 공부만 파며 그리 뒤떨어진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그러면서 "어휴 이건 뭐 논문도 아니구요. 잡문인데요 뭘"이런 겸양으로 자신의 능력을 감추는 의례를 발휘하기도 한다.
2. 근데 냉정하게 말해서 나도 그랬지만 대학원을 다니면서 가장 뒤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글쓰기인 것 같다. 이것을 나름 분석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논문 쓰기 탓을 많이 하는데,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사실 논문 잘 쓰시네요라는 게 글쓰기의 부분으로 평가받는 건 잘 없는 것 같다. 단지 이런 부분을 오타나 비문 정도로 한정짓진 말자.
3. 가령 이런 공부 방식과 그 정서구조를 연관지어봐야 한다. 연구자 자신은
왜 수동태에 길들어져 있는가. 연구자들이 단행본 작업에서 가장 고치기 어려운 것중 하나가 바로 '수동태에 길들여진 글쓰기'다. 자신이 무엇을 바로 했다고 바로 치고 나가도 되는데, 항상 연구 대상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에 의해, 그것에 따라라는 문장을 많이 써서 문장이 많이 길어지고 별로 시각적으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영어로 된 원서를 읽고 발제문을 준비할 때 그것도 하나의 번역 연습이라 생각하고 주체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4. 연구자들은 접속사를 남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리고 등의 접속사를 최대한 안 쓰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책을 쓸 때 접속사가 많은 것만큼 흉해 보이는 건 없다.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같은 책을 권한다. 이 책은 얼마나 접속사를 안 쓰고 독자에게 미문을 전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최고의 텍스트 중 하나다. 
5. 암튼 대학원에서 필요한 건 글쓰기 교육이다. 문장력은 평생 글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표현해야 하는 연구자에게 주요한 요소다. 그런 면에서 나도 어쩌면 많이 배렸다. 찌들어지기 전에 다들 탈출하기 바란다.


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3)

+단행본을 내고 싶은 대학원생들을 위한 제안 

1.#1에선 표현의 경제성, #2에선 수동태 가급적 자제하기, 접속사를 되도록 많이 안 쓰고 글을 써보는 연습하기, 이렇게 정리를 해봤습니다.
2.#3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섬세함과 과한 설명적 문장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후자의 예는 이렇습니다.
길동이가 김홍중의 <마음의 사회학>을 읽고 비판적 리뷰가 담긴 논문을 쓴다고 칩시다. 이 책의 주요 개념인 '마음의 레짐'을 설명하는데, 길동이는 앞에서 마음의 레짐이 어떻다고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려는데, 길동이는 ~한 마음의 레짐이라고 씁니다. 논문 심사를 받을 때는 교수들이 아무래도 논지 전개를 따지면서 길동이가 이 개념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나, 점검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심사자인 길동은 결국 자신이 이 개념을 적확하게 쓰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한 이야기를 재정리해서 ~한 무엇. 이렇게 반복을 합니다. 
3. 논문을 위해선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그러나, 단행본을 읽는 독자에게 이런 문장은 시각적으로 매우 지루함을 줍니다. 여기선 과감한 점핑이 필요합니다. 이런 책을 사볼 독자에 대한 배려를 상상하면서 그런 과한 설명적 문장을 놓아두면, 독자는 그것에 고마움 대신 이 책 왜 이렇게 지루하지?라는 냉정한 반응을 돌려줄 것입니다.
4.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연구자들이 단행본을 처음 쓰면 자주 보이는 글의 형태가 '앞에서 말했듯이' 유의 문장입니다. 앞에서 설명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정도에서 이렇게 쓰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같은 챕터 안에서도 '앞서 설명했듯이' 이런 문장을 넣어 자신의 글을 따라가달라고 하면, 이 또한 시각적인 지루함을 주고 본인의 주장이 스스로 꽤 탁월해 보여도 이 사람의 논지 전개에 자신감이 없나? 하는 의도치 않은 반응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라는 유의 표현을 같은 챕터 안에서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면 되도록 지양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대학원에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4)

