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둥지를 찾고, 만드는 건 어렵구나.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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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12-02-2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웰컴백 ㅋ

드팀전 2012-02-23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이름이 낯설어요.^^ 제가 좋아했던 홍차를 연상시키는 예전이름이 ㅎㅎ 좋다는

얼그레이효과 2012-03-07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샥샥이 라이프~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른 동네에서 생활해보려고 합니다. 알라디너 분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많이 깨닫고 갑니다.

- 얼그레이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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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소년 2011-12-30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헉... 어디로 가시는지는 알려주셔야죠 ㅠㅠ

2011-12-30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이버에 '목사 아들'을 쳐보면 김용민씨의 별명인 '목사 아들 돼지'가 가장 상단에 뜬다. 그리고 조용기 목사 아들 / 목사 아들 / 김장환 목사 아들 / 옥한흠 목사 아들. '나꼼수' 때문에 목사 아들 돼지가 검색이 많이 되는 건 이해가 된다 쳐도, 조용기 목사 아들, 옥한흠 목사 아들이야 유명해서 그렇다 쳐도, 사람들이 그냥 '목사 아들' 자체를 쳐본다는 것이 내겐 신기했다. 

 

30년째 목사 아들로 살아오면서 한국 사회가 '목사 아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나는 책으로 한번 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무엇보다 목사 아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일까 정리해보고 싶었다. '감정 노동'이란 개념 자체를 너무 넓게 쓴다면 훅쉴드가 미워할지도 모르겠지만 좀 양해를 구한다면 목사 아들, 딸, 그리고 '사모님'이라 부르는 목사의 아내까지. 목사의 가족들은 대부분 힘든 생활을 한다. 

고맙게도(?) '개척교회'라는 교회-신도-자본의 삼항 속에서 마이너한 위치에 있으면 목사 아들은 더 주목할 만한 에피소드를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라는 그 신앙이 자동적으로 처리해주는 목사 아들의 '하위문화적 성향' 같은 것이 하나의 예라고 할까. 목사 아들이라는 그 바르고 성스러운 이미지와 대비되는 모습 속에서 목사 아들은 하위문화 장에서 나름의 고유성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거나 아니면 일반적인 도덕주의의 시선 속에서 세간의 '쯧쯧쯧' 대상이 되어 뒷담화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목사 아들은 "네, 아버지께서 목사님이십니다"하면 이미 상대방이 분석을 다 끝내버린다는 점이었다. 이 분석은 "아 어쩐지 얼굴이 되게 은혜롭게 생기셨어요. 딱 목사님 아들처럼 생겼어요"와 같은 진부한 것이기보다는 목사 아들이 갖는 고충이나 기독교라는 종교 장에서 일찌감치 떨어져나간 점을 주목하고 알아서 목사 아들의 '반기독교적 성향'을 상대방이 조명해준다는 점이었다.  

목사 아들은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누구는 홍대 감성으로 "아 세상 참 x같네"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한 세상을 혐오하며(사실은 아버지에게 늘 미안한 감정을 가진) 분노를 쏟아내는 가사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길 갈망할 것이다. 다른 누구는 넓은 사택, 뜨신 밥, 반듯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하하하 호호호 거리며 kbs 1 '8시 30분' 드라마 버전의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목사는 예수를 빛내고 성도를 빛내며 교회를 빛내지만 자기 가족을 빛내며 살지는 못한다는 것을 나는 거의 '사실' 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건 뒤에 '-사'자 달린 직업 가진 사람들의 비애인 것 같기도. (변호사가 자기 변호를 잘하면 그것도 뭔가 깨고, 의사가 자기 몸을 잘 치료하면 그것도 뭔가 이상하고 그런 느낌이 들어서 암튼.) 

