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책의 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
'대세 따르기'는 좀처럼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이런 이벤트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동참한다.
1. 개인적으로 만나, 인생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고픈 저자가 있다면?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 두 명을 꼽으라면, 게오르그 짐멜과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였던 것 같다. 짐멜이나 엘리아스 둘 다 사회학자들의 사회사를 다룬다면, 심심하지 않은 인생담을 제공해주리라 생각한다. 엘리아스의 경우, 오히려 늦게 빛을 본 학자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머리에 윤활유를 발라서 버티어주는 뇌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시기, 그리고 한창 세상에 빛을 보는 어떤 시기, 마지막으로 사회가 규정짓는 /구성하는 어떤 '전성기의 나이'를 볼 때, 엘리아스는 '노년' 이었을 때 오히려 그의 머리 위에 가장 높은 곳에서 해가 떠올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늙었을 때 외려 젊었다. 더욱 더 큰 정력의 정점을 찍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죽어가는 자의 고독>에서 그는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술회를 사회학도의 사명을 가지고 감성적이면서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시도를 선보인다. 그 책을 읽었을 때, 나도 (엘리아스처럼) 이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충해서, 한 명을 더 꼽자면.
많은 이들이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위르겐 하버마스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테마로 강연을 한다면, 흥미로운 만담을 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을 읽어보면, 그의 인생이 보이는 것 같다. 예전에 친구랑 재미로 이런 대입 -게임을 해본 적 있다. 각 지성인들을 각 대학의 이미지랑 한 번 연관시켜본다면? (어차피 유머이니 오해는 없기 바란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서강대', 피에르 부르디외는 '고려대', 앤서니 기든스는 '연세대', 그렇다면 하버마스는? 이러니, 함께 게임을 하던 친구와 나는 같이 '하버마스-서울대'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공부만 했을 것 같은 이미지, 골덴 마이에 수수한 면바지,적당히 빗어넘긴 생머리. 범생이 이미지로 "교수님 그건 아니죠"하며 과감히 손들어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 도서관에서 매일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파는 학생이 연상된다. 그의 책은 그러나 점잖은 이미지와 달리, 다들 알다시피, 엄청난 열정과 파격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명성이 쌓여갈수록, 외려 더 모범적으로 기존의 논의들을 다루었으며, 논쟁에 참여하는 자세를 보였다. 워낙 부족한 나이기에 그의 책을 이렇게 평가한다는 건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의사소통행위이론>1,2권을 보면 그의 '아마추어적인 열정'이 보인다. 그는 늘 뜨거웠으며,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 자신이 참조하는 이론의 한 톨, 한 톨을 장거리 달리기 주자처럼 끈기있게 보는 의지를 글 안에 채워 넣었다. 하버마스적 열정은 그 스스로를 비판사회이론의 거두로서, 또 우리 시대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파이터 중 한 명으로 남게 한 건 분명해보인다. 그는 정말 많이 싸웠다. 그랬을 때 거기서 나온 후일담들은 의외로 재미있었을 것 같다. 누가 '하버마스-후일담'이런 책 안 내려나.-.-?
2. 단 하루, 책 속 등장 인물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의 삶을 살고 싶으세요?

나는 늘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중 주인공의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도시라는 얇은 살얼음판을 걷게 될거야"라는 어느 평론가의 조언에 힘입어 읽어본 책이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로버트 알트만의 <숏 컷>,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같은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카버의 소설집은 늘 나를 그런 영화들의 주인공, 그리고 카버의 책 속 주인공들이 사는 나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상한 행동이 아닌데, 이상한 것처럼 쳐다보는 도시인들. 혹은 그런 이상한 것 마저도 무미건조한 무관심 속에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도시적 시간. 너무나 차분하게 시간이 흘러가서, 왜 사람들이 나를 안 보지?같은 이상한 걱정을 하게 되는 시간. 그래, 차라리 개구리 우박이나 내려라.
3. 읽기 전과 읽고 난 후가 완전히 달랐던, 이른바 ‘낚인’ 책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미디어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나이기에, 저자가 어떤 '종언론'을 펼칠 것인가 호기심이 생겼던 책이다. 나는 많은 비판을 받는 '종언론 자체'에 대해 오히려 큰 호감을 보이는 편인데, 그 이유는 종언론 자체가 주는 어떤 긴장감, 혹은 그러한 선언을 펼치는 '나'의 절망감이 때론 귀엽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언론'과 연관되는 '~는 죽었다' 이런 제목은 겉표지만 보고 샀다가는 큰 코 다친다. 보통 '죽었다'고 하면, '살리는'경우가 다반사기 때문. 이 책은 '책 문화에 대한 절망감'을 물론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책은 살아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종언론'의 경우, 그 종언의 대상이 되는 건 아직 그 명맥을 가냘프게라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끝났기보다는 '퇴색'정도의 표현을 '죽음'으로 확 바꾸는 편인데, 나는 이것을 과장됨이라고 보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사랑은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요즘 이런 사랑 찾기 어렵지 않나. 죽을만큼 사랑한다라는 것 말이야)
4. 표지가 가장 예쁘다고,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책은?