+장문의 유혹을 벗어나기 위하여
1. 모두 일을 제때 깔끔하게 끝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결심과 달리 매일 허겁지겁할 때가 많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소논문을 내는 대학원의 경우, 이러한 상태는 늘 고민입니다. 잠은 오고, 보고 싶은 것은 많고(그래서 텔레비전 소리라도 들으면서), 연락 안 오던 친구들은 술 마시자고 하고. 
2. 단문과 장문의 마음 상태. 일단 제 경험을 공유해보자면 처음에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 쓴 단락은 내가 보기에도 깔끔한 것 같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곱습니다. 그러다가 이틀 전, 하루 전이 되면 문장이 요상해집니다. 무엇보다 문장이 엄청나게 길어집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고 그래도 공부한 건 꽤 되는데, 안 넣기는 아깝고 하니. 문장 속에 공부한 것을 마치 기네스북 종목 중 티코나 프라이드에 사람 얼마나 많이 들어가기 게임처럼 그렇게 막 집어넣게 됩니다.
3. 논문 쓸 때도 그랬고, 편집하면서 조금 스스로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된 지점 중 하나. 장문과 자신이 선택한 단어의 어려움은 같이 간다는 것 같습니다. 가령 ' 다문화주의' 하나를 설명하는 데 문장이 끊이지 않고 5~6줄 정도나 되어야 그 설명이 끝나는 문장.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이야 공부하는 언어를 서로 공유하다보니 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래도 알아듣습니다. 그때부터 유혹은 더 깊어집니다. 머릿속에 이래선 안 된다는 감기 기운 비슷한 것이 늘 맴돌아도, 그 기운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기란 쉽지 않은 듯합니다.
4. 장문 중에서도 분명 미문이 있습니다만, 장문을 쓰냐 단문을 쓰냐 이 여부를 딱 잘라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장문과 함께 따라오는, 내가 설명하려는 개념에 대해 내가 정말 잘 소화하고 있는 건가라는 문제입니다. 대학원에서는 이론적 공부와 현상 적용이라는 두 범주 안에서 논리를 계속 끌어가야 하는 운동을 연습합니다. 그 연습 과정에서 표현의 기술인 글쓰기에 대해선 제대로 짚어주는 과목이 없습니다. 이 정도 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 쓰지 않겠냐라는 인식도 있는 듯합니다.
5. 대학원 안에서 교수가 자신의 글쓰기까지 챙겨주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겁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교수들은 학회 발표하러 가면, 생전 신경 안 써주던 오자나 비문 같은 것을 걸고 넘어지면서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들지요. 그땐 외려 좀 내용으로 교수와 맞장뜨고 싶은데 말입니다. 제 말인즉슨 글과 관련해서 서로 돌아볼 타이밍이 좀 엇갈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스스로를 계속 의심해보는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이 모든 내용은 결국 저의 반성문입니다.




 
 
 

 동료 디자이너와 작업을 하다가 디자이너가 좋은 깨달음을 공유해주었는데 꽤 마음에 오래 남는다. '긴장감'에 대한 것이었는데. 내 비유를 섞어 얘기하자면, 928쪽 책을 털어내나 100여 쪽짜리 책을 털어내나 그 긴장감은 늘 '새롭다'는 것. 예전엔 어떻게든 이 긴장감을 멀리하고 싶어 늘 조마조마하다가 '결과론적 휴'라고 내가 이름붙인 행위 한번 내뱉고 말았는데, 요즘은 이 긴장감과 친해져 보려 하는 중이다. 동료 디자이너가 현인이 되어 내가 방금 비유를 섞은 고민을 똑같이 되뇌어줘 고마웠다. 실수했니? 안 했니? 오자가 있니 없니? 보다 내가 갈구하는 건, 내가 이 스릴을 즐길 여유가 되어 있는가에 대한 마음 상태다. 난 정말 내 마음이란 게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그 상태. 외려 그럴 때 긴급한 상황이 고맙다.