비유를 하자면, 악기 연주를 기말 시험으로 대체하는 음악 시간에 다들 색소폰이니 피아노니 장황하게 준비해 갖고 오는데, 목사 아들은 리코더 하나 준비해서 비틀즈의 렛 잇 비를 참 힘겹게도 부른다. 다들 면허도 따고 재주 하나씩은 있는데 그나마 남은 건 글 좀 쓴다는 그 연약한 것으로(이것도 사실 개뿔이지),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타인에겐 적절한 교양 과시와 친절함으로 버무려 그나마 덜 욕먹는 삶을 산다는 것에 위안을. 목사 아들의 그 어정쩡한 포지션은 '나'의 고통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도 겪고 있을 고통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목사 아들인 자신보다 주변인이 목사 아들을 더 잘 아는(?) 한국 사회에서 목사 아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단순한 신세 한탄을 넘어 그것이 뭔가 변화의 지점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김용민이 나꼼수에서 보여준다는 그 화법이 좀 구리긴 하지만 먹힌다는 것을 보면(자신이 속한 종교에 대한 패러디 방식), 뭐랄까. 한편 이 사회는 여전히 목사 아들에 대한 좀 촌스럽지만 인정도 해야 하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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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k 2011-12-01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려서부터 교회 내에서 스폿라이트를 받고 자라 하늘 높은줄 모르고 (!) 설치는 목사 아들이 있나 하면
아버지 (요즘은 어머니도 있다죠)의 이중성을 체험하고 종교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에 까지 환멸감을 느껴 족구하라는 목사 아들도 있고
목회자의 자제로서 훈련받고 양육받아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표본이 되는 목사 아들도 있지요.

나꼼수를 한번도 못 들어봐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4,5,6은 정말 큰 공감이 가네요 (저는 그냥 아들입니다 ^^;;)

사회의 '목사 아들'에 대한 시선, '목사 아들'의 사회를 향한 시선, 그리고 목사의 자제들을 향한 시선

이 3가지는 저도 참 궁금합니다. 2번이 실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saint236 2011-12-0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묘한 포지션이죠..목사아들이란...
 

내 까칠한 블로그에 비해 다소 야들야들하고 달달한 제목이지만 정말 요즘 되뇌이는 표현은 '감사'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 삶에 다가온 어떤 고마운 사람들을 위한 표시는 아니다. 나는 스페셜 쌩스 투처럼, 앨범 한 면을 다 채우면서까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이 감사는 삶에서 느끼는 분노를 치유하고 싶은 내 바람이자 일종의 환영일 뿐이다. 내가 정말 이 삶에 감사하고 있음을 느끼자는. 그 착각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을 맡기자는.  

아울러 "살면서 기대치를 낮추면 돼"같은 그 진부한 말도 요즘은 내 삶의 방어막이 된 것 같다. 근데 이것 또한 정말 사람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기 위해 내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기보다는, 그런 것조차도 신경쓰지 않은 채 하루를 연명하는 듯한 요즘 생활 리듬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무언의 명령 같은 것이 되었다. 

이 두 껍질을 벗기고 나서 실제 내가 갖고 있는 요즘 감정은 내가 늘 집착하는 문제인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을 드러내고 감추는 정도. 그것과 어쩔 수 없이 연결된 타인. 그래서 실컷 욕하지도 못하고 실컷 울지도 못하며 실컷 웃지도 못하는 현실 속에서 한숨을 푹 내쉬고 사무실 바깥에 서 있는 또 다른 저 무미건조한 사무실들을 보면서 무엇을 채우기보다는 백지 상태를 날마다 만드는 것이 소원인 요즘. 

자학의 시, 라는 만화에서 느꼈지만 두려움은 우리의 삶에 대한 절단이 아니라 아련한 삶의 지속성을 드러내는 무기일지 모른다. 이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난 매번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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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5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7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조금 과장을 보태어)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자리에서 '나는 꼼수다' 이야기는 여태껏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왔던 것 같다. 적어도 그 대화 자리에서 내가 '나꼼수의 열혈 청취자'라는 입장에 서 있던 적은 없었다. 늘 끌려 다니면서 나도 들어봐야 하나, 이 정도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며 고개만 끄덕이는 수준이었다.  

드디어 도전. 그러나 나는 10분 정도 듣다가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 이유는 뭐 사람들이 다 들으니까 나는 하기 싫다, 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희화화'의 묘미만 대중들이 간직한 채 '정치'라는 본질에 대한 회피가 우려된다는 일부 시각에 동의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따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마치 문화연구의 '성찰 게임'에서 늘 등장하던 문화연구가 정치의 연성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 라는 추억 '돋는' 시각이었다.)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김어준의 웃음 소리가 싫었다. 이것은 내 귀와 라디오라는 매체, 그 매체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김어준과 나의 감정 교류에 대한 문제였다. 그렇다고 김어준씨 청취자 입장에서 부탁하는데 제발 그 웃음 좀 어떻게 해주시오! 하고 드라마 끝나는 마당에 제발 우리 주인공 죽이지 말아주세요~ 같은 요청을 하고 싶진 않다. 이 프로가 당당하게 내세우는 '싫으면 안 들으면 되니까' 그 룰을 난 지키려고 하고 그래서 앞으로도 '나꼼수'는 듣지 않을 생각이다. 

