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푸코에게 고등사범학교 신입생 다니엘 드페르와의 만남은 특히 그의 인생 말년을 정의하는 데 중요했다. 이후 1984년 6월 푸코가 죽기 전까지 다니엘 드페르는 푸코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주었다. 푸코가 죽고 나서 20년간 드페르는 푸코의 죽음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명사의 죽음이 그렇듯, 고인이 된 푸코의 사인을 둘러싼 예의없고 입싼 저널리즘의 태도가 두려웠던 드페르는 2004년 오랜 침묵을 깨고 리베라시옹의 유명 저널리스트 에릭 파브로와 나눈 인터뷰의 게재를 허락했다. 

드페르가 이 인터뷰를 통해서 강조하고 싶은 건 고인과의 친밀했던 추억을 되살리고 그의 영예로움을 보존하는 것보다는 그의 죽음으로 촉발된 정치적 투쟁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푸코와 AIDS의 관계를 둘러싸고 드페르는 의학 지식이 개인을 어떻게 함부로 다루었으며, 그러한 의학 지식의 수행자들과 환자-환자의 동반자가 벌이는 권력의 게임이 어떤 상처와 분노를 가져다주었는지를 인터뷰에서 밝힌다(읽고 나서 거칠게 정리해봤는데 인터뷰 내용은 디테일하고 흥미로우며 새겨들을 부분이 많다. 드페르가 푸코의 입원 수속을 받는 과정, 검사에서 푸코를 함부로 다루거나 경계하는 과정, 에이즈에 대한 병원 내 인식, 푸코의 죽음 뒤 저널리스트가 어떻게 에이즈와 명사의 관련성을 스캔들로 묶으려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나와 있다).

그런 권력 게임의 상처와 푸코의 죽음은 AIDS는 곧 동성애라는 그 당시 프랑스의 사회적 인식에 저항하기 위해, 드페르가 직접 AIDS에 대한 보수적 인식에 저항하는 운동가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었다(드페르는 프랑스에서 최초로 에이즈에 대한 인식 재고를 위한 기관을 만든 사람이었다). 드페르는 자신의 연인인 푸코가 이 사회를 위해 실천했던 다양한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노동자, 동성애자, 에이즈 양성 반응자, 죄수들을 위한 목소리의 필요성을 역설해야 한다는 투쟁 의식을 갖는다. 

폴 벤느, 디디에 에리봉, 질 들뢰즈의 시선에서 이제는 푸코의 반려자이자 사회학자인 드페르의 시선을 직접 접해볼 때다. 이 책이 꼭 국내에 출간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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