 
 
 

 

 

 

 

 

 

 

 

 

 

 

 

 

 

 

 

 

#1

『서울대 명품 강의 2』(글항아리, 2011)는 두 번째 책임 편집을 맡은 책이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대학에서 생산되는 지식' '대학출판부의 현실'을 깊이 생각해봤다. 솔직히 말해 출판계에서 '하버드빨'은 존재한다. 에이전시에서 몇몇 외국 유명 대학 출판부의 카탈로그를 보내주면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선 어떤 책을 냈는지 챙기게 되는 건 시장의 수요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빨'이라는 표현이 지적 속물 같은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이야기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무엇보다 진부한 이야기만 쏟아져나올 것 같아 싫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동경하는 대학교와 그 대학 사회가 만들어가는 지식 생산과 소비 과정의 책임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관점에서 현실을 돌아보면, 한국 대학교 출판부의 현실은 꽤 열악하다. 대학교 출판부에 잠깐 몸을 담았지만 출간 도서의 뚜렷한 맥락이 없는 건 정말 문제다. 편집진이 주도적으로 자신들이 낼 '지식의 컬렉션'을 대중에게 적어도 출판부가 속해 있는 대학내 학생들에게라도 전해야겠다는 강한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짧게 말해 '주먹구구식' 출판의 흐름으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교수들이 자신의 강의로 쓸 교재가 주를 이루고, 가끔 언론 등에서 다룬 "대학 출판부도 상업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란 소식은 그냥 단막극 수준의 제스쳐로만 보인다.

 

 대학 출판부의 '상업 브랜드' 출범이라는 건 간단하게 '대중 취향'이라는 개념으로 허투루 묶을 순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 주제를 좋아하며, 그것을 하나의 좋은 지식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까, 라는 문제와 이를 독자들이 알기 쉽도록 짠 구성(목차)이 필요하다.

 

 

#2

출판계에서 '-강의'라는 컨셉이 유행한 지 꽤 되어간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주최한 시민교양강좌 2011년도 내용을 '단행본' 형태로 변환시킨 『서울대 명품 강의 2』는 1권보다 필진은 줄어들었지만 무엇보다 '요즘 사람들'이 갈구하는, 그리고 일상에서 반드시 챙겨봄직한 주제를 '언급'해보자라는 강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흔히 '-연구원'하면 대중과 괴리되었다는 생각이 많은데, http://css.snu.ac.kr/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챙겨 읽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논쟁이나 학문 이슈들이 제법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제 좀 도전해보고 싶은 성격은 좀 더 '하드한' 책이다. 그린비나 길 같은 그리고 문학동네 인문팀이 내는 컬렉션에서 조금 더 친절한 책들. 물론 친절=쉬움이라는 성립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친절이란 책의 목차에서 드러나는 구성이다. 각각의 쉬운 문장도 중요하겠지만, 책을 이리저리 챙겨봤을 때, 사람들이 이 책 읽어야겠다는 목차. 무엇보다 하나씩 '범주화'시켜주는 목차이면서 저자가 자기도취에 빠져 각각의 글에 심혈을 기울이되 전체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 목차.

 

그리고 이 목차의 범위를 확대시켜 각 대학이 만들어가는 '지식의 목차'가 분명 있어야 한다는 생각. 이 일을 대학교 출판부가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책을 '내버리'는 일이나 '내주'는 수준이 아니라 지식을 적극적으로 조립, 조합, 변환시키는 과정을 대학교 출판부가 더 고민해줬으면 하는 생각. 그리고 여기에 단행본 출판사와의 협업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박효엽 선생님의 『불온한 신화 읽기』(2011)는 엄밀히 말해 내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 인도 철학의 '인' 자도 몰랐던 내게 이 책의 내용은 큰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이젠 내용의 옥석을 가리며 비평의 시선을 견주는 일에 대한 비중 만큼 '물질'로서의 책을 만드는 데 신경을 써야 했다. 독자들은 어떤 글자를 썼을 때 이 책을 술술 잘 읽을 수 있을까? 책을 손으로 잡았을 때 판형은 어떤 게 적당할까? 기본 먹색(검은색)과 잘 어울리는 별색은 무엇일까? 등 이 일은 내용을 잘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스타일의 테크놀로지'였다.

 

이 스타일의 테크놀로지가 꾀하는 건 결국 유인誘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인에서 표지는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표지의 변화를 간단하게 살펴볼까.

 

 

 

 

 

 

 

 

 

 

 

 

 

 

 

 

 

 

 

 

 

 

 

 

 

 

 현재 표지로 오기까지 몇 차례 수정이 있었다. 제목 또한 『세상의 눈으로 바가바드기타를 읽다』『신화의 거짓말』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 『불온한 신화 읽기』를 택했다.