'나꼼수'와 '나꼼수'를 듣는 대중. 그리고 그 두 항에서 피어 올랐던 '영향력'의 문제. 이 문제에 대해 인터넷은 고맙게도 우리에게 뛰어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주시어 풍성한 관점의 바다에 풍덩 빠지도록 한다. 그러나 나는 잠시 육지로 내려와 저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쳐다 보며 비평을 하기 보다는 전혀 다른 영역을 고민하고 싶었다.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섬과 같은 고민이자 그래서 아직은 '동의 지수'는 미약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고민. 

5. 

그 고민은 그냥 김어준의 웃음 소리에서 느꼈던 부담감, 내 귀, 라디오, 미디어라는 각각의 항. 그리고 그 항이 만들어내는 의미들. 어쩌면 좀 과학적인 문제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나꼼수'는 올해 '귀'라는 인간의 신체 기관과 정치의 긴밀함을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보여준 인상 깊은 사례가 되었다. 사람들의 귀는 아직 라디오라는 매체를 버리지 않았고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대중에게 '나꼼수'는 귀를 달달하게 만들어주는 풍성한 이야깃거리들을 보장했다.  

6. 

이런 생각을 문득 해봤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고 하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인간의 신체 기관 중에서 정치 때문에 가장 피로도가 누적된 곳은 어디일까. 의외로 나는 '눈'보다 '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 피로도 누적의 문제는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살면서 정치와 관련하여 어떤 신체 기관을 가장 많이 사용할까, 라는 능동의 문제와 연결된 것이기도.  '귀'라는 신체 기관의 중요성을 개인적으로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7.  

조금 더 나아가 '나는 가수다'에서 내가 느꼈던 감각의 문제는 '시각'이었다. 관중들이 눈물이나 감동을 받는 장면을 클로즈업하면서 나타나는 '감동의 강요'. 나는 이 프로그램이 주는 '시각적 피로도'에 관심이 갔다.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듣기'라는 행위에 기초한다.(왜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텔레비전 음향 모드도 '음악 모드'로 바꾸면 더 좋은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다는 친절한 자막도 나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텔레비전이라는 공감각적인 매체에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기관은 '시각'이기에 '나는 가수다'가 내게 주는 시사점은 이런 것이었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아이돌 위주의'(그리고 이 아이돌이 시각문화를 대표하는, 즉 비디오 스타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고 있는 마당에, 라는 가정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면) 판도를 우려하며 더 좋은 음악을 대중과 공유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결국 '대세 자체'는 여전히 거스를 수 없었다는 점. 청중평가단은 이 프로그램에서 노래가 빠르든 느리든 신나든 슬프든 퍼포먼스라는 시각 중심적 행위를 좋아했고 프로그램 또한 관객의 반응이라는 시각적 퍼포먼스를 최대한 이 프로그램의 대단함을 강조하려는 전략으로 활용했다.  

 

 

 

 

 

 

 

 

 

 

 

8. 

반대로 이제 내가 '나꼼수'에서 느끼는 피로도의 전이는 '귀'에서 '눈'이 될 것 같다. 라디오는 라디오대로 놔두었으면 하는 그 고유성.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바로 자동적으로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던 "이거 결국 책으로 나오겠지?"하는 반응이 실제 결과물로 나타났을 때. 나는 '읽기'라는 시각 문화와 '듣기'라는 청각 문화의 중요한 행위를 떠올렸다. '닥치고 정치'라는 제목은 그래서 내겐 신선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닥치다'라는 것은 말하기 - 듣기의 문제인데 나는 이 문제가 '보기'의 영역도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꼼수다 뒷담화'라는 제목도 말하기 - 듣기의 문제를 연상시킨다. ) 

9. 

하지만 이 피로도 자체를 내버려두는 짓은 하지 않으리라. 그 피로도가 주는 괜한 생각들. '알맹이'도 없이 괜히 '나꼼수'때문에 엄청 팔리는 관련 책에 대한 시샘 등을 포함한 그런 것 말이다. 라디오가 비디오 스타를 죽이는 날이 과연 올까? 근데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그 유명한 노래 제목을 곱씹어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히 하나의 감각에만 치중했을까, 라는 엉뚱한 의문이 든다.   