서동진이라는 저자를 아는 사람들은, 엥? 이 좋은 책의 표지가 왜 그래?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을 것이다. 출판사의 의도? 혹은 저자의 의도? 혹은 제3의 사고인 줄 모르겠으나, 책 알맹이의 그 열정과 달리 너무나 심플한 표지를 보고 나도 처음에 뜨악했다. 그런데, 책을 두 번째 읽고 나서, 이 심플함에 이상하게 호감이 갔다. 좀 과장 해석을 보자면, '시계가 사람 머리보다 크다'. 계발은 무엇보다 시간과 다투어야 한다. 다이어리에 꼼꼼하게 자신을 체크하기. 지하철에서 멍하게 졸지 말기. 자기 전에 책 몇 장 더 보기. 긴장감을 위해, 휴대폰 액정 화면을 조그만 달력 세 개로 채워 다음 달 일정까지 상상해보기. 의자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이테였으면 말동무라도 해주었을텐데. 이 고개숙인 남자의 삶은 더욱 쓸쓸해보인다.
5. 다시 나와주길, 국내 출간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민음사판,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이다. 신촌의 모 대학교 도서관에 귀하게 모셔진 책 중 하나다. 책이 너덜너덜해져서, 어떤 귀여운 분이 정성스레 이 책을 소중하게 다뤄줄 것을 메모해 놓았다. 이 책 다시 나와줬으면 좋겠다. 옛날 책 냄새가 좋긴 한데, 다시 보려니 조금 눈이 아프다. 새 책으로 나온다면, 분명 베스트셀러가 될 터인데. 음. (아닌감 -.-)
6. 책을 읽다 오탈자가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다 아는 '출판사 동#선'에 대한 불만들. 안 그래도 번역이 개#이라 불만이 많은데, 오탈자까지 있으면 기분 잡친다. 사장님의 열정은 알겠지만, 너무나 훌륭한 유럽의 지적 소산들을 이런 식으로 봐야 하는지 원. '사장님 나빠요~'(블랑카 ver)
7. 3번 이상 반복하여 완독한 책이 있으신가요?
3번 이상 읽은 책으로 언급하기에 그리 '우아한' 분야가 아니라, 이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로선 이 책에 '완독'이란 표현을 쓰기가 좀 미안한, 그만큼 아직 파헤칠 만한 내용이 많다는 생각을 주는 게 더 크다. 맥루언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미디어의 이해>는 가끔 성경같은 기능을 할 때가 많다. 새로운 것을 이야기할 때, 이 책이 갖는 예언자적 기질은 그 새로움을 이 학자가 이미 40년 이전에 말하고 있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약간의 놀라움. 이 사람 뭐야. 책 속 내용을 보면, 사모님을 낚으려는 어느 제비족의 사기 같은데, 여러 번 읽어보면 보통이 아니다. 잘생긴 사람이 이런 '문술'을 펼치니 부럽기까지. (마샬 맥루언은 '롤랑 바르트'과에 속하는 '느끼한 미남'인데. 내가 이렇게 생긴 편이라 호감이 가는지도.^^;)
8. 어린 시절에 너무 사랑했던, 그래서 (미래의) 내 아이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
아직 나이가 '아이'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 식상하게 <어린왕자>나 <동물농장>같은 책이요, 하고 쉽게 푹 결정내리기는 싫고. 그래서 패스.
9.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두꺼운(길이가 긴) 책은?
쉽게 쉽게 휙휙 넘겨가며 '읽었다'는 것에 만족한 책을 제외하면, 정말 꼼꼼하게 읽은 두꺼운 책은

리영희 선생님과 임헌영 선생님의 대담집. <대화>. 리영희 선생님의 제자가 내 학부시절 지도교수여서 선생님의 '무용담'을 종종 들을 수 있어, 더 친밀하게 다가왔던 책이다. 선생님의 강연회를 한 번 준비한 적이 있는데, 아프신데도 불구하고, 눈빛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에. 대가는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내게 남은 건 이제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진실을 말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입이라는 걸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두껍지만, 더 두꺼웠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한 책.
10. 이 출판사의 책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는?
특별히 선호하는 출판사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워낙 좋아하는 분야가 '인문사회과학'쪽이라 '돌베게'나 '한길사', '새물결'의 책을 다량 소장하고 있다. '에코리브르'도 늘 선별하는 테마들을 보면 기획팀들이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것 같다. 흥미로운 주제들의 번역서가 꽤 있다. 인문사회과학 시장의 불황 가운데서, 지적인 공간을 확보하려는 '산책자'같은 경우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출판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