 

이 제목은 이중적이다. 인도 최고의 경전이라는 여겨져온 바가바드기타 자체가 '불온한 신화'라는 것 그리고 경전 자체를 선의에만 입각해서 읽는 것을 경계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살리고자 '신화 읽기의 불온성'을 강조하려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다는 건 불온한 신화를 만나는 일이자, 신화 자체를 불온하게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용어를 쓰자면 이 책은 바가바드 기타를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이 책은 다행히 서로의 멱살을 잡을 필요도 없고, 트위터로 날을 세울 필요도 없다. 오히려 느긋하게 한 장씩 넘기며 책을 더욱 예리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분위기의 책이다.

 

 

 

이런 분위기가 필요한 건 무엇보다 이 책이 '생각과 여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가슴도 중요하지만 머리도 중요한 것 같다. 머리를 통해 장면을 상상하는 것. 인도에 가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바가바드기타의 주인공 크리슈나 신과 아르주나의 그림 속 배경을 그려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이 책에 담긴 글자는 허공에 있지 않고, 땅에 있게 된다. 어떤 책이든 그렇지만, 이 책은 더욱 그렇다. 몰아치고 계속 몰아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러나 여전히 하늘만이 아니라 땅 냄새를 챙기고, 땀 냄새도 챙긴다. 사람의 가치를 잊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화를 통해 신에 대한 추앙을 무조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속살과 속내를 본다는 소위 '불경한 자의 독해'가 오히려 신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게 저자의 논지이다.

 

이 책의 장점은 저자의 머릿속에 짜여진 한 편의 희곡 같은 구성이다. 누구든 보이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춤을 추거나, 어제 봤던 드라마 속 캐릭터를 따라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은 잘 쓰다가 내버려둔 메모장을 챙겨 자신만의 이야기를 끄적거린 경험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선보이는 희곡적 구성은 '단독의 방'에서 시작된 느낌을 준다. 오직 들숨, 날숨의 낌새만이 채워진 방 속에서 저자의 머리에만 소음이 부풀려져 있는. 그래서 이 소음이 자아내는 요란함은 불온하게 신화를 읽는 원천이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문화 연구를 전공했기 때문에 편집을 하면서 닫는 글 <기타>라는 상품이 덜 팔려야 <기타>가 되살아난다, 가 가장 흥미로웠다. 이 챕터는 저자의 철학적 시선이 '정신의 자본주의화'라는 지점에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요가는 어떻게 우리에게 철저하게 유익한 상품이 되었는가. 저자는 바가바드 기타를 통해 신의 섭리만을 좇던 관습적 독해 대신 우리 시대의 신이 된 '자본주의의 섭리'를 파헤쳐보려 한다.

 

이 책을 통해 인도는 누구나 한번쯤 다녀와서 자신의 여행 경험담을 전파하는 나라가 아니다. 역사적인 치밀함, 사회에 내재된 쟁투가 도드라진 나라다. 신화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결국 그 신화가 '만들어진 '사회의 마음'을 읽는다는, 이젠 제법 상식적인 시선의 기본기를 갖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의 부제를 바가바드기타는 인도를 어떻게 신비화하였는가로 지었다. 이유는 지금까지 말해온 것을 종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신화와 신비화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한 글자 차이로 우리는 신화를 통해 위험에 빠질 수 있고 때론 그 위험이 위기가 되어 이 시대를 성찰하는 데 필요한 사유의 주요 수단을 챙길 수도 있으리라.

 

다시, 생각이다. 



 
 
알로하 2012-10-29 11:32   댓글달기 | URL
바가바드기타에 관심이 있어서 이 책을 유심히 봤더랬습니다. 표지도 예쁘고 느낌이 좋았는데 얼그레이효과님 작품이셨군요. 신화에 관한 얘기인줄만 알았는데 현 시대에 대한 성찰도 담고 있다니 꼭 한번 봐야겠어요.
 

 

두 번째 책임 편집 맡은 책이 나왔다. 

<당대비평> 있을 때도 '공저' 형태의 책에 참여했지만 역시 기획자가 아닌 편집자로서 '공저'를 매만진다는 건 

또 다른 문제이구나 생각한 두 달이었다. 

1편이 글항아리 효자 상품이었는데, 2편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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