 

10.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매번 실적 올리기 위해 하는 대선 후보자들의 tv토론 담화 분석 같은 그런 진부한 논문 말고 한국인들은 정치를 통해 어떤 신체 기관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가, 같은 그런 논문을 읽고 싶다. (부탁합니다. 저는 그 동네를 떠나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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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1-11-1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꼼수 열혈청취자로서 어줍잖게 답글 하나 올려봅니다.
저도 나꼼수 처음 30분은 짜증이 날 지경이랍니다.
그 시간동안은 말장난만 계속되니까요..

다만..
그런 방식은 정치를 무겁게만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짜증은 나도 재미있을때도 많거든요. ㅋ

중요한 건 본론이지요.
그들이 떠들어대는 (지금까지 27편동안) 50여시간의 분량중에..
지금 머리속에 남아있는 건 그들이 떠들어대는 시간이 아니라.. 여러가지 팩트들이지요.

그 팩트들(전 가감 없이 그것들을 전적으로 팩트라 생각합니다. 다른 경로로 그 얘기들을 들었다 하더라도
제 스스로 그 정보들을 재평가한 뒤 역시 팩트라고 규정했을테니까요)로부터 제가 얻은 것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에 대한 보다 명확한 그림이 그려졌으니까요.

님께서 나꼼수를 듣고 안듣고는 자유지만..
어떤 경로로든 그들이 제시한 여러가지 팩트들을 꼭 접하시길 바랍니다.
그중에서 팩트가 아닌 것들은 님께서도 저처럼 알아서 걸러내실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되도록 손가락에 집중하진 마시구요. 달만..

얼그레이효과 2011-11-19 22:23   좋아요 0 | URL
나꼼수가 할 일은 나꼼수대로, 제가 할 일은 저대로 있겠지요^^ 이 글이 나꼼수를 듣지 말라는 의도로 보인다면 제 과오입니다. 암튼. 저도 달을 좋아합니다. 그럼.

지나가다2 2011-11-10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어준 목소리 마음에 안들어서 안듣겠다.' 거기까지만 쓰셨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

얼그레이효과 2011-11-19 22:23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그냥 오랜만에 장문을 쓰고 싶어서. 그렇다고 쥐어 짜낸 것은 아니구요. 지적은 고맙습니다.

Ritournelle 2011-11-10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그레이효과님의 <귀> 혹은 <청각>기관과 <나꼼수> 효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은 정말 탁월합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나꼼수를 들으면서 몇 달 전부터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나꼼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나꼼수>의 성공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친 것은 <귀> 혹은 <청각>기관에 대한 관계성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진데요. 1) 반복적 자극과 그 자극에 의한 무의식적 지층에 어떤 의미들이 켜켜이 쌓여간다는 점 2) 라디오라는 매체의 특이성 때문에 자극을 통한 어떤 <성찰>의 공간/계기가 마련된다는 점.
비디오 킬 더 레디오스타나 혹은 그 역이라는 측면이 <나꼼수>에서 양가적으로 나타난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는 더 두고 볼일 같습니다. 전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상호작용의 측면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자의 측면을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혹은 라디오스타는 라디오를 사랑하는 대중들이 존재하는 한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봅니다. 비디오 킬 더 레디오스타라는 노래가 나온지 벌써 3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유효합니다. 라디오는 얼마든지 최첨단 매체와의 긍정적 융합관계/컨버전스를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미디어니까요.

얼그레이효과 2011-11-19 22:24   좋아요 0 | URL
저도 '나꼼수'에 대한 저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이 프로그램이 갖는 영향력은 정말 두고두고 인상에 남을 것 같습니다. 무화과나무님이 저보다 더 멋지게 해석해주시는군요.^^

빵가게재습격 2011-11-11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탁월하는데에 한표요~ 저는 나꼼수가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며 잃어버렸던 '대통령을 씹는' 언어를 되 찾았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두 번째 반복되는 '희극'이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거든요.^^; 얼그레이님의 지적대로 '정치의 신체'에 관한 글이 어느분에 의해 올라오길 기대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11-19 22:27   좋아요 0 | URL
역시 빵가게님 알라디너 중 대표 철학도답게^^ 요즘 책을 많이 못 읽어서 다른 분들 리뷰를 못 따라가 큰일입니다.크크. '정치의 신체' 책 제목으로도 고려